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일, 정읍시 산외면 목욕리 내목마을에서 열린 솟대 당산제를 보러갔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동네 가운데 있는 집인데 지붕이 뜯긴 볼썽사나운 모습이어서 동네 어르신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지붕개량을 위해 정읍시의 지원을 받아 인조 슬레이트를 철거한 상태라고 합니다. 이 지붕에도 요즘 유행하는 철제 기와를 올릴 것으로 예상은 되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가옥구조 중에서 지붕재료는 시대에 따라 크게 변모해왔던 것 같습니다. 농업중심의 전통사회에서는 대부분 짚을 사용하여 초가지붕을 만들었고 관공서와 사찰 그리고 부잣집의 경우에는 흙을 구워만든 검은 기와를 사용했었지요.
그러다가 1970년대 이른바 새마을운동 시절에 한국의 농촌가옥은 일대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새마을 운동의 핵심중에 하나가 초가지붕 없애기였지요. 초가지붕을 전통문화의 하나로 보기보다는, 구시대의 표상으로 지목하여 행정력을 총동원 대대적으로 제거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때 초가지붕의 대체재이면서 첨단재료로 인정받았던 것이 바로 슬레이트였습니다. 진짜 슬레이트는 점판암이니 정확하게 말하여 '인조 슬레이트'라 해야 할 것입니다. 당시에는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량해야만 국가 시책에 따르는 건전한 국민이라 여겨졌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슬레이트는 공장에서 대량생산하여 값도 저렴하게 공급되었으니 국민들이 쉽게 받아들였지요. 일년에 한번씩 농사철이 끝나고 짚을 올려야만 하는 지붕보강 공사를 하지않아도 되었으니 매우 매력적인 재료였던 것이다. 그땐 국민들의 슬레이트 사랑이 넘쳐서 고기를 구워먹을 때 고기판 대용으로까지 사용했던 기억은 한번쯤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환경문제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인조슬레이트 속에 발암물질인 석면이 섞여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슬레이트는 기피해야 할 물질,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껏 30 여년 이상 슬레이트에 대한 애정을 가졌던 조국 근대화 시대의 어른들도 이제는 슬레이트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시대변화에 따라 슬레이트의 운명은 이제 누구나 기피하는 폐기물로 전락하였습니다. 이제 정부에서도 슬레이트를 폐기물로 정하여 점진적으로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민간에서도 폐기물 비용을 부담하며 제거하는 상황이지요.
사진속의 철거된 슬레이트 덩치는 비닐로 싸여서 폐기물 처리장까지 수송을 앞두고 있는 모습인데, 마치 사람이 죽었을 때 사용하는 '관' 같은 슬픈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한때는 인기쟁이었던 물건이 평가가 달라지면서 이렇게도 폐물이 될 수 있는 것은 마치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의 변화무쌍한 운명과도 닮은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근대화의 기수,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이라는 플랜을 국민들에게 제시하면서 각광받던 인조 슬레이트가 드디어는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반대로 철거하는 작업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쉽게 결정되고 시행되는 정책일수록 수십년이 못가서 이런 식으로 사단이 벌어지는 걸 생각한다면 100년 이상을 내다보며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양심적이고 지혜로운 지도자가 이 시대에 더욱 절실해집니다.
1980년대 첨단의 과학이라고 추켜세우며 도입했던 원자력발전소도 이젠 후쿠시마원전 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더 늦기전에 탈핵 한국을 위해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슬레이트는 시간과 경비가 들어도 철거할 수 있지만, 한번 터진 원자력발전소는 생명의 기반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인조슬레이트 이제 애물단지죠. 강판제로 지붕을 개량하는 추세인데 기존 슬레이트지붕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시공한 곳들은 나중에 복잡한 문제를 낳을 듯... 우리집도 그 문제로 고민타가 덮어쓰기했는데 찜찜합니다.
눈가리고 일단 아웅하는 격이네요.
나중에 부메랑이 날아오겠죠 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