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환 감독. 선수로서 보다는 감독으로서 유일무이하게 한국축구에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청소년 축구팀을 멕시코 아즈텍 고원에서 4강까지 올렸고, 성남 일화라는 신생구단을 K리그에서 3년 연속 정상에 올려 놓았다. 박종환이라는 이름 석자 앞에는 어느덧 우승청부사라는 이름이 붙었고, 2005 K리그에서는 비록 정상에는 못 올렸지만 긁어 모으다 시피한 선수들과 열악한 구단 재정을 이겨내고 후기리그 5위, 전후기 통합 성적 7위라는 대 파란을 연출했다. 카리스마의 화신, 독불장군, 스파르타식 훈련, 웬만해서는 웃지 않는 감독 등은 박종환 감독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때로는 언론의 공격을 받고 도중하차 했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분명 국내감독 어느 누구도 넘지 못했던 세계 4강의 신화와 K리그 3연패의 금자탑을 쌓은 장본인이다. 선수시절 보다 감독시절의 명성이 어느 누구보다 돋보였던 박종환 감독, 그때그사람들에서 집중 조명해 보기로 한다.
가난한 소년, 축구화를 질끈 매다. 1936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났다. 45년 해방과 동시에 월남하였으나 가난은 늘 그를 따라 다녔다. 미군부대 주변을 배회하며 배고픔을 해결했다. 박종환 감독의 어린 시절은 가난 그 자체였다. 춘천중학교 시절 농구선수를 하였지만 키가 자라지 않아 농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축구계는 박종환이라는 거물을 농구에 빼았길 뻔 한 아찔한 순간이기도 하다. 춘천고, 경희대를 거치며 꾸준한 선수생활을 보냈지만 국가대표팀과의 인연을 맺지는 못했다. 선수로서는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것이다.
지도자로의 길. 인생의 전환점 1966년 단국공고에서 체육교사를 시작하면서 박종환 감독은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새로 창단된 학교 축구팀에 감독이 된 것이다. 1976년에는 서울시청 감독에 올라 서울시청팀을 명실공히 실업 최강의 팀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어지는 전력은 눈이 부실 정도다. 1980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한 뒤 바로 2년 후인 1982년에는 2연패의 금자탑을 쌓는다. 선수로서는 화려하지 못했지만 지도자로서는 눈부신 활약을 선보였던 것이다.
1983년 세계청소년축구 4강 신화 한국대표팀이 2002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루기 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국축구에서 가장 자랑스러워 했던 순간은 단연 1983년 멕시코 청소년 축구대회였다. 4강신화의 첫걸음이 순조로웠던 건 아니었다. 예선 첫 경기인 스코틀랜드와의 경기 에서 0대2로 완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부터 한국팀은 무서운 팀으로 환골탈태 한다. 조별 예선 첫경기의 패배로 누구나 예선탈락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한국팀은 두번째 경기에서 개최국인 멕시코를 2대1로 제압하는 일대 파란을 일으킨다.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한국은 조별예선 경기 마지막 경기에서 호주마저 2대1로 제압하고 당당히 8강에 진출하였다. 이때부터 국민들은 박종환의 카리스마와 벌떼처럼 달려들어 그라운드를 쉬지 않고 뛰어 다니는 청소년 대표 선수들에게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때 한국팀에 보낸 성원은 2002년에 못지 않았었다. 8강에서 우루과이를 연장까지는 혈투끝에 2대1로 이기고 4강에 오르자 박종환과 청소년대표팀에게 어느덧 4강 신화라는 명칭이 따라 다니기 시작했다. 준결승에서 브라질에게 1대2로 패하여 결승진출이 좌절되었지만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박수를 보냈다. 한국팀이 연전연승을 하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고지까지 올라가는 연이은 기적을 선수들이 연출해도 화면상에 잡히는 박종환 감독의 모습은 늘 화난 사람의 모습이었다. 경기 중 단 한번도 웃지 않는 감독, 늘 선수들의 플레이를 차갑게 노려보는 감독. 박종환 감독의 성공과 더불어 카리스마, 스파르타 훈련이라는 단어가 이때부터 따라 다니기 시작했다.
