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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고 평범해진 애플" 자신이 세운 애플에서 1985년 쫓겨난 스티브 잡스는 경영진을 향해 경멸을 감추지 않았다.
“그들은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돈 버는 데 더 관심이 많다.”
제품의 본질에 집중했던 애플은 잡스 부재(不在) 시절 숱한 버전의 모델을 쏟아냈다. 매킨토시만 10개가 넘었다. 애플은 윈도를 앞세운 마이크로소프트에 밀려 존재감을 잃었다. 잡스가 1997년 복귀 후 처음 한 일이 기존 모델의 70%를 없애버린 것이다. 애플은 열흘 전 ‘아이패드 미니’를 출시했다. 스마트 기기를 다변화한 첫 사례다. 그러나 기존의 9.7인치에서 7.9인치로 크기만 줄였을 뿐 혁신적인 기능은 없었다. 팀 쿡 체제가 앞서 뉴 아이패드, 아이폰5를 내놓을 때도 시장은 놀라지 않았다. 특유의 독창성은 사라지고 보통 기업처럼 트렌드 변화를 추종하는 애플만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지도를 대체해 쓸 수 있다’는 굴욕적 내용까지 넣었다. 한국에선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아이폰5 출시를 위한 전파인증을 두 번이나 취소했다. 완벽을 기하는 기업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삼성 등과 벌인 특허전쟁은 기술 진보에 역행하는 기득권 챙기기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급기야 잡스식 혁신 스타일을 보여온 스콧 포스톨 등 수석부사장 2명이 며칠 전 전격 사임했다. 30%대 경이적인 영업이익률의 비결인 ‘자체 공장 없는 부품 조립’은 한때 또 하나의 혁신 모델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엔 협력업체를 비정하게 쥐어짜는 ‘슈퍼갑(甲)’ 횡포가 숨어 있다. 아이폰·아이패드를 직접 만드는 대만 팍스콘의 영업이익률은 고작 1%대다. 세계 각국에서 고압적인 애프터서비스(AS)에 대한 불만도 끊이지 않는다. 잡스는 소비자의 범속한 취향을 무시했다. 대신 세상에 없던 창조적인 제품을 만들어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놓았다. 예술과 기술을 아우르는 혁신은 사물에, 또 사람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이젠 거꾸로 애플이 아이폰·아이패드 같은 혁신 제품을 내놓으면 시장이 깜짝 놀랄 거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꿈을 잃고 평범해져버린, 한때의 우상을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외부지식 잘 가져다 쓰는 게 진짜 R&D 역량" R&D는 비용의 블랙홀 - 동일한 연구개발 위해
연구를 많이 한다고 해서 반드시 비즈니스상의 호(好)실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구개발(R&D)과 상업적 성과 간에는 뚜렷한 상관성이 없다. 그래서 R&D는 종종 '비용의 블랙홀'로도 불린다. 그렇다고 R&D를 아예 무시할 수 없다. 관건은 R&D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새로운 R&D 현상으로 '외부시장 혁신'(open market innovation·이하 OMI)이 주목받고 있다. OMI는 쉽게 말하면 남이 만든 연구와 지식을 거래하거나 공유해 사용하는 것이다. 전체 R&D 가운데 70~80%가 여기에 속한다는 조사도 있다. 즉 아무리 독창적으로 보여도 결국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약간만 개선하는 경우가 제법 된다는 의미이다. OMI는 이런 과정에 투명성을 보장하며 회사의 R&D 진행 상황을 타사와 비교 평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누군가 동일한 연구개발을 진행한 바 있는데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동일한 경험 곡선을 반복한다면 낭비일지 모른다. 따라서 OMI는 전체 비용을 절약할 뿐 아니라 업계와 비교해 R&D 진행 상황을 점검해보고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들은 다양한 R&D 프로그램을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다. OMI를 잘 활용하면 첨단 기술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전문가들로부터 실질적이면서도 솔직한 의견을 얻을 수 있다.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필요도 없다. 이들의 투자를 받아 서로 '윈-윈'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모든 기능을 회사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게 당연시됐으나 지금은 달라졌다. 일례로 자동차를 만들 때 가장 우선시되는 자산인 디자인의 경우, 지금은 대부분의 디자인을 외부와의 협업으로 처리한다. OMI는 이런 상황에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이는 특히 이종(異種)산업 간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빛을 발휘한다. 