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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801m)
1.산행구간 : 범어사-내원암-장군봉-고당봉-금샘-북문-범어사
2.산행일자 : 2010. 11.21(일요일)
3.산행거리 :
4.산행참가자 : 안다제 2,3,4(solo)
5.코스별 산행시각
◎ 울산 출발 (09:10)
◎ 범어사 주차장 (09:55)
◎ 산행출발(10:00)
◎ 청련암(10:10)
◎ 내원암 입구(10:15)
◎ 구조목 19/고당봉3.2km, 범어사0.6km, 사송리(10:25)
◎ 전망대 휴식(10:50~11:05)
◎ 장군봉/734.5m(11:30)
◎ 옹달샘(11:45)
◎ 식사(11:50~13:10)
◎ 마애여래불 갈림길/금정산0.7km, 가산5km, 계석6.6km(13:40)
◎ 금정산 고당봉/801m(13:55)
◎ 휴식(13:55~14:10)
◎ 금샘(14:25)
◎ 세심정(14:45)
◎ 휴식(14:45~14:55)
◎ 북문(14:57)
◎ 금강암(15:15)
◎ 범어사(15:25)
◎ 범어사 주차장(15:35)
◎ 대운산 찜질방(14:20)
6.산행기
자료에 의하면.....
금정산(金井山)은 행정구역상 양산시 동면, 부산의 금정구, 동래구, 북구와 접하여 있는 부산이 자랑하는 명산입니다.
또 금정산은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치닫는 낙동정맥의 남쪽 끝에 솟은 산으로 그 주봉인 고당봉(801.5m), 장군봉(727m), 계명봉(605m), 상계봉(638m), 원효봉(687m), 의상봉(620m), 파리봉, 미륵봉, 대륙봉 등 600m 내외의 봉우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길이 1만7337m, 높이 1.5~3m에 총면적 8.2㎢에 이르는 이 금정산성은 남해안과 낙동강 하구를 통해 침입해오는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것입니다.
금정산 이름의 유래는 '동국여지승람', '동래부지' 등에 기록된 전설에 의하면 산정에 돌이 있어 높이 3장 가량이고 물이 늘 차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금빛이 있으므로 금색어가 다섯 색깔의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으므로 금정산이라고 일컬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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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출발 (10:50)
08시 30분 출발한다고 했었는데.....
범어사 주차장 사정이 여의칠 않아 조금 일찍 출발하자고 했었는데...
하지만 09시 넘어 출발하게 되고..
그렇게 시작한 산행은 금정산 으로 가게 됩니다.
어제 장안사 주변 산행과 그리고 세째 동서네의 방문, 그리고 늦은 시간 귀가 아침에 일어 나려니 그것도 오랜만에 산이라고 몸이 천근 만근입니다.
일어나 준비를 하는데 오늘도 차를 가지고 가야 한다나 어짼다나...
오늘은 이게 부담스런게 사실입니다.
산행후 피곤함과 함께 밀려오는 ...
그래서인지 장거리 산행을 잡지 못하는 사정인지도 모름니다.
엊그제 저녁이후 제대로 먹어본것 조차 없는 속앓이...
상태가 최악인건만큼 사실입니다.
◎ 범어사 주차장 (09:55)
어째튼 그렇게 출발은 되었고 범어사내 주차장 사정은 어떻게 될것이며 이것 저것 ........
그렇게 차는 부산으로 들어 섰고 그리고 곧장 범어사 올라가는 편도길에 구불구불거리는 길따라 올라섭니다.
차는 전면에 범어사를 두고 왼쪽으로 돌아 가는 길에서 직진으로 올라서는데 입장료를 내라는것입니다.
3000원 입니다.
그리고 차는 범어사 경내 주차장에 주차를 합니다.
은행나무
◎ 산행출발(10:00)
범어사
창건 연대는 약간의 이설이 있으나 가장 합리적이고 정확한 것은 신라 문무왕 18년(서기678년) 의상대사에 의해서 입니다.
