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재벌 오너는 임금 군(君)에 해당한다. 제후국의 왕이다. 일본의 다이묘(大名)와 같다. 다이묘도 연 수입 수십만석 급에서부터 수백만석까지 그 파워가 다양하다. 조선은 천석군(君) 만석군(君)을 들먹였지만 일본은 수십만에서 수백만석까지 스케일이 컸다.
재벌오너는 수만명에서부터 수십만명의 생계가 걸려 있는 일을 결정하는 직업이다. 재벌 오너는 넓게 보면 수백만명의 생활수준까지 좌우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팔자이다. 이 팔자도 따지고 보면 좋은 팔자는 아니다. 수십만명의 생계가 왔다 갔다 하는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결정을 많이 해야 하는 팔자는 쎈 팔자라고 하겠다. 이 쎈 팔자 밑에는 2종류의 참모가 붙는다. 하나는 사판참모(事判參謀), 다른 하나는 이판참모(理判參謀)라 부르고 싶다. 사판참모는 데이터와 자료, 그리고 돌아가는 상황을 분석하여 오너에게 제공하는 역할이다. 명문대를 나와서 스펙이 좋은 친구들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MBA, 월가 근무, 컨설턴트 등의 스펙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면 이판참모는 누구인가? 한 마디로 도사이다. 도사의 최대 무기는 영발(靈發)이다. 영발이 있어야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예측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영발이 타고난다는 점이다. 후천적인 개발이 어렵다. 이들 동양의 영발도사들을 서양 기독교 성경에서는 선지자(先知者)라 부른다. 먼저 안다는 뜻 아닌가. 구약에 나오는 선지자들은 백프로 영발도사들이다. 이들은 미래가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를 예견하였다.
예를 들면 꿈이다. 이집트에 노예로 잡혀갔던 요셉의 꿈이 대표적인 선지자의 꿈이다. 파라오가 꾼 꿈이 7년 풍년들었다가 그 다음에 7년 흉년 들게 되는 내용이라고 해석해준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이 꿈 해몽 덕택에 요셉은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 총리까지 올라간다.
최고 결정권자인 이집트 파라오가 그렇게 해 준 것이다. 파라오 입장에서는 이 꿈 해석이 국정운영에서 가장 결정적인 판단 근거였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성경의 구약은 선지자들의 이야기가 뼈대를 이루므로 ‘도사열전’과 다르지 않다.
구약에서 선지자들 이야기를 빼 놓을수 없다. 생사가 걸린 문제를 결정할때는 동서양, 그리고 고금을 막론하고 이들 영발도사들이 최고 지도자의 결정에 어드바이스를 줬다. 문제는 영발도사들의 공급과 채용이다. 이게 제도권에서 이루어질수가 없다. 사판참모는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서 공급받을수 있지만, 이판참모는 공식경로가 없다.
그리고 영발도사는 가방끈과 관련이 없다. 오히려 가방끈이 짧을수록 영발은 길다. 특히 책을 많이 본 책상물림은 절대로 영발도사가 될수 없다. 먹물은 영발을 파괴하는 독극물에 비유될수 있다. 돼지고기와 새우젓처럼 영발과 먹물은 상극에 해당한다. 주로 먹물이 학교 다닐 때 공부잘했던 사판참모, 그리고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 이판참모이다.
재벌 오너는 이 두종류의 참모를 모두 데리고 있어야 한다. 삼겹살을 먹고 새우젓을 조금 먹어야 뱃속이 개운하지 않던가! 영발참모를 데리고 사업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 이병철이다. 이병철이 상당히 신뢰했던 그 영발참모 가운데 한 사람이 함양의 박도사인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길게 하겠다.
현대 정주영은 이병철과 스타일이 달라서 영발도사 확보에 그렇게 많은 예산을 쓴 것 같지는 않다. 정주영 자신도 직감과 신기가 발달했던 반 도사였기 때문에 어지간한 도사는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발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필요한 경우에는 활용하기도 하였다. 걸출한 오너는 이성적인 베이스를 깔고 있으면서도 어느 상황에서는 적절한 영발 어드바이스를 참고할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이닉스 이야기를 예로 들고 싶다. 오늘날 반도체는 한국의 국부(國富)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도 못가지고 있는 반도체를 어떻게 한국이 가지고 있는지 이게 도대체 신기한 현상이다. 미·중간의 세기의 대결도 반도체를 접점으로 스파크가 튀고 있다. 세계는 반도체 쟁탈전이다.
