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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제 바둑은 조훈현 반 이창호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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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이세돌 9단은 감격적인 세계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한해 동안 중국 신예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나. 세계대회 주요 길목마다 번번이 ‘90후’라 하는 중국의 90년대생 신예기사들에게 지며 탈락해 체면이 말이 아니었고 줄곧 1위였던 한국랭킹마저 내려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단 한차례의 세계대회 우승도 하지 못한 채 2012년이 지나가나’라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달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12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3번기 대회 마지막 날 제3국에서 270수 만에 중국 구리 9단을 상대로 흑으로 반집승을 거두면서 종합전적 2-1로 우승에 성공했다. 1국에서 반집승, 2국에서 불계패했으나 3국에서 다시 승리. 귀중한 우승이었다. 이세돌은 이번 삼성화재배를 돌이켜 보며, 기쁜 것은 우승도 있지만 그만큼 구리와 겨룰 수 있었다는 점도 있다고 한다. 바둑사(史)가 기억할 라이벌 구리와 본선 대국까지 겨룬 것을 포함해 2승 1무 2패를 거뒀으니 어떤 의미론 비겼다고도 할 수 있다고 이세돌은 생각한다. 승리의 밤엔 피로가 없다. 이세돌은 우승을 결정 지은 날 가벼운 마음으로 바둑계 기자들과 친선 대국을 했고, 다음 날은 새벽부터 일어나 인터넷 서핑을 하는 등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기자는 이세돌이 쏜 카푸치노를 마시며 이번 삼성화재배와 함께 한국 바둑계의 현 주소, 이세돌이 생각하는 바둑 공부, 교육 그리고 문화, 바둑관 등 여러 가지를 들을 수 있었다. - 구리 9단과의 대결이어서 그랬는지 바둑계가 더 열광했던 것 같습니다. “상반기에 구리 9단과 저는 둘 다 저조했는데 하반기가 되면서 둘 다 동시에 컨디션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삼성화재배에서만 5번이나 대결했습니다. 신기해요. 더블일리미네이션으로 치러진 32강전에서 일찌감치 같은 조에 속했지만 세계대회 본선 사상 처음으로 4패빅(무승부)가 구리 9단과의 대국에서 나왔고 재대국도 했었죠. 그리고 결승전에서 반집 승부만 2번까지. 제가 구리 9단과 만나면 극적인 승부가 연출됩니다. 바둑팬들께서도 당연히 좋아하실 거에요.” - 구리 9단에게 밀렸던 이세돌 9단의 초반에 대한 지적이 많았는데요. “확실히 구리 9단은 초반에 이끌어 가는 능력이 뛰어난 기사에요. 뭐 초반뿐만 아니라 중반도 세죠. 중반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죠.” - 어린 시절 비금도에서 부친으로부터 바둑을 배울 때 기보보다는 사활 위주로 공부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때는 일단 바둑 책을 구하기가 어려웠고요. 보다 본질적으로는 기보를 보더라도 이해를 못하는 나이라고 할 수 있죠. 엄밀히 봐선 지금도 남이 둔 기보를 잘 이해 못할 때가 많습니다.” - 조금 놀랐는데요. 이세돌 9단도 이해 못하는 대목이 있나요? “기보를 이해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게 저의 지론입니다. 남의 생각을 읽는다는 게 어디 쉽나요? 물론 누가 봐도 확실한 악수를 파악하는 거라면 가능하지만요. 어떤 기사의 기보를 많이 보더라도 막상 실전에서 마주보고 또 대국해 보면 전혀 다르다고 느끼게 되죠. 기보만 가지고는 그 기사를 파악하는 게 몇 배 더 힘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프로가 되고 나서도 신예 시절에 정상급 기사들의 기보를 잘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프로지망생들이 정상급 기사들이 둔 수들의 깊은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아주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 말이 나온 김에 우리 신예들 어떻습니다. 가령 변상일 2단, 신진서 초단, 신민준 초단도 있겠고. “우선 신진서 초단이나 신민준 초단은 입단하고 나서 공식대국이 몇 판 안되기 때문에 내년은 되어야 알 수 있겠죠. 지금 이들이 서로 맞붙는다면 변상일 2단이 아무래도 앞서겠지만 내년부터라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신예 전체에 대한 느낌으론 지나치게 수비형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그런 식으로 교육받는 것 같습니다. (오직 입단을 위한 교육 말인가요?) 그렇죠. 또 한편으론 철저하게 학생을 '묶어두는' 교육 방식이 많아졌습니다. 물론 그런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어떻게 책상 앞에만 있나요. 제 스승인 권갑용 사범님께서는 학생마다 특성을 살려주셨고 저한테도 거의 터치를 하지 않으셨어요.” - ‘수비형’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합니까? “저와 구리 9단이 두는 것을 자세히 보셨을 텐데요. 