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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박정희 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경제 성장을 일으킨,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생각해왔고 당연히 다른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주변분들께서도 박정희대통령 없었으면 아직까지 우리는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
사람같이 살고 있었을거라고 했었고요.
그런데 친구에게 물어보니 박정희 대통령을 나쁜 대통령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아서 놀랐습니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기적이라고 불릴만큼 그 짧은 시간에
이만큼의 경제성장을 이뤄낸 대통령이며 그의 리더쉽과 추진력은 현재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들의 롤모델의 대상이 되고 있을 정도인데 그 사람이 일궈낸것보다도
독재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더 크다니;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오히려 박정희를 훌륭한 지도자로 생각하는 저를 이상하게 보더군요..
독재를 하는 대통령을 추앙하다니.. 뭐 이런식으로요.
물론 독재라는게 분명 나쁜거고 비판 받아 마땅한 것이긴 해도, 자신의조국을 너무사랑하셔서 일본에게
자신이 밟히더라도 자신의후세대들이 자신을기억해주길바라며 하신것이아닐까하는생각이 듭니다.
그 시대당시에 무엇이 가장 필요했는지, 어떤 것을 해야했는지,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포기해야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나요?
그리고 그걸 막강한 추진력으로 실행하게 한 사람이 아닙니까?
불과 저희아버지때만해도 밥못먹고 굶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다이어트 이딴건 미친 소리고 빼짝 말라서 머리에 이 붙이고 다니면서
씻지도 못하고 구멍난 옷에 그지처럼 꾀죄죄하게 해다니던게 불과 저희아버지 세대입니다.
6.25 전쟁이 일어나서 모든게 초토화되고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길거리에 널리고 자원이라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최극빈민국가였던 시절이 불과 백년전도 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해봐야 육칠십년전이지요.
6.25전쟁이 끝난후 맥아더장군께서 우리나라에오셔서 하신말씀이 이나라는 재건하는데 최소한100년의
시간이걸릴것이다라고 하셧답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께서 열심히 일해주신것도크지만 박정희대통령께서
그만큼 자신의조국을 아끼는마음도 한덕하지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그가 뭐 친일파고 독재했고 어쩌고저쩌고 해도 그가 이룬 업적만큼은 대한민국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자부심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독재를 했으므로 나쁜대통령이고 그가 이룬 업적도
그냥 그저 그런거고 경제개발은
박정희 전부터 이미 다 계획되어있었으므로 그의 성과가 아니다?
박정희대통령이 아니라 다른사람이했어도 그랬을지는 의문이겟죠.
그리고 다른 대통령에대한
제 개인적소견입니다.
전두환전대통령께서는 민주화운동을하는 광주학생들을 처참히 살육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두환대통령때 IMF 잘넘기다가
결국 김영삼대통령시절 IMF가 터지고말았습니다.
그로인해 실업자가 엄청나게 불어났습니다.
그리고 김대중대통령 햇볕정책이라는 명분으로 북한으로 막가져다 퍼주셧죠
그래서 지금 이명박정부가 북한을 돕지않으니까 북한이 핵이니뭐니
천안함사건과같이 날뛰는것아니겟습니까?
저는 박정희대통령께서 국민을위한 그리고 그당시 우리나라에게 무엇이 필요한것인지
아시고 전세계 역사상 가장훌륭한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분야 업적☆☆☆☆
한국전력 발족(1961. 7. 1, 1982. 1. 1 한국전력공사로 개칭)
섬진강 수력발전소 재 기공(1961. 8. 19, 준공 : 1965. 12. 20)
수출조합법 공포(1961. 9. 9)
춘천 수력발전소 기공(1961. 9. 21, 준공 : 1965. 2. 10)
공업표준화법 제정(1961. 9. 30)
전원개발 5개년 계획 발표(1961. 11. 24)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 발표(1962. 1. 13)
울산을 중화학공업 우수 자연적 입지조건으로 결정 공포(1962. 1. 27)
기술진흥 5개년 계획 발표(1962. 2. 2)
울산공업지구 설정 및 기공식(1962. 2. 3)
의암댐 착공(1962. 3. 1, 준공 : 1967. 8. 1)
수출진흥법 등 16개 법령 공포(1962. 3. 17)
남강 다목적댐 착공(1962.4, 준공 : 1970. 7)
대한무역진흥공사 발족(1962. 6)
남양송신소 준공(1962. 9. 10, 기공 : 1960. 12. 31)
선암댐 착공(1962. 9, 준공 : 1964. 12)
사연댐 착공(1962. 9, 준공 : 1965. 12)
해운센터 착공(1962. 10. 10)
새나라자동차 생산개시(1962. 11, 1963. 5월까지 조립 생산함)
광주 내연 준공(1962. 11. 15)
금성사 라디오 첫 수출(1962. 11. 28, 62대/$594)
제2비료(호남비료) 나주공장 준공(1962. 12. 28, 현 L/G화학 나주공장)
희야댐 착공(1962년, 준공 : 1964년)
보리와 밀 품종개발에 성공(1963. 1. 25)
울산정유공장 착공(1963. 3. 12, 준공 : 1964. 5. 7)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공포(1963. 4. 17)
직업재활원 개원(1963. 9. 25)
서독 광부 1진 123명 취업(1963. 12. 21)
쌍용시멘트 영월공장 준공(1964. 4, 기공 : 1962. 9. 7)
한일시멘트 단양공장 준공(1964. 6. 20, 기공 : 62. 11. 20)
현대시멘트 단양공장 준공(1964. 7)
부산 감천 화력발전소 준공(1964. 8. 20, 기공 : 1961. 2, 132천㎾)
식량증산 7개년(1965~71) 계획 발표(1964. 8)
한국수출산업공단 설립(1964. 8, 서울디지털, 부평, 주안, 남동, 북평국가산업단지 관리)
공업품 표준 규격 제정과 KS 표시 허가제 실시(1964. 8)
제3비료(영남화학) 울산공장 기공(1964. 11. 29, 준공 : 1967. 3. 14, 현, 동부한농화학)
1억불 달성 제1회 수출의 날 제정(1964. 11. 30, 기념식 : 1964. 12. 5)
서울 구로지역 수출산업공업단지(1~6공단) 착공(1965. 3. 12, 준공 : 1974. 11. 5)
경제 각의, 잠업증산 5개년 계획 의결(1965. 3. 18)
제4비료(진해화학)공장 기공(1965. 5. 2, 준공 : 1967. 1. 7)
영월 화력발전소 1,2호기 준공(1965. 9. 1, 기공 : 1962. 5)
한국해외개발공사 발족(1965. 11. 3)
군산화력발전소 기공(1965. 12. 1, 준공 : 1968. 10. 31)
국내 텔렉스 400회선 개통(1965. 12. 16)
비인공업단지 조성(1966. 4. 29)
팔당댐 기공(1966. 6. 8, 준공 : 1973. 12. 31)
제2차 경제개발 5개년(1967~1971) 계획 발표(1966. 7. 29)
울릉도 추산수력발전소 준공(1966. 8. 1, 착공 : 1964. 4. 4)
아세아시멘트 제천공장 준공(1966. 12. 13)
광주공업단지 착공(1966. 12. 16)
