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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12 - 망설이며 주저하며
S#1. 병실(밤)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하다.
그들 틈으로 위세척 중인 영인의 모습이 언뜻 언뜻 보인다.
그것은 지켜보기에 고통스러운 행위다.
S#2. 병원 복도(새벽)
윤수가 의자에 앉아있다.
머리를 벽에 기댄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병실 문이 열리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온다.
윤수, 눈만을 움직여 의사를 바라본다. 그것마저도 힘이 든 듯...
의사의 말소리가 윤수에게는 웅웅거리듯 들린다.
‘방금 깨났습니다. 들어가 보십시오.’
영인의 엄마 아빠가 병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화면 한편으로 보인다.
윤수는 의사가 가버리고도 한참 동안을 움직이지 못하다가 마침내 힘겹게 일어선다.
허적허적 병원을 빠져나간다.
S#3. 은호의 집 거실(아침)
우유를 데우고, 원터치 캔을 따는 은호.
날카로운 단면에 손가락을 벤다.
스윽, 피가 배어 나온다.
은호, 피를 닦을 생각도 못하고 방울 맺히는 피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S#4. 던킨도넛츠(낮)
은호 손가락에 밴드가 붙어있다.
은호, 커피와 도넛츠를 먹고 있다.
(동진) : 축하해. 한턱 쏴라.
동진이 쟁반을 내려놓으며 은호 앞에 앉는다.
동진 : 교수 선생... 이혼하기로 했다며?
은호 : ??
동진 : 어제 전화했던데, 와이프가 이혼해 준다고 했다고.
은호 : 전화를... 했어?
동진. ‘아차’ 싶은걸 숨기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
(윤수) : 지난번에 이동진씨랑 만난 후에 생각이 바뀐 모양입니다.
나 때문에 무릎까지 꿇고 면목이 없었는데... 다 이동진씨 덕분입니다.
동진 : (커피를 삼키며 은호 눈치를 본다) 뭐... 자랑하고 싶었겠지.
은호가 다친 손가락을 세운 채 도넛츠를 먹는다.
그걸 동진이 본다.
동진 : 다쳤어?
은호, 대답 대신 손가락을 본다.
은호 : 살짝 베기만 해도 이렇게 쓰리고 아픈데, 어떻게 죽을 생각을 할까?
동진 : 누구?
은호 : (털어버리듯) ... 그냥 사람들 말이야. 뉴스 같은데 보면,
동진 : (심각할 것 없다) 살기 싫으니까 죽는 거겠지... (말을 바꾼다) 이제 그쪽도 속도 좀 내겠네?
은호 : (복잡한 심경을 숨기며) 그쪽은 어떤데?
동진 : 니네 보조 맞추느라고 제자리걸음 중이었다. 이제 거침없이 달릴 거야.
은호 : 넘어지지나 마.
동진이 헤헤 기분좋게 웃는다.
은호, ‘아이구 좋으셔라’ 웃어주지만 복잡한 심정이다.
동진의 얼굴에서.
S#5. 키스하기 좋은 곳(밤)
커플들이 구석 구석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다.
커플들 중 한명은 어쩐지 긴장해서 눈치를 보고 시계를 본다.
동진과 유경이 걸어온다.
동진도 시계를 흘끔거린다.
유경 : 바쁜일 있어?
동진 : (단호히) 없어.
유경, 벤치에 앉으려는데
동진 : 저쪽으로 가자. (혼잣말처럼) 여긴 사람이 너무 많아.
동진. 좀 으슥한 곳으로 간다. 사람의 시선을 피하듯,
동진. 다시 시계를 본다. 동진은 들떠있다.
9시가 되려면 5초쯤 남았다.
동진. 유경의 어깨를 잡는다.
유경이 동진을 바라본다.
(동진) : 5. 4. 3.2.1.
분수가 솟아오른다. (혹은 조명이 켜지거나 꺼지거나.. 뭔가 환상적인 연출이 이뤄진다)
동진이 유경에게 다가서려는데,
얼핏 유경 너머로 보이는 커플, 막 뽀뽀하고 있다.
때맞춰 흘러나오는 노래. ‘키스미 달링 키스미...’
동진. 주위를 둘러본다. 분수 옆에 있던 커플들... 여기저기 구석구석에서 뽀뽀하고 있다.
유경도 눈치를 챈 듯 주위를 둘러본다.
민망한 듯 헛기침 하는 유경,
동진도 쭈삣대는데.
유경 뒤에 있던 커플 중 남자가 동진에게 슬쩍 말을 건네며 지나간다.
남자 : 지식검색 하셨군요.
동진이 쳐다보자 남자, 씨익 웃으며 사라진다.
S#6. 유경의 집 앞 골목(밤)
동진이 유경을 바래다주는 길이다.
동진, 가끔 유경을 보며 혼자 웃는다.
(동진) : 보수적인 여자라면 공공장소에서의 스킨쉽은 피할 것. 고전적인 장소를 택해라.
S#7. 유경의 집 앞(밤)
(유경) : 다 왔어.
동진이 고개를 든다.
꽃나무.
가로등이 있는 골목길 집 앞.
동진 : (자기도 모르게) 좋네.
유경 : 뭐가?
동진 : 동네가 좋다구.
유경 : 돌아갈려면 피곤하겠다.
(동진) : ‘손을 잡고 시선을 마주친 다음, 벽 쪽으로 민다. 유치할 것 같지만 통한다.’
동진 : 유경아!
동진이 유경의 손을 잡고, 시선을 마주친다.
그 순간.
운동복 차림의 아줌마 세 명이 파워워킹을 하면서 다가온다.
유경 : 왜?
동진 : (아줌마가 빨리 지나가기를 곁눈질하면서) 어... 다음주엔 언제 쉬나 궁금해서?...
유경 : 선생님 하나가 입원하는 바람에 당분간은 못 쉴 거야.
동진 : 그래.
아줌마들이 그들을 지나쳐갔다.
동진 : (다시 은근히 유경을 보면서) 유경아!!
동진이 유경을 벽쪽으로 민다.
유경. 동진을 바라본다.
결정적인 순간.
아줌마들 홱 돌아서더니 뒤로 걷기 시작한다.
앞뒤로 박수까지 치면서...
뻘쭘해진 동진.
동진 : (샛된 목소리로) 갈게.
유경 : (역시 민망하다) 잘가.
동진. 웃으며 돌아서지만,
돌아서자마자, 얼굴이 축 처진다.
뒤로 걷던 아줌마들을 괜히 한번 째려본다.
S#8. 유경의 집 대문 안(밤)
문을 잠그는 유경.
문에 기대선다.
문득 한숨을 쉰다. 안도의 한숨과도 같은...
S#9. 병원 복도(낮)
지호가 책이 실린 카트를 밀며 걸어온다.
지호 뒤에서
자원봉사자 아줌마1(그는 전에 준표의 대고백을 들어버린 인물 중 하나다)와 간호사들이 숙덕거리고 있다.
지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지호, 아무것도 모른 채 모퉁이를 돈다.
S#10. 병원 휴게실(낮)
자원봉사자 아줌마2(그녀 역시 준표의 대고백 때 있었던 인물이다)가
아줌마 환자들을 대상으로 소문 전파중이다.
자.봉아줌마2 : 들어오자마자 고백을 시작하는데... ‘넌 나한테 여자다’ 듣고 있는 내가 다 짜릿짜릿하더래니깐.
