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의 ‘거열산성’을 가다
1. 산성을 오르는 것은 가슴에 뜨거움을 부추기는 행위이다. 과거의 어떤 시간 동안 ‘생존’을 위해 치열한 투쟁을 벌였던 현장으로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 길이 험하고 힘든다면 ‘뜨거움’은 더욱 큰 격렬함으로 다가온다. 거창의 ‘거열산성’은 묘한 슬픔을 떠오르게 한다. 건흥산 정상 가까이에 만들어진 산성은 상당히 힘든 코스로 이동하면서 전쟁이라는 필연적이고 비극적인 형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떠오르게 한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만들어진 산성은 사람을 막기 위해, 통해을 금지하기 위해 쌓여진 단절의 영역이었다.
2. 특히나 거열산성은 신라, 백제, 가야의 영역이 중첩되어 서로가 포기할 수 없었던 곳이기에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계속 그 곳을 지배하던 주인이 바뀌었던 곳이다. 신라가 장약했던 성을 백제가 빼앗았지만, 백제의 멸망으로 성은 다시 신라의 땅이 되게 되었다. 하지만 백제의 유민들은 쉽게 그 땅을 내어주지 않았다. 거열산성은 백제부흥운동의 마지막 비장미가 서려있는 비극적 장소인 것이다.
3. 복원된 산성 성벽 위를 천천히 걸으며 여기에서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한다. ‘민족, 국가, 가족’이라는 명분 속에서 싸워야 했던 이름없는 병사들의 죽음은 국가에 의해 포장되고 선전되어 국가를 유지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그 과정은 어쩌면 권력자의 ‘지위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된 희생에 불과했는지 모른다. 인간은 그가 속한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쟁을 거부하고 탈영한 병사는 ‘비겁자’와 ‘배신자’와 같은 비난 속에서 사회적으로 매장될 뿐 아니라 국가에 의해 처벌받는다. 전쟁의 윤리적 정당성에 대한 개인적 판단은 의미없다. ‘명령하면 복종할 뿐이다.’ 그렇기에 산성을 걸으면 ‘슬픔’이 떠오른다. 전쟁이라는 인간의 필연적 비극이, 개인의 억압된 자유와 그 속에서 사라진 회복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기억이 흩어져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산성 성벽 위를 천천히 걸으며 여기에서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