이것이 전쟁이다! (6.25전쟁 사진집) 10
서울을 탈환하라는 날까지 겨우 48시간만이 남았는데 서울은 죽을 때까지 진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공산군들에 의해 방어되고 있었다. 전혀 정찰되지 않은 지역에 추방을 노출하는 것을 개의치 않고 그의 중대를 전전도록 하는 것처럼 보였을 바로 그때 그의 곁에 서 있던 저격수가 외쳤다.
"공산군" 배로우 대위는 몸을 앞으로 수그린 병사의 머리 너머로 그의 안경을 추켜올렸다. 모든 눈이 능선을 따라서 기차역 바로 반대편의 세 개의 빌딩들을 훝었다. 그가 옳았다. 빌딩의 입구들은 모래주머니들로 방비가 되어 있었고,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출입구의 그늘 뒤에서 나타났다. 모든 해병대원이 동시에 욕을 하기 시작했다.
북한군 1개 소대가 철로 둑의 보호막 아래서 갑자기 나타나 건물 중앙부로 뛰어 들어갔다. 그곳이 그들의 본부였다. 밥 배로우 대위는 무선교신을 했다. 그는 조용히 사무적인 목소리로 그가 본 모든 것을 보고했다. 그리고 공산군 사령부에 대한 공중타격 요청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화차 주차장과 주거 지역으로 그의 증대원을 보내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다.
항공지원 연락관에 급히 전투기들을 목표로 유도하는 동안에 더 많은 관측자가 능선을 따라 정면에 표기된 것처럼 보이는 지역에 숨어 있덧 공산군을 찾앙내기 시작했다. 공산군들이 그들의 시야로 미군이 들어오는 것을 기자리고 있을 때 또 다른 적군들의 철모들이 철로를 따라 거북이처럼 열을 이루었다.분명히 공산군 중에 어느 사람도 그들 위쪽의 집과 담장 뒤에 숨어 있는 해병대원들을 보지 몬한것 같았다.
밥 배로우 대위는 그의 증대를 철도를 가로질러 아래로 이동시켰고 대대의 나머지 병력과 연대가 그 뒤를 따랐다. 공산군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순히 숨어서
대부분의 해병대원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신호를 주면 그들의 참호와 방책과 너저분한 거리 곳곳에서 그들에게 사격을 가할 것이었다...
적들의 계획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큰 참사가 예견되었다. 밥 배로우 대위의 바로 앞 지역은 서울 전 지역을 담당하는 공산군의 주둔지로서 남쪽으로는 한강 다리 주위의 방어를 강화하고, 북쪽으로는 서울 방어를 위한 전투에 대규모의 병력을 이동시킬 통로로 계획했던 부대 비축소 같은 곳이었다.
항공지원 통제관이 로켓탄과 폭탄 공격을 적군 사령부 건물로 유도하였을 때 배로우 대위는 북한 공산군이 가장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물에 정밀한 중박격포의 일제 사격을 요청했다. 다른 항공기들이 저속으로 강하하여 적의 탱크에 소이탄 공격을 가했고, 적 탱크들은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기름화염의 불꽃을 터뜨렸다.
불어 간물을 통해 퍼져 나갈 때 해병대원들은 처음에는 10여 명, 다음에는 100여 명 또 다음
에는 글자 그대로 수천 명의 적군이 건물 사이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내달리는 것을 보았다. 기관총 사수들이 그들의 무기를 능선의 개방된 가장자리에 놓고 샛길과 거리를 치열하게 사격으로 휩쓸었다.
화염과 연기의 커다란 기둥들이 하늘을 향해
굽이쳐 올라갔고, 곧 전체 지역이 용광로가 된 것 같았다. 포병의 일제사격이 박격포탄 공격과 함께 시작되었고, 종전보다 훨씬 더 많은 항공기가 호출 간격에 따라 급강하 폭격을 가했다. 전방지역이 궤멸하였다는 것은 분명했고, 얼마나 많은 공산군이 그 불 속에서 죽었는지 아마 어느 누구도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은 확실했다.