환자1 : 의사 선생 누구?
자.봉아줌마2 : 자긴 모를 거야. 산부인과 의사 중에 그 안경 끼고...
(지호) : 산부인과요? 누구요?
지호가 아줌마2 뒤에서 얼굴을 쏙 내민다.
식겁하는 아줌마.
환자들 슬금슬금 물러선다.
자.봉아줌마2 : 아우... 벌써 시간이.... 가봐야겠다.
지호 : (시계 보면서) 아직 점심시간 안 끝났는데요....
의아한 지호를 두고 우르르 빠져버리는 아줌마들,
가면서도 지호를 흘깃거린다.
지호. 왜 저러나 싶다.
S#11. 진료실(저녁)
준표. ‘사랑의 고백’을 위한 문구를 작성 중이다.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더 이상 니가 여동생으로 보이지 않는다’ 등등의 말들이 적혀있다.
한참 고민하다가 뭔가를 썼다가... 생각해보고 지우고, 다시 쓴다.
준표 : (쓰면서 중얼거리는) 이제부터 나는 너한테 남자이고 싶다.
자기가 생각해놓고 혼자 수줍어 히히힉 웃는 준표.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린다.
준표. 자기도 모르게 메모지를 화악 구긴다.
지호 : (들어오면서) 닥터공!
준표 : 노크 모르냐?
지호. 열린 문을 노크한 뒤 문을 닫는다.
준표 : 왜?
지호 : 혹시 소문 들은 거 없어요?
준표 : (찔린다) 소...문?
지호 : (신났다) 모르는구나? 병원에 소문이 쫙 퍼졌는데...
어떤 의사가 아르바이트하는 여자애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대요.
준표 : (허걱) 의...사.... 누구?
지호 : 듣고 놀라지 말아요. 산부인과 의사래요. 누구지...? 이 병원에 산부인과 의사가 모두 몇 명이죠?
준표 : ....레지던트까지 9명.
지호 : 9명이라... (준표를 홱 돌아보며) 닥터공....?
준표 : (찔끔한다)
지호 : ...일리는 없고, 8명 중에 하난데... 누굴까? 부장 선생이면 완전 불륜?
호기심에 눈이 반짝이는 지호를 보며
준표 : 재밌냐?
지호 : 당연하죠. 다른 사람 뒷얘기가 얼마나 재밌는데... 누군지 알면 엄청 놀려줄 텐데...
준표. 구겨진 메모지를 조심스럽게 쓰레기통에 집어넣는다.
지호 : 닥터공!!
준표 : (찔끔해서) 왜에?
지호 : (이 사람이 왜 이러나 보다가) ....정보공유! 알죠? 그 의사가 누군지 알면 바로 알려줘야 돼요?
나도 그 여자애가 누군지 아는 대로 알려줄 테니까... 알았죠?
준표 : ...
지호 : 왜 대답을 안 해요?
준표 : 알았어.
지호 : 삭막하고 건조한 알바 생활에 스캔들이란 단비가 내린 거죠.
짝짓기의 계절은 돌아오고... 스캔들과 가십은 넘쳐흐르리...
지호. 신나하며 나간다.
준표. 쓰레기통에 버렸던 메모지를 꺼낸다.
손바닥으로 판판하게 편다.
S#12. 빌라 앞(저녁)
지호가 만화책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건방진 천사1’권을 읽으면서 걸어온다.
한손으로는 천하장사 소세지를 먹으면서...
늘 오던 길이 아니라 샛길 쪽이다.
가끔 키득 키득 혼자 웃기도 한다.
다 먹은 천하장사 쏘세지 쓰레기를 버리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지호,
눈에 익은 차를 발견한다. 윤수의 차다.
눈을 감은 채 운전석에 깊숙이 앉아있는 윤수.
지호, 못 본 척 재빨리 걸어간다.
S#13. 윤수의 차 안(저녁-밤)
아주 우울한 음악이 흐른다.(파두 느낌의...)
윤수의 초췌해 보인다. 수염도 깍지 않고, 머리도 더부룩하고,
미간의 주름이 깊다. 입 꼬리에 터졌다가 굳은 상처도 보인다.
꼼짝 않고 눈을 감고 있는 윤수의 얼굴 위로 밤이 온다.
깜깜해진 차창 밖.
저 멀리 은호가 빌라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인다.
S#14. 은호의 집 거실(밤)
지호가 ‘건방진 천사’7권을 읽고 있다.
문소리. 은호가 들어온다.
지호 : (6권을 다 읽고 7권을 찾아들며) 왔어? (하다가) ....오다가 별일 없었어?
은호 : 무슨 일?
지호 : 아니야...
은호, 방 안으로 들어간다.
지호가 베란다로 나간다.
S#15. 베란다(밤)
지호가 주차장 쪽을 내려다본다.
윤수의 차는 아직도 거기 있다.
지호, ‘곤란하다’....라고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긁적 인다.
등 뒤. 거실 방에서 나온 은호가 베란다 쪽으로 나오려고 한다.
지호 : (놀라 막아서듯이) 왜?
은호 : ...? 빨래 걷어야지.
지호 : 내가 할게, 언니는 앉아있어. 쉬어. 그러다 병난다.
은호. 얘가 왜 이러나 싶다.
지호. 빨래를 걷기 시작한다.
S#16. 은호네 집 거실(밤)
빨래를 개는 은호와 지호,
은호는 꼼꼼하고 판판하게 빨래를 만져가며 개키는데
지호는 대충 대충이다.
지호가 개놓은 걸 은호가 다시 개기도 한다.
지호, 자꾸만 은호 눈치를 보다가 눈이 마주친다.
은호 : (빨래 개면서) 이번엔 뭐냐?
지호 : 응?
은호 : 음란 사이트 돌아다니다가 컴퓨터 다운됐냐?
지호 : (말도 안 된다는 듯) 언니는 참.. 날 뭘로 보고... 내가 같은 실수를 두 번 할 사람이야?
은호 : (아닌가 하다가 갑자기) ....너 그거 샀구나? 초능력 증진 세트. 안 된다고 했지. 내가.
지호 : 안 샀어. 드럽고 치사해서 나중에 독립하면 꼭 살 거야. 기필코.
은호 : ...그럼 뭐? 뭔데 아까부터 자꾸 흘끔거려.
지호 : ............................................................언니!
은호 : 말해라.
지호 : 로미오와 줄리엣이 왜 미친 듯이 사랑했는지 알아?
은호 : (힐끔 본다) ...?
지호 : 가문의 원한이라는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야. 그거 없었으며 얘네 6개월도 못 갔어.
중간에 싫증나서 싸우고 찢어졌을걸.
은호 : 뭔 소리가 하고 싶은 거야?
지호 : 이몽룡과 성춘향. 얘네만 해도 그래. 신분의 장벽에다가 변학도라는 안티세력이 있어줬으니까
죽을 둥 살 둥 결혼까지 골인한 거라구.
은호 : 그래서?
지호 : 그러니까 내 얘기는... 누굴 좋아한다는 감정이 그게...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환상 같은..... 100퍼센트 진짜다.... 이런게 아니그.... (빨래를 집어던지며) 에이... 오늘 참 말 안 되네.
은호 : 양말 짝이나 맞춰.
지호, 양말 짝을 맞추다가 그것도 툭 집어던진다.
