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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으로 퍼갈 수 없습니다.* 단 하나뿐인 신호등-영양군 가을산책 글/사진: 이종원 (사진:서석지가 있는 연당리) 영양이야말로 마음속에 꿈꾸어 왔던 고향이다. 산과 산사이의 손바닥만한 공간만 존재한다면 어김없이 사람의 손길이 닿아 있다. 이 척박한 땅덩이를 일구고 살아온 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을 느끼게 한다. 영양군 전체 면적의 86%가 산이고 14%만이 평지니까 여간해서는 들녘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은둔생활을 위해, 의병이 되기 위해, 전쟁의 참화를 피하기 위해, 구리광산에 들어가 돈 몇 푼 쥐기 위해 이 땅의 민초들은 제각각 사연을 품은 채 일월산 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배를 움켜지면서 땅을 일궈냈건만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6.25동란을 맞아 좌우익의 피바람에 몸서리를 쳐야 했고, 울진 무장공비가 침투했을 때는 일구어 놓은 터전을 뒤로한 채 허겁지겁 산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이런 질곡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 바로 영양땅이다. (사진:이문열고향인 두들마을의 석천서원) 영양에는 아직도 수많은 한옥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고 있다. 그 곳의 위계질서는 영양고추만큼이나 매웠다. “그건 말도 안돼” 마을 어르신의 한 마디는 법을 초월하는 절대 권력이었다. 그 법도가 오늘날까지 유교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면면히 이어졌다.
(사진;서석지 은행나무)
그러나 고향 터전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는 이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노인들만이 영양 땅을 지키는 처지가 되었다. 군민이라야 고작 2만 명밖에 되지 않아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걱정이다. 사람은 멀리 갔어도 그 살가운 인심만은 남아 있었다. ‘-니껴’ 라는 독특한 접미어만 붙이면 누구나 영양사람이 되어 푸근한 정을 나눠가질 수 있었다. 마을의 내력을 물어보면 사돈의 팔촌까지 술술 얘기해 준다. 어쩌면 그들은 이야기 할 상대를 찾지 못했는지 모른다. 서석지 정자에 다리를 내뻗고 청국장같이 구수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하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봉감모전오층석탑 (국보 187호)앞에 서면 그 웅장함에 압도되어 내자신이 작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11미터 높이의 커대한 탑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렸을까. 거기다 산태극과 물태극이 절묘하게 만나는 곳 그리고 병풍같은 절벽을 배경삼아 탑이 솟아 있었다. 초콜바처럼 똑같은 모양의 벽돌이 아니다. 층마다 얹은 돌의 크기가 제각각이다. 그걸 반듯하게 층을 맞춰 올린 선인들의 손재주에 감탄만 할 따름이다. 만약 돌 크기가 벽돌마냥 똑같았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지루했을까? 봉감마을에 사는 탑지기 신상해님은 조상 대대로 탑 앞에 살면서 지붕돌의 잡초를 뽑고 무너진 돌덩이를 나르며 여태까지 탑과 함께 살아오고 있다. 탑이 있기에 고향을 떠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감동의 파장이 가슴을 흔든다. 이런 민초들의 고귀한 정신과 사명이 더해졌기에 이 탑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석지는 광해군 때 석문 정영빈이 조성한 우리나라 최고의 정원이다. 인간이 정원을 만들었다기 보다 자연속에 인간이 들어왔다고 하는 말이 옳을 것이다. 문은 정면에 놓여 있지 않고 측면에 자리 잡고 있다. 들어가는 이나 맞이하는 이가 서로 기척을 느끼게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이런 배치를 했던 것이다.
경정의 마루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면 신선세계에 들어 온 듯하다. 물위에 둥둥 떠 있는 60개의 바위는 나름대로 의미를 지닌 채 도인의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바라보기 위한 정원이 아니라 자연에 빨려 들어가기 위한 정원이다. 은행나무와 정자가 가장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곳이 서석지다.