그 지역은 18시간 동안 기록되어 있는 모든 수단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 다음 날 아침 새벽 직후에 포격이 멈추고, 폐허에서 불에 타면서 내는 딱딱 소리와 벽들이 무너지며 내는 굉음들만이 들려올 때, 해병대원들 전원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토치카들이 있는 구불구불하고 서로 얽혀있는 거리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가장 많이 파괴된 적 주둔지의 핵심지역이었던 중심부로 들어갔으나 단 한발의 대응 사격도 없었다. 그 후 해병대원들은 공산군들의 다음 저항지점인 기차역을 공격하기 위해 이동했는데 그 기차역이 해병대의 다음 목표였다.
건물 위로 진입해 들어가는 대신에 건물의 정면을 따라 침투하는 시가전은 해병대원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그들의 전투는 프랑스의 아르곤과 벨로의 깊은 삼림지대였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그들의 싸움터는 태평양의 축축한 정글이나 해변이었다. 시가전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으나 그들은 곧바로 시가전의 특성에 적응해갔다...
그리고 좀 더 가까이서 공격을 했고, 사격으로 아침의 소란을 일으키는 적기관총사수들이 있는 역사 쪽으로 좀 더 가까이 갔다. 연발 사격이 가능한 소형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또 다른 공산군들이 길을 따라 있는 부서진 담장에 봄을 숨기고 해병대를 꾸준히 압박하며 최후의 저항을 하다가 이내 곧 사라져갔다.
민간 여인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폭풍우가 나무들을 몰아치고 가듯이 해병대원들을 지나쳤다. 피곤함에 찌들고 초라하고 가을 낙엽 같은 그들은 마지막 화를 피해 달아났다. 더 많은 사람들과 가족들이 불타고 있는 폐허로부터 비틀거리며 나타나 피난처라도 되는 것처럼 해병대원들의 팔 안으로 달려들었다. 무엇인지 모를 말들을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그리고 어리둥절해 하는 해병대원들에게 원하지도 않는 선물을 주면서....
해병대원들은 이쪽 거리 모퉁이에서 저쪽 거리 모퉁이로, 또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이 바리케이드에서 저 바리케이드로, 이쪽 담장에서 저쪽 담장으로 교대약진을 해갔다. 그들의 목표들은 거의 볼 수도 없었고 또 타격하기에도 상당히 어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단지 머리를 내리고, 총을 움켜쥐고, 거리를 똑바로 공격해 들어갔다.
그들은 높은 돔을 가진 고전적 형태의 역사 건물의 유효 사거리에 도달한 후에, 거대한 담벼락들과 바람에 버려진 창문들 주변에 산재한 폭탄 구덩이들을 향해 마지막 숨이 다하도록 전력 질주를 해야 하는 개활지에 노출된 다른 해병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엄호사격을 지원하였다.
공산군들은 사격이 끝나자 위장한 철모를 쓰고 낯선 카키색 바지를 입은 몇 명의 해병대원들과 나머지 병력이 그들이 움직일 때 역사 창문 안으로 사격을 가하며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급히 보강된 바리케이드가 준비되어 있고 서울 북쪽으로부터 달려 내려온 다른 병력이 배치된 거리 쪽으로 빠져나갔다. 공산군들은 바리케이드 뒤로부터 기차역과 그 앞의 광장을 향해 끊임없이 일제사격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해병대원들은 폭탄 구덩이로 몸을 숨기고, 감히 머리를 들지 못했다. 머리 위 총알 소리가 너무 가까웠고 끊임없이 그들을 향해 발사되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거리를 따라 뒤에 오고 있던 다른 해병대원들은 사격 소리를 듣고, 위험에 처한 그들의 동료를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 위험하게도 바리케이드를 벗어나 몸을 구부렸으나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깊고, 땅을 흔드는 굉음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했다. 탱크들. 그들이 오래도록 기다려온 탱크들이 철도를 가로질러 으르렁거리며 역 광장으로 진입했고 적군의 사격을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탱크들은 바리케이드로 방호되고 중무장한 적들과 일제사격을 연속해서 교환했다.
