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이 나를 교장실에 불러서 전교조 탈퇴각서에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서명을 거부하자 교장은 "김선생이 평지풍파를 겪어보지 않아서 고집부린다."고 해서 "이번에 평지풍파를 겪게 되었네요."라고 대답하고 교장실을 나왔습니다.
그 다음 일요일 날, 전교조 탈퇴각서를 받으러 교장 선생님이 대전시 가양동 우리 집에 찾아왔었는데, 미리 연락을 한 것인지 형들까지 와서 나한테 탈퇴각서를 쓰라고 강요했었습니다. 뿌리치고 도망가서 집에서 멀리 떨어진 다방에 들어가 있다가 어떻게 되었나 집에 전화하니 교장은 되돌아갔고, 중풍이셨던 아버지께서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놀래서 집에 돌아오니 갔다던 교장은 여전히 방에 있었고 아버지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화가나서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따졌지만 "너를 위해서다"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각서를 안쓰고 버티다가 집을 나갔는데 결국 형들이 내 도장을 파서 나 대신 탈퇴각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 후에 탈퇴 무효화 선언을 몇번이나 했지만 그때마다 교장은 나에게는 아예 이야기도 하지 않고 형들에게 찾아가 탈퇴각서에 도장을 받아서 결국 해직되지 않았습니다. 해직도 가족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미 정권이 감당하기 힘들정도로 많은 해직교사가 발생한 상황에서 더 이상 해직교사가 나오지 않게 탈퇴무효화 선언에 참가한 교사는 별별 방법을 다 동원해 각서를 받아내고 더 이상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여름방학 때 아예 절에 들어가서 연락도 못하게 하고, 3차 탈퇴무효화 선언에 참여했지만 결국 해직이 되지 않아서 학교에 남게 되었습니다. 8월 말에 김지철 충남지부장님이 공주지회를 방문했을 때 8월 월급을 월급 봉투 그대로 후원금으로 지부장님께 드렸습니다. 같이 해직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든 표시하고 싶었습니다. 김지철 지부장님은 그때 후원금을 받았던 것이 마음에 남았었는지 교육감이 되신 후에도 "그 때 김주학 동지가 월급 봉투채로 한달 월급을 후원금으로 내서 해직교사들이 많이 힘을 얻었었다." 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독서모임 부터 시작하여 충남교사협의회를 거쳐 전교조에 가입한 것이 내 인생 전체를 통해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고 인생을 지배한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