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기형도
사랑을 일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힌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시인의 시 이야기]
나는 기형도 시인의 시집 『입속에 검은 입』을 처음 읽고 매우 놀랐습니다. 시 한 편 한 편이 너무도 잘 짜여진, 마치 잘 직조된 언어의 비단과도 같았으니까요, 짧은 시는 짧은 시대로, 종간 길이의 시는 중간 길이의 시대로 그 어떤 시도 허술한 것이 없었습니다.
나는 대체 이런 시를 쓰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는 중앙일보사 문화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으며, 1985년 시 <안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심야극장에서 숨긴 채 발견되었고, 『입속에 검은 입』은 그의 유고 시집이었던 것입니다.
기형도 시인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그 속에서 겪었던 가난한 우울, 비관적인 개인적 체험을 서로 형상화했으며, 강압적인 정치의 휘둘림 아래 무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감한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런 시를 공감을 자아내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는 그의 시 중 <빈집>을 좋아하는데 이 시는 마치 사랑을 잃은 사람의 기감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쓸쓸함이 묻어나지요. 그런데 이것이 바로 이 시를 즐겨 읽는 이유인 것입니다. 누구나 이런 쓸쓸한 삶의 기억 한 조각쯤은 하나씩 가슴에 품고 있는 까닭이지요. 나 또한 그러했으니까요. 그런데 <빈집>을 읽고 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소리가 들려오니다.
“절대로 쓰러지지 마라. 끝까지 살아야 한다. 너는”
그렇습니다. 어떤 상황이 주어져 삶의 <빈집>에 갇히게 되더라도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출처 : 《위로와 평안의 시》
엮은이 : 김옥림, 펴낸이 : 임종관
김옥림 :
-시, 소설, 동화, 교양, 자기개발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집필 활동을 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이다. 교육 타임스 《교육과 사색》에 〈명언으로 읽는 인생철학〉을 연재하고 있다. 시집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따뜻한 별 하나 갖고 싶다》, 《꽃들의 반란》, 《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소설집 《달콤한 그녀》, 장편소설 《마리》, 《사랑이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것들》, 《탁동철》, 에세이 《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아침이 행복해지는 책》, 《가끔은 삶이 아프고 외롭게 할 때》, 《허기진 삶을 채우는 생각 한 잔》,《내 마음의 쉼표》, 《백년 후에 읽어도 좋을 잠안 315》, 《나는 당신이 참 좋습니다》, 《365일 마음산책》, 《법정의 마음의 온도》, 《법정 행복한 삶》, 《지금부터 내 인생을 살기로 했다》, 《멋지게 나이 들기로 마음먹었다면》, 《인생의 고난 앞에 흔들리는 당신에게》, 《마음에 새기는 명품 명언》, 《힘들 땐 잠깐 쉬었다 가도 괜찮아》, 《법정 시로 태어나다》, 《이건희 담대한 명언》 외 다수가 있다. 시세계 신인상(1993), 치악예술상(1995), 아동문예문학상(2001), 새벗문학상(2010), 순리문학상(2012)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