아시아개발은행 가입(1966. 12. 17)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
여수 제2정유공장 기공(1967. 2. 20, 준공 : 1969. 6. 3)
전주 제1공업단지 기공(1967. 3. 22)
대구 3공업단지 기공(1967. 3. 31)
속초 수산센터 준공(1967. 4. 14)
소양강 다목적댐 기공(1967. 4. 15, 담수 : 1972. 11. 25, 준공 : 1973. 10. 15)
제5비료(한국비료) 울산공장 준공(1967. 4. 20, 현 삼성정밀화학)
동양시멘트 삼척공장 준공(1967. 4. 24)
영남화력발전소 제2호기 기공(1967. 4, 준공 : 1970. 12. 28)
GATT 가입(1967. 4. 15)
부산 연합철강 준공(1967. 9. 29)
의암수력발전소 1,2호기 준공(1967. 11)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 발표(1968. 1. 5)
울산 석유화학공업단지 기공식(1968. 3. 22, 준공 : 1972. 10. 31)
대암댐 기공(1968. 6, 준공 : 1969. 12)
화천수력발전소 4호기 준공(1968. 6)
축산개발 4개년 계획 확정(1968. 7. 26)
안계댐 기공(1968. 8, 준공 : 1971. 12)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1968. 9. 9~10. 20)
청평수력발전소 4호기 준공(1968. 9, 기공 : 1966. 9)
쌍용시멘트 동해공장 준공(1968. 10. 31)
한국투자개발공사 발족(1968. 12. 16)
한국수출품포장센터 발족(1969. 2. 8)
자동차공업육성 기본계획 발표(1969. 2)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안 발표(1969. 4. 2)
금산 위성통신지구국 기공(1969. 5. 15, 준공 : 1970. 6. 22, 제2위성통신지구국 준공 : 1977. 8. 25)
부산화력발전소 3,4호기 준공(1969. 6. 4, 기공 : 1967. 7)
알루미늄제련공장 울산공업단지에 준공(1969. 7. 3)
마산수출자유지역 설치 결정(1969. 9. 3, 착공 : 1970. 5, 준공 : 1973년 초)
경기도 안성군 한독낙농목장 준공(1969. 10. 11)
부평단지 준공(1969. 10. 31)
관악산 기상레이더 설치(1969. 11. 29)
철강공업육성법 공포(1970. 1. 1)
수출정보센터 개관(1970. 2. 7)
포항종합제철공업 단지 기공식(1970. 4. 1, 제1기 설비종합 준공 : 1973. 7. 3)
마산 수출자유지역 관리청 개청(1970. 4. 3)
인천화력발전소 제1호기 준공(1970. 5. 29)
관세청 개청(1970. 8. 21)
수출 10억달러 달성(1970년)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확정 발표(1971. 2. 9)
당인리 화력발전소 준공(1971. 4. 10, 착공 : 1966. 8. 3, 현 서울화력발전소)
안동다목적댐 기공(1971. 4, 준공 : 1976. 10)
중부산업단지관리공단 설립(1971. 5, 구미국가산업단지 관리)
내수용 생산업체에서도 수출을 의무화할 것을 지시(1971. 10. 25)
서울-부산간 장거리 자동 전화 개통(1971. 3. 31)
제3차 인력개발 5개년 계획 확정(1972. 1. 27)
녹색혁명추진(1972. 2. 9, 통일벼 개발)
기업사채 동결 등 긴급 명령 발표(1972. 8. 3)
중화학공업정책 육성 선언(1973. 1. 12)
공업진흥청 신설(1973. 1. 12)
현대울산조선소 기공(1973. 3. 25, 제1호선 진수 : 1974. 2. 15)
중화학공업의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온산, 창원, 여수~광양, 군산~비인, 구미 등 5개 대단위공업단지 조성 계획
(1973. 3. 26)
춘천, 대전, 원주, 청주, 전주, 이리, 광주, 목포 등을 지방공업개발 장려 지구로 지정(1973. 5. 4)
중화학공업(철강, 석유화학,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건설계획 확정(1973. 5. 24)
서울 부산에서 처음으로 가격표시제 실시(1973. 6. 1)
기능공 양성정책 수립(1973. 7. 10)
주안단지(5공업단지) 준공(1973. 7. 15)
정수직업훈련원 개원(1973. 7. 18, 현 서울정수기능대학)
호남종합화학기지 내 에틸렌계열공장 4개, 프로필렌계열 2개,
기타 7개 총 13개 공장건설계획 확정(1973. 8. 2)
구미전자공업 1단지 조성 완료(1973. 10. 5)
옥포조선소 기공(1973. 10. 1, 준공 : 1981. 10. 17)
이리 수출자유지역 착공(1973. 10. 17, 준공 : 1974. 12)
충주 제6비료공장 준공(1973. 10. 26)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창원, 온산, 옥포, 죽도, 안정, 여천 지정 (1974. 3. 27,
창원 : 종합기계공업기지, 온산 : 석유정제•비철금속 공업기지, 옥포•죽도•안정 :
조선공업기지, 여천 : 종합화학공업기지)
동남산업단지관리공단 설립(1974. 4, 창원, 울산, 온산, 안정국가 산업단지 관리)
창원기계공업단지 조성(1974. 4)
죽도조선소 기공(1974. 4, 준공 : 1980. 12. 5)
기업공개와 건전한 기업풍토 조성을 위한 박 대통령 특별지시 발표(1974. 5. 29)
주안단지(6공업단지) 준공(1974. 11. 5)
쌀의 완전 자급자족 달성(1976년)
대청다목적댐 기공(1975. 3. 27, 준공 : 1981. 6. 30)
여천석유화학단지 합동 기공(1975. 11. 10, 준공 : 1980. 1. 29)
통일벼보다 질이 좋고 다수확품종인 밀양21호와 23호를 개발하여
77년부터 통일벼를 없애고 신품종으로 대체할 방침을 수립(1975. 11. 20)
청평 양수댐 기공(1975년, 준공 : 1980. 12. 18)
근로자 재산 형성 저축제 실시(1976. 1. 19)
한국기술검정공단법안 마련(1976. 5. 18, 기술인력관리, 자격, 검정의 일원화)
포항제철 제2기 확장공사 준공(1976. 5. 31)
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확정 발표(1976. 6. 18)
국산자동차 포니 첫 수출(1976. 6)
반월 신도시 건설 발표(1976. 10. 2, 기공 : 1977. 3. 30)
특별소비세법 제정(1976. 12. 22)
초고압송변전시설 준공(1977. 4. 30)
월성 원자력 1호기 기공(1977. 5. 15, 준공 : 1982. 3. 10)
여수화력 2호기 준공(1977. 6. 30)
부가가치세 시행(1977. 7. 1)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우승(1977. 7. 10)
여수 제7비료공장(남해화학) 준공(1977. 8. 4, 기공 : 1973. 10)
서부산업단지관리공단 설립(1977. 11, 반월, 시화, 아산, 석문국가 산업단지 및 천안 외국인전용단지 관리)
연초댐 기공(1977. 11, 준공 : 1979. 12)
수출 100억 달러 기념식(1977. 12. 22)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돌파(1977년)
종합행정정보망 구성키 위해 행정전산화 10개년 계획 마련(1978. 2. 20)
전 국토의 토양정밀조사 완료(1978. 2. 23)
고리 원자력발전소 준공(1978. 4, 기공 : 1971년)
충주 다목적댐 기공(1978. 6. 3, 준공 : 1986. 10)
제24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개막(1978. 8. 30, 부산)
주요 도시간 장거리 자동공중전화 개통(1978. 12. 31)
쌀 4천만 섬 수확(1977년)
인천화력발전소 3, 4호기 준공(1979. 4, 착공 : 75. 5)
고리원자력 3, 4호기 기공(1979. 4. 9)
원자력발전소 9, 10호기 울진에 건설키로 확정(1979. 6. 12)
온산 동제련소 준공(1979. 12. 11)
공산댐 기공(1979년, 준공 : 1981년)
삼량진 양수댐 기공(1979년, 준공 : 1985년)
수출국 1961년 25개국에서 163개국으로 확대(1979년)
일부 / 이하생략...
