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고도 디종에서는 삶의 모든 것이 느린 걸음으로 걸어갔다.
“디종은 10년 동안 빵집 하나가 생기는 것도 큰 변화였죠. 반면 한국에서는 모든 것이 격렬하게 변합니다. 몇 년 만에 한국에 들어왔을 때 부모님 집조차 못 찾아가겠다 싶더라니까요.”
저녁이면 어둠 속에 잠기는 디종과 네온사인으로 현란하게 치장하는 서울, 이 두 도시의 이질성은 그의 작품의 출발점이 되었다. 2007년 그는 10년간의 긴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정착했다. 1998년 유학을 떠났던 그는 2002년 부산 비엔날레에 참여했었다. 이를 계기로 1년에 한 번씩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창동 스튜디오 6개월 입주 작가로 작업을 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야겠다고 뜻을 굳힌 것은 2006년 말 부산 시립미술관에서 재불 작가 5인전을 할 때였다.
“15~20년간 파리에 머물렀던 선배 작가들과 전시를 하면서 제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창동 스튜디오 시절부터 느꼈던 한국 미술의 활력이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 2007년 그는 두 번의 개인전을 연거푸 치러냈고, 2008년 11월에도 가회동의 스케이프 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의 전시 이력은 그가 보여준 작가적 잠재력을 충분히 드러낸다. 매 전시마다 인물, 꽃, 건축물이라는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폭넓은 세계를 보여주었다.
“IMF가 지나면서 한국 사회에는 그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물질적인 풍요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개개인은 엄청나게 피폐해진 것 같습니다.”
melancholy / 2008, oil on canvas. |
잠이 안 오는 새벽, 그는 자전거를 타고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샐러리맨들의 무표정한 모습들은 풍요 속의 결핍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 결핍을 물질로 보상하고자 하나 그것은 또 다른 결핍을 낳을 뿐이죠. 이러한 것을 그림에 담아 보고자 했습니다.”
화가 김성수는 도시의 작가이다. 그의 눈은 찬찬히 도시를 훑는다. <네온 시티> <에페메르> 같은 전시 제목에는 도시를 읽어 내는 그의 독법이 담겨 있었다. 미술사에서 도시는 불빛으로 우선 등장한다. 20세기 초반 미래주의자들의 그림 속에서는 밤을 잊은 인공 조명들이 신세기의 상징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이 불빛들은 외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그 자체가 묘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김성수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빛은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감수성의 일부가 되어 버린 빛이다. 이 도시는 네온사인의 창백하면서도 인공적인 불빛에 물든 도시다. 박스처럼 균일하게 생긴 거대한 빌딩의 조명은 건물의 내면을 비추지 않는 은폐의 빛인 동시에 건물 안에 들어서지 못한 사람에게는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냉정한 불빛이다.
“서울의 고층건물 속에 빽빽하게 들어선 창들은 프랑스에서 느꼈던 문화적ㆍ언어적 장벽을 다시금 느끼게 했습니다.”
문화ㆍ언어적 장벽으로 프랑스는 그에게 카프카의 성처럼 접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여기서부터 건물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다.
“서울, 부산 등 대도시의 아파트 문화를 프랑스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번영을 말하는 동시에 나에게는 닿을 수 없는 절벽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넘을 수 없는 성이자 사회의 거품이지요. 위태로우면서도 위태로움을 가리는 모뉴멘털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웅장하고 크지만 거기에는 깊이가 없습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앞 유리 피라미드의 철골 구조와 코엑스의 글래스 월을 그리면서 이러한 생각을 표현했다. 이 건물들의 철골 구조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으로 상징화되었다.
전시광경, 2007, Mongin Art Center. |
내면의 결핍을 드러내는 건축물과 인물, 꽃
이런 건축물에 대한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 작년 사루비아 다방의 전시였다. 이 작품들은 큰 설치 형식의 그림으로 45일 동안 그려 30일간 전시하고 철거되었다. 전시 제목 <에페메르>는 ‘일시적인, 덧없는’이라는 뜻의 불어로, 가장 견고해 보이는 건축물이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었다.
metalica / 2008, oil on canvas. |
도시의 공허는 그의 인물화에도 나타난다. 대머리의 창백한 인물은 공허, 고독, 소속감의 상실, 내적인 부유를 나타내는 표정을 짓고 있다. 모노톤에 가깝게 묘사된 창백한 인물에는 그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어떤 개성도 드러나지 않는다. 네온사인의 불빛에 내면조차 철저히 물들었다. 그는 2005년부터 한 사람을 모델로 반복해서 그리고 있다. 이전에는 도시의 익명성을 표현하기 위해 모델 없이 상상으로 인물을 그렸는데, 캐리커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캐리커처의 유머러스한 느낌을 배제하기 위해 사이버틱하고 냉소적인 이미지를 가진 모델을 찾고 있었을 때 한 젊은 한국인이 디종으로 미술 공부를 하러 왔다. 바싹 마르고 깨끗하게 머리를 민 이 젊은이의 얼굴을 그리면서 그의 작품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갔다. “같은 인물을 반복해서 그리는 이유는 인물의 외형적인 특징보다 내가 타인에게서 느끼는 그 느낌을 다른 사람들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공통된 결핍감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죠. 다른 모델에게서도 나는 동일한 것을 찾고자 할 텐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동일 인물을 반복함으로써 사회가 만들어 낸 복제화를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지요.”
metalica / 2008, oil on canvas. |
이 젊은 모델은 지금도 디종에서 열심히 미술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김성수가 원하는 표정을 충분히 연기할 줄 알고, 극적인 표현을 위해 더러는 표정을 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페인팅 특유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기계적이고 깔끔한 표면을 만들어 낸다. 얼마 전부터 그리기 시작한 여성 모델 역시 내적인 공허함을 표현하고 있는데, 남성 모델과는 달리 과감하게 신체가 드러난다. 인간의 신체가 가지는 물성, 신체의 비대함과 내면의 공허함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며 감성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꽃은 제게 자연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이 자연은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실내장식을 위해 꽃을 사고, 쓰고, 쓰레기로 버리죠.”
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상품이기 때문에 실제 꽃보다 더 과장된 화사함으로 치장하고 있다. 이 꽃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서서히 시든 것이 아니라 버림받듯이 갑자기 시들었다. 이 시든 꽃들은 인공감미료의 중독성 매력을 가지고 시선을 끈다. 소비에 대한 동물적인 욕망이 꽃이 가진 화사함으로 박제화된 모습으로 피어난 것이다.
건축물, 인물, 꽃 이 세 가지는 결국 내면의 결핍이라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른 이미지들이지만, 그것이 김성수라는 브랜드에 속한다는 귀속감을 잃지는 않는다. 바로 그가 명명한 <네온 시티>의 색감이다. 형광분홍색, 보라색, 창백한 청록색 등 화사하면서도 창백하고 신비로운 네온사인의 색감은 전 화면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신흥 도시 일산은 형형색색 간판으로 물들어 있었다. 모두 집으로 돌아갈 시간, 저 휘황한 불빛들은 마음이 허한 자들의 발목을 붙잡고 값싼 유혹을 하고 있다. 그 유혹들을 바라보는 내 얼굴도 저 네온사인에 무표정하게 물들고 있었을 것이다.
사진 : 김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