문무왕 10년(670년) 의상대사가 당나라로부터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여 화엄사상으로 교화하기 위하여 문무왕10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져 오는 사찰입니다,
파킹후 곧장 출발하기는 하는데 이쪽길은 저도 사실 처음입니다.
청련암
청련암
◎ 구조목 19/고당봉3.2km, 범어사0.6km, 사송리(10:25)
지나는 산님한데 내원암 가는길이 이쪽이냐 물으니 그렇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범어사 오른쪽 길따라 청련암 내원암 쪽으로 올라서는데 대나무 사이로 난길따라 올라서는데 청불 동상이 전면에 있고 청련암에 올라섭니다.
그리고 주변의 요사채를 둘러 보고....
오른쪽 길로 내려섭니다.
계명암 가는길도 보입니다.
우리는 내원암쪽으로 올라서는데...
잠시후 내원암 가는길과 고당봉으로 올라 가는길의 삼거리에 서는데 이곳은 이정표도 없습니다.
단 산불주의 그리고 입산 통제등 플랜 카드와 함께 입구 나무에 시그널만 팔랑거립니다.
해서 혹시나 싶어 고당봉 가는길이 이쪽이냐(내원암 가는길의 반대방향) 물으니 그렇답니다.
그렇게 출발합니다.
왼쪽 넓은 공터를 지나 잠시 올라서는데 계명봉에서 내려서는 안부에 올라섭니다.
이정표가 하나 서있습니다.
구조목 19/고당봉3.2km, 범어사0.6km, 사송리라고.....
◎ 장군봉/734.5m(11:30)
산으로 들어 서는 입구에는 시그널로 팔랑거리고 있고 해서 곧바로 산으로 들어서려던 계획을 바꾸어 임도를 따라 올라서기로 합니다.
길 옆에는 애기 단풍나무들이 줄을 지은채 서있지만 단풍들이 말라 비툴어져 있는게 아쉬워 보입니다.
임도로 향하던 길은
잠시후 산길로 들어 서는 길과 삼거리입니다.
이정표에는 고당봉, 그리고 장군봉 가는길이라 표기되어 있고....
산님 서너분이 자리를 차지 쉬고 잇는 중이라 이정표를 카메라에 담지 목하고 곧장 장군봉 방향으로 올라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길은 임도길처름 넓은 길은 안부에서 올라오는 낙동 정맥길과 합류하자 이내 산길로 바뀌면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 됩니다.
서두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빨리 갈수도 없는 사정 헤서 쉬엄 쉬엄 올라서기로 하는데 ..
막내 동서 혼자서 저만큼 달아나 있습니다.
그렇다고 쳐질 우리도 아닌데....
해서 따라 붙기로 합니다.
한 10여분을 따라 붙었을까요
막내 동서의 숨소리가 점점 커지는걸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쉬게 하는데...
모두들 하나둘 할딱거리는 숨을 몰아쉬면서 올라섭니다.
그리고 잠시후 전망대에서 쉬어 가기로 하고 간식으로 주린 배를 채웁니다.
건너편의 계명봉 이야기며 이런 저런 이야기로 휴식후 다시 출발합니다.
조그만한 돌탑인 무명봉을 지나 억새 밭사이로 지납니다.
그리고 오르막길
장군봉입니다.
양산 다방에서 출발하면 지나던 길....
오늘은 거꾸로 올라왔습니다.
색다를 방법중 하나입니다.
◎ 식사(11:50~13:10)
정상석을 배경을 카메라에 담고는 다시 리턴해서 샘터로 향합니다.
사면길인 옹달샘
이른 점심이지만 먼저 자리를 선점 해결하고 가기로 하고 물을 보충 양지바른 장소를 선택합니다.
물론 조심해야 할일이지만 버너를 피우고 라면에 그리고 숭늉까지...
거의 한시간 넘게 식사를 하고 일어 섭니다.
속이 좋지 않은 관계로 속은 편하지만....
고당봉 입석대
고당봉 계단길
산불조심 방송중
◎ 금정산 고당봉/801m(13:55)
옹달샘을 지나 고당봉을 향한 발걸음은 계속 됩니다.