☆☆☆☆국토개발 업적☆☆☆☆
국토건설단 창단식(1962. 2. 10)
동해북부선 개통(2차 공사 : 옥계 → 경포대 착공 : 1962. 4. 26, 개통 : 1962. 10. 31)
동진강지역종합개발공사 착공(1963. 3. 15, 준공 : 1972. 12. 31, 김제 부안)
황지선 개통(1963. 5. 30, 황지지선 착공 : 1961. 8. 10, 개통 :
1962. 11. 30 황지본선 착공 : 1961. 8. 12, 개통 : 1963. 5. 30)
능의선(서울교외선) 개통(1963. 8. 20, 1차 능곡 → 가릉 착공 :
1959. 10. 14, 개통 : 1961. 7. 10, 2차 가릉 → 의정부 착공 :
1963. 4. 27, 개통 : 1963. 8. 20)
제2한강교(현, 양화대교) 준공(1965. 1. 25, 착공 : 1962. 6. 20,
신교 착공 : 1979. 1. 4 / 준공 : 1982. 2. 2)
전남지구 6천여 정보 간척공사 기공(1965. 5. 18)
수자원종합개발 10개년 계획 수립(1965. 6. 30)
경인복선 개통(1965. 9. 18, 주안~영등포)
진삼선 개통(1965. 12. 7, 사천~삼천포, 착공 : 1964. 4. 29)
고한선 개통(1966. 1. 19, 증산 → 고한, 고한 → 황지 개통 : 1973. 10. 16)
인천항(제2도크) 착공(1966. 6. 1, 준공 : 1974. 5. 10)
경북선 개통(1966. 10. 10, 점촌→영주)
한남대교 착공(1966. 1. 19, 준공 : 1969. 12. 25)
정선선 개통(1967. 1. 20)
대도시 그린벨트설정 공포(1967. 2. 10, 서울, 부산 등)
충남 예당 전천후개발사업 15년만에 준공(1967. 4. 28)
한강변 제1로 개통(1967. 9. 23, 제1한강교 → 영등포 입구)
한국수자원개발공사 발족(1967. 11. 23)
정선선 개통(1968년, 착공 : 1962. 5. 10)
경인고속도로 개통(1968. 12. 21 가좌I/C까지 23.4㎞, 전선 29.5㎞ 개통 : 69. 7. 21)
경수고속도로 개통(1968. 12. 21 신갈 I/C까지 31.3㎞, 착공 : 1968. 2. 1)
경전선 개통(1968. 2. 7)
한강변 2로 개통(1968. 6. 27)
경부고속도로 전 노선 확정(1968. 9. 12)
포항항 건설(68~73)
한국도로공사 발족(1969. 2. 15)
지하수개발공사 발족(1969. 2. 15)
3•1 고가도로 개통(1969. 3)
언양-울산 고속도로 착공(1969. 6. 20, 개통 : 1969. 12. 28)
전남 고흥 간척사업 완공(1969. 7. 15)
서울 신도시건설 착수(1969. 7. 29, 한강이남 여의도)
중앙, 태백, 영동선 등 산업선 전철화 기공(1969. 9. 12, 청량리~북평 320.8㎞ 준공 : 1975. 12)
호남 야산개발단지 준공(1969. 10. 6)
천안~대전 고속도로 개통(1969. 12. 10)
제3한강대교 개통(1969. 12. 26, 현 한남대교)
대구~부산 고속도로 개통(1969. 12. 29, 착공 : 1968. 9. 11)
문경지선 개통(1969. 6. 10, 문경~진남)
호남고속도로 착공(1970. 4. 15, 개통 : 1973. 11. 14)
서울대교 개통(1970. 5. 16, 착공 : 1968. 2, 현 마포대교)
경부고속도로 준공식(1970. 7. 7, 서울~부산 428㎞, 기공 : 1968. 2. 1)
남산 1호 터널 개통(1970. 8. 15, 착공 : 1969년)
수도권 지하철 전철사업 발표(1970. 10. 22)
남산 2호 터널 개통(1970. 12. 4, 착공 : 1969년)
4대강(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유역 종합개발 계획(1970. 12. 17)
강변4로 개통(1970. 12. 24)
제주도 일주도로 준공(1971. 1. 31)
영동고속도로 착공(1971. 3. 13, 개통 : 1975. 10. 13)
거제대교 건설(1971. 4. 8)
서울 지하철 1호선 기공(1971. 4. 12, 개통 : 1974. 8. 15)
국토종합개발계획 확정(1971. 9. 7)
통일로(서울~문산) 개통(1971. 12. 18)
남해고속도로 착공(1972. 1. 10, 개통 : 1973. 11. 14)
전국을 10대 관광권으로 하는 관광개발 5개년 계획 확정(1972. 1. 20)
수도권 상수도 취수구 팔당으로 이전 결정(1972. 5. 26)
전국 702개 도서를 72년부터 76년까지 개발키로 확정(1972. 6. 26)
부산, 인천, 묵호, 군산 등 4개항을 집중 개발하겠다고 언명(1972. 11. 24)
지리산, 설악산, 낙동강 하류 철새보호지역으로 지정(1972. 12. 11)
제주도 일원에 그린벨트 설정(1973. 3. 8)
중앙선전철 개통(1973. 6. 20, 청량리~제천)
남해대교 개통(1973. 6. 22)
태백선 개통(1973. 10, 제천~태백)
동해고속도로 착공(1974. 3. 26, 개통 : 1975. 10. 14)
영동선 전철 개통(1975. 12. 5)
영동•동해안 종합개발계획 확정(1976. 3. 24)
천호대로•천호대교 개통(1976. 7. 5)
잠수교 개통(1976. 7. 15)
구마고속도로 준공(1977. 12. 17, 기공 : 1976. 6. 24)
성산대교 기공(1977, 준공 : 1980. 6. 30)
호남선 복선 준공(1978. 3. 30, 대전~이리)
남해지선 신설 및 남해고속도로 4차선 확장공사 착공(1978. 5. 22, 개통 : 1981. 9)
낙동강유역 종합개발사업 기공(1978. 7. 2)
지하철 2호선 강북구간 착공(1979. 3. 17)
한국토지개발공사 발족(1979. 3. 27)
성수대교 개통(1979. 10. 16)
일부 / 이하생략...
☆☆☆☆새마을운동과 농촌근대화 업적☆☆☆☆
농어촌개발공사 창립(1967. 12. 1)
농업기계화 8개년 계획 확정(1969. 2. 22)
농어촌근대화촉진법 승인(1969. 11. 1)
새마을가꾸기운동 제창(1970. 4. 22)
권농일 기념행사 참석하여 “자조정신” 강조(1970. 6. 10)
전국 읍면장에게 새마을가꾸기 교육 실시(1970. 10. 5~8)
수원 벼베기 행사에 참석하여 “농민의 자조정신과 자발적 노력은 농촌부흥과 근대화의 근본요소”라고 언명,
전남 광주에서 농어민 소득증대 특별사업 촉진대회(1970. 11. 11)
금강, 평택지구 다목적 농업개발사업 기공(1971. 3. 23)
내 집 앞 쓸기운동 제창, 청와대 직원들과 거리 청소(1971. 3. 24)
제3회 어민의 날 치사에서 자조, 자립정신 강조(1971. 4. 1)
충북 음성 지원유세에서 “나의 소망은 농촌의 가난을 없애는 일” 이라고 말함(1971. 5. 18)
월간경제동향보고에서 경남 거창군 관내 일원 우수새마을 보고(1971. 6. 7)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근면과 검소, 농어민의 소득증대와 증산에 도정의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고 강조(1971. 7. 30)
내무부에 새마을 전담 부서(지역개발담당관, 도시개발관, 농촌개발관, 주택개량관) 신설(1971. 8. 19)
월간경제동향보고회에서 “성실한 지도자, 협동정신, 농민도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1971. 9. 7)
경북 영일군 기계면 문성동의 새마을가꾸기 모범부락과 포항제철 시찰(1971. 9. 17)
새마을정신을 「근면, 자조, 협동」으로 규정(1971. 9. 29)
1972년 새마을가꾸기 대상 16,600개 마을 선정 완료(1971. 10. 30)
농협중앙회에 독농가연수원 설치(1972. 1. 14, 새마을지도자교육 실시)
새마을지도자교육 기본방침 대통령 재가(1972. 1. 21, 교육장소 :
1972년도는 경기도 고양군 소재 농협대학에서 1973년 이후는 수원시 소재 농민회관,
교육기간 : 2주간, 교과편성 : 새마 을정신 30% 전문과목(성공사례, 실기) 70%)
전북도 순시에서 “자조정신이 없는 농민은 도울 수 없으며 농어촌의 투자는 해마다 늘려 갈 것이다”라고 강조
(1972. 2. 3)
경북도 순시에서 “농촌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농민들의 자조정신 함양과 협동봉사하는
정열을 불태워야 한다”라고 강조(1972. 2. 7)
독농가연수원 순시(1972. 2. 24)
전국 부락세 조사(1972. 3. 1~5. 15)
대통령령 제6104호로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규정 제정(1972. 3. 7)
지방장관회의 유시에서 “금년도의 최 중점사업은 새마을운동이며
새마을정신을 범국민화하라”고 지시(1972. 3. 7)
서울시 방배동의 새마을 현장 시찰하고
전국의 임야에 유실수를 심어 식량화 방안 강구하라고 관계관에 지시
(1972. 3. 24)
서울 동대문구 중화동민들이 새마을운동으로 도로확장사업을 하고 있는 현장 방문 격려(1972. 3. 30)
경기 가평군 가평읍 개곡리 새마을 시찰(1972. 4. 3)
진해시 풍호동 새마을사업장 시찰(1972. 4. 7)
경상남도의 새마을사업 현장 두루 시찰(1972. 4. 8)
청와대 국무회의 주재하고 새마을운동의 추진방법 논의(1972. 4. 11)
정부여당연석회의에서 “지금 전국적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마을운동의 기풍을 해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며 이 운동은 어느 정권적 차원의 운동이 아니라
민족번영의 추진운동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강조(1972. 4. 14)
경인화력발전소 준공식에 참석하여 치사를 통해 “농어촌 구석구석 까지 송?