(사진:남이장군의 전설이 어린 남이포) 일월산에서 흘러나온 반변천이 동천과 합류하는 곳이 바로 남이포다. 경치가 웅장할 뿐 아니라 왠지 기묘한 느낌이 든다. 남이장군이 역모를 도모한 아룡과 자룡을 이 곳에서 격퇴하고 자신의 얼굴을 새겨 넣은 곳이 남이포이고, 칼로 산을 잘라 물줄기를 돌렸는데 마지막에 칼질한 바위가 선바위란다. 강변에 서 있으면 타이타닉호를 보는 것처럼 웅장하고 가슴이 후련하다.
(사진:분재야생화전시관의 폭포석) 남이포 앞에 있는 분재수석야생화 전시관은 분재 130점, 양생화 5천본, 수석 50점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정성 가득한 분재를 바라보기만 해도 자연에 흠뻑 빠져든다. 수석전시관에는 영양에만 나온다는 폭포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폭포 물줄기는 하얀 돌을 본드로 붙여 놓은 것 같다.(영양분재수석야생화전시관 054-682-6070 입장료 없음)
(사진:우리나라 최고의 품질인 영양고추)
영양의 고추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정평이 나 있다. 남이포에 자리 잡고 있는 영양고추홍보관은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영양고추를 만날 수 있다. 일교차가 심한 고랭지에서 재배하여 매우면서도 달고 향기가 있고, 과육이 두꺼워 가루가 많이 난다고 한다. 고추장과 메주도 구입하면 좋다.(영양고추홍보전시관 054-682-6271 입장료 없음)
(사진:학초정)
조선상류집안의 정자와 살림집을 볼 수 있는 곳이 ‘학초정’이다. 야트마한 산을 배경으로 사뿐히 정자가 앉아 있다. 허리를 구부리고 정자에 기댄 소나무가 그 연륜을 말해주기에 충분하다. 학초정은 솟을대문과 정자, 살림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자 마루엔 겨울에 쓸 무말랭이가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있었다. 마루에 올라 유유히 흘러가는 반변천이 바라보면 한 폭의 수채화가 펼쳐진다.
(사진:조지훈생가가 있는 주실마을 들어가는 초입에 시비가 있다.)
조지훈 생가 주실마을에 들어섰다. 그의 시만큼이나 멋진 숲 속 한가운데에는 조지훈 시비가 자리 잡고 있다. 나무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누구나 서정시인이 될 정도로 경치가 좋다. 조지훈은 한국 현대시의 완성자이며 근대시의 전 후반기를 연결해주는 대시인이다. 그는 지조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겼다. 일제 때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경의 심문을 받자 비굴하게 사느니 비승비속으로 사는 것이 훨씬 낫하고 하여 세상을 등지고 오대산 월정사로 들어가 버릴 정도다. 그의 지조론의 정신적 토대가 된 곳이 바로 주실마을이다. 마을은 한양 조씨의 집성촌으로 구성원 모두가 일가친척이다. 전통마을이면서도 80년 전부터 양력설을 쇠고 있는 것이 의아스럽다. 신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마을은 인재 양성을 위해 월록서당을 지어 선조들의 교육열을 이어받았다. 조지훈 뿐 아니라 의병장 조승기, 국립중앙도서관장을 지낸 조근영, 한굴맞춤법 통일안 입안자 조헌영박사, 경북도지사를 지낸 조준영, 여류시인 조애영 등 이 조그만 동네에서 30명이 넘는 박사들과 수많은 장군들을 배출해 내었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일월산의 맥이 집결하는 곳이기 때문이란다.