은호 쳐다보면,
지호 : (은호가 개킨 옷을 들고 일어난다) 난 일제시대 때 태어났다면 독립운동은 못했을 거야. 입이 가벼워서.
은호 : ....?
지호 : (방으로 들어가며) 집 앞에 교수님 와 있어.
은호, 잠깐 못 알아듣는다.
S#17. 빌라 앞 주차장(밤)
빌라에서 나온 은호, 두리번거린다.
구석진 곳에서 윤수의 차를 발견한다.
S#18. 윤수의 차 안(밤)
윤수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은호가 다가온다.
윤수의 시선이 은호에게로 향한다.
차창을 사이에 두고 윤수와 은호의 시선이 부딪친다.
S#19. 거리(밤)
윤수의 차가 달린다.
S#20. 윤수의 차 안(밤)
윤수는 말없이 운전 중이고.
조수석에 앉은 은호가 윤수를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다.
S#21. 인적 없는 국도(밤)
윤수의 차가 비상등을 켜며 갓길 주차를 한다.
S#22. 윤수의 차 안(밤)
윤수가 사이트 브레이크를 채운다.
은호가 이곳이 어딘가 둘러본다.
어둠뿐... 시골 어디의 국도 같다.
윤수 : (정면의 어둠을 바라본 채로) 어렸을 때 아버지가 참새를 잡아온 적이 있어요.
장마철이라 비가 많이 와서 새가 비닐하우스로 날라들었나 봐요.
발목에다가 실을 묶어서 갖고 놀았는데, 하루 종일 방안을 뱅뱅 돌면서 파닥거렸죠.
안됐다는 생각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만 놓아주지도 않았어요. 내 거였으니까.
지금 내가 그 새 같습니다.
은호 : ....
윤수 : 악마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때 그 메시지를 무시했다면... 그때 영인이한테 가지 않았더라면...
(토해내듯) 내가 이렇게 가증스럽습니다.
은호 : 진심으로 하는 생각이 아니잖아요.
윤수 : 그래도 내가 한 생각인 건 맞죠.
오늘만 해도, 은호씨 데리고 어디 먼 데로 도망가 버릴까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
........오는 내내 신호 지키고, 좌회전 우회전 깜박이 넣고....
윤수, 자조적으로 웃는다.
윤수 : 나는 도망갈 위인도 못 됩니다...........돌아가죠.
윤수가 브레이크를 풀른다.
S#23. 인적 없는 국도(밤)
윤수의 차가 크게 유턴한다.
왔던 길을 돌아간다.
S#24. 궁중요리 전수관 휴게실(저녁)
유경이 생각 많은 얼굴로 갈아입은 옷의 단추를 채우고 있다.
숙정이 들어온다.
숙정 : (앞치마를 벗으면서) 데이트?
유경 : (그렇다는 듯 웃는다)
숙정 : 얘기했어?
유경 : ...
숙정 : 말 안 할 거야?
유경 :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숙정 : 그래도 사귀는 건 맞잖아. 말해.
유경 : ...아직 그 정도 사이는 아니야.
숙정 : 어느 정도 사인데...?
유경 : ...
슉정 : 그 남자 마음을 모르겠는 거야? 당신 마음을 모르겠다는 거야?
우경 : ....둘 다. 먼저 간다.
숙정 : (나가는 유경을 보며) 복 받은 것. 난 언제 저런 고민을 해보나....
숙정,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S#25. 극장 앞(밤)
20대 여자도 30대 남자도, 고등학생 세 명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곳,
동진이 유경을 기다리고 있다.
멀리서 유경이 다가온다.
동진이 슬쩍 몸을 숨긴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는 유경을 훔쳐볼 생각이다.
방금 전 동진이 있던 자리까지 온 유경, 동진이 앉았던 자리에 앉는다.
바로 등 뒤에서 유경을 돌아보는 동진.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놀래킬려고 다가가는데,
순간, 유경이 조용히 한숨을 쉰다.
타이밍을 놓치는 동진.
유경이 무심코 돌아본다.
유경 : (환하게 웃으며) 언제 왔어?
동진 : (뻘쭘하기도 하고) 어?....어
유경 : (일어나면서) 가자...
동진, 극장 안으로 들어가며 유경을 다시 한번 바라본다.
S#26. 극장(밤)
심야극장,
커플들이 십여 명, 몇 안 되는 커플들이 깔깔거리며 웃는다.
유경도 웃는다.
동진만이 건성으로 웃으며 유경을 바라본다.
유경, 시선은 스크린에 둔 채 동진의 얼굴을 부드럽게 민다. ‘나는 그만 보고 영화나 보라는 듯’
동진, 좀 전 유경의 한숨이 신경 쓰인다.
S#27. 동진의 빌라 앞(밤)
유경의 차가 멈춘다.
조수석의 동진은 약간 화난 듯 보인다.
유경이 동진을 바라본다.
동진. 실내등을 켜고, 신발을 벗고, 양말을 주섬주섬 벗기 시작한다.
동진. 발을 들어 발등을 보여준다.
5센티 정도의 흉터가 나 있다.
동진 : 보여?
유경 : 어....
동진 : (심호흡하며) 이제부터 대고백을 할 거니까.... 잘 들어줘.
유경 : (동진의 의도를 몰라 당황스럽다) ...
동진 : 이 흉터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생긴 거야. 야간자습하고 집에 가다가 동네 깡패 세 명이랑 싸웠을 때...
유경 : ...그런데?
동진 : ...이게 공식 발표구, 진실은 그 너머에 있어.
유경 : ...
동진 : (정말 하기 싫은 말을 하듯이)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엄마 아빠도 몰라.
준표도 몰라, 너한테만 하는 얘기야.
유경 : ...
동진 : 그 삥 뜯던 깡패 세 명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외면하면서 마침내) ....초딩이었어.
유경 : (빤히 쳐다본다) ...
동진 : (변명처럼) 그치만 애들이 발육 상태가 좋아서 키도 크고.. 분명히 씨름부였을 거야.
신발주머니 안 들었으면 초딩인 줄 아무도 몰라. 절대 몰라.
문득 유경의 시선을 느끼고,
동진. 다시 진정한다.
동진 : 그때 그놈들 중 한 놈이 팽이를 던졌는데 발등 위를 찍고 지나갔어, 말하자면 연장을 사용한거지.
암튼 피가 엄청났어, 열두 바늘 꼬메고, 그 다음날 결석 하고, (스스로 납득한다) 그런 거야.
동진, 큰 짐을 벗은 듯 깊은 숨을 내쉬고 주섬주섬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는다.
유경, 아직도 동진의 의도를 몰라 의아하다.
동진. 실내등을 끈다.
동진 : (유경을 똑바로 보며) 자, 니 차례야. 너 나한테 비밀로 하는 거 있지?
유경 : ....
동진 : 초딩들한테 맞고 돈 뺏기고, 입원했던 것보다 더 창피한 일이야?
유경. 픽 웃는다.
동진 : 웃지 말고.
유경 : ...
동진 : 유경아.
유경 : (동진을 향해 웃는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런 거 없어.
동진 : 진짜야?
유경 : 응. 늦었어.
S#28, 빌라 앞(밤)
동진이 내린다.
유경의 차가 멀어진다.
그러나 동진. 아직도 석연찮다.
S#29, 던킨도넛츠 야외 테라스(낮)
은호가 통화 중이다.
기계음....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은호, 전화를 끊고 다른 곳으로 전화한다.