배전시설을 갖추어 전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힘(1972. 4. 17)
새마을노래 작사 작곡(1972. 4. 21)
새마을운동 촉진대회에서 “자신과 의욕이 없는 민족은 비록
아무리 좋은 여건과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이것을 보충할 줄 모르고 이용 하지 못한다”라고 강조(1972. 5. 8)
광주 새마을소득증대 촉진대회 치사에서 “새마을운동은 한국근대화의 행동철학이므로
문화인과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한다”라고 강조(1972. 5. 18)
국도변 소도읍가꾸기운동 전개(1972. 5. 20)
제7대 대통령 취임 1주년, 지난 1년간 230회 출장으로 전국의 새마을현장을 시찰(1972. 7. 1)
전국시장회의 시 도시공한지 전개, 국도변 도읍가꾸기, 도시새마을운동 지침 시달(1972. 7. 22)
상공부에 농가공산품 개발위원회 설치(1972. 7. 31)
8.3 재정조치를 계기로 기업인도 새마을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당부(1972. 8. 12)
서울지구 수해복구작업을 시찰하고 수해복구에 새마을정신을 발휘 하도록 하라고 당부(1972. 8. 21)
충남 연기 벼베기대회 치사에서 “스스로 돕는 자는 정부도 돕고 남도 돕고 이웃도 돕고 하늘도 돕는다”
라고 강조(1972. 9. 29)
국무회의에서 “새마을운동을 농한기에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하라”고 지시(1972. 10. 13)
대통령 특별선언을 통하여 “새마을운동을 국가시책의 최우선 과업으로 추진” 천명(1972. 10. 17)
충남 연기 벼베기대회에서 “수해를 이겨 낸 불굴의 정신으로 새마을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당부(1972. 10. 29)
국무회의에서 “전 국토를 연중 작업장화 하라”고 지시(1972. 11. 3)
모범 새마을에 농어촌의 소규모 공장을 건설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1972. 11. 15)
국무회의에서 새마을운동으로 국력을 배양해 가자고 당부(1972. 12. 8)
농어촌지붕개량촉진법 개정(1972. 12. 26, 지붕개량업무를 농수산부에서 내무부로 이관)
연두기자회견 시 “새마을운동을 범국민운동으로 추진” 강조(1973. 1. 12)
새마을 총람 발간(1973. 1. 15)
내무부 새마을 직제 개정(1973. 1. 16, 지역개발담당관을 새마을담당관으로 개칭, 새마을계획분석
관 신설, 도시농촌주택개량관을 폐지하고 지방국에 새마을지도과•도시지도과•주택지도과 신설)
상훈법에 새마을훈장을 추가(1973. 1. 25)
시도, 시군구에 새마을 부서 신설(1973. 2. 1)
전라북도 순시에서 “새마을사업은 겉치레보다 소득증대에 힘써야 한다”라고 강조(1973. 2. 7)
독농가연수원, 수원농민회관으로 이전(1973. 4. 8)
월간경제동향보고회의에서 새마을 유공자에게 훈장 수여(1973. 5. 7)
경기 화성군의 대우실업 새마을공장 시찰(1973. 5. 22)
독농가연수원을 새마을지도자연수원으로 명칭 변경(1973. 5. 31)
새마을지도자연수원 순시(1973. 9. 13)
공장새마을운동에 관한 종합추진방안 협의(1973. 9. 21)
전남 광주시에서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개최(1973. 11. 22)
공장새마을운동중앙추진위원회 운영요강 작성(1973. 11. 30)
새마을지도자 육성지침 시달(1974. 1. 10)
충청북도 순시에서 “모든 사업은 사전에 경제성과 기술성의 문제를 치밀하게 검토하되 그 정신적
기조는 새마을운동에 두라”고 지시(1974. 2. 8)
공장새마을운동중앙추진회 및 실무위원회 구성(1974. 2. 20)
공장새마을운동 시범업체 1차 200개 공장 지정(1974. 3. 2)
상공부 새마을연수원 개원, 전국 새마을증산대회 수상자 39명을 접견하고 소득증대에 이바지해
달라고 당부(1974. 3. 18)
대구, 울산, 목포 도시새마을 평가보고회 최초 개최(1974. 4. 30)
도시녹화운동 전개(1974. 5. 2)
새마을운동론을 공무원 시험과목으로 설정(1974. 5. 4)
국무회의에서 “새마을사업은 도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라
고 강조(1974. 5. 7)
아산 남양방조제 준공(1974. 5. 22, 착공 : 1971. 3)
국무회의에서 새마을사업은 환경을 꾸미기보다 생산에 역점을 두라고 지시(1974. 6. 7)
새마을지도자연수원 순시(1974. 7. 10, 장?차관도 새마을교육 받도록 지시)
장•차관 새마을교육(1974. 7. 22)
철도변가꾸기운동 전개(1974. 9. 8)
전국직장새마을지도자협의회 신설(1974. 11. 14)
청와대에서 새마을유공자 67명에게 직접 서훈(1974. 12. 17)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개최(1974. 12. 18)
전국 138개 군에 새마을담당 부군수제 신설(1975. 1. 1)
내무부 새마을직제 개정(1975. 1. 1, 새마을계획분석관을 새마을기획과로 개칭하고 주택지도과를
폐지 새마을교육과를 신설)
제주도 축산개발연구소, 감귤냉동공장, 남제주군 남북면 신례리 새마을사업현장 시찰(1975. 1. 5)
농촌지역 상수도시설 5개년 계획 마련(1975. 1. 21, 절대농지 논의 80%까지 확대키로 결정)
대단위농업개발사업계획 발표(1975. 2. 1, 경주, 삽교천, 계화도 등)
시도단위 민간단체 새마을운동협의회 구성(1975. 3. 21~6. 30)
나의 조국 작사 작곡(1975. 5. 10)
새마을모자 제정(1975. 5. 14)
상공부 공장새마을운동 제2연수원 개원(1975. 7. 7, 수출산업공단)
월간경제동향보고회의 참석, 새마을운동의 확대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 새마을지도자에게 훈장
수여(1975. 7. 12)
국토가꾸기 기동순찰반 발대식(1975. 8. 24)
새마을 일제 총열 실시(1975. 11. 5~11. 20)
제1회 새마을운동 연구발표회(1975. 11. 27~28)
경북 대구시에서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개최(1975. 12. 10)
직장단체 새마을운동 비교평가회(1975. 12. 26)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근로자 처우개선으로 생산성 향상, 물자절약, 수출상품의 품질향상, 공장새
마을운동을 활발히 전개(1976. 1. 28)
도시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3대 질서확립운동 전개(1976. 2. 16)
새마을운동 특별기념우표 발행(1976. 4. 15, 총 5종 1,000만개)
수원새마을지도자연수원 순시(1976. 5. 11)
우수마을 특별지원사업 충열 실시(1976. 5. 22~6. 5)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저소득층 의료혜택, 수출업체 경쟁력 강화, 농어촌의 구조개선방안
등을 반영하라고 지시(1976. 6. 15)
새마을금고 육성지침 시달(1976. 6. 18)
공장새마을운동 추진요강 제정(1976. 7. 2)
수원새마을지도자연수원 순시(1976. 7. 6, 성공사례청취)
정부 여당 연석회의에서 공단근로자들 야간중학에 다닐 수 있도록 조치, 각 기업체의 후생시설 확
충, 야간학급 및 산업체 부설학급에는 정부지원 등을 지시(1976. 7. 23)
월간경제동향보고회의에서 “새마을운동이 국민의 의식개혁뿐만 아니라 생산성 향상에도 크게 기
여하고 있다”고 강조(1976. 8. 25)
영산강유역농업개발 제1단계사업 준공식에 참여하여 “영농근대화로 식량증산의 가속화를 이루어
야 한다‘라고 강조(1976. 10. 14)
시도별 공장새마을운동 비교평가회 개최(1976. 11. 3~5)
민간단체 새마을운동 중앙협의회 창립총회(1976. 11. 10)
충남 대전시에서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개최(1976. 12. 10)
제주도 새마을부락 시찰(1977. 1. 1)
농수산부와 건설부 순시에서 농촌주택을 문화주택으로 전환, 어선의 대형화 및 동력화 추진을 지
시(1977. 1. 21)
상공부 순시에서 모든 기업의 공장새마을운동 참여와 에너지 10% 절약운동을 강력히 추진하라고
지시(1977. 1. 22)
민간단체 새마을운동전진대회(1977. 2. 25)
근로자의 날을 맞이하여 노총간부들을 접견하고 공장새마을운동은 노동조합에서 적극 앞장 서 달
라고 당부(1977. 3. 10)
우수새마을지도자 일본 시찰(1977. 3. 14~21)
제1회 공장새마을전진대회 개최(1977. 3. 20)
공장새마을추진본부 설치(1977. 3. 21)
영등포공업고등학교, 영등포여자상업고등학교, 대방여자중학교의 근로자 야간학교 수업상황 시
찰(1977. 4. 19)
월간경제동향보고회에서 “공장새마을운동을 중소기업에 확대시키는 한편 신바람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라고 강조(1977. 5. 10)
새마을기술봉사단 활동사례발표회(1977. 8. 26)
정부종합청사 5층에 새마을상황실 개실(1977. 9. 1)
도시새마을운동 비교평가회 개최 및 농촌불량주택 조사(1977. 9. 20)
전국직장단체 대항 새마을합창경연대회 개최(1977. 10. 12)
전북 전주시에서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개최(1977. 12. 9)
대구시에서 중소기업 공장새마을운동 촉진대회 개최(1977. 12. 13)
농촌주택 55만동 개량촉진대회 개최(1978. 1. 6)
영산강유역농업개발 2단계사업 착공(1978. 1. 20, 준공 : 1983년)
범국민 3대질서운동촉진대회 개최(1978. 1. 23)
상공부 순시에서 공장새마을운동을 통하여 국제경쟁력을 키우라고 지시(1978. 1. 26)
내무부 새마을담당관실에 농촌주택개량과 신설(1978. 3. 1)
농촌주택개량사업촉진대회 개최(1978. 3. 17)
공장새마을 주안연수원 개원(1978. 4. 25, 여성지도자 교육)
경기도 새마을운동 농촌주택 개량사업현장 시찰(1978. 5. 2)
1978 주택개량마을 입주식 거행(1978. 7. 4)
조선일보 기자와의 좌담회에서 새마을운동을 통하여 국민정신과 문화계발을 촉진해 간다는 신념
을 밝힘(1978. 7. 6)
논산지구 농업개발사업 완료(1978. 7. 21)
3대질서운동 비교평가회 개최(1978. 9. 26)
대구시에서 전국중소기업 새마을지도자대회 개최(1978. 10. 13)
제1회 전국공장새마을운동 분임활동 경진대회 개최(1978. 11. 3)
공장새마을 부산연수원 개원(1978. 11. 6)
제1회 공장새마을운동 추진 종합평가대회(1978. 11. 20)
전남 광주시에서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개최(1978. 12. 6)
새마을운동 연구논문집에 「새마을운동은 한국적 민주주의의 도장」 이라는 책자 휘호 씀(1978.
