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낙안(樂安)은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樂安面)·외서면(外西面)과 보성군(寶城郡) 벌교읍(筏橋邑) 일대를 통칭하던 지명이다. 백제 때에는 분사군(分沙郡: 分嵯郡·夫沙郡·波知成)이었다.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후 분차주(分嵯州)를 설치하고 귀차(貴且)·수원(首原)·고서(皐西)·군지(軍支)를 영현으로 두었다고 하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분령군(分嶺郡)이라 했고, 940년(고려 태조 23)에 낙안군으로 개칭했으며, 1018년(현종 9)에 나주(羅州)의 속군이 되었다. 1172년(명종 2)에 낙안현으로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으며, 후에 군으로 승격하였다. 부사(浮槎)·낙천(洛川)이라고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낙안군이 되었고, 1896년 전라남도 낙안군이 되었다. 1908년(융희 2)에 군면 폐합이 실시되어 낙안군이 폐지되고, 내서·외서·동상·동하·초상·초하·읍내 등의 면은 순천군으로, 남상·남하·고상·고하 등의 면은 보성군으로 나누어 편입되었다.
성씨의 역사
낙안오씨(樂安吳氏)는 고려시대 삼사좌윤(三司左尹)을 역임하고, 외적을 토벌한 공으로 낙안군(樂安君)에 봉해진 오사룡(吳士龍)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는 원래 해주오씨(海州吳氏)인데, 후손들이 그의 봉호를 따라 관향을 삼은 것이다.
분적종 및 분파
시조 오사룡은 해주오씨 오응(吳膺)의 32세손으로 낙안군으로 봉해졌고 이후 후손들이 낙안을 관향으로 삼았으므로 낙안오씨는 해주오씨(海州吳氏)에서 분적된 성씨이다.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면 감천동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면 삼지리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낙안오씨는 2,787가구 총 9,135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첫댓글 잘보았습니다 조금은 알고 있었는데 스크랩하고싶은데 안될까요
스크랩 금지를 해제하였습니다, 약 10일주 원위치 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고향 카페에올려 많이 알리겠습니다 봄내인님께감사^^^^^^^^,^^^^^^^^,******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