S#30. 조교실(낮)
지난번에 나왔던 로맨틱한 조교가 전화를 받고 있다.
조교 : 글쎄요. 이번 주 강의는 모두 휴강처리 됐거든요. 누구시라고 전해드릴까요?
S#31. 던킨도넛츠 야외 테라스(낮)
은호 : (핸드폰에 대고) 다음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예..
은호가 전화를 끊는다.
동진이 은호 앞에 앉는다.
동진도 은호도 둘 다 말없이 한숨을 쉰다.
동진이 은호를 흘깃 쳐다본다.
은호가 주위를 둘러본다.
주위엔 온통 커플들,
고등학생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20대도....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은호 : 남들 하는 거 보면 참 쉬운데....
동진 : 도대체 뭐가 문제인거야.
은호 : ...??
동진 : 문제가 있으면 말을 해야 알 거 아냐?
은호 : (자기 얘기를 하는 건가) 뭐.....를??
동진 : 유경이 말이야.
은호, 조금 실망스럽다.
은호 :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면서) 왜 유경씨하고 잘 안돼?
동진 : 잘 안 된다기 보다 고민이 있는 거 같은데 말을 안 해.
은호 : 고민이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동진 : 보면 알지. 그걸 모르냐?
은호 : (좀 열 받았다) 그렇게 잘 알어.... 그냥 척 보면 알어? 정유경 한정 독심술이냐?
동진 : 왜 열 받고 그래?
은호 : ....연애하는 외동아들 바라보는 과부 엄마의 심정이 이런 건가 싶어서.
동진 : 뭐?
은호 : 오자마자 유경이, 유경이...
동진 : 외동딸 시집보내는 홀아버지의 심정으로 들어줄 테니까 그쪽 문제도 상의해.
은호 : 됐어.
동진 : 넌 그게 문제야. 가끔 수다 좀 떨어줘, 그래야 실감이 나지. 너나 나나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은호, 동진을 본다.
불쑥 진심을 말해버린 동진. 겸연쩍어서 다른 데를 본다.
동진 : (혼잣말처럼) 내가 싫어진 걸까?
은호 : 빙고!!
동진 : 여자들은 안 그러냐? 고민 있으면 좋아하는 남자한테 말하고 싶어지지 않어?
은호, 동진을 또다시 물끄러미 바라본다.
동진 : (대답을 재촉하듯) 응? 말해봐,
은호 : (시선을 돌리며 자기 얘기하듯)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란 것도 있으니까...
동진 : (딱히 확신을 갖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게 어딨어.
S#32. 거리(낮)
은호와 동진이 도넛츠 가게에서 나온다.
동진 : (돌아서면서) 가라.
은호 : (돌아서는 동진을 불러 세운다) 어이.
동진 : (돌아본다) ...
은호 : 좀 기다려봐,
동진 : 뭘?
은호 : 유경씨 문제 말이야. 자신을 가져,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괜찮은 남자니까.
동진 : 너 열 있냐?
은호 : (엄지와 검지로 5센티 가량 만들어 보이면서) 그래봤자 이 정도지만.
동진 : 잘 봐, 그거보단 더 될걸.
은호 : (1센티 가량으로 줄이면서) 엄밀히 말하면 이 정돈가....
키득키득 웃으며 돌아서는 은호.
동진도 돌아선다.
한참 가다가 은호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동진이 점점 멀어진다.
사람들은 은호를 앞서가고, 스쳐가기도 하는데,
은호는 동진이 사라지는걸 보고 있다. 상실감이 밀려든다.
동진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은호, 한숨을 쉬며 돌아선다.
은호가 걷기 시작한다.
S#33. 병실 앞(밤)
앞의 씬 그 얼굴 그대로 은호가 복도를 걸어온다.
병실 앞에 멈춘다.
문을 노크하려다가 말고, 노크하려다가 말고..
은호, 들고 있는 꽃다발을 바라본다.
자기 행동이 우스워서 은호, 피식 웃는다.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눈 앞에 환자복 차림의 영인이 서 있다.
은호 움찔한다.
영인. 은호가 들고 있는 꽃을 받아든다.
영인 : 나 줄려고 갖고 온 거예요? (향기 맡으며) 자살미수를 축하한다, 그건 가요?
영인이 웃는다.
은호. 외면한다.
S#34. 병원 정원(밤)
장미가 피어있을까? 5월의 정원에는....
영인이 먼저 벤치에 앉는다.
은호, 벤치 끝에 앉는다. 거리를 두듯.
영인 : (한쪽 다리를 의자에 올리고 앉아 은호 쪽을 향하면서)
내가 어떤 꼴로 누워있나 구경하러 올만한 배짱은 아닌 거 같고... 왜 왔어요?
은호 : (한숨쉬듯) 그냥.... 나 땜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건가 싶기도 하고...
영인 : 착한 여자 콤플렉스라도 있는 거예요? 당신 때문이라면 정윤수한테서 떨어질래요?
은호 : (맞받아치듯) 그 정도 중증은 아니에요.
잠시 말이 없다.
은호 : (무상하게) 왜 죽을려고 했어요?
영인 : (쏘듯이 은호를 본다)....
은호 : 사실은 그게 궁금했어요. 왜 죽으려고 했을까? 죽을 만큼 미운 걸까? 죽을 만큼 좋은 걸까?
영인, 허공을 노려보다가...
영인 : 사람의 감정이 하나면 얼마나 쉬울까? 밉거나... 좋거나, (피식 웃으며 은호를 본다)
안 알려줄 거예요. 당신은 평생 가도 이런 감정 이해 못 할 걸.
은호 : (무심히) 아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에요.
영인 : ...
은호 : 상실감 때문이죠? 한때는 나만 걱정하고, 나만 바라보고, 나만 생각하던 내 것이었던 사람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됐을 때의 상실감. (영인을 보면서) 맞죠?
영인 : ....
은호 : 죽고 싶을 만큼 상실감이 컸던 거예요?
감정을 들켜버린 영인. 당황한다.
은호 : 아직도 좋아하는 거죠?
영인 : (평소대로 돌아온다) 나도 하나만 물어볼게요.
은호씨한테 상실감을 안겨준 남자는 누구예요? 정윤수는 아닐 테고...
이번엔 은호가 외면한다.
영인 : 지난번 이동진씨 만났을 때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죠. 당신들, 뭐예요?
은호 : 우리는...... 단순한 미련이에요. 그것도 곧 없어질 거예요.
영인 : 헤어진 부인을 위해서 무릎 꿇을 정도로 단순한 미련?
은호, 영인을 노려본다.
영인 : 동병상련이라고.... 동질감을 느껴서 찾아온 거예요?
은호 : ...
영인 : 난 당신처럼 내숭 떨고 위선적이진 않아.
은호 : (발끈한다) 나도 당신처럼 배배꼬여서 다른 사람 상처주진 않아요.
(소리) : 영인아!!
돌아보면, 무섭게 생긴 60대 후반의 여자가 방금 소리 지른 은호를 위아래로 훑으며 다가온다.
영인엄마 : 한참 찾았잖니. (은호를 보며) 누구? 친구냐?
영인 : (은호를 슬쩍 바라보며 냉정하게) 친구 아니야.
은호, 위협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한발 물러선다.
영인엄마, 은호를 다시 쳐다본다.
영인엄마 : 그럼 누구?