특정 산업에서 진행된 연구조사가 성공적으로 상업화되려면 다른 산업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해당 업계에서는 이미 유사한 기술이 나와 있는 상태로 일부 발전은 있었지만 상업화 기회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이를 자동차 업계에 접목시켜 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자동차의 전장(電裝)시스템을 확대해 더욱 편리한 운전 경험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라면 불가능했던 다양한 산업 간의 R&D 협력을 가능케 한다는 점이 외부시장 혁신(OMI)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자신이 갖고 있는 아이디어와 R&D 프로그램을 적극 공유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수요와 공급이 맞물려야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이는 곧 회사의 R&D 프로세스가 외부에 개방되고 유연성까지 갖추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 만큼 기밀로 숨겨놨던 자사의 R&D 업무도 몽땅 공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기존의 폐쇄적인 사고방식이 R&D 효율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3M은 R&D 조직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인력 전원을 최소 2개 부서로 순환보직을 시켜 부서에 국한된 시각이 아닌 회사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를 기르도록 했다. 그 결과 3M은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가진 새로운 플라스틱 기술개발에 성공했고, 이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사무용품에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제품은 오랄 B의 막강한 시장력에 눌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었다. 이런 마당에 P&G의 일부 젊은 엔지니어들이 이 사실에 주목해 당시 P&G가 주력하던 저가 칫솔과 치약에 전동칫솔을 적용했다. 그 결과 시장에서 곧 히트를 쳤고 1년도 안 돼 1억5000만달러짜리 사업을 창출하게 됐다. 그전까지만 해도 칫솔에 전자 기술을 접목시킨다는 생각은 P&G의 플라스틱 칫솔 엔지니어 중 어느 누구도 한 적이 없었다. P&G는 전동 브러시처럼 기존 제품과 전자 기술이 접목된 신제품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물물교환식의 외부시장 혁신을 추진한다면, 거래의 기본적인 규칙을 정의하고 준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체계 전체가 와해되기 십상이다. 한국 기업은 특히 이 부분이 취약하다.
"글로벌 소싱 시대… 모든 협력사가 정보공유 못 하면 재앙 닥쳐" 제품 수명주기 관리 솔루션 1위 美 PTC社 제임스 헤플만 CEO
#사례 1 제품 출시를 불과 2주 앞둔 시점이었다. 이 커버는 '헤어라인(hair line)'이라 불리는 가느다란 은색 줄을 넣었는데, 제조 과정에서 당초 구상한 품질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전자 대표이사였던 최지성 부회장은 "디자인 콘셉트가 완벽히 구현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전량 폐기 후 새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재생산 비용만 50억원. 돈보다 더 큰 문제는 지적 사항을 10여일 만에 개선해 28개국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각국 판매망과 2·3차 부품공급업체에 변동 사항을 전달하는 데만 해도 며칠이 걸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10일도 안 돼 모든 커버를 교체했고 전 세계에 문제점을 완벽하게 해결한 제품을 공급했다.
#사례 2 2006년 7월 여객기 제조 업체인 에어버스의 최고경영자(CEO)인 노엘 포르자르(Forgeard)와 그 모(母)회사인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CEO 구스타프 훔베르트(Humbert)가 동시에 사임했다. 초대형 여객기 A380의 인도가 늦어지는 바람에 주가(株價)가 같은 해 3월, 35유로에서 6월 20유로까지 50% 정도 폭락한 탓이다. A380의 인도가 지체된 가장 큰 이유는 설계 오류. 에어버스는 유럽 전역의 16개 지역에서 부품을 나눠 생산한다. 그런데 프랑스와 독일에서 쓴 설계 기준이 서로 달랐다. 두 곳에서 온 부품은 배선이 맞지 않아 조립할 수 없었다. 결국 부품 수정을 위해 A380의 인도는 1년 넘게 늦어졌고, 생산이 본격화된 2010년까지 EADS에 48억유로(약 6조8600억원)의 막대한 손실을 안겼다. 하지만 한쪽은 빠르게 문제를 수정해 피해를 최소화했고, 다른 쪽은 끝까지 문제를 모르다가 심각한 손해를 입었다. 어째서 두 회사의 대응 과정은 이렇게 달랐을까? PTC의 CEO 제임스 헤플만(Heppelmann)은 최근 인터뷰에서 "소비자 요구가 다양해지고 글로벌 아웃소싱을 통해 부품 공급망 관리와 애프터서비스(AS) 등이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회사 내 임직원은 물론 협력사·판매 업체 등과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는 여부가 기업의 사활을 가르는 관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제품 관련 정보를 직원 및 협력사에 한꺼번에 전달해 성공했지만, EADS는 그러지 못해 실패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매출은 12억달러(약 1조3612억원). 세계 시장 점유율 약 30%로 이 분야 세계 1위이다. 뉴욕타임스(NYT)의 자매지인 '보스턴 글로브'가 꼽은 '보스턴 지역 최고 IT 회사'이기도 하다. 이 회사가 PTC에 인수된 후 최고기술책임자(CTO)·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2010년 CEO를 맡았다. 피(被)인수 기업의 창업자가 인수한 기업의 최고 경영자 자리를 꿰찬 것이다. 미국 보스턴 PTC 본사에서 헤플만 CEO를 만났다.