어떻습니까, 주도권 쟁탈전이 치열하죠. 그런데 우리 신예 기사들한테서는 그런 게 안 보입니다. 상대로부터 압박을 당해도 아픔을 못 느끼는 것 같고, 심지어 선수를 뺏겨도 그냥 이러다 보면 기회가 오겠지 하는 식으로 보여요. 한마디로 '노인바둑'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단 말씀입니다. 어린 나이에는 그에 맞는 패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다듬어지고 그러다 보면 전성기를 맞이하고 이런 흐름이 자연스럽죠. 제 바둑을 보시면 상대방을 초반부터 강하게 압박하고자 하는 태도를 발견하실 겁니다. 한데 웬만한 기사들에게는 통하는 그것이 구리 9단에겐 잘 안 통하더군요^^ 구리 9단 역시 강한 압박으로 주도권을 갖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 증명되는 셈입니다.” - 잠깐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는데 천야오예 9단은 어떻습니까? 마침 이 9단의 춘란배 결승 상대이기도 한데 박정상 9단의 말로는 아직 천야오예 9단은 이세돌 9단의 상대는 아닌 것 같다고 하더군요. “하하. 상대가 안 되는 정도까지는 아닐 거에요. 천야오에 9단의 버티기에 잘못 걸리면 그대로 지죠. 제가 보기엔 천야오예 9단도 수비형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상대죠.” - 이세돌 9단은 한창 바둑을 배우던 시절에 이창호 9단의 영향을 받았습니까?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바둑을 익히던 때는 조훈현 9단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굳이 조훈현 9단의 바둑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거나 그런 것은 없지만 제 바둑을 보면 조훈현 9단의 스타일이 묻어나지 않나요? 하지만 신예기사 시절 때는 이창호 9단의 시대여서 이창호 9단에게도 영향을 받았죠. 그래서 제 바둑은‘조훈현 반 이창호 반’입니다. 하하” - 당분간 한국바둑과 중국바둑, 양국의 라이벌 관계는 지속할 것 같은데요, 공동연구 풍토에 대한 생각은 어떠십니까? “(성적이 좋다고 해서) 중국의 공동연구를 그대로 따라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서 가능한 것이 많죠(기숙사에서 기사들끼리 같이 생활하는 것 등). 또 공동연구에 참여하는 개개인의 실력 향상 정도에 관해서도 짚지 않을 수가 없는데, 신예기사들에게는 확실히 좋겠죠. 하지만 ... 음. .. 그러니까 나중엔 거기에 속한 사람들이 비슷비슷해진다고 할까요. 어쨌든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공동연구 개발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한중이 세계 정상을 다투는 사이 일본은 세계무대에서 급격히 추락해 갔습니다. 그 요인이 뭐라고 보십니까? “일본의 노장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일본의 노장들은 오랜 기간 자국의 정상 무대를 장악하다가 원로가 되면서 승부를 놔 버린 듯합니다. 일본은 그래서 젊은 기사들이 부드럽게 바통을 이어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조훈현 9단을 보십시오. 여전히 서슬 퍼런 기세로 가끔씩 어린 후배들에게 이기기도 합니다. 젊은 기사들은 이에 자극을 받습니다.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강했던 노장은 요다 노리모토 9단일 겁니다. 지금의 상황이라면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다시 예전 같은 지위를 회복하기에는 답이 잘 안 보입니다.” - 조한승 9단은 일본 여자 기사들은 자신에게 석점 치수 정도 될 것이라 하더군요. 이것은 몇 년 전 이야깁니다만, 이세돌 9단은 어떻습니까? “석점이요? 석점은 만만치 않을 텐데요. 우리 여자 기사들을 봐도 정상급이라면 상당하잖아요.” - 이번 삼성화재배 최종국이 마무리되던 순간에는 중국의 수많은 매체들이 현장을 찾아 취재 열기를 내뿜었습니다. 이 같은 바둑의 대한 큰 관심이 내심 부럽더군요. “중간밖에 진행되지 않은 갑조리그를 관람하기 위해 수많은 중국 바둑팬들이 모여드는 것도 봤습니다. 현장은 살아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프로기사와 팬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는 것은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삼성화재배 결승전도 좀 더 너른 공간에서 펼쳐졌어도 괜찮았다고 봅니다. 팬들이 직접 대국을 지켜볼 수 있다면 더 좋다고 생각하고요. 처음부터 볼 필요 없이 중간부터 보게 해도 되겠지요.” - 좀 파격적이네요. 어떤 이가 밖에서는 보이지만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유리방에서 대국을 하게 하고 관중들이 직접 프로기사의 대국을 관람하게 한다는 아이디어를 낸 걸 들었습니다만.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밖에서 절 보더라도 신경이 안 쓰여요. 아참, 단 방음은 되어야 합니다. 소리는 수읽기에 방해가 되죠.” |
첫댓글 이세돌 9단 축하,축하..
이 기세를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