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의 작가 윤태호 씨가 최근 연재하는 웹툰 '오리진'은 '세상의 모든 지식'에 관한 이야기다.
미래에서 온 로봇 '봉투'가 모험을 겪는 게 큰 줄거리지만, 이 과정에서 봉투가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다양한 자식이 웹툰의 포인트다.
'오리진' 4화 에서는 난방이 끊긴 사무실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봉투를 옆에 두고 '솔로 체온을 올리려는건 위험하다'는 애기를 나눈다.
열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 술을 마시면 혈관이 확장되고 체온조절 가능이 떨어져 한 겨울엔 열을 더 쉽게 빼앗기게 된다는 것 등 학습만화를 보는 듯한 설명 컷이 이어진다.
윤태호 씨는 "지적 호기심이 강한시대, 깊이 들어가기보다는 범주를 넓히는데 관심이 있는 시대에 맞는 만화"라고 설명햇다.
윤 씨가 보기에 이 시대는 '교양'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욕구가 크다는 것이다.
TV에서도 이런 욕구를 확인할 수 있다.
체널A '사심층만 오! 쾌남', tvN '어쩌다 어른'등 최근의 프로그램들이 그렇다.
출연자들이 여행을 떠나서 수다를 떨거나 유명 인사가 나와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내용은 유머나 개인적 사연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다.
가령 '사심층만 오! 쾌남'의 '여주 편'에선 방송인들이 경기 여주를 방문해 특산품이 도자기에 대한 역사와 정보를 배우고 나눈다.
교양에 대한 이 같은 뜨거운 관심은 앞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에서 확인됐다.
경제, 정치, 사회, 역사 전 분야를 두루 훑는 동명의 팟캐스트로 화제를 모은 채성호 씨가 방송 내용을 책으로 재구성했고, '지대넓얕'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출간 2년여가 지난 6월 현재 1, 2권이 100만 부를 넘기면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고유성, 깊이 같은 책의 전통적 의미에 '지대넓얕'이 부합하느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교양을 빨리, 용이하게 습득하고 싶어 하는 요즘 독자층의 트렌드는 인정해야 한가'고 밝혔다.
교양이란 18세기 중엽 유럽 사회에서 근원이 찬아진다.
당시 사회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한 부르주아(시민계급)가 성경 대신 백과사전을 권위 있는 책으로 택하면서다.
증세 이래 유럽사회를 지배했던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성경을 거부하고, 디드로와 볼테르 등 철학자들이 만든 백과사전을 펼친 것은 지식 습득뿐 아니라 넓은 세상에 대한 열망이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교양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지적 호기심은 강하지만 지적 권위는 붕괴된 시대에 지식을 전하는 열할로 권위자가 아니라 안내자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성명한다.
실제로 인터넷으로으로 인해 지식의 접근권이 모두에게 부여된 환경에서 대중은 오히려 길을 잃은 상황이다.
그러기에 명쾌한 지식 전달지를 필요로 하지만, 탈(脫)궈위 시대를 맞아 예전처럼 사회적 지위가 부여된 교사 등이 아니라 친근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교양을 애기해주는 사람이 요구된다.
TV 예능프로그램, 인터넷만화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교양이 전달되는 이유다.
흥미로우 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교양의 필요성을 북돋운다는 것이다.
누구나 SNS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거기에 의견을 더하는 때, 다채로운 지식이 표현을 풍부하게 해주어서다.
일반인이 습득해 나누는 '얕지만 넓은' 교양은 "인터넷의 바다에서 순발력 있게 대응하면서 정보의 현란한 운동에 공헌하는 수단"(김수영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이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여길 수 있는 눈높이, 생각에 호응을 더하는 매개….
21세기의 교양은 이렇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와 '당신'이 교류하고 공감하는 데 교양이 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시대에 '소통(疏通)'이 얼마나 중요한 키워드인지를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할 것이다.
김지영 /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