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승희야
|
|
||
| ▲ <최후의 만찬(460×880cm)>, 레오나르도 다 빈치, 회벽에 유채와 템페라, 1493~1498년경,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밀라노) 소장 | ||
[글마루=백은영기자] 세계적인 명화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은 이탈리아 화가인 레오나르 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그림으로 60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제1밀라노시대(1482∼1499)인 1493년에서 1498년에 걸쳐 완성한 그림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열두 제자와 함께 만찬을 나눈 데서 그 영감을 찾았다.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인 예수가 유월절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떡을 떼고 포도주를 나누며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는 이 새 언약의 내용은 그 이면적인 뜻보다는 마지막 만찬을 함께했다는 표면적인 내용만이 부각되어 지금까지 많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그림으로 혹은 소설로 때로는 영화로 재탄생되어 왔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와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론 하워드 감독의 <다빈치 코드(2006)> 등은 성경 속 마지막 만찬을 모티브로 탄생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전성기의 시작
<최후의 만찬>은 예수와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이라는 데서 그 모티브를 찾았다. 매우 낯익은 주제이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 작품은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바로 이 <최후의 만찬>의 장대한 구도와 함께 시작됐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극찬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5세기 피렌체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전의 작가인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Andreadel Castagno)나 기를란다요(Ghirlandajo) 등에 의해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한 작품이 그려졌지만 이들 작품의 구도에서는 유다 한 사람이 식탁의 건너 편에 위치하고 있는 형태였다. 즉 유다의 배반에 초점을 맞춘 그림이었던 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에서는 유다를 제자의 무리에 포함시켰다. 열두 제자를 세 명씩 작은 무리를 짓도록 해 유다의 배반보다는 화면의 조형성에 더욱 역점을 뒀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해 대체로 알려진 이야기는 화면의 구도가 대단히 수학적인 구조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3개의 창문, 4개의 무리를 이룬 12제자 등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4복음서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 등을 각각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유네스코는 1980년 <최후의 만찬>과 함께 이 작품이 소장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최후의 만찬> 속 예수와 가룟 유다의 모델이 동일인물?
<최후의 만찬>의 성경적 배경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26:26~29)”
<최후의 만찬>의 배경은 기독교의 경서인 신약성경 마태복음 26장과 마가복음 14장, 누가복음 22장에 기록되어 있는 마지막 만찬이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던 12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자신을 넘겨줄 것을 알면서도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을 기념한다. 이 마지막 만찬 때 예수는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가룟 유다는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대답하신다.
예수를 랍비라고 부르며 따르던 가룟 유다. 은 서른 닢에 자신의 스승을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팔아넘긴 자와 그 사실을 알면서도 함께 만찬을 나누는 예수의 모습은 세상적인 생각으로는 분명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죽음 앞에 담담할 수 있는 예수의 모습도, 자신의 죽음을 피하지 않았던 것도 모두 세상적인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 제자들과 나누던 마지막 만찬은 어딘지 모르게 숙연하고, 뭔가 모르게 애달프다. 만일 이 마지막 만찬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면 숙연함과 애달픔을 넘은 또다른 감정이 생겨나리라 본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는 어떤 의미이며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에서 나온 아버지의 나라는 과연 언제, 어디에 오는지 알게 된다면 <최후의 만찬>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생각도 달라지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