영인 : (신경질적으로) 있어. 아는 사람. (은호에게) 그만 가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위협하듯 빙글거리면서) 아니면 하던 얘기 계속할까요?
은호 : (영인 엄마 눈치 보면서) ....가볼게요.
은호, 영인 엄마에게 꾸벅 인사하고 자리를 뜬다.
은호, 걷는데 조금 있다가 뒤에서
(영인엄마) : (다급하게) 영인아!!
은호, 돌아본다.
영인이 휘청하는 걸 영인 엄마가 붙잡아 벤치에 앉힌다.
영인 엄마가 호들갑스럽게 사람을 부르려는 걸 영인이 말린다.
은호, 어떡할까 주춤하는데 영인과 시선이 마주친다.
영인의 표정, 복잡하다. 자기모멸.. 분노.... 회한.
영인, 은호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은호, 떠밀리듯 자리를 뜬다.
은호,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지만 영인은 이미 다른 곳을 보고 있다.
S#35. 숲 화장실(밤)
오줌 누는 남자의 등 뒤에서...
(준표) : 오랫동안 생각해봤다. 넌 나한테 이미 여자다.
남자, 뭔가 돌아본다.
준표와 시선이 마주친다.
준표 : (남자를 보듯 그 너머를 보며) 나도 너한테 남자이고 싶다.
오줌 누는 남자. 움찔한다.
흘렸다.
한동안 그 표정 그대로 있다가 준표, 갸우뚱하더니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확인한다.
준표 : (수험생처럼 중얼대는) 너는 나한테 더 이상 여동생이 아니다. 너는 이미 여자다. 여자다...
심호흡을 크게, 크게 하고 나가는 준표.
오줌 누던 남자.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손에 묻은 물기를 발견하고 털어낸다.
S#36. 숲(밤)
늘 그렇듯 양반다리로 의자 위에 앉아 안주를 죽이고 있는 지호.
준표, 결의에 찬 표정으로 지호 앞에 앉는다.
준표. 다시 한번 숨을 크게 쉰다.
준표 : 지호야.
지호 : (그제서야 준표가 돌아온 걸 확인하고) 닥터공, 좋은 약 소개해줄게요.
내가 가끔 먹는 변비약인데요. 생약성분이어서 몸에 부담도 없구,
준표 : 변비약? 나 변비 없어.
지호 : 변비는 부끄러운 병이 아니에요.
준표 : 내가 장운동이 얼마나 활발한데.
지호 : 근데 뭐 이렇게 오래 있었어요?
우물거리는 준표.
지호, 또다시 안주를 축내며 주변에 관심을 돌린다.
준표 : 지호야.
지호 : (평소처럼) 넵!!
준표 : 지금부터 하는 말 잘 들어라.
지호 : (딴 데 보면서) 말씀하세요.
준표 : 좀 집중해라.
지호가 준표를 똑바로 쳐다본다.
지호 : 하세요.
준표 : (다시 타자박스에 선 심정이다) 오랫동안 생각해봤다.
내가 이런 말 쉽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 너도 알거야.
(다시 한번 심호흡한다) 나는 더 이상 니가 여동생으로...
그 순간, 울려 퍼지는 ‘컨그래츄레이션...’ 생일축하음악.
바로 옆 테이블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예닐곱 무리가 박수치며 환호하고,
폭죽을 터트리고, 촛불 켜진 케익 입장한다.
준표의 ‘여동생으로 안 보이다’라는 말 소음에 묻힌다.
더구나, 지호, 옆 테이블보다 더 크게 박수치고, 열띠게 호응한다.
‘오호...’ 환호하면서...
준표. 제일 신나하는 지호를 어처구니없이 쳐다본다.
음악 끝나자마자.
준표 : 뭐가 그렇게 좋으냐?
지호 : (신나하며 벗어놓은 신발 신는다) 케익 얻어 올게요.
(점프)
얻어온 조각 케익을 먹는 지호.
지호 : 아까 하려던 얘기 뭐예요?
준표 : (케익 먹는 지호를 한심해서 쳐다본다) ....
지호 : 오랫동안 뭘 생각했던 거예요?
준표 : (삐졌다) 안 해, 안 해, 됐어.
지호. 삐진 준표를 물끄러미 보다가
케익을 준표의 입에 넣어준다.
얼떨결에 받아먹는 준표.
지호 :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말을 하지...
입가에 묻은 크림을 핥아먹으며 지호를 보는 준표.
지호 : 더 줘요? 더는 안돼요.
지호. 케익을 숨기듯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
S#37.은호의 집 거실(밤)
은호 : (핸드폰에 대고) 어디 계신 거예요? 메시지 들으면 간단하게라도 좋으니까 연락 좀 주세요.
지호가 들어온다.
은호가 메시지를 저장한다.
지호 : 누구?
은호 : 아니야.
지호 : (은호를 물끄러미 보다가 방으로 들어가며) 왜 그렇게들 복잡하게 사시는 건지...
은호 : (지호가 사라진 문을 보다가 혼잣말한다) 그러게 말이다.
S#38. 병실(밤)
불 꺼진 병실.
침대위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영인.
(F.O)
S#39. 강둑(낮)
평화로운 풍경을 강둑에 앉은 윤수가 바라본다.
책갈피 속에 읽던 페이지를 표시하기 위해 손가락을 끼워 둔 채.
수염을 안 깎아 까칠하고, 머리는 부스스하고, 초췌하다.
늘 양복차림의 젠틀하던 모습이 아니다.
윤수의 얼굴 위로 그늘이 진다
윤수가 눈을 들어 그늘의 임자를 쳐다본다.
검은 옷차림의 영인이다.
윤수 옆에 서서 영인이가 강을 본다.
영인 : 정말 여기서 죽을 뻔 했어? 무릎까지밖에 안 되는데...
윤수 : 잘도 찾아내는군...
영인 : 그냥 여기 있을 줄 알았어. 처음에 우리 별거 시작했을 때도 여기 있었잖어.
(문득 자조적으로 웃는다) 내가 또 뒤를 밟았을까봐?
윤수 : ...왜 왔어?
영인 : 당신이랑 갈 데가 있어.
윤수가 영인을 올려다본다. 윤수, 좋다 싫다 대답하지 않는다.
영인 : (먼데를 보며) 당신이 좋아할만한 데야.
S#40. 도로(낮)
영인의 차가 달린다.
S#41. 영인의 차(낮)
윤수와 영인 둘 다 말이 없다.
둘 다 정면만 바라본다.
S#42. 주차장(낮)
영인의 차가 도착한다.
윤수가 먼저 내린다.
이 곳이 어딘가를 확인하고(아직 우리는 이 곳이 어딘가 모른다) 영인을 바라본다.
차에서 내리는 영인. 윤수의 시선에 답하듯이,
영인 : 당신이 좋아할만한 곳이라고 했잖아.
윤수 : 무슨 속셈이야?
영인 : (앞서 걷는다) 그런 거 없어. 그냥 지쳤을 뿐이야.
영인이 앞서 걷다가 어지러운 듯 휘청인다.
윤수가 반사적으로 영인을 잡아준다.
영인. 자기를 잡은 윤수의 손을 바라본다.
영인 : (혼잣말처럼) 끝까지 친절하네.
윤수가 손을 뗀다.
영인이 다시 걷는다.
윤수와 영인이 들어가는 곳, 그제서야 보인다.
가정법원이다.
S#43. 공원(저녁)
봄 저녁의 공원을 즐기는 사람들...