◇"의사소통 비용은 직원 수 제곱에 비례" 의사소통 비용은 직원 수가 아니라 직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이다. 5명짜리 회사에 직원을 2명 추가했다고 가정하자. 보통은 5에서 7로 기존의 40%만큼 의사소통에 시간을 더 들이면 된다고 생각할 거다. 그러나 실제로는 5²(=25)에서 7²(=49)으로 96%나 소통 비용이 늘어난다. 사내 의사소통이 안 되면 기업 경쟁력에 치명타가 생긴다. 에어버스 A380 출시 지연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정보를 효율적으로 공유하느냐에 달렸고, PLM은 이걸 돕는 도구다." 데이터를 한데 모으면 처리가 편해지는 것 이외에 많은 가치가 생긴다. 제품 기획 과정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나는 곳을 찾는다든지, 세계적인 트렌드를 읽는다든지 할 수 있다. 일종의 '빅 데이터 분석'이다. 이를 통해 뛰어난 경영자가 직관(直觀)에 의존해서 파악하던 문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다. 좋은 경영인은 문제가 발생하면 단순히 문제 해결에서 멈추지 않는다. 원인을 추적해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곳까지 추적한다. 하지만 이건 뛰어난 사람이 집중력을 발휘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PLM은 소프트웨어로 이런 훌륭한 경영인을 흉내냈다고 보면 된다." 모든 기업이 이미 각자 회사 문화에 맞춰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나. 하지만 지금 많은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부품을 공급받고 전 세계에 제품을 판다. 자동차 한 대에만 수만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만약 소비자 불만 접수·디자인 개선·부품 호환성 검사·부품 교체 등을 모두 일반 문서로 만든다면, 서로 주고받는 과정에 빠지는 정보가 생길 것이다. 언어 문제로 인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생기고, 꼭 받아야 하는 정보를 못 받는 사람도 발생한다. PLM은 말단 직원에서부터 최고위 임원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구조다. 각자의 위치에 맞춰 필요한 정보를 각자에게 맞는 형태로 보여준다. 이미 전 세계 2만5000여개 기업이 PTC 솔루션을 쓴다. PLM을 쓰는 업체를 모두 더하면 7만개가 넘는다. 규모가 있는 제조업체는 거의 다 PLM을 도입한 셈이다." PLM을 쓰면 사람의 눈과 생각으로는 좇기 어려운 문제를 추적할 수 있다. 예컨대 우리 고객사인 현대자동차가 새로운 엔진을 개발한다고 가정하자. 현대차는 미국·유럽·중국·한국 등 전 세계에 차를 팔기에 세계 각국의 규제를 맞춰야 한다. 여기에 들어갈 부품 역시 각국에서 최고의 품질·최저의 가격으로 구해야 한다. 사람이 이걸 일일이 서류를 뒤져가며 해서는 시간이 너무나 걸린다."
◇"제조는 공공재…출시 기간 단축해 시장 타이밍 맞추는 게 중요" 세계 어디에서 만들어도 크게 품질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 회사가 아무리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도, 순식간에 복제품이 나온다. 이 때문에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출시 기간(time to market)'을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아무리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해도 출시 타이밍을 놓치면 팔 수 없는 구형 제품이 되거나 판매량이 예상보다 훨씬 미미해진다." 공장이 돌아오는 가장 큰 이유는 공장 자동화다. 미국에 컴퓨터로 운영되는 첨단 공장을 설치하면 중국에서 보다 더 싸게 만들 수 있다. 중국 인건비 상승도 이유다. 다른 측면은 품질 관리다. 복잡한 제품일수록 의사결정권자 가까이에 공장을 두는 게 유리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컴퓨터로 디자인한 물건을 입체로 찍어내는 3D프린터와 같은 생산 방식이 주류가 될 수 있다." PLM은 빠르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경영자가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한다. 많은 서류를 일일이 챙겨보고, 정보를 뽑아내는 데 드는 수고를 줄여준다는 것이다. PLM은 하버드경영대학원(HBS)의 마이클 포터(Porter) 교수의 이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우리 이사회 멤버이다. 우리는 포터 교수를 비롯한 많은 경영학자로부터 도움을 받아 제품의 품질 향상에 도움을 주는 전략 기획 과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육아 일기"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모두 힘들어졌다.
