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을 앞둔 첫째 딸이 언제부터인가 강아지를 키우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동물이라면 질색을 하는 아내 입장에선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요. 때문에, 아내와 첫째 딸은 하루 종일 티격태격 말다툼하다가 제가 퇴근하는 때를 기다려
서로 자신의 편을 들어 달라며 응원을 요청합니다.
이런 경우 제 입장에선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연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공주님의 소원을
들어주어야 하는데 이게 또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부부란 일심동체이거늘, 어떻게 자신을 배신할 수 있냐며,
토라진 아내를 달래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아내의 편을 들자니 이번엔 큰 공주가 제방으로 들어가,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며 훌쩍입니다. 어떤 때는
동생들 잘 챙기고 생각이 깊은 든든한 장녀였다가 삐질 때 보면, 영락없는 철부지입니다. 저는 큰딸을 볼 때마다
걱정이 태산입니다. 이제 몇 년 후면 시집을 보내야 하는데 되도록이면 이해심 많고 사려 깊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그런 어느 날, 퇴근을 앞둔 시간에 큰딸이 호들갑스럽게 전화를 합니다. “아빠, 아빠, 우리 집에 좋은 일 생겼어요.
일찍 와야 해요. 호호호.” ‘큰딸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것을 보아 분명 자신의 소원을 이루었나보구나.’
생각하며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오늘따라 거실이 떠나갈 정도로 소란스럽습니다.
장식장 옆에는 처음 보는 수족관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데, 어릴 때 보았던 금붕어가 입을 뻐끔거리는 것이, 마치
저를 보며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때마침 막내의 손에는 작은 물고기가 들려있어 바라보았더니, 비단잉어
치어입니다. 이놈이 심심하면 점프를 하여 밖으로 탈출하는 바람에 난리가 났다며 깔깔거립니다.
저는 아내를 바라보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넌지시 물었습니다. 아내는 얼른 방으로 들어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합니다.
사연인즉슨 이렇습니다. 아내는 큰딸을 얼레고 달래어 강아지대신 금붕어를 키우도록 설득한 것입니다. 금붕어는 데리고
잘 수도 없고, 이름도 지을 수 없다고 투정하는 큰딸에게 아내가 한 말이 걸작입니다.
“안고 자는 거야 수족관 옆으로 잠자리를 옮기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이고, 데리고 다니는 것은 금붕어 꼬랑지에 명주실을
메달아 놓고 생각날 때마다 쫑, 매리, 독구 부르면 되지. 이제 또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 하고, 사랑하는
공주님 부탁인데 엄마가 무엇인들 못 들어 주겠니.”
그날 이후, 한 며칠은 금붕어를 보살피다가 수족관 앞에서 잠이든 첫째 딸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잠자리가 불편하다며 자신의 방으로 도망가더니 지금은 수족관청소며 먹이 주는 일까지
온통 아내가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내는 금붕어를 싫어하는데도 금붕어들이 아내를 무척이나
따른다는 겁니다.
불과 이틀 전의 일입니다. 하루의 일과가 피곤했던 저는 그날따라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비몽사몽 눈을 떠보니
새벽 세시, 아직 날이 밝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 아이들 자는 방을 살펴본 다음,
오랜만에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거실이며 베란다에는 화분이 유난스레 많이 놓여있습니다. 모두 아내가 가꾸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웃들에게 나누어 준
것까지 따지면 상당한 숫자입니다. 꽃을 좋아하는 아내는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몇 포기씩 옮겨와 보살핍니다. 눈길을
돌려 벽면에 쳐다보니 난초그림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내가 그린 작품입니다.
영남대전에 출품하여 입선한 것을, 그날따라 일이 바빠서 참석하지 못하는 바람에 아내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거금
이십 만원을 주고 제가 인수한 그림입니다. 덕분에 아내의 화가 풀어지긴 했지만 비상금이 달아나 은근히 속이 쓰렸습니다.
아내의 꿈은 서예를 더욱 열심히 배워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대구와 인근한 지역이지만 인구 3만을 조금 넘은, 군치고는 작은 편에 속합니다. 때문에 농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주부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잘 되어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꽃꽂이며, 노래교실,
서예학원, 영어를 공짜나 다름없이 적은 비용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아내는 지금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아내의 이야기를 조금 길게 설명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내는 몇 년 전에 심하게 아픈 적이 있었는데
진단결과 병명이 우울증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우울증이란 중년의 주부들이라면 누구나 한번 씩 겪어야하는
가벼운 병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예상외로 심각했습니다. 제가 출근을 하고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나면, 아내는 어두운 방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하루 종일 잠을 자는가하면, 어떤 날은 가슴이 답답하다며 멍이 들도록 주먹으로 두드립니다. 그 외에도 글로서 설명하기
힘든 일들이 많았지만, 저는 모든 잘못을 아내의 나약한 성격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서로가 양보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도 감정이 격해지다보니 사사건건 다툼이 잦았습니다. 물론 그때마다
아이들이 나서서 엄마아빠를 화해시키느라 고생이 많았구요. 지금생각하면 아내의 우울증을 진지하게 받아 들였더라면,
가정의 평화가 좀 더 일찍 찾아 왔을지도 모른다는 후회스런 마음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아내의 우울증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수집하며, 여자에게 찾아오는 우울증이란 병이 얼마나 무섭고
심각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족과 상의한 후, 화장실 문을 열면 하늘에 별이 손에 잡힐 듯한, 아카시아
꽃 지고, 밤꽃이 필 때면 소쩍새 울음소리 가득한 시골집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동안 알뜰하게 모았던 돈으로 꿈에 그리던 아파트를 장만하던 날, 저는 아내에게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제가 관리하던
일체의 권리를 아내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화들짝 놀라는 아내에게 우리가족 모두가 당신을 믿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서요.