은호가 사람을 찾으며 걸어온다.
은호가 걸음을 멈춘다.
여전히 초췌한 모습의 윤수가 무방비한 상태로 벤치에 앉아있다.
은호가 다가온다.
윤수가 은호를 바라본다. 눈부신 듯 찡그리며 웃는다.
은호가 윤수 옆에 앉는다.
은호 : 걱정했어요.
윤수, 자기 손을 바라본다.
은호 : 어디 있었어요?
윤수 : 그냥...
은호 : 별일 없었죠?
윤수 : ....방금, 이혼했어요.
은호, 놀란다.
윤수, 자기 손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는다.
윤수 : 기분이 참.... 묘하네요.
은호 : 교수님...
윤수 :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너무 오래 묶여있어서 그럴 거예요. 이제 곧 실감나겠죠. 그럼 괜찮아질 겁니다.
윤수, 은호를 본다.
문득 자기 얼굴을 쓸어보고 자기 모습을 내려다본다. 겸연쩍게 웃는다.
S#44. 헬스룸(저녁)
정우성이 근육운동 중이다.
윤희가 옆에서 코치한다.
윤희 : (상냥하게) 허리 펴시구요. 마지막 순간에 비틀듯이.... 네....
정우성은 윤희의 갑작스런 친절이 부담스럽고 의아해서 쭈삣댄다.
은호가 들어오다가 그들을 본다.
윤희가 정우성의 어깨를 툭 치며 웃는다. 그건 분명 ‘꼬시는 웃음’이다.
S#45. 휴게실(저녁)
윤희가 헬스룸에서 나온다.
그 앞에 음료수가 디밀어진다. 은호가 윤희에게 음료수를 건넨다.
윤희 : (일단 받으면서) 땡큐!!
은호 : 열심히 하대. 맘 잡았어?
윤희 : 정우성씨 말이에요. 펀드 매니저라는 거 알고 있었어요?
은호 : 아니...
윤희 : 처음에 왔을 땐 씨름 선순 줄 알았는데... 볼수록 멋있는 거 있죠.
은호 : ....펀드 매니저라서?
윤희 : 네.
은호 : 자긴 참 솔직해.
윤희 : 그게 내 장점이죠. (문득) 내가 찍은 거예요. 내가 꼬실 거예요.
은호, 서류를 탁 접으면서...
은호 : (상담조로) 윤희씨는....
윤희 : 네.
은호 : 누구를.... 그러니까 남자를 좋아한다, 감정이 명확해?
윤희 : 무슨 말이에요?
은호 : 관심이 있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이게 조금씩 다르지 않나 싶어서...
윤희 : 팀장님 얘기예요?
은호 : 아아니...
윤희 : 나 같은 경우는.... 어떤 남자를 이성적으로 좋아한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어요.
상상이 되나 안 되나...
은호 : 어떤 상상?
윤희 : 그 남자에게 안겨있는 상상.
은호 : ....포옹?
윤희 : 중학생이에요. 침대에서....
뒤에서 들리는 큭하는 소리.
음료를 마시던 남자가 사레들려서 괴로워한다. 눈물까지 흘리면서...
뻘쭘한 은호,
왜 그러나 싶은 윤희.
S#46. 스포츠센터 사무실(밤)
팔짱 낀 은호,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상상 중이다.
곤란한 것을 상상하듯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다가.
민망한 듯 이마를 긁적였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는 듯 깊은 숨을 내쉬며 눈을 뜬다.
뭘 상상했는지 땀까지 났다. 물을 마시는데
노크소리.
은호 : 네...
문이 열리고 영인이 들어온다.
물먹던 은호, 딸꾹질이 난다.
영인. 물끄러미 바라본다.
간간히 딸꾹질하는 은호.
은호 : (겨우 진정하면서) 웬....일이세요?
영인 : (천천히 의자에 앉으면서) 나도 물 한 잔만 줄래요.
은호, 물을 따르려는데...
영인 : 따뜻한 걸로 주세요.
은호, 영인에게 등을 돌린 채 물을 받으며 입으로만 꿍시렁댄다.
은호. 영인에게 물을 건넨다.
영인. 물을 조금씩 조금씩 나눠서 마신다.
어쩐지 약해보이는 영인을 은호 물끄러미 바라본다.
영인 : 그런 눈으로 보는 건 익숙지 않네요. 불쌍해요?
은호, 시선을 돌린다.
영인 : 정윤수.... 만났어요?
은호 : ....
영인 : (그렇구나 싶은 웃음) 맞아요. 오늘 법원에 가서 이혼서류 접수하고, 끝냈어요. 기분이 어때요?
은호 : ....
영인 : 전에 이동진씨가 그러더군요. 당신이라면 정윤수 그 남자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맞나요?
은호 : ....
영인 : 당신이라면 정윤수 그 남자 옆에서 행복할 거라고, 맞아요?
은호 : 그래서요?
영인 : (편지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두 사람 행복해지라구요.
은호가 편지봉투를 열어본다.
영인 : (그동안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혼해봤으니까 알죠. 구청에 내기만 하면 돼요. 아주 간단한 일이죠.
은호가 봉투속의 서류를 확인한다.
‘이혼확인서’다.
영인은 이미 나가고 있다.
은호가 쫓아나간다.
S#47. 스포츠센터 엘리베이터 앞(밤)
막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영인을 은호가 잡는다.
은호 : 잠깐만요.
영인, 은호를 돌아본다.
은호 : 이걸 왜 나한테 줘요? 가져가요.
은호가 서류봉투를 내밀지만 영인 받지 않는다.
영인 : 두 사람 행복해지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아요?
은호 : 그런 억지가 어딨어요? 나는 이런 거 받을 수 없어요.
영인 : (은호를 똑바로 바라본다) 망설이고 주저하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닌 것 같은데.... 아닌가요?
은호 : (주춤한다) ....
영인 : (이혼확인서가 든 편지봉투를 내려다보며) 그건 내가 정윤수한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해두죠.
은호씨 마음을 증명해봐요. 은호씨만 결심하면 우리 세 사람....
아니 이동진씨까지 네 사람이 출발할 수 있어요.
그 사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안에서 내리는 아줌마 회원들. 은호에게 호들갑스럽게 인사한다.
영인 : (은호에게서 팔을 빼면서) 그럼...
아줌마들 잠깐 영인을 봤다가 은호에게 몰려든다.
은호.... 영인을 잡으려고 해보지만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인다.
아줌마 : 저기 우리끼리 얘기한 건데 들어봐, 가족대항 릴레이 수영대회 하면 어떨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영인이 은호를 향해 슬쩍 웃는다.
냉소적인 웃음은 아니다. 이해를 바라는 듯한, 쓸쓸한 웃음이다.
S#48. 병원 주차장(저녁)
준표가 전화하면서 차있는 곳으로 간다.
준표 : 야, 자식아. 그럼 유경이가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 집에 와서 죽 끓여주고 그랬단 말이냐?
유경이 성격을 몰라?.... 최근에 뭐? 이것이 복에 겨워서... (듣다가) 몰라, 암튼 가고 있으니까 기다려.
S#49. 병원 앞 길(저녁)
주차장에서 빠져나오는 준표의 차.
신호 없는 병원 앞 횡단보도 앞에 선다.
목발을 짚은 환자가 지나가느라 정지상태가 길다.
지호가 길을 건넌다.