하이닉스는 현대가 가지고 있었는데,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2012년 무렵 시장에 내 놨다. 중후장대에 맞는 현대의 팔자이다보니 경소단박의 반도체는 어쩐지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일까. 팔자에 안 맞으니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시장에 팔려고 내 놓은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살려는 기업이 별로 없었다. ‘사 주십시오’ 해도 대부분 손 사래를 쳤는데, 유일하게 SK 최태원 회장이 이를 덥석 받았다. 매우 이채로운 결단이었다. 2000억~3000억원의 결정이 아니고 수조원의 큰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거래였다.
“이걸 사야 되는 거요, 말아야 되는 거요? 한국과 중국의 반도체 기술 차이가 얼마나 납니까?” 사판참모 왈. “한 10년 정도는 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삽시다” 하이닉스를 최태원 회장이 인수하게 된 배경에는 사판참모의 분석 검토도 있었지만, 이판참모였던 K도사의 의견도 작용하였다. “이건 반드시 우리가 사야 합니다. 지금은 이게 헐값으로 나왔지만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여기에서 금 덩어리가 나올 겁니다. 자금 사정을 따질 게재가 아닙니다. 회장님이 무조건 인수하는 것이 좋습니다”
최태원에게 강력하게 하이닉스 인수를 건의했다고 하는 K도사. 그는 누구인가. 도사로서 그의 인생도 ‘데꼬보꼬’ 파란만장하다. 나는 그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업계의 선수들 사이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있다.
우선 K도사는 숫자에 주특기가 있다. 예를 들면 10일후의 주식시세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미리 예측하는 식이다. 회사의 월급쟁이 사장에게 K도사는 흰색 봉투를 하나 디 밀었다. “이 봉투를 열흘 있다가 열어 보십시오” 옛날 도사들이 주머니를 하나 건네주면서 ‘네가 위기 상황에서 이 주머니를 열어 보거라’하는 방식이다. 열흘 후에 그 사장이 봉투를 열어보니까 그 날의 주가지수가 적혀 있었다.
주식시세를 맞힌다는 것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바둑을 접수했던 인공지능 AI도 공략하지 못한 분야가 주식시세이다. 자본주의의 심장은 금융과 주식시장이고, 이 시장은 숫자로 돌아간다. 숫자라는 神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숫자가 신이다. 숫자를 알아 맞힌다는 것은 K도사가 전생부터 상수학(象數學)에 조예가 있었다는 징표이다. 전생에 익혔던 재능은 금생에서도 이어 진다.
환생을 거듭하면서 다음 생으로 계좌이체되는게 콘텐츠인데, 이 콘텐츠라고 하는게 따지고 보면 재능이다. 재능이 이월되는 셈이다. 하늘의 뜻은 결국 형상과 숫자로 나타난다는게 상수학이다. 마지막 결론은 숫자로 귀결된다. 도사의 능력이 병고치는 치병 능력과 미래 예측 능력이다. 미래 예측도 숫자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특히 주식과 금융시장에서 숫자 예측은 치명적인 무기가 아닐수 없다.
물론 이러한 예측 능력이 무한 리필 되는 것은 아니다. 티오가 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능력이 사라지거나 감퇴된다. 메뚜기도 한 때라고 모든 능력은 피크와 전성기가 있다. 그 도사가 가장 잘 맞힐 때 만나서 그걸 활용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다. 복 중에 큰 복이 인연복이라고 하지 않던가! 돈은 도사가 갖는게 아니라 복이 있는 사람이 갖는다.
최태원은 결국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결정을 내렸다. 참모들이 아무리 무슨 이야기를 해도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오너이다. 오너의 판단이 그만큼 중요하다. 최태원은 2.5세대이지만 하이닉스 인수라는 큰 건을 하나 해결함으로써 그가 다이묘로 등극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여진다.
아울러 감옥에도 몇 년 살다 나옴으로써 인간세상의 고초가 무엇인지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왕자로 성장했던 재벌 2·3세는 감옥에 갔다 오면서 사람이 발효가 되는 조짐을 보인다. 1년은 좀 짧고 2년 남짓 정도가 적당하다. 혼자 있기가 어려운데, 강제적으로 혼자 있으면서 사색을 하고 독서를 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도사라면 다소 알레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