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을 입은 강이다 해서 덕천.. 달래강의 옛 이름은 덕천 또는 달강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구구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 이 강변 어느 집에 한 도승이 탁발승으로 가장하고 찾아왔다. 문전에서 시주를 청하자 대문을 열고 나온 중년 남자의 얼굴을 보니 병색이 농후할뿐더러 여명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비탄한 마음으로 주인을 위로하며 재생의 길을 가려면 무척 힘이 든다고 하였다. 주인은 바싹 다가서며 면액의 길을 인도해 달라고 애원을 하였다. 그러자 스님이 말하기를, "중생을 위해서는 적선을 해야 하고 육신을 위해서는 고생을 해야겠다" 하며 지금부터 돌을 날라다 저 강물에다가 다리를 놓아 위급한 사람들의 통행을 돕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그 날부터 사람이 많이 다니는 나루를 골라 다리를 놓기 시작하였다. 돌을 나르는 일이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갖은 고난과 싸워가며 1년이 되는 날 완성을 보게 되었다. 마지막 돌 한 덩어리를 지고 왔을 때 강 건너편에서 사람 소리가 나서 바라보니 한 노인이 급한 환자인 듯한 사람과 함께 자기가 놓은 다리를 건너 오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온 노인은 이 추운 날 이 다리가 없었던들 어떻게 할뻔 했느냐며 하늘이 도왔다고 고마워했다. 그 때에 한 말이 "참으로 덕을 입은 강이로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때부터 덕천(德川)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달이 많이 사는 강이라는 뜻으로 달강... 또 한가지 설은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달강(獺江)으로 표기되어 있다. 과거에 팔봉 부근에는 수달이 많이 살고 있었다 한다. 지금도 칼바위 한 곳에 수달피고개라는 지명까지도 남아 있고 조선시대에는 조정에도 진상했다는 기록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수달이 많이 사는 강이라는 뜻으로 달강이라고 하다가 달천으로 변한 것이라고 보기도 하다.
맛이 단 냇물이라 해서 단냇물.. 또 한가지 설은 [택리지]에 보면 임진왜란 때 이 여송과 같이 온 명장 한 사람이 이 달천을 건너다가 목이 말라 물 맛을 보고 "이 물은 명나라에서 유명한 여산의 수렴약수보다도 낫다" 라고 말을 했다고 하고, 이행(李行)이라는 사람은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충주로 유배와 있을 때 역시 충주 달천 물 맛을 보고 조선에서 제일이라고 찬양하여 즐겨 마셨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니까 맛이 단 냇물에서 단냇물이 되고 달냇물로 변음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