편하게 이어지던 길은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는길에 모두 힘들어 합니다.
모두 식사하고 난이후 오르막기라 그런지.....
다시 이어지는길은 마애여래불 삼거리 가기전 오른쪽 전먕대로 올라섭니다.
낙동강이며 구포쪽의 조망은 역광인 가운데 아름답게 다가 옵니다.
그리고 고당봉 정상에는 많은 인파로 가득하고...
다시 이어지는길은 마애 여래불 가는 삼거리에 내려섭니다.
이정표에는 마애여래불 갈림길/금정산0.7km, 가산5km, 계석6.6km라고 표기 되어 있고.....
다시 길은 이어집니다.
범어사에서 올라오는 임도기과 합류 그리고 곧바로 고당봉 정상에 올라서는데 옛날에 자일 타고 오르던길은 이미 데크 계단길로 바뀐지 오래인듯....
그계단길 따라 올라섭니다.
모두들 정성석을 부여 잡고 비킬 생각이 없나 봅니다.
하여튼 그렇게 어렵게 단체사진으로 마감하고 한쪽 곁으로 나와 쉬어 가기로 합니다.
그렇게 쉬길 10분여
군것질 할게 없다며 다시 일어섭니다.
분문쪽으로
조망
고당봉 인파
금샘방향으로
◎ 금샘(14:25)
고당봉을 건너 금샘으로 행합니다.
자칫 놓치기 쉬운길....
메마른 나뭇가지만 있어 길을 잃어 버릴 이유야 없지만.....
대부분 이들이 금샘을 찾아 나서다 결국 찾지못하고 돌아 간다 하니....
어째튼 그렇게 금샘 암릉위애 올라섭니다.
여전히 물은 채워져 있고...
범어사와 금정산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금샘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일정한 량을 유지하며 해발 600m에 위치하고 있는 높이10m,둘레7m의 화강암바위 정수리자리에 있읍니다.
샘의 깊이는 20cm, 둘레는 3m 규모로 형성된 샘인데요,
금샘은 가까이서가 아니라 멀리서 쳐다봐야지 신비함을 더 느낄 수 있고 또한 금빛을 보려면 해 뜰 때하고 해 질 때 와야 하며 그때 보면 오색무지개 속에 금빛 물고기가 뛰노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는데....................
바위 봉우리에 물이 가둬있는 형상이라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진다고 한다.
금빛 물고기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논다는 금샘이 있는 금정산 최고 봉우리인 고당봉에는 평생을 불심으로 살다
죽은 한 화주보살의 이야기가 서려 있답니다.
신라시대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범어사는 목조건물인데다가 잦은 화재에 시달렸다는데,
그 첫 번째로 임진왜란을 만나 모든 건축물들이 잿더미로 변했다고 합니다.
동래성을 함락한 왜군들은 울산지방에 상륙한 부대와 합류하기 위해 길을 재촉하다 신라 이래 면면히 내려오던 화엄 10대 사찰인 범어사의 웅장한 기운을 그대로 둘 리가 만무했다고 하는데,
특히 대마도를 향해 선 고당봉 아래 왜군들의 침략을 방지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까지 지닌 범어사는 왜군들의 방화에 불타버렸습니다.
이 때 밀양에 살던 화주보살은 범어사가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절을 잃고 망연자실한 스님들을 위해 동분서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을 돌며 시주를 받은 할머니는 스님들의 음식을 만들고 수발을 들면서 불가에 귀의하였는데,
"내가 죽기 전에 우람했던 범어사가 다시 제모습을 찾을 수만 있다면. . ."
화주보살은 몸을 아끼지 않고 범어사 중건을 위해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시주를 해오는가 하면 절의 살림도 도맡아 꾸려나갔습니다.
"가난한 집에는 제사도 많다든가!" 빈궁하기만 한 절 살림을 도맡아 꾸려가던 화주보살은 어느날 주지 스님께 조용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하고 저 높은 봉우리 아래에 고모선신(姑母善神)을 모시는 사당을 지어 고모제(姑母祭)를 지내 주면 금정산의 수호신으로 변해 범어사를 도우겠습니다."