그러자 강철 덩어리들과 바리케이드 조각들이 하늘 높이 날았다. 그들은 직사거리에서 서로를 사살했다. 그런데 짙은 연기가 그 장소로부터 생기더니 교전이 천천히 거리를 따라 뒤로 물러나며 벌어졌고 역 앞의 광장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기차역을 점령하고 있던 해병대원들이 항상 그랬듯이 의심스러운 잔해들과 사면들을 살피며 기차 역사 안쪽 뜰을 둘러싸고 느릿느릿 나아가는 동안, 시가 탈환을
위한 근접교전은 끝났다. 이제 그 해병대원들은 해 질 녘까지 먹거나 잠을 자거나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미 다음 블록 너머까지 가 있는 전차를 지원하는 해병대원들을 다시 교대해주라는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는 다시 민간인들이 나타났다. 그 민간인들은 손과 발이 묶인 다른 민간인들을 끌고 있었고, 한명 또는 다른 어린아이들이 그들 뒤를 따랐다. 경비병들이 묶인 사람들은 위해 배치되었다.
이는 그들을 살려두기 위함과 동시에 그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서였다. 묶여 있는 사람들은 데려온 사람들로부터 반역자로 간주 당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더 많은 포로를 데려왔으나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제복을 입은 병사들이었고 그들을 잡아 온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며 아직 꼭대기에 붉은 별이 달린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들, 즉 적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명확했다. 즉각적으로 그들이 사령부에서 가치 있게 생각하는 무기나 문서들을 감추었는지를 조사하고, 전쟁 포로 꼬리표를 붙인 후에, 후방으로 그들을 이송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그들을 엄하게 감시하게 했다.
해병대원들은 대부분이 지금 막 했던 것과 같이 먹거나 자거나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저 무거워진 어깨를 늘어뜨리고 서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몇몇은 바로 가까이에 땅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잡혀 온 적군 병사들을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다면 실제로는 그들이 그 적군 포로들을 전혀 보고 있지 않을 수도 있었고, 눕거나 잠을 잘 때라고 느끼고 있었는지도, 또는 무언가 고뇌에 잠겨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다만 장화를 신고 몸을 구부정하게 한 채 말 한마디 없이 서 있었을 뿐이었다.
밥 배로우 대위의 중대원들이 고지의 맨 꼭대기에 자그마한 성조기를 게양했다. 그러나 제자리에 성조기를 막 묶는 그 순간에 고지로부터 들려오는 사격 소리가 주의를 끌었다. 그리고 국기게양은 그냥 큰 의미 없는 일상적인 의례가 되었다. 전쟁 속 어느 하루의 자그마한 사건처럼 말이다.
그렇게 먹고, 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무료한 오후'가 지나갔다. 자유로운 오후'는 아직 존재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해병대원들이 아직도 아침마다 느슨한 자기 내면을 찾아 헤매는 동안 그들 중 누구도 자유로운 오후가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부류의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한 자기들의 오후를 살아가면서 단지 한 블록 떨어져 있었다. "오래 꿈꿔온 그리고 이제는 잊힌 담배가 그의 손가락을 태우는 바로 그 순간에도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는 그 포로를 위한 자유로운 오후도 없었다.
그리고 한옥 담장에 기대어 일그러진 표정으로 집으로 편지를 쓰면서 아침시간을 덮으려고 애쓰는 해병대원들을 위한 자유로운 오후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화를 내며, 이 해병대원은 종이를 조각조각 찢고 담벼락으로부터 물러났다. 아무것도 없는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한 해병대원에게는 즐길만한 어느 오후가 있었다. 그 해병대원은 소작농의 숯 화로에
불을 붙여 불씨를 조심스럽게 살리며, 그 위에 콩 통조림 하나와 커피 한 캔을 데우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것은 승리였다! 순간적인 생존을 위해 다른 담장 뒤로 뛰어들면서 한쪽으로 통조림을 던지도록 강요하는 적의 총알 세례가 없는 서울거리에서 여유롭게 큰 대자로 눕고, 커피를 끓이고, 콩 통조림을 먹을 자유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