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3일 토요일 묵상
<3:16>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3:17>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3:18>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3:19>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3: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3:21>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3:22>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본문 해석)
12월 3일 토요일 전도서 3:16~22
16절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 불의를 목격한다. 정의가 시행되어야 할 재판의 자리에 죄악이 있고, 정의가 실현되어야 할 곳에 불의가 있다. 재판과 정의 두 단어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올바로 판단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선에도 악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선과 악의 경계선이 그리 선명하게 나뉘지 않는 현실을 직시하고 탄식한다.
17~21절
17절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표현은 규범적 지혜(잠언)의 관점에서 읽는다면 선악 간의 심판, 즉 의인인지 악인인지를 나누고 판별하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그렇게 읽으면 전도서는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전도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심판이 아니라 죽음을 의미하며, 이 죽음이 의인과 악인 모두에게 하나님의 심판으로 임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은 궁극적 판결을 통해서 완성될 것이다. 즉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때가 있다. 18절 하나님이 인간을 구별하시든 아니면 인간을 시험하시든 그 결과는 인간이 짐승과 같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존재론적으로도 인간은 짐승보다 나을 바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짐승들처럼 죽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별하여 만드셨는데, 짐승과의 뚜렷한 차이는 자신들이 짐승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 한계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사람은 짐승과 다르게 살 수 있는 것이다. 19절 짐승과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분명하게 강조된다. 그들은 동일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죽는 것처럼 저것도 죽는다는 사실이요, 또 하나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 동일한 생명의 호흡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사람이 짐승보다 나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전도자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한다. 20절 모든 것이 한 곳으로 간다. 사람과 짐승이 동일하게 먼지로 지어졌고, 따라서 그것들이 죽은 후에 다시 먼지로 돌아간다. 21절 죽음 이후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 아래로 내려간다고 말한다. 이것은 죽음 이후의 두 종류의 존재, 즉 사람과 짐승은 동일한 운명을 맞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22절
전도자는 다시금 알았다고 말한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일에 기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음을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그가 누려야 할 몫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자신의 일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사람이 죽은 후에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게 하려고 다시 데려올 수는 없다. 한 번 죽으면 끝이다. 그의 뒤에 있을 일이 그 자신에게 있을 개인사든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일든 상관없이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이것은 인간과 짐승이 죽음 앞에서 그렇게 동일한 운명을 맞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살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살아 있을 때에 기회가 있다. 죽음 이후의 삶은 나의 소관 사항 밖의 일이다. 전도자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몫으로 주신 현실의 삶을 만족하고 누리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