준표. 지호를 고개를 돌려가며 쳐다본다.
애틋한 심정이...
문득 지호가 고개를 돌린다.
준표. 감정을 들킬세라 고개를 홱 돌린다.
똑똑 차창 두드리는 소리.
지호다.
창문을 내린다.
지호 : 쌩까요? 기분 나쁘게.
준표 : 내가 언제....
지호 : (화난 표정으로 보다가) .....어디 가요?
S#50. 준표의 차(저녁)
룸미러 속.
병원이 멀어진다.
조수석에 지호가 타고 있다.
지호 : 할 일이 그렇게 없어요. 남의 데이트에 꼽사리 끼게.
준표 : 꼽사리가 아니라 유경이가 요즘에....
지호 : (눈을 반짝인다) 요즘에 뭐요?
준표 : 그건 됐구.... 내가 꼽사리래두, 꼽사리에 꼽사리인 너는 뭐냐?
지호 : 나는 목적이 있다구요. 형부랑 그 여자랑 어디까지 갔나? 그들 사이의 약점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그 여자의 안 좋은 부분을 집중 조명해서 둘 사이를 끝장내는 것.
(나름 사악하게 웃는다) 나는 닥터공이랑 차원이 달라요.
준표. 그런 지호마저도 사랑스럽다.
슬쩍 미소 짓는다.
지호 : 왜요? 안될 것 같애요?
준표 : 뭐 안 된다기 보다는....
지호 : 데이트에 닥터공을 끌어들인 것부터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죠.
데이트에 친구를 끌어들인다..... 두 사람만 있어 갖고는 재미가 없다.... 연애심리학적으로 그렇거든요.
준표 : (꿍시렁대는) 내 심리도 좀 알아 맞춰봐라.
지호 : 뭐라구요?
준표 : 괜히 애쓰는 거라구.
지호 : 내기 할래요?
준표 : 뭐?
지호 : 형부랑 그 여자랑 찢어지면 내가 이기는 거고, 아니면 닥터공이 이기는 거고.
준표 : 뭘 걸 건데?
지호 : 서로가 가장 아끼는 걸 걸어요. 그래야 재밌죠. 닥터공은..... (생각하다가) 좋다. 이 차 걸어요.
준표 : (말도 안 되지만) ....너는?
지호 : 나는 영혼의 돌을 걸게요. 인도 갠지스 강에서 주워온 건데.... 정말 아깝지만, 뭐....자신 있으니까....
아. 그거 진짜 아까운데....
준표 : 얏마. 말이 되냐?
지호 : 왜요?
준표 : 돌멩이랑 2500cc 차랑 균형이 맞냐?
지호 : 이런 물질 만능주의자.... 영혼의 무게를 뭘로 보는 거예요? (비릿하게 웃으며) 질 것 같은가 부지.
준표. 어이없어서 지호를 본다.
지호 : 앞에 보시지........ 이 차 오토죠?
S#51. 한정식 집(저녁)
유경이 젓가락 받침대 같은 소품들을 디카로 찍는다.
동진은 그런 유경을 생각 많은 얼굴로 보고 있다.
촬영을 끝내고 정리하면서.
유경 : 미안.
동진 : 직업병이지 뭐. 나도 지하철 같은데서 책 읽는 사람 보면 무슨 책인지 알아낼 때까지 궁금해 죽어.
동진과 유경의 맞은편에 한 사람 분의 식기가 세팅되어 있다.
둘 다 말이 없다.
동진 : 요즘 많이 바쁜가봐.
유경 : 그러게. 자꾸 일이 생기네.
동진. 유경을 본다.
유경, 속을 숨기듯 희미하게 웃는다.
그때 준표가 들어온다.
동진이 손을 들다가 준표 뒤의 지호를 발견한다.
어이없다. ‘넌 왜 왔니?’ 싶다.
지호 : (동진의 시선 무시하고 유경에게 조금은 새초롬하게) 안녕하세요?
유경 : (늘 그렇듯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동진 : 둘이 알어?
지호 : (한 건 올렸다 싶어 오버하는) 어머, 말씀 안 하셨어요? 지난번에 울 언니 만난 얘기.
동진 : (뒤늦게) 아. 그때 봤겠구나.
유경, 무의미하게 웃지만.
지호는 한방 먹은 느낌이다. 괜히 유경을 슬쩍 째려본다.
동진 : (준표에게) 얘는 왜 데리고 왔어?
준표 :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모른다) .....
지호 : (준표한테 팔짱 끼며) 더블 데이트!!
준표, 움찔한다.
종업원이 지호 몫의 식기를 세팅하는 동안,
유경 : (혼잣말처럼) 그렇구나.
동진 : ??
유경 : 저번 날에 둘이 분위기가 그렇지 않나 싶었거든.
지호, 음식을 고르는 척 메뉴판으로 얼굴을 가리며
준표에게만 보이게 입 모양으로 말한다. ‘흥. 알지도 못하면서’
(점프)
유경이 앞 접시에 놓인 생선 가시를 젓가락으로 발라내는데 예술이다.
생선의 모양이 흐트러짐 없이 가시만 쏙 빠졌다.
감탄하며 보는 동진과 준표. 지호도 속으로 감탄한다.
유경이 가시를 발라낸 생선 접시를 동진 옆에 놔준다.
준표. 거봐, 하는 시선으로 동진을 본다.
동진 : (약간은 오버하듯 유경을 치켜세운다)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먹냐? 유지호, 너 이런 거 보긴 했냐?
유경 : 그만하고 먹어.
지호 : (궁시렁대는) 그까짓 거... 마음먹으면, 뭐....
지호, 생선접시를 당겨 젓가락으로 가시를 바르기 시작한다.
지켜보는 동진과 준표.
될 리가 없다. 고기점이 튀면 준표가 휴지로 집어내기도 하고.
잠시 후, 생선의 형체는 사라지고 조각조각 해체된 살들만 담긴 접시가...
지호 : 어차피 입안에 들어가면 그게 그건데 뭐.... (준표 앞에 툭 놔주며) 먹어요.
준표. 파편이 너무 작아서 젓가락으로 집어지지도 않는다.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그나마 가시도 들어있다. 뱉어낸다.
동진 : (놀리듯) 안 되지? 졌지?
허~!! 지호의 승부욕에 스위치가 들어왔다.
지호. 타오른다.
S#52. 한정식집 앞(밤)
안에서 나오는 네 사람.
유경이 구겨진 동진의 코트 깃을 펴준다. 자연스럽다.
준표. 부러운 자식, 하듯 동진을 보면,
동진. 헷갈리면서도 기분이 좋다.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유경을 돌아본다.
그걸 본 지호, 준표의 코트 깃을 확인하는데 멀쩡하다.
준표. 지호의 안으로 심하게 말려들어간 코트 깃을 펴준다.
지호 :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동진 유경을 따라 걸으며) 이번엔 비긴 건가?
준표 : 판정의 기준이 뭐냐?
지호 : (준표의 말 무시하고 앞서 걷는 동진과 유경의 뒷모습을 은근히 노려본다)
반드시 약점을 찾아내고야 말겠어.
준표 : 그 전에 니 약점이나 감춰라.
지호 : (준표를 째리면서) 누구 편이예요?
준표 : 옳은 편이다.
동진 : (돌아보며) 뭐하냐? 빨리 안 오면 떼놓고 간다.
지호, 바쁘게 걷는다.
준표, 따라간다.