그날 이후, 아내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제일 먼저 운전학원에 등록한 다음, 면허증을 따던 날 차를 구입했습니다. 또한 집을 어떻게 꾸밀까 고민하며,
도시에 살고 있는 친구 집을 돌아가며 방문했습니다. 그런 다음 작성표를 만들어 살림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보아도
상당히 고급스럽고 품질 좋은 가구를 저렴한 가격에 잘도 구입합니다.
그렇게 알콩달콩 살아오는 동안, 벌써 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물론 그동안 아내의 우울증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덕분에 우리 집에도 꽃피는 봄날처럼 매일같이 웃음꽃이 핍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씩,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등에 식은땀이
흐릅니다. 아내의 우울증은 모두가 제 잘못이라는 죄책감 때문입니다.
불을 켜놓았더니 어항속의 금붕어들이 먹이를 주는 줄로 착각하고 제 앞으로 우르르 모여듭니다. 녀석들의 행동이 귀엽다는
생각에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물레방아 옆에서 움직이는 물체가 포착됩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처음 보는
물고기 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수족관이 들어오던 날, 딸이 들러주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빠, 우리 집 수족관에는 엄마 닮은 물고기가 살고 있어요. 정확한 이름은 ‘비파’ 라고 하는데 보통은 그냥, 청소물고기
라고 불리어요. 그놈이 무엇 때문에 엄마를 닮았는가하면 첫째는 못생겼다는 것, 둘째는 매일같이 다른 물고기 들이 어질러
놓은 것을 청소한다는 것. 그다음이 가장 중요한 데요. 청소 물고기가 없으면 물이 금방 더러워져 금붕어가 살아갈 수가 없어요.”
돌이켜보면 나는 그동안, 가족을 위해서 매일처럼 혼자서 힘들게 고생한다고 투덜거렸습니다. 하지만, 딸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정작 우리 집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어쩌면 나보다 아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오랜 세월을 남편과 자식을 위해
묵묵히 뒷바라지하며 얼마나 많이 아파하고 힘들어했을까요? 나는 오늘밤, 아내 곁에 다가가 잠들었는데 집적거린다며
발길질에 체이는 한이 있더라도 포근히 안아 주어야 하겠습니다.
넘 현실 실감나는글 잘보고 공감합니다 주부라면 거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되나봅니다 너무 바듯한생활에 아이들 키울때는 그렇게 배부른 생각할 여유가 없지요 하지만 아이들이 다자랐다생각되면 문득 자기를 보게 됩니다 아무것아닌일에 서운하고 눈물나고 그게 깊어지면 우울중으로 되는거 같아요 조창덕 작가님께서는 빨리 깨닫고 이해하셔서 현명한 판단에 박수를 보내드리고싶어요 감히제가 늘 그렇게 사랑하면서 행복하세요 ...
첫댓글 아내의 소중한 점을 일개워 주는 글이군요. 잘 보았습니다...
강선생님. 야한글 부득이 삭제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늘 아름답고 행복한 날 되세요.
전글 완결편 읽어 보려 왔다 지워져버린 것만 보았는데, 올려 놓은 걸 행촌이 용케 알고 다녀갔네 걸음은 내가 빠른데 인터넷에선 아닌가봐 ?.. ㅎㅎ 조 작가님이 있어 우리 카페에 즐거움이 가득 합니다. 행복한 휴일 되어요...
에긍. 형님 제가 그 글땜에 그만 카사노바로 소문나고 말았습니다. 저보고 해보고 쓰는 글아라며 얼마나 놀려대는지 ㅎㅎㅎ 고맙습니다.
상상은 기본이 조금은 있어야 하겠지만, 그만큼 허실을 사실처럼 느끼고 인정 한다면 좋은거 ㅇ닌가요?....ㅎㅎㅎ
넘 현실 실감나는글 잘보고 공감합니다 주부라면 거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되나봅니다 너무 바듯한생활에 아이들 키울때는 그렇게 배부른 생각할 여유가 없지요 하지만 아이들이 다자랐다생각되면 문득 자기를 보게 됩니다 아무것아닌일에 서운하고 눈물나고 그게 깊어지면 우울중으로 되는거 같아요 조창덕 작가님께서는 빨리 깨닫고 이해하셔서 현명한 판단에 박수를 보내드리고싶어요 감히제가 늘 그렇게 사랑하면서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