평생을 범어사 재건을 위해 몸바쳐 살던 화주보살은 죽어서도 범어사를 보호하기를 소원했습니다.
스님은 화주보살의 고귀한 뜻을 살려 그의 유언에 따라 고당봉에 사당을 지어 1년에 두 번씩 (음력 1월 15일, 5월 5일) 고당제를 지내게 되었는데, 그 후 화주보살의 유언처럼 범어사는 다시
중건하게 되었고 화엄의 대표적인 사찰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때부터 이름을 얻지 못하던 금정산 제일봉은 화주보살의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해 할미고에 집당을 사용해 고당봉으로 불리게 되었고, 고당봉의 화주보살 사당은 고당약수터에서 고당봉으로 오르는 길로 가다 보면 왼쪽편 가파른 절벽사이에 초라하게 서 있고,그 후 사당이 고당봉의 전경을 망치고 무녀들이 많이 드나들어 촛불로 인한 화재위험이 있다고 하여 헐었으나 그 때마다 범어사에 흉한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어쨌든 설화는 설회이니 만큼 재미로 봐야 할것 같은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 한이야기이다.
다시 금샘을 빠져 나와 곧장 새심정쪽 즉 북문쪽으로 방향을 잡고 사면길로 내려선다.
금샘
고당봉 방향
◎ 북문(14:57)
잠시후 도착하는 세심정
가뭄이라서인지 많은 사람에 비해 졸졸 거리는 물...
잠시 화장실 다녀 오느라 휴식을 한다음 북문에 내려섭니다.
성벽
금강암 단풍
선원
대웅전
◎ 범어사(15:25)
지난번에는 수리중이더니만 깨끗이 단장된 건물을 지나 내려서는데....
좋던길은 암릉길로 바뀌고 ..
암릉을 밟으면서 내려서는길은 자연스럽게 빨라 집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돌아서 보면 없더라는 이야기인즉 거의 뛰다시피 내려섰다고 합니다.
내려오면서 땀흘리긴 또 오랜만이랍니다.
잠시후 너들길을 지나고 그리고 산불 감시초소를 지납니다.
그리고 조그만은 다리를 지나 금강암으로 들어 갑니다.
범어사 경내인줄 알고 들어 갔는데....
선원이더군여
다시 나와 범어사로 들어 가는데 모 단체에서 사진 동호회인지 모델를 바위에 앉혀놓고 카메라셔터 누르기에 바쁜 모습들입니다.
카메라 베리겠네라니 들은 사람들은 웃고 맙니다.
다시 범어사 경내입니다.
초파일에만 보는 등도 달려 있고...
또 동지맞이 기도접수처가 있고....
그리고 그뒤로 보물434호인 대웅전과 관음전이 자리 하고 있습니다.
석가여래와 미륵보살 그리고 제화갈라 보살을의 삼존을 모시고 잇는 대웅전
678년 건립 되었지만 지금 건물은 1614년(광해군6)에 묘전화상이 건립후 1713년 홍보화상이 다시 건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곧장 빠져 나와 일주문 앞으로 가는데...
다른곳과 달리 다리가 4개나 되는 일주문입니다.
관음전
3층석탑
범어사 경내
염주
......................개념없다,
다복송
범어사 조계문
보물이군요 1461호로....
범어사의 일주문이라고 하는데요 만법이 모두 갖추어져 일체가 통한다하여 일명 삼해탈문이라고도 하는데요
1614년 (광해군6)묘전화상이 사찰내의 여러 건물을 중수 할때 걸립된것으로 추측을 하고 있다는 설입니다.
그리고 1718년 (순종44)명흡대사가 돌기둥으로 바꾸고 1871(정조5)년에 백암선사가 현재의 건물로 중수 했다고 합니다.
◎ 범어사 주차장(15:35)
그리고 주차장에 도착 하루 산행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찜질방이라는곳으로 갑니다.
대운산 찜잘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