12. 8)
범국민 3대질서운동 총열 실시(1978. 12. 17~23)
농촌주택개량 총열(1979. 1. 10~14)
도시새마을운동 10 중요구심사업 설정(1979. 2. 21)
상공의 날 및 공장새마을전진대회 개최(1989. 3. 20)
월간경제동향보고회에서 서민생활의 안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고 새마을지도자 표창(1979.
4. 13)
자영마을 신설 운용(1979. 4. 18)
직장여성 소비절약결의대회 개최(1979. 7. 4)
공장새마을운동 총열(1979. 7. 1~25)
전국 137개군에 새마을과 설치(1979. 7. 16)
공장새마을운동 촉진결의대회 개최(1979. 8. 31)
새마을금고 중앙교육원 신축기공(1979. 9. 20)
삽교천 방조제 준공(1979. 10. 26, 착공 : 1977년)
전국직장새마을운동 비교평가대회 개최(1979. 11. 7)
미호천 1단계 사업 준공(1979. 11. 12)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개최(1979. 12. 28, 시도별 개최)
새마을지도자연수원 설치법 공포(1979. 12. 28, 법률 제3171호)
일부 / 이하생략...
☆☆☆☆치산녹화 업적☆☆☆☆
산림법 제정(1961. 12. 27)
국토녹화 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 공포(1963. 2. 8)
치산 녹화 7개년 계획(1965~1971) 성안(1965. 4. 1)
산림청 개청(1967. 1. 9)
수계별 산림복구종합계획(1967~1976) 확정
치산녹화사업 10개년 계획 확정 발표(1973. 3. 10)
영일지구 사방사업(1973~1977)
지리산, 가야산, 덕유산일대를 자연학습도장으로 개발 결정(1977. 1. 18)
자연보호에 대한 전 국민운동의 전개를 위해 민간단체를 조직하여 운영하라고 관계부서에 지시(1977. 10. 5)
육림의 날 선포(1977. 10. 7)
자연보호협의회 창립총회(1977. 10. 28)
자연보호 범국민궐기대회에 참석하여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1977. 11. 5)
서울 미아1동 자연보호회와 어머니회 회원들과 우이동 등산로에서 자연보호운동 전개(1978. 9. 23)
자연보호헌장 선포(1978. 10. 5)
청와대에서 자연보호 회의 주재(1978. 10. 13)
북한산 계곡에서 비서실 직원들과 자연보호운동 실시(1979. 10. 8)
제2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확정(1979년)
일부 / 이하생략...
☆☆☆☆자주국방 업적☆☆☆☆
공군작전사령부(K-55) 창설(1961. 7. 1)
공군작전사 발족(1961. 9. 15)
해양경찰대 발족(1962. 5. 1)
공군 항공창 준공(1962. 5. 29)
제1이동외과병원(130명)과 태권도 교관단(10명) 파월 환송식(1964. 8. 24)
국무회의, 비전투요원 2,000명 파월 의결(1965. 1. 8)
주월한국군사원조단(비둘기부대) 결단(1965. 2. 5, 파월 : 1965. 2. 19)
방공포병대대(호크유도탄부대) 창설(1965. 3. 19)
초음속 F-5 제트 전투기 도입(1965. 4. 3)
주월한국군사령부 창설(1965. 9. 25, 서울 필동)
맹호부대/청룡부대/십자성부대 파월(1965. 10)
육군 1개 사단과 해병 1개 여단 창설 발표하고 국군 62만명으로 증강하겠다고 언명(1966. 5. 19)
한국군 장비현대화에 대하여 공동성명(1966. 6. 22)
백마부대 파월(1966. 9. 16)
해병 제5여단 창단(1966. 11. 23, 포항)
동해안 2개 지역 공군기지 건설(1967. 2. 26)
최대의 공군 광주기지 준공(1967. 5. 25)
치안국에 대간첩 사령부 설치(1967. 6. 21)
국방부 종합청사 신축(1967. 6. 23)
전투경찰대 발족(1967. 8. 26)
대간첩작전본부 발족(1968. 1. 22)
육군 기동타격대 창설(1968. 1. 27)
향토예비군 창설식(1968. 4. 1, 대전)
공군레이다방공망 준공(1968. 6. 13)
방위산업정비 전투태세완비 3개년 계획 확정(1968. 7. 5)
유엔군으로부터 작전권 대폭 이양 받았다고 발표(1968. 7. 8)
제3훈련비행단 창설(1968. 7. 23)
7개 시의 고교, 대학생에 군사훈련 실시 결정(1969. 1. 9)
제3사관학교 개교(1969. 3. 18)
공군 F-4 팬텀기전투비행부대 창설(1969. 9. 23)
청소년에 1일 승공교육 실시키로 결정(1970. 1. 15)
국방과학연구소 설립(1970. 8. 6)
한국군 현대화와 주한 미군 감축에 합의(1971. 2. 6)
155마일 전선방위 국군이 전담키로 했다고 발표(1971. 2. 7)
병기공장(M-16 소총) 건설에 관한 한미간 계약 체결(1971. 3. 31, 착공 : 1971. 4, 준공 : 1972)
한미합동 제1군단 창설(1971. 7. 3)
박격포 고사포 등 중화기의 국내생산계획 추진 발표(1971. 11. 14)
전국에서 첫 민방공훈련 실시(1971. 12. 10)
국산병기 시제품(카빈소총, 기관총, 60밀리 박격포, 3.5인치 로켓발사기) 전시(1971. 12. 16)
국방과학연구소 60•81밀리 박격포 개발 착수(1972. 4. 30)
경인지구 예비군 고사포부대 배치 완료(1972. 6. 30)
4.2인치 박격포 및 105밀리 곡사포 개발 착수(1972. 8. 1)
국방과학연구소 지뢰탐지기 개발 착수(1973. 7. 10
M16 소총 양산 체제로 전환(1974. 2. 1)
국방과학연구소 106밀리 대전차포탄 개발(1974. 2. 10)
M48전차를 M48A5 전차로 개조사업 착수(1974. 6. 20)
국방과학연구소 105밀리 곡사포 연막탄 개발(1975. 4. 2)
전투상비군부대 창설(1975. 6. 30)
국방과학연구소 155밀리 곡사포탄 개발(1975. 7. 2)
방위세법 공포(1975. 7. 16)
민방위기본법 제정(1975. 7. 25, 민방위대 발대식 : 1975. 9. 22)
함대함미사일 시험 발사 성공(1975. 11. 7)
국방과학연구소 전신•전화단말기 KAN/TCC-29 개발 착수(1976. 1. 15)
국군현대화 5개년 계획 77년에 완료된다고 발표(1976. 1. 21)
한국군수산업진흥회 발족(1976. 3. 5, 현 한국방위산업진흥회)
M48A1 전차를 M48A5, M48A3 전차로 개조하는 사업 착수
(1976. 5. 20, 생산 : 1978. 4. 6, 자유진영에서 9번째로 전차생산국)
국방과학연구소 한국형 기관단총 개발 착수(1976. 10. 2)
대전 기계창 준공(1976. 12. 2)
국방부 순시에서 핵무기와 전투기를 제외한 모든 무기를 국산화하고 있음을 천명(1977. 1. 28)
미군 철수에 대해 선 보완 후 철군 강조(1977. 5. 25)
국방과학연구소 한국형 소총 XB-7형 개발 착수(1977. 6. 1)
첫 방위산업진흥확대회의 개최(1977. 6. 17)
북한의 200해리 경제수역 및 해상 군사경계선 인정하지 않는다고 성명(1977. 8. 1)
국방과학연구소 8인치 곡사포 고폭탄 개발(1977. 8. 30)
군수산업 육성(1978. 1. 18, 헬기, 대포, 탄약, 장갑차, 함정, 레이다,
미사일을 생산하고 있으며 항공기산업과 특수전차개발에 착수)
국산장거리 지대지유도탄, 중거리유도탄, 다연발로케트 시험 발사에 성공(1978. 9. 26, 세계 7번째)
한미연합사령부 발족(1978. 11. 7)
국방과학연구소 대형 함정용 전자장비(KDJ-25) 개발 착수(1979. 1. 30)
일부 / 이하생략...
