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빈소에 조문하였습니다 ]
어제 부산의 한 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서 자신이 돌보던 환자에게 불의의 습격을 받아 유명을 달리한 김원장님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였습니다.
입원실에서 수차례 담배를 피우는 등 의사의 지시에 불응하여 퇴원 명령을 받자 이에 불만을 품고 살해할 의도로 칼을 구하여 김원장님을 공격하였습니다.
무려 가슴과 복부 등에 열여섯번의 공격을 가해 김원장님은 인근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으나 이미 목숨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정말로 참혹한 사건입니다.
우리 대한의사협회의 13만 의사들은 망연자실, 참으로 황망하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돌아가신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우리가 이것밖에 할 수 없다는 것에 무한한 무력감을 느낍니다.
2018년 12월 31일,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님 역시 환자의 칼에 맞아 유명을 달리한 비극을 겪었습니다.
안전한 진료환경을 위해, 의료인과 환자 모두의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제도적, 실천적 노력을 다하자고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처벌 강화의 법개정 등이 이루어지기도 하였으나 의료기관 내 폭력, 폭언, 살인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도처에 존재합니다.
반의사불벌죄의 폐지,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진료거부권의 도입,
의료기관 비상벨 설치, 대피공간과 대피로 설치, 그리고 이를 위한 재정지원.
경찰, 검찰,법원의 의료기관 내 폭력에 대한 무관용의 수사, 기소, 판결 관행의 확립,
정부의 지속적인 의료기관 내 폭력 방지를 위한 대국민 홍보.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2019년에도, 2020년에도 정형외과 의사가 공격당해 엄지 손가락이 잘리고, 정신과 의사가 칼에 '도룍' 당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번에 고인이 되신 김원장님은 늦게 결혼하여 유족으로 15세의 외동아들과 노모가 계십니다.
조문객을 이 어린 아이가 울면서 맞는데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습니다.
'아빠는 정말 훌륭한 분이셨다, 아빠의 동료들인 13만명의 의사 아저씨들이 모두 슬퍼하고 있단다, 아저씨는 의사협회 회장인데 오늘은 조문을 왔지만 조금 있다 다시 오마'
아이를 안아주며 이런 말밖에 해주지 못하고 왔습니다. 진료 현장을 지키다 숭고한 희생을 하신 김원장님의 어린 외동 아들은 우리 13만 의사 모두의 '아들'입니다. 장성할 때까지 후견 문제 등 추후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고인의 명예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제가 공개하는 이유는 우리 의료계에 일어나고 있는 비극을, 아무리 괴롭더라도 우리 모두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태를 직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우고 실천합시다.
정부에 묻습니다.
의료인과 환자를 위한 안전한 진료 환경 구축,
10년 후 활동할 소위 지역의사의 양성,
무엇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입니까?
지금 정부여당은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은 나라에서 자신들 지역구 챙기기 하느라, 또 정부가 제멋대로 부릴 수 있는 '의사 공노비'가 필요하니 의대정원을 확대한다면서 국민들을 위하는 척, 온갖 위선적 명분들을 늘어 놓고 있습니다.
의료계가 우리 의료제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주장해왔던 긴급한 정책 과제들은 외면한 채, 정치 논리로 또다시 허황된 의료정책들을 불통과 독단으로 강행한, 한 결과가 오늘과 같은 한 60세 의사의 비극적 죽음입니다.
대한의사협회의 13만 의사 회원 여러분, 비참하게 유명을 달리한 우리 동료를 애도해 주시고, 그 유족을 도와 주십시오.
그리고 분노해 주십시오.
2020.8.6.
대한의사협회
회장 최대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