S#53. 노래방(밤)
지호가 노래한다.
폭발적 고음이 필요한 노래다.
무대매너도 훌륭하다.
노래하는 틈틈이 동진과 유경을 쳐다보는 지호.
동진이 유경에게 노래책을 건네주면,
유경이 조용히 웃으며 사양한다.
유경의 사양은 너무 정중하고 완벽해서 다시 권할 엄두가 안 나는 그런 사양이다.
동진, 그런 유경에게 또다시 거리감을 느끼는데...
지호, 비릿하게 웃는다.
96점!!
유경이 박수친다.
다음 노래하려고 준표가 마이크를 받으려고 하는데.
지호가 마이크를 유경에게 건넨다.
준표 : 내 노랜데...
지호 : (리모콘으로 준표 노래 삭제하고) 자. 이제 언니 차례예요.
유경 : (부드럽게 사양하는) 나, 노래 못 해요.
지호 : 그러니까 하세요.
유경 : 에?
지호 : 그냥 해요.
유경 : (동진을 본다) 나 진짜 못하는데.
지호 : (화내듯) 그러는 게 어딨어요. 같이 놀러와서..... 빨리 해요.
지호, 억지로 유경을 끄집어낸다.
지호 : 점수내기해서 진 팀이 3차 쏘는 거예요.
어색해하는 유경,
지호, 비릿하게 웃는 것을 유경이 슬쩍 본다.
지호 : (리모콘을 들고는) 몇 번?
(점프)
감동받고 있는 동진과 준표.
지호만 새우깡을 아그작아그작 씹어 먹으며 뚱한 얼굴이다.
유경의 노래는 그야말로 아름답다.
빵빠레와 함께 99점.
유경 : (지호에게 으슥해 보이더니 도발적으로) 이겼네요.
놀라는 동진, 준표.
지호, 충격 받아서 입에 물었던 새우깡이 뚝 떨어진다.
S#54. 노래방 홀(밤)
파란 불빛 아래서 캔으로 볼을 식히고 있는 유경.
동진이 그 옆에 와 앉는다.
유경 : (무안해서 웃으며) 나 유치했지?
동진 : 유치하니까 훨씬 좋은데 뭐.
유경 : 지호씨 기분은 알겠는데 은근히 열 받더라구.
유경이 동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팔다리를 쭉 편다.
유경 : (담담하게) 큰일이다. 나 생각보다 너 많이 좋아하나봐.
동진, 순간 멍해진다.
동진이 카운터 쪽을 본다.
주인이 자리를 비웠다.
동진이 유경의 얼굴을 잡는다.
파란 불빛 아래서의 입맞춤, 유경이 받아들인다.
동진 : (일어나며) 나가자.
유경 : 너. 가방 두고 나왔어
동진 : 상관없어.
동진이 유경의 어깨에 손을 두른 채 노래방을 빠져나간다.
S#55. 노래방(밤)
준표가 지호 눈치를 보며 노래중이다.
이승철의 그 노래. ‘비’
‘무척이나 울었네. 비에 비 맞으며.... 빗속의 너를.... 기억하네’
분노에 찬 손길로 노래책을 넘기는 지호,
지호 : 노래를 못 해? 내가 처음 봤을 때부터 음흉하다 생각했어. 왜 안 오는 거야? 복수해야 되는데....
준표. 회심에 찬 가사를 내지른다.
준표 : (노래하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혼이 실린 노래다.
지호,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준표를 스윽 올려다본다.
준표 : (지호 눈을 똑바로 보며 열창한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지호 : ..........(문득) 그러다가 득음하시겠어요.
준표, 힘이 쑥 빠진다. 마이크 잡은 손이 툭 떨어지면
마이크에서 들리는 삐익하는 소리. 귀에 거슬린다.
S#56. 스포츠센터 사무실(밤)
은호, 이혼확인서를 바라보다가 가방에 넣는다.
불을 끄고 밖으로 퇴근한다.
S#57. 스포츠센터 앞(밤)
스포츠센터의 간판에 불이 꺼지고 퇴근하는 강사들,
서로 인사하고 각자 뿔뿔이 흩어진다.
자전거 자물쇠를 따는 은호.
위쪽으로 올라가려다가 멈춘다.
자전거 방향을 반대로 돌린다. 아래쪽으로 달려간다.
S#58. 거리(밤)
동진과 유경이 걷는다. 한결 가까워진 두 사람.
동진이 유경의 손을 잡는다.
유경이 동진의 손을 마주잡는다.
둘이 걷는다.
S#59. 거리(밤)
은호가 자전거를 타고 간다.
S#60. 숲 앞(밤)
자전거를 타고 오던 은호, 멈춰 선다.
숨듯이 자판기에 몸을 숨긴다.
맞은편에 유경과 동진이 걸어온다.
그들은 은호를 보지 못했다.
유경과 동진. 숲 안으로 들어간다.
거리는 어둡고, 포카리 스웨트 자판기에서 나오는 파란 불빛만이 은호의 얼굴을 비춘다.
(은호) : 그 날, 그 시간의 일들이 아치 데자뷰처럼 느껴졌던 것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준비를 했기에....
익숙해지도록 상상 속에서 몇 번이나 반복해 아파해 온 장면이기에.....
그런데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날, 그 거리의 나에게는....
S#61. 숲 앞(밤-과거)
갑작스럽게 비가 내린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동진과 은호가 비를 피해 숲 입구에 선다.
어떻게 할까? 하늘을 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을 들여다보는 은호와 동진.
안은 따뜻하고, 정감 있어 보인다.
동진과 은호가 안으로 들어간다.
S#62. 숲 안(밤-과거, 다른 날)
은호가 혼자 멀뚱히 앉아있다.
밖에서 들어오는 동진.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은호는 시큰둥한데 웬일인지 긴장한 동진이 억지로 숟가락을 쥐어준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은호,
동진. 당황한다.
빈 컵과 은호를 번갈아본다.
그때 은호가 입 안에서 반지를 꺼낸다.
깔깔 웃는 은호.
S#63. 숲 안(밤-과거 다른 날)
지호, 준표. 동진. 은호.
지호가 은호의 잔에 술을 따르려고 하자,
준표와 동진이 동시에 막는다.
지호, 어리둥절해서 보자.
은호, 웃으며 배를 감싼다.
S#64. 숲 안(밤-과거)
동진, 지호, 준표, 은호.
모두들 우울하다.
동진 : 우리 이혼했다.
각자 외면하는 은호, 동진, 지호, 준표.
S#65. 숲 안(밤)
유경과 동진이 자리를 잡는다.
유리와 주방장이 멍한 얼굴로 그 둘을 바라본다.
유경이 실내를 둘러본다.
동진이 메뉴를 가리키며 추천 중이다.
(동진) : 아마도 열두 살 때였다. 공터를 지나는데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내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나 없이도 신나게 공을 차고 있었다. 난 몸을 숨기고 그들을 못 본 척 했다.
내가 겪은 최초의..... 슬픔이라 부를 수 있는 기억.
S#66. 숲 앞(밤)
숲 불빛이 유난히 밝다.
카메라 뒤로 빠지면 자판기 뒤,
자전거를 탄 채 먼 곳을 바라보는 은호.
(동진) : 그날 내가 받은 상처는 누구의 잘못일까?
12회 끝
첫댓글 이게 안받아져요.ㅠㅠㅠㅠ
다시 손봐놨어요.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