☆☆☆☆외교분야 업적☆☆☆☆
일본 이케다 수상과 회담(1차 회담 : 1961. 11. 11, 한일 관계 전반에 대해 토의, 2차 회담 : 1961.
11. 12, 재산청구권 및 평화선문제 토의)
방미 케네디 대통령 공동성명 발표(1961. 11. 14, 케네디 대통령과 2차 회담 : 1961. 11. 15)
방미 존슨 대통령과 정상회담(1963. 11. 25, 케네디 대통령 장례식 참석)
국제의회연맹(IPU) 가입(1964. 8. 19)
서독 방문(1964. 12. 6~15, 12. 8 뤼브게 대통령, 12. 9 에르하르트 수상과 회담)
서독과 차관협정 조인(1964.12.7, 재정 1,350만달러 상업 2,625만달러)
이동원 외무장관, 시이나 일본 외상과 한일기본조약에 가조인(1965. 2. 20)
라만 말레이시아 수상 내한(1965. 4. 28)
방미 존슨 대통령과 정상회담(1965. 5. 17~19, 월남지원 등)
한일협정 정식 조인(1965. 6. 22, 동경, 국교정상화)
월남 쿠엔카오키 수상 내한(1965. 11. 8)
한일협정 비준서 교환(1965. 12. 18, 서울)
험프리 미 부통령 내한(1966. 1. 1, 경제원조 및 월남지원문제 협의)
동남아순방(1966.2.7~18, 말레이시아, 태국, 자유중국)
공산권과의 교류 확대 추진(1966. 4. 22)
제1차 아시아 태평양지구 각료회의 개최(1966. 6. 14~16, 서울, 10개국)
한미행정협정조인, 재판관할권을 제한하고 광범위한 외교 특권 허용(1966. 7. 9)
월남참전 7개국 정상회담(1966. 10. 24, 한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월남)
미국 존슨 대통령 내한(1966. 10. 31, 정상회담 : 1966. 11. 2)
아시아민족반공연맹 제12차 총회 개막(1966. 11. 3, 서울)
국제통신위성기구에 56번째로 가입(1967. 2. 24)
뤼브게 서독 대통령 내한(1967. 3. 2~3. 6)
티놈 태국 수상 내한(1967. 4. 2~4. 3)
홀트 호주 수상 내한(1967. 4. 6)
한, 미, 일, 자유중국 4개국 수뇌회담(1967. 7. 2, 서울)
박 대통령 호주 캔버라에서 미 존슨 대통령과 회담(1967. 12. 22)
미 대통령 특사 벤스 내한(1968. 2. 11, 회담 : 1968. 2. 12)
미 존슨대통령과 정상회담(1968. 4. 17~4. 18, 호놀롤루, 한미안보문제)
셀라시 이디오피아 황제 내한(1968. 5. 18~5. 21)
대양주 순방 외교(1968. 9. 15~9. 25)
홀리오크 뉴질랜드 수상과 정상회담(1968. 10. 23)
말레이시아 국왕 내한(1969. 4. 29~5. 3)
티우 월남 대통령 내한(1969. 5. 27~30)
닉슨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1차 : 1969. 8. 21, 2차 : 1969. 8. 22)
니제르 하마니 대통령과 정상회담(1969. 10. 30)
비적성 공산권 국가와의 교역을 허용하도록 무역거래법 개정 결정(1970. 5. 28)
중동분쟁에 대한 입장으로 유엔헌장정신과 유엔관계 제의결에 입각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 천명
(1970. 8. 3)
에그뉴 미국 부통령 내한(1970. 8. 23, 회담 : 1970. 8. 24)
한일대륙붕 공동개발에 완전 합의(1973. 7. 4)
키신저 미 국무장관과 한미간 협조문제 논의(1973. 11. 16)
이스라엘 점령지 철수 등 4개항의 친 아랍성명 발표(1973. 12. 15)
포드 대통령 내한(1974. 11. 22~11. 23, 한미방위 확인)
가봉 봉고 대통령 내한(1975. 7. 5~7. 8)
제3세계에 대한 외교활동 강화(1976. 1. 23)
동구권과의 관계 개선 결정(1976. 2. 6)
멀둔 뉴질랜드 수상 내한(1976. 4. 18~4. 22)
아시아의원연맹 총회 개최(1977. 11. 8, 서울)
상고르 세네갈 대통령 내한(1979. 4. 22~4. 25)
미국 카터 대통령 내한(1979. 6. 29~7. 1, 철군문제협의)
한, 미, 북한 회의 제의(1979. 7. 1)
이광요 싱가포르 수상 내한(1979. 10. 16)
수교 국가 117개국으로 증가(1979. 11. 30 외무부 발표)
일부 / 이하생략...
