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학당역사박물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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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약속장소가 삼성동에서 광화문으로 변경되어 나갔다가, 옛추억을 더듬어 본 것이다.
사실, 상전벽해여서
어디가 어딘지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동화면세점(구, 국제국장)에서 경기여고 터를 찾는데 알 수가 없다.
덕수초등학교?
구세군 서울제일교회? 그런게 있었나?
좀 더 올라가니, 덕수궁 돌담길이 나온다.
이젠, 알겠는데 ~ ~
정동제일교회에서 아펜젤러 흉상 등을 보고 나오니, 배재공원이란게 있구나.
1885년 8월 3일부터 1984년 2월 28일 고덕동으로 옮기기까지 99년간 배재가 이 곳에 있었음을 알리는 표식이 있다.
옛 동관이었던 역사박물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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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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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시 동관이었으며,
서울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설전시관은
교실체험/ 배재학당 태동과 배재의 정신/ 명예의 전당/ 배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초기 선교사들/
윌리엄 아서 노블(William Arthur Noble) 가족/
배재학당 설립자인 헨리 게하르트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헨리 다지 아펜젤러와 루스 노블 아펜젤러의 일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박물관의 영문 명칭이
'Appenzeller/Noble Memorial Museum'인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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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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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6주년 기획전인
'아펜젤러의 친구들: 100여년 전 서양인들의 서울 생활' 이 특히 흥미로웠다.
바다건너 멀리,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서양인 들의 눈에 비친 조선은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조선의 또 다른 근대를 비추는 거울일 것이다. (박물관 홈피 인용)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다음과 같이 썼다.
광대뼈는 두드러지고, 이마는 고상하고, 지적으로 보인다. 조선인들의 일상적인 표현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활기차다.
이런 글도 있다.
가장 구경할만한 새해 풍습은 머리카락 태우기이다. 조선인들은 머리카락 한올 한올이 미래에 예약된 불운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미래에 닥쳐올 불운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빠진 머리카락을 태워버리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서울에 살고 싶어 하는 이유, 반대로 서울보다 시골을 선호하는 이유, 그렇다면 서울 선비에게 최고의 시골은 어디? 등 재밋는 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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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 불여일견이라.
가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