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무더위에 열대야! 잠을 설치고 나면 몸이 개운치 않은 새벽을 맞게 된다. 잠이 부족한 것 같아 잠자리에서 미적거려 보지만 몸도 마음도 불편하다. 이럴 때는 벌떡 일어나야 한다. 기지개를 몇 번 켜고, 고양이 세수로 눈곱 만 떼고 집을 나선다. 공원 메타세콰이어 숲으로 맨발 걷기를 하러 간다. 이른 아침인데 나보다 더 먼저 온 사람들이 이미 걷고 있다,
신발 벗어 한쪽에 두고 걷기 대열에 슬그머니 낀다. 심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걷는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뒤에서 다가오는 사람의 숨결이 느껴진다. 한쪽으로 비켜서며 급한 이들이 먼저 지나도록 길을 내준다. 뒤따라 걷는 이들이 모두 지나가고 난 뒤에 다시 발을 옮긴다.
올봄만 해도 이 길은 거의 내 독점 길이었다. 메타세콰이어 숲에 난 오솔길이어서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와 낙엽들과 작은 돌맹이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맨발로 걷기에는 좀 불편했던 길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지 않는 숲에 키가 큰 나무들이 늘 그늘을 만들어 주어서 불편해도 맨발로 걷는 내게는 언제 걸어도 기분 좋은 길이었다.
이 길이 이름 모를 한 사람의 손길로 맨발 걷기에 편한 길이 되면서 한 사람씩 걷는 이들이 늘어나더니 요즘은 소문이 나서 먼 거리에서 일부러 찾아와 걷는 길이 되었다. 때마침 매스컴을 통해 어싱(맨발걷기)이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가 퍼져서 날마다 사람이 불어났다. 숲을 한바퀴 돌면 만보기에 2백 미터쯤 찍히는 길이니 많은 사람이 동시에 걸을 만한 크기는 아니다.
여기에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처럼 다리 아픈 이들이 천천히 평화롭게 걷던 길이 급하게 걷는 길이 되었다. 건강한 이들이 빠르게 걸으면 한 사람씩 걸을 수 있는 좁은 길에 정체현상이 일어난다. 사람들이 많지 않을 때는 적당히 조율이 되었다. 그러나 숫자가 많아지니 늦게 걷는 나 같은 이들은 걸리적거리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내 형편에 맞지 않게 다리를 재게 놀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러다 보면 다리가 무지하게 아프다. 게다가 남보다 빨리 많이 운동하려고 뛰는 사람도 생겼다. 한사람이 빨리 걷고 빨리 뛰면 다른 이들도 마음이 급하다. 같이 따라 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 같아서인지 더 빨리 걷고, 다른 사람의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일도 생겼다. 무한경쟁의 모습이 여기서도 보인다.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운동해야 더 건강해진다고 느끼는 것 같다. 운동조차도 경쟁적으로 남보다 더 많이 해야 만족이 되는가 보다.
두 번째는 조용하던, 걸으며 명상할 수 있었던 숲에서 조용함이 사라졌다. 여기에 좋은 길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러 사람이 함께 걸으러 온다. 길이 좁아 길게 늘어서 걸어야 하니 함께 온 이들의 이야기 하는 소리가 커진다. 팀들이 여럿이 되면 목소리들이 더 높아지니 멀리 걷는 나도 저절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두 사람이면 그래도 소근소근 남의 눈치 보면서 이야기하는 게 느껴지는데, 셋 이상이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새들의 아침 노래 소리가 사람들의 목소리에 다 묻혀 버렸다. 불현 듯, 불편한 채로 조용히 걸었던 때가 그립다.
세 번째는 메타세콰이어 숲 전체가 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전에는 숲 가장자리를 따라서 한줄기 오솔길이 나 있어서 숲을 한 바퀴 돌게 되어 있었는데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속도 경쟁이 붙고 나서, 나무 사이 아무 데나 다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숲 전체가 통로가 되었다. 나무들이 사는 터 한쪽을 빌려서 사람들이 걷던 숲이 아니라 사람의 발길로 종횡무진, 다 밟아 놓아서 나무들의 삶의 터를 망쳐 놓는 모양새가 되어간다.
사람이 개발한다고 설치는 개발현장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 같다. 아! 어쩌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