☆☆☆☆문화재 보호와 민족문화 보존 업적☆☆☆☆
문교부 외국으로 문화재관리국 설치(1961. 10. 2)
문화재보호법 제정 공포(1962. 1. 10)
남대문 중수 공사 준공(1963. 5. 14)
동대문 개축 준공(1963. 9. 5)
문화재보수 5개년 계획 수립(1963. 9. 10)
팔의사 창의탑 준공(1963. 11. 5)
해인사 팔만대장경 판고 신축 및 보수(1963~1977)
경주 석굴암 복원공사 준공(1964. 7. 1, 보고서 작성 : 1961. 7. 17)
무형문화재, 기능 및 예능보유자 인정 전승사업 시작(1964년)
석가탑 사리함에서 세계 최고 목판 인쇄 다라니경문 발견(1966. 10. 14)
국립중앙박물관 착공(1966. 11. 16, 준공 : 1972. 8. 25)
밀양 영남루 보수(1966. 11. 30)
서울 문묘 보수(1966. 11. 30)
부여 정림사지 정비(1966. 12. 6)
법주사 대웅전 보수(1966. 12. 18)
종합민족문화센터 기공(1967. 4. 25)
안중근의사 동상 이안(1967. 4. 26)
국립묘지정화사업 현충탑 건립(1967. 10. 1)
세종로에 이충무공 동상 제막식(1968. 4. 27)
소수서원 해체 복원(1968. 12. 2)
광화문 복원공사 준공식(1968. 12. 11)
현충사 성역화 중건 준공(1969. 4. 28, 착공 : 1966년, 조경공사 : 1972~1974년)
범어사 대웅전 보수(1969. 8. 19)
월정사 대웅전 준공식(1969. 10. 14)
유관순 유적지 착공(1969. 10, 준공 : 1973. 3)
금산사 대적광릉 해체 복원(1970. 2. 29)
행주산성 보수 준공(1970. 11. 10, 착공 : 1969년, 행주대첩비 건립 : 1963년)
세종대왕기념관 기공(1970. 11. 19, 준공 : 1973. 10)
도산서원 보수 준공(1970. 12. 8, 착공 : 1969. 10. 6)
화엄사 대웅전 보수(1970. 12. 25)
남원 광한루 보수(1970. 12. 31)
진주성 보수 준공(1970년, 착공 : 1969년)
남한산성 보수정비사업 착공(1970년)
금산 칠백의총 정화사업 준공(1차 : 1971. 4. 13, 2차 : 1976. 9. 20)
무령왕릉 발굴(1971. 7. 8)
속리산 법주사 사천왕문 복원(1971. 8. 30)
국립부여박물관 부소산 신관 개관(1971. 9. 1, 기공 : 1965. 9. 14)
경주고도개발 10개년 계획 확정(1972. 3. 10)
육산리 고분군 정화(1972. 11. 4)
경주 155호 고분(천마총) 발굴 착수(1973. 4. 6)
불국사 복원 준공(1973. 7. 5, 착공 : 1970. 11. 3)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개원식(1973. 10. 17, 현판식 : 1974. 10. 11)
문예중흥 5개년 계획 발표(1973. 10. 19)
해미 읍성 복원정비(1973~1977)
낙성대 준공(1974. 6. 10, 착공 : 1973. 11)
금산사 미륵전 해체 복원(1974. 12. 10)
문경 관문 해체 복원(1974년, 제1관문 성벽 보수 준공 : 1975년, 제2관문 문루복원 및 성곽보수
준공 : 1975년, 제4관문 홍예성곽보수 준공 : 1976년, 제3관문 문루복원 및 제1관문 단청 준공 :
1977년)
황남대총(98호 고분) 발굴(1974~1975년)
서울 성곽 복원?보수계획(1975~1978년)
중앙민속박물관 개관(1975. 4. 11)
수원 성곽 복원 착공(1975. 5. 30)
경주박물관 개관(1975. 7. 2)
광희문 복원공사 준공(1975년)
경주 용담정 천도교 유적지 정비(1975년)
옥산서원 보수작업(1976. 1. 20)
한국 미술 5천년전(1976. 2. 23~7. 25, 일본 도쿄, 교토, 나라)
밀양 표충사 정화사업(1976. 4. 10)
강릉 오죽헌 정화사업 준공(1976. 5. 7, 착공 : 1975. 10)
유적지 및 전적지개발 위한 특별법 제정(1976. 6. 24)
한산도 충무공 유적 정화사업 준공식(1976. 10. 20, 착공 : 1975. 1)
신안 해저문화재 발굴(1976년부터)
예산 추사고택 보수정비 준공(1977. 6. 27, 기공 : 1976. 7. 4)
경주 통일전 준공(1977. 7. 30, 착공 : 1976. 4. 22)
여주 영릉 보수정비 사업 준공(1977. 10. 9)
부석사 정화사업 기공(1977. 10, 준공 : 1979년)
강화전적지 정화사업 준공(1977. 10. 28, 착공 : 1976. 8)
고창 읍성 복원정비(1977. 12. 30, 착공 : 1975년)
내장사 정화사업 준공(1977년, 착공 : 1974년)
안동 하회마을 영모각 보수 준공(1977년, 유성룡장군 유물보관)
홍지문 준공(1977년)
월정사 복원 공사 착공(1978. 5. 3)
제주 황파두리 항몽유적지 정비 준공(1978. 6. 2)
금오산 채미정 정화사업 착공(1978. 6. 2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1978. 6. 30)
해남 표충사 보수사업 착공(1978. 8. 15)
김천 직지사 정화사업 준공(1978. 10. 30, 착공 : 1977년)
곽재우장군 유적지 조성 정화사업 착공(1978. 11. 22)
충주 충렬사 정화사업 준공(1978. 11. 23)
국립광주박물관 개관(1978. 11. 28, 착공 : 1977년)
광산 고경명장군 포충사 보수사업 준공(1978년)
부산 충렬사 보수 준공(1978년, 착공 : 1976년)
예산 윤봉길의사 충의사 보수 정화사업 준공(1978년)
경주 보문관광단지 개장(1979. 4. 6)
한국 미술 5천년전 개막(1979. 5. 1,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보스턴, 클리블랜드, 뉴욕,
캔자스시티, 위싱턴, 시애틀)
남원 만인의총 정화사업 준공(1979. 10. 5)
광주 충장사 김덕령장군 유적지 정화사업 준공(1979년, 기공 : 1974. 4. 4)
충주 임경업장군 유적지 정화사업 준공(1979년)
춘천 유인석 의병장 유적 정비보수 준공(1979년)
일부 / 이하생략...
☆☆☆☆남북관계 업적☆☆☆☆
국토통일원 개원(1969. 3. 1)
8. 15 평화통일정책구상 선언(1970. 8. 15)
한국적십자 남북가족찾기회담 제안(1971. 8. 12)
남북 첫 전화 개통(1971. 9. 22)
남북적십자회담 첫 실무회의 개최(1972. 2. 21)
남북공동성명발표(1972. 7. 4)
남북적십자 첫 본 회담(1972. 7. 30, 평양)
남북적십자회담용 직통 전화 20회선 개통(1972. 8. 17)
남북적십자 2차 본 회담(1972. 9. 13, 서울)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1차 회의(1972. 10. 12, 판문점)
남북적십자 3차 본 회담(1972. 10. 24, 평양)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2차 회의(1972. 11. 2, 평양)
남북적십자 4차 본 회담(1972. 11. 22, 대한적십자 회담사무국 회의실)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3차 회의(1972. 11. 30, 서울)
남북조절위원장 회의(1972. 12. 12)
서울-평양 직통전화 개통(1973년)
남북조절위원회 제2차 회의 개최(1973. 3. 14, 평양)
남북적십자 5차 본 회담(1973. 3. 21, 평양)
남북적십자 6차 본 회담(1973. 5. 8, 서울)
남북조절위원회 제3차 회의 개최(1973. 6. 12, 서울)
평화통일 외교정책 7개항 발표(1973. 6. 23)
남북적십자 7차 본 회담(1973. 7. 11, 평양)
연두회견에서 남북한 불가침 협정 체결 제의(1974. 1. 18)
남북한 이산가족재결합 촉구(1974. 6. 15)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 발표(1974. 8. 15)
남북문화교류 및 공동학술연구 제의(1976. 4. 12)
식량 원조 제의 및 남북불가침협정 체결시 주한미군 철수 반대하지 않는다고 언명(1977. 1. 12)
남북한 민간경제협력기구 구성 제의(1978. 6. 23)
남북한 당국 무조건 대화 제의(1979.1.19)
☆☆☆☆경제성장율 업적☆☆☆☆
실업률 * 23%(61년) -> 3.8%(79년) 18년만에 7배 개선, [역대 1위]
물가상승률 * 42%(61년) -> 16%(1961년~1979년 평균) [약 3배 개선]
저축률 * 3%(61년) -> 30.2%(79년) 10배 [10배 증가, 역대 1위]
연평균 경제성장률 * 9.1% [역대 1위]
년단위 경제성장률 * 13.8%(69년) [역대 1위]
국민소득 * 87$(62년) -> 1,676$(79년) [20배 성장,역대 1위]
노동소득분배율 * 28%(64년) -> 49%(79년) [2배 가량 분배 개선,역대 6위]
지니계수 * 0.33(70년) (낮을수록 평등) [역대 4위]
절대빈곤율 * 80%(60년) -> 10%(80년) [약 8배 개선, 역대 6위]
연평균 설비투자율 * 26.4%씩 증가 [역대 1위]
연단위 설비투자율 * 51.0%(78년) 증가 [역대 1위]
연평균 건설투자율 * 13.1%씩 증가 [역대 1위]
외환보유고 * $1억5천(60년) -> $57억(79년) 약 40배 증가 [역대 1위]
연평균 제조업 매출액 * 36.2%씩 증가 [역대 1위]
연단위 제조업 매출액 * 59.92%(73년) [역대 1위]
연평균 제조업 자산율 * 26.72%씩 증가 [역대 1위]
연단위 제조업 자산율 * 36.56%(78년) 증가 [역대 1위]
연평균 수출액 증가율 * 38%씩 증가 [역대 1위]
연단위 수출액 증가율 * 50.0% 증가(65년) [역대 1위]
총수출액 * $0.5억(61년) -> $175억(79년) 350배 성장 [역대 1위]
연평균 제조업 이익률 * 연평균 9.65%씩 증가 [역대 1위]
연단위 제조업 이익률 * 12.84%(66년) 증가 [역대 1위]
제조업 경상이익률 * 9.11%(63년) 증가 [역대 1위]
제조업 부채율 * 92.22%(63년) 사상 최소 [역대 1위]
전산업 부채율 * 82.51%(65년) 사상 최소 [역대 1위]
연평균 전산업 이익률 * 연평균 9.62%씩 증가 [역대 1위]
연단위 전산업 이익률 * 13.28%(66년) 증가 [역대 1위]
전산업 경상이익률 * 9.06%(66년) 증가 [역대 1위]
연평균 전산업 매출액 * 41.40%씩 증가 [역대 1위]
연단위 전산업 매출액 * 54.16%(73년) 증가 [역대 1위]
연평균 전산업 자산율 * 28.88%씩 증가 [역대 1위]
연단위 전산업 자산율 * 35.38%(78년) 증가 [역대 1위]
국내총생산 성장률 * 13.8%(69년) 증가 [역대 1위]
농림어업 성장률 * 15.6%(64년) 증가 [역대 1위]
광공업 성장률 * 29.0%(73년) 증가 [역대 1위]
제조업 성장률 * 32.2%(73년) 증가 [역대 1위]
전기가스수도업 성장률 *36.6%(69년) 증가 [역대 1위]
건설업 성장률 * 29.4%(78년) 증가 [역대 1위]
서비스업 성장률 * 13.4%(68년) 증가 [역대 1위]
순생산물세 성장률 * 27.5%(73년) 증가 [역대 1위]
☆☆☆☆박대통령에 대한 국내외 인사들의 평가☆☆☆☆
"박정희는 조국근대화에 확고한 철학과 원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시의적절한 제도적 개혁을 단행했다.
