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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삼강행실도의 내용 중 서만득어(徐萬得漁)를 묘사한 풍속화의 일부분을 발췌했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http://211.252.141.20/special/em200602012/em200602012.html
속삼강행실도의 내용 중 서만득어(徐萬得漁)를 묘사한 풍속화의 일부분을 발췌했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http://211.252.141.20/special/em200602012/em200602012.html
◇ 현대인의 효 실천법 고민해야
서만의 고사는 부모를 성심을 다해 공양한 사례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수많은 효자 효부가 배출되었다. 자신의 손가락을 할지(割指), 또는 단지(斷指)한 후 피로써 봉양하여 부모의 목숨을 구하거나 병환을 낳게 한 예도 숱하게 많다. 이보할지(李甫割指)의 고사도 그런 예 가운데 하나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섬에 자신의 몸을 팔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 설화는 민중의 심금을 울린다. 아무튼 자신의 소중한 신체나 목숨을 걸고라도 부모에 대한 사랑에 보답하려는 많은 역사와 설화들은 모두 효를 극단으로 추구한 사례들이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효’란 어떤 의미일까. 또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 요즘에는 여러 세대의 부모와 함께 사는 가정도 희소해졌고,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가 늘어간다. 이제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자매 간에 어울려 살면서 가족 간에 지켜야 할 규범을 체득할 기회도 적어졌다. 세대를 잇는 효의 가치 전승은 더더욱 힘들어졌다.
전통적인 관혼상제의 의례도 상당히 변모했다. 현대인의 달라진 풍속도와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전통적 ‘효’의 의미는 날로 퇴색되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서만득어’식의 효를 현대인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효의 실천 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효’의 관념이 담고 있는 가치 전체를 내버려야 할 케케묵은 유산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새로운 방식의 효의 실천법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는 ‘효’라는 말만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위축된다. ‘효’를 떠올리는 순간, 그동안 부모에게 저질러온 수많은 ‘불효(不孝)’의 언행이 상기되어 부끄러움이 차오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자주 듣던 ‘부모가 돼봐야 부모마음을 알거다’하시던 말씀들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자녀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을 때 똑같이 그런 말이 입에서 저절로 맴돈다.
결국 ‘효’란 끝이 없는 부모의 헌신적인 자식 사랑, 그 내리 사랑에 대한 보은으로서 최소한의 치사랑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기본 덕목이 아닐까?
◇ 공자가 강조한 효는 인간사회의 근본 윤리
공자(孔子)가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꼽은 ‘효(孝)’에 대한 훈육이 담긴 책이 <효경(孝經)>이다. 동양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효의 가치를 명확하게 드러낸 책이다. 분량은 매우 적지만, 의미의 무게만큼은 어느 고전 못지않게 묵직하다. 당연히 공자의 가치관을 이해하기 위해서 첫 번째로 읽어야 할 책이다.
백제시대에 박사 왕인(王仁)이 <논어>, <천자문>과 함께 <효경>을 일본에 전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효경>은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논어>와 함께 필수과목이 될 만큼 인재교육의 핵심 사상으로 전수되어 왔다. 공자하면 곧 ‘효’가 상기될 정도로 ‘효’는 유가(儒家)사상의 가르침 중에서 첫손에 꼽히는 개념이다.
‘효’는 단순히 교육적 개념을 떠나 인간 본성에서 발로되는 특별한 정감인 것 같다. 공자는 이런 인간의 본성을 확장하여 인간사회의 기본 작동 윤리로 확립시켰다. 공자는 부모 자식 간의 생물학적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효’의 개념을 발굴했다. 나아가 이를 사회 문화적 가치로 치환하여 가정의 질서를 세우고 치국(治國)의 근본을 튼튼하게 하는 최고의 윤리규범으로 자리 잡게 만든 것이다.
<효경>의 대부분은 공자의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고, 간간히 증자(曾子)의 문답이 나온다. 이 책의 원전을 공자 또는 증자가 저술했다거나, 증자의 제자들이 집록(輯錄)한 것일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효경>은 한 나라 초기 안정(顔貞)이 펴낸 <금문효경(今文孝經)>, 한 무제 때 공안국(孔安國)이 주석한 <고문효경(古文孝經)>, 당 현종이 새로 펴낸 <어주효경(御注孝經)>이 널리 보급되었다. 송나라 주희(朱熹)의 <효경간오(孝經刊誤)> 등 다양한 주석서가 있다.
한국인이라면 ‘효’의 사상을 한마디로 압축한 다음 구절을 한번쯤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듯싶다. 효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대목으로 생각된다.
“사람의 신체와 머리털과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고, 자신의 인격을 올바르게 세우고 도리에 맞는 행동을 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님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의 끝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입신행도 양명이후세, 이현부모 효지종야).”
아울러 공자는 효자의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정말 한 가지 한 가지 성심으로 실천하려면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이다.
“효자가 어버이를 섬기는 데 있어, 평소 거처할 때는 공경하는 마음을 다하고, 봉양(奉養)할 때에는 즐거움을 다하고, 병환이 들었을 때는 근심을 다하고, 상(喪)을 당했을 때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 지낼 때는 엄숙함을 다해야 할 것이니 이 다섯 가지가 갖추어진 뒤에야 어버이를 잘 섬기는 것이다."
공자, 출처: 서울대철학사상연구소
하지만 공자의 효사상에 대해 반발도 적지 않았다. 공자는 인간성에서 자연적으로 발로되는 ‘효’의 감성을 사회 구성원들이 보편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예의범절로 정립시키려 했다. 그러다 보니 봉양과 상례(喪禮), 제사의 기준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등 형식주의로 흐른 측면도 적지 않아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민주와 공화 등 서구적 가치와 충돌을 야기하기도 했다. “효로서 임금을 섬기면 충성(忠誠)이 되고, 공경으로써 어른을 섬기면 공순(恭順)이 된다.”는 대목이 그렇다. 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개념처럼 효를 바탕으로 한 개인과 가정의 윤리를 사회와 국가로 무한히 확장하려 했다. 이는 충효(忠孝) 사상이 가부장적 전제 통치의 이념으로 활용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물론 공자의 가르침이 아래에서 위로의 공경과 충성을 무조건적으로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공자는 위에서 아래로의 박애(博愛), 덕(德)과 의(義)의 베품이 전제되어야 완전한 효가 실행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효를 매개로 한 덕목이 자발성을 근거로 쌍방향으로 행해지지 않을 경우, 충효의 덕목은 자칫 억압과 허례(虛禮)의 수단으로 변질될 소지가 다분했다.
충효사상이 조선왕조의 민주적 사회변동을 지체시키고, 개인의 자유의지와 남녀평등의 가치를 존중하는 근대 시민의식의 발아를 힘들게 했던 측면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정과 사회 윤리 규범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요즘이야 말로 공자가 역설한 ‘효’의 본질적 가치를 되살려 인간의 자연스런 도리에 기초한 화목한 가정, 건강한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내야 할 때가 아닐까? <효경>은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있는 고전이다.
이제 효가 더 이상 통치의 이념으로 의식적으로 활용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 본연의 자연스런 효의 감성이 가족과 사회, 나아가 국가의 도덕규범의 건강성을 담보해주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현대인의 효 실천법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효도법은 크게 두 가지다.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편하게 모시는 양구체(養口體)와 부모님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펴 평안하게 해드리는 양지(養志)다. 능력이 있다면 양구체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지만 부모 속을 덜 썩이는 양지가 최고의 효도다. 요즘 부모들은 현명하고 자식에 대한 배려 또한 한량없다.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못난 건 늘 자식들이다. 오늘 안부전화라도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