얼마 전 두 돌을 맞은 큰 아이는 동생을 못 잡아먹어서 힘들다. 엄마·아빠 사랑을 나눠야 하는 동생이 눈엣가시다. 너무도 미워서, 꼬집고 할퀴고 찌르고 싶은데 엄마·아빠는 못하게 한다. 요령을 부려본다. 엄마·아빠가 경계를 풀 만큼 한껏 웃는 표정으로 다가와, 일단 동생의 이마에 뽀뽀를 한다. 그리고 잽싸게 꼬집거나 할퀴거나 찌르고는 내뺀다. 동생이 생긴 큰 아이의 심리적 부담이 첩을 들이는 본처의 스트레스에 맞먹는다는 세간의 이야기는, 크게 보아 틀리지 않을 성 싶다. 나는 언젠가부터 큰 아이 있는 데선 작은 아이가 예쁘다는 소리도 함부로 못하고 산다. 작은 아이는 할 수 있는 의사표현이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밖에 없어 힘들다. 울음의 뜻은 배고픔, 졸림, 더움, 기저귀의 찝찝함 등 여러 가지 불편함이다. 사실 엄마 뱃속에서 배 밖으로 나오는 과정은 신에서 인간으로 강등되는 ‘일체개고’(一切皆苦: 모든 게 괴로움)라 할 만하다. 엄마 뱃속의 삶은 먹지 않아도 먹을 수 있고, 잠들지 않아도 잘 수 있고, 마렵지 않아도 쌀 수 있는 삶이다. 엄마 배 밖에선 때맞춰 먹어야 하고, 트림해야 하고, 싸야 하고, 자야 한다. 신이 인간이 됐으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아내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 수유 탓에 힘들다. 잠을 못 자니 두 눈이 퀭하다. 신경도 예민하다. 집에 있으며 보며 겪는 이 일 저 일 모두가 성질을 긁는다. 가사도우미나 육아도우미는 성에 차지 않는다. 프리랜서 생활의 요령을 익히면서 회사에선 자유로워졌지만, 머릿속 한편엔 경력 단절의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다. 첫 아이 출산 뒤 원치 않는 퇴사를 했던 트라우마도 생생하다. 잠잘 시간도 없는 지금도, 언제든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기회만 된다면 일하는 게 행복한 사람이다. 일하지 못하는 현실에 스트레스가 쌓인다. 나는 나대로 밖에서 일하느라 힘들다. 늦은 밤 퇴근해 집에 와도 제대로 못 쉬어서 또 힘들다. 그런데 나머지 셋 이야기를 적다보니, 솔직히 그보단 덜 힘들 것 같다. 어쨌든 그래서 넷 다 힘들다. 그러나 행복의 씨앗은 집안 곳곳에서 꽃을 피운다. 아기의 볼살이 오르고, 때마다 황금 똥을 싸고, 새근새근 잠드는 모습을 보며 힘들다는 생각을 잊는다. 일하던 도중에 아내가 두 녀석이 낮잠 자는 모습을 찍어 휴대전화로 보내오면 난 기분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아내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오늘은 아내가 “둘째 자는 모습 보다가 살짝 셋째도 가져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얼마 전 부양가족 셋의 이름이 찍힌 건강보험증이 집으로 왔을 때, 한편으론 부담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 가족이란 뿌듯함이 앞섰다. 동갑내기 한 친구가 직장을 곧 관둘 거란 소식을 들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 남편은 외국에 나가있는 상황에서 회사 생활이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그는 첫 아이가 생긴 뒤 서둘러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은 뒤 육아휴직을 냈다가 복직을 했는데 남편이 외국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남편이 국내에 온 새 둘째가 생겼고, 출산 뒤에는 다시 휴직하고 남편을 따라 외국으로 갔다. 그리고 복직 시점이 되어 결국 그렇게 결론을 내린 것 같다. 누구에게나 힘든 출산·육아 현실을 새삼 깨달으며 생각에 잠긴다. 우리 인생의 봄날은 이렇게 가버리는 걸까. 아니면 같은 자리에 심은 행복의 씨앗이 우리는 몰랐던 꽃을 피우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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