매우 창의적이며 능률적이었다." -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학 교수)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와 중국의 덩 샤오핑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를 꼽고 싶다" "
오직 일에만 집중하고 평가는 훗날의 역사에 맡겼던 지도자"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현 싱가포르 고문장관)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한국이 박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불과 20년 만에 세계적인 무역국가가 되었음을 경이롭게 본다."
- 폴 케네디 (예일대학 교수)
"박정희는 한국경제 발전의 유공자"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박대통령의 역사적 큰 공헌은 그의 뛰어난 지도력 하에
한국을 저개발의 농업국가에서 고도로 성장한 공업국가로 변모시킨 것이다."
- 앰스덴 (MIT 정치경제학 교수)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의 목표는 자립경제력을 갖춘 현대국가의 건설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 맨스로프 (러시아 안보연구소 교수)
"중국의 덩 샤오핑은 세계 유례없는 한국의 연 10% 급성장과 경제부상에 놀라며 박정희식
경제개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
마홍 (중화인민공화국정책과학연구회장)
"박정희 대통령은 매우 강한 지도자였으며 대기업을 일으켜 국부(國部)를 증진시킨 훌륭한 지도자이다" -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전 총리)
"박정희 근대화 성공으로 중산층 창출이 되고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 토대가 되었다.
박정희야 말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
오버홀트 (美 카터 전 대통령 수석비서관)
"20세기의 위대한 아시아 지도자들 중 20명중에 한명" - 뉴욕타임스
"박정희는 비록 민주화운동을 억압하였으나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중산층을 대폭 창출시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
1991.4.2 김상기 (충남대학 교수)
"민주화란 것은 산업화가 끝나야 가능한 것입니다. 자유라는 것은
그 나라의 수준에 맞게 제한되어야 합니다. 이를 가지고 독재라고 매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앨빈 토플러 (미래학자/뉴욕대학 명예박사)
"1965년 필리핀의 1인당GNP가 270달러였을 때 한국의 1인당GNP는 102달러 였지만
2005년 필리핀의 1인당 GNP가 1030달러였을 때 한국의 1인당GNP 16500 달러로 변하였다"
"가난한 절대빈곤의 후진국에서 조국보다 잘살던 동남아 나라들을 따돌리고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이 존경스럽다" -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중국의 덩 샤오핑의 개혁은 박정희 모델 모방" - 美, RAND 연구소
"매 회의마다 우리 농촌과 국토에 가졌던 뜨거운 애정, 빈곤했던
우리 역사에 대한 한에 가까운 처절한 심정, 그리고 빈곤을 극복하여
경제대국을 이룩하려는 치열한 집념에 숙연해지곤 했다"-
고건 (대한민국 전 총리)
"요즘은박정희대통령이좋게인식되는것같은데옛날에는유신이니해서비판이많았지만
초기새마을운동을한덕택에경제발전의기초가되었던점은훌륭한점입니다.나도영화를통해
서울을보았는데서울은일본의도쿄보다
훌륭한도시로조선이자랑할만한세계의도시입니다."
"서울에 가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도 참배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많은몽골인들은박정희전대통령의리더십과개발모델에상당한관심을가지고있다.나또한그렇다.
한국은박전대통령의지도아래국가적위기를극복하고경제개발의금자탑을쌓아올렸다"
-잔라빈차츠랄트(前몽골총리)
“1960년까지도 남한은 성인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9달러로 가나나 수단과 같은 지구상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 당시 세계은행 보고서는 버마와 필리핀의 앞날을 장밋빛으로 보았다.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에너지원이 없는 남한은 경제적 전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은 오늘날 세계 11대 무역국이며 1996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이다. (중략) 불리한 자연 공간적 전제에도 불구하고 남한은 경제기적을 이루어 냈다.”
독일 국정 교과서(고교 상급반 지리 92쪽)
“남한은 세계경제로 통합되었다. 대통령 박정희(1961∼79)는 강력한 손으로
남한을 농업 국가에서 산업 능력을 가진 국가를 형성했다. 수도
서울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독일 국정 교과서 (중학교 지리 109쪽)
"박정희 대통령은 나의 롤모델"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신화를 만든 한국경제의 건축가!" - 美, 뉴욕타임스
"어렵던시절,한국을이끌어고도로공업화된민주국가로변화시킨역사적역할을담당한
박정희전대통령에대해깊은존경심을가지고있다.그는후임대통령들이본보기로삼을만한유산을남긴
한국에서가장성공적이었던지도자들중한사람임에틀림없다." -무샤라프(파키스탄대통령)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다. 박정희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다. 그는 국가에 일신을 바친 리더였다" -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학 교수)
과연 이세상에 누가 단 30년만에 이것을 할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누가보면 박통이 혼자 다한줄 알겠네 하는데요
그럼 충무공께서 혼자서 일본놈들 다막았나요?
강감찬장군이 혼자서 오랑캐 쓸었나요?
말이 되는소리를 하십쇼.
맞는말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위대한건 사실입니다
민주주의도 중요하지만 나라가 거지나라인데 민주주의건 공산주의건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민주주의 필리핀이 잘 삽니까? 공산주의 북한이 잘 삽니까?
다 지도자가 중요한겁니다
어떤사람들은 박정희대통령이 자기 잘 될려고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국가가 경제발전이 되면 정치민주화가 되는건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 혼자 잘 살려면 그냥 아프리카국가처럼 강대국에 의존해서 이권이나 팔아먹고
가끔 시위 일어나면 진압 해주고 또 강대국에 자기 나라 유혈진압한거 못 알리게 입막음 하느라고 강대국에 이권팔아넘기고 이렇게 하면 되지 미쳤다고 경제발전시켜서 중산층을 만들어서 정치민주화 시키겠습니까?
또 이런사람들 있습니다 제2공화국에서 계획해서 할려고 했던거 박정희 대통령이 받아먹은거라고
계획은 누가 못 합니까? 계획은 누가 못 세웁니까? 모두가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성공시킨다면 성공이란말 자체가 싸구려로 전락하겠죠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사람 건져줬더니 내가 나올려고 한거 왜 내몸에 손대냐 이렇게 따지는거랑 똑같은겁니다
이승만-현대식 사회시스템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미국과 동맹관계를 이루어
주변국들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기초를 닦았음.
박정희-5000년 가난에서 한민족을 구제하는 토대를 심었습니다.
전두환-깡패,사기꾼들을 제대로 손봐주는 모습을 보였고, 88올림픽 유치로 한국의 국격을 새롭게
레벨업 시켰습니다.
노태우-북방외교의 원조입니다.
김영삼-앞의 대통령들의 정치적 약점인 정치 군인세력을 와해 시키는 혁혁한 공로를 세웠고,
금융실명제라는 역사에 남을 결단을 내렸습니다
김대중-북한과 새로운 시각에서 관계를 맺자는 시도를 했고, 이를 통해
미친개에게는 몽둥이만 약이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갖게 만들었죠
노무현-정치권에서 표가 필요할때마다 써먹는 영원한 테마 '친서민'으로 권력을 잡았습니다.
이후 보수,진보 양쪽으로 부터 버림받고 정권 빼았기죠.
이명박-기업가 출신으로서 시대에 맞게 글로벌화 된것에 대한 추진력이 강합니다.
제 생각엔 역시 반만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한민족을 굶주림에서 구해낸 박정희가
제일 낫네요.
보릿고개란 말 아시죠? 님의 할아버지 시대때만 해도 봄이되면 가을에 추수한 곡식이
바닥나서 수시로 굶었습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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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대통령......다들 양지가 있는만큼 음지도 있겠지요.....
태종 마마, 옳으신 말쌈입니다..........멍~~~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