(사진: 이문열생가의 광산문학연구소)
두들마을은 석계 이시명 선생과 그의 후손 재령 이씨들의 집성촌으로 석계고택, 서당, 전통가옥 30여 채가 마을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곳은 소설가 이문열씨의 고향으로서 <금시조>,<영웅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등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사진:일월산 단풍)
가을 단풍이 고은 일월산 자락도 좋다. 운 좋으면 멀리 동해에서 해뜨는 것을 감상할 수 있다.선녀가 노닐었다는 용화선녀탕에는 원시림 사이로 청정하고 맑은 물이 흘러내려 가을 단풍 코스로 더 없이 좋다.
(사진:일월산 자락에는 무속인이 많다.)
특히 용화리 선녀탕 입구는 여름철이면 천연동굴에서 찬바람이 불어나와 더위를 식히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다. 최근에 개관한 영양산촌생활박물관도 놓치기 아깝다. (사진: 일월면 용화리의 구리제련소) (사진:단풍이 고운 검마산자연휴양림)
검마산자연휴양림의 가을 단풍도 절경이며 산채돌솥밥과 토종닭 요리도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통나무집에서 하루를 머물러도 좋고 고개 너머 백암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것도 좋다.(검마산자연휴양림 054-682-9009)
(사진: 선 바위식당의 산채비빔빕과 영양의 명주인 초화주와 머루주) 영양의 특산물은 일월산 청정지역에서 자란 산나물이다. 참나물, 곰취, 나물취, 어수리등은 독특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봄철 입맛을 돋우고 있다. 선바위식당에서는 4계절 나물요리를 맛볼 수 있다.
(맘포식당의 한우요리)
깊은 산속에서 자생한 송이버섯요리는 청정한우와 함께 읍내 맘포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영양에서 재배되는 당귀, 천궁, 오가피 등 식물약재를 넣어 만든 초화주 한잔 마시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영양장(4.9일), 수비장(3.8일)에는 산나물과 영양고추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사진:영양읍의 현1동삼층석탑)
지금도 영양군을 통틀어서 교통 신호등이 단 하나다. 그만큼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곳이기도 하다. 더구나 재정자립도까지 낮아 전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자체로 알려져 있다. 가난하지만 마음이 부자인 동네가 바로 영양이다. 그곳에서 화려한 것을 찾으려면 차라리 영양땅에 발을 들여 놓지 마라. 영양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곧 사라질지 모르는 반가의 문화와 한참을 곰씹어야 감동을 전해지는 아픔의 현장들이다. 이것이야말로 영양 땅을 지탱하고 있는 마지막 버팀목이다.
(사진:청소년 수련관의 숙박시설) (사진:미륵바위에서 약수터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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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버님 생전에 영양, 특히 일월산 야기 많이 하셨슴다. 6.25사변전해 수비면지서장으로 재직시 제가 태어 났데요. 일월산 공비 유명했나 봐요. 지서의 주인이 밤 낮으로 바뀌고.... 몇년전 어머님 모시고 안태고향 수비면을 찾아 갔엇는데 울엄마 집터도 못 찾데요.. 흐 흑.
우와~가을단풍이 너무 곱네요..아름다운 우리땅입니다.ㅎㅎ
단풍길...죽음입니다..청소 걷어치고 마구 떠나고 싶습니다..주부가 방황하면 안되는데..ㅠ.ㅠ
달새님이 있는 영양의 가을이 너무 곱네요~~답사때도 감탄하며 돌아 보았던 서석지며,봉감모전 오층석탑,남이포,분재 박물관,올여름에 가 보았던 검마산 자연 휴양림등등 ,때묻지 않은 영양의 산과들은 청량제와 같이 늘 신선 합니다.
올 단풍 나들이 방향을 바꿔야 겠어요 너무 멋져요 빨리 떠나고 싶네요....
아~~저 좋은곳들을 그냥 두고..껍데기만 핥고 오다니...흐~~
여행 가고 싶어요~~
가고싶은 맴이야 하늘이지----ㅎㅎ
와우! 가고시퍼라~~
와! 대단한 경치입니다 넘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