성남일화 K리그를 3연패 하다
83년 4강신화를 만들어 냈지만 그 후의 경력은 고난의 연속이다. 당장 박종환 감독은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이 되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지역예선전에서 패배하여 올림픽 본선 진출 좌절이라는 고배를 마신다.(이 경기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심판매수를 의심하게 하는 불공정한 시합이었다.) 90년 북경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이 되었지만 준결승에서 쿠웨이트에게 패하여 아시안게임 2연패에 실패했다. 박종환 감독을 변호할 마음은 없지만 80년대말 오일 달러를 앞세운 중동축구가 유난히 초강세를 누리던 시기였다. 그후 그는 언제나 대표팀 감독 0순위 후보였지만 대표팀 감독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한국 최고의 감독으로 칭송을 받았지만 대표팀 감독의 자리는 늘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1988년 성남일화가 창단되었고, 박종환 감독은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그 후 박종환 감독과 성남일화는 1990년 FA컵 3위를 시작으로 화려한 기록을 남긴다. 1992년 아디다스컵 우승과 리그 준우승, 1993년 리그 우승, 1994년 리그 우승, 1995년 리그우승으로 3연패를 달성하였다. 성남일화의 리그 3연패가 나오자 K리그가 성남일화의 독주로 재미가 없어졌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할 정도였다. 이 당시 성남일화는 무적의 팀이었고, 그 무적의 팀을 만든 장본인은 바로 박종환 감독이었다. 1996년에는 아시아 그랜드 슬램을 달성, AFC 선정 최우수 클럽상을 수상하는 등 성남일화의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그해부터 박종환 감독은 다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96년 아시안컵 이란전 치욕의 대패 83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가 한국축구 역대 최고의 순간이었다면, 96년 아시안컵 이란전은 한국축구 최악의 순간이 분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대회 모두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박종환 감독이었다. 94년 미국월드컵 이후 한국의 대표팀 감독은 프리랜서 단기고용형태였다. 초청팀이 선정이 되면 그때그때 감독을 선임하여 경기를 치루었기 때문이다. 96년 아시안컵과 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협회는 마침내 박종환 감독을 선택하게 되었다. 83년 신화를 재 창조 해달라는 간절한 염원에서였다. 그러나 아시안컵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첫 경기인 개최국 UAE와 1대1로 비겼고, 약체인 인도네시아에게 4대2 대승을 거두며 무난한 출발을 하는 듯 보였지만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쿠웨이트에 0대2로 패하자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그 후 이란과의 8강전은 한국축구사에서 치욕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으로 이란의 알리 다에이에게 4골을 주는 무기력한 플레이로 2대6참패를 당하였다. 자진 사퇴 형식으로 박종환 감독은 귀국하자마자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났고, 프랑스 월드컵 예선은 차범근으로 바통이 넘어갔다. 후의 일이지만 차범근 감독도 감독의 임기를 다하지는 못하였다.
다시 K리그로 그 후 박종환 감독은 성인남자 축구계에서 한발 물러났다. K리그 어느팀에서도 그를 불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박종환 감독이 축구계를 완전히 떠난 것도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불모지나 다름이 없는 여자축구계로 옮겨 여자축구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다. 한국여자축구연맹 초대회장까지 역임했지만 그는 천상 필드에서 지휘할 사령관이었다. 2002년 대구FC 창단 감독이 되어 K리그로 돌아온 것이다. 2005 K리그에서 대구FC는 매우 강한 팀이 되었다. 3년간 선수들을 조련하고 키워낸 박종환 감독의 지도력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잠깐이었지만 대구 FC는 후기리그 도중 단독 1위를 마크하기도 했다. 신생팀, 외인구단으로 치부되던 팀을 일약 조직력 있고 매우 빠르고 강한 팀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박종환 감독은 현재 K리그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감독이다. 그는 지금도 선수들을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고, 언제나 웃지 않는다. 이제는 아들 뻘, 손자뻘 되는 선수들과 그라운드에서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박종환 감독은 아직도 대표팀 감독 인선문제가 나오면 0순위 후보감이다. 이란전 참패로 대표팀 감독을 떠났지만 83년의 신화를 사람들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박종환 감독도 이제 어느덧 칠순을 바라고 있다. 둥근 의자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거나 과거를 회상하며 인터뷰만 하기에는 그 자신 너무나 현장을 사랑하고 축구를 사랑하는 것 같다. 박종환 감독과 대구FC의 2006 시즌을 조용히 기대해 본다. |
첫댓글 이사람이 빠다 잘휘두른다던? 청소년팀 그 창창한 유망주들 빠다휘둘러서 개인기쓸자신감도 없게만들엇다던?
넌 코멘트달 자신감도 없게 해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