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말돌리 공동체
폰테보나 (Fontebona) 수도원과
포레스테리아 (Foresteria)
오래전부터 높고 깊은 이 산속에는 풍부하고 시원한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카말돌리 수도자들은 생명과 힘을 주는 예수님의 물이라고 생각하여
Fontebona (폰테보나, 좋은 물)라고 불렀고 수도원 이름도 이 샘에서 유래를 하였습니다.
1431년 총원장 암브로지오 트라베르사리 (Ambrogio Traversari)는 이 샘을 기념하여
소성당처럼 기념대를 만들었습니다.
폰테보나 수도원은 이 샘과 마주 보고 있습니다.
사크로 에레모와 3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해발 800미터 위치에 있는 이 수도원 자리에는
원래 10세기 경부터 프라탈리아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오스피찌오 (Ospizio)라는 순례자나 방문자들을 위한 건물이 있었습니다.
이 건물은 순례자들이나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잠자리나 음식을 제공하기도 하였고
말을 바꾸어 타는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로마로 가려는 순례자(1)들에게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긴 아펜니노산맥을 넘어가기 전에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고 아픈 사람들에게는 치료도 받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도원 설립보다 이른 1046년에 이 오스피찌오 옆에 병원을 만들어
이곳과 가까이 있는 마을 사람들이나 순례자들이
입원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고 순례자 같은 경우 죽게 되면
모든 비용을 수도원에서 부담해서 장례를 치르고
그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한 무덤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 병원은 나폴레옹이 수도원을 폐지시켰던 1810년까지 있었습니다.
이 병원에서 사용되는 약들을 제조하기 위해 1543년에 약국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운영되는 이 약국에서 그 당시 사용한 약을 보관하는 가구,
제조 기구와 보관 유리 용기 등을 볼 수 있고,
수도원에서 만들어지는 식품, 약, 화장품 등을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 수도원의 모습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1080년 4대 원장이었던
복자 로돌포 1세 (1074-1089) 때입니다.
이 수도원에서 지원자들은 사크로 에레모에서 생활할 수 있는 양성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당 옆으로 말돌로의 사각 정원과 숙소를 만들어
더 많은 순례자나 방문자들이 머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수도자들은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것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수도회의 영성을 함께 나누며 그들의 영혼을 보살피고
하느님께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사도직을 수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현재 수도원 모습을 갖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중반부터였고
성당을 중심으로 북쪽 편은 수도원 건물이 위치하고 있고
남쪽 편은 포레스테리아 (Foresteria)라고 불리는
순례자나 방문자들을 위한 건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성당과 수도원
큰 길과 붙어있는 광장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성당과 수도원 입구가 있는 정원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수도원은 외부인은 들어올 수 없다는 클라우즈라 (Clausura) 표시가 있어 들어갈 수는 없으나
지금까지 보아왔던 수도원들을 상상해 본다면
사각 정원을 중심으로 수도자들의 방들과 규칙서의 방, 공동식당이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성당 자리에는 천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네 번에 걸쳐 성당이 세워지게 되는데,
지금 보는 이 성당은 1509년에서 1524년 사이에 세워졌고
1772년에서 1776년 사이에 복구공사와 내부 장식을 다시 하면서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성당 내부는 기둥 없이 하나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수도원 성당이며,
양옆에 네 개의 소제대를 볼 수 있습니다.
그중 중앙 제대의 제단화 그리고 중앙 제대 가까이 있는 소제대의 제단화 두 장은
조르죠 바사리 (Giorgio Vasari, 1511-1574)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중앙 제단화는 1540년에 그렸고 못 박히신 십자가에서 내려지시는 예수님의 장면입니다.
양옆 제단화는 1537년도에 그린 세례자 요한과 성 예로니모 사이 옥좌에
아기 예수님과 앉아 계시는 성모님이고, 이 그림의 배경으로 그려진 숲에는
사크로 에레모 공동체와 이 수도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소제대 제단화는 예수님의 탄생을 그리고 있고, 별과 천사
그리고 아기 예수님께 마치 조명을 주듯 색채의 명암을 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포레스테리아 (HOSPITIUM)
포레스테리아는 수도원 건물들 중에 가장 오래된 장소이고
순례자들 그리고 방문자들이 이곳에 머물며 개인적인 피정을 하거나
모임이나 회의를 수도자들과 함께 하는 장소입니다.
포레스테리아로 들어가는 오리지널 문은 남쪽 아래쪽에 있었지만
18세기에 서쪽 편 큰 길 옆으로 새롭게 만들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문을 들어서면 먼저 테라코타 부조로 만들어진
성 로무알도와 수도자들을 머리 위로 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창조물들인 여러 동물들이 사는 숲속에 서있는 성 로무알도는
수도자 뿐만 아니라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목마르지 않는
하느님의 좋은 샘 (Fontebona) 맛볼 수 있도록 두 팔 벌려 맞이하고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면 12세기에 완성된 사각 정원을 만나게 됩니다.
이 땅의 원래 소유주였던 백작의 이름을 따서 '말돌로의 사각 정원'이라 부르고 있고
천년의 역사를 이야기하듯 묵직한 로마네스크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산속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웅장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이곳에서 1400년대 초반에 암브로지오 총원장에 의해
수도원 지원자들의 교육을 위한 최초의 학교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정원의 회랑 주변으로는 교육이나 회합을 할 수 있는 넓은 방들이 있고
기도할 수 있는 11세기의 성령 소성당 (Santo Spirito)이 있습니다.
학교와 함께 학생들이 기숙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소가
말돌로 사각 정원 동쪽 편에 만들어지는 ‘소년들 (Fanciulli)의 사각 정원’입니다.
르네상스의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 정원에는 2층과 3층에 소년들이 사용하던 방들이 있고,
물론 지금은 순례자나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사각 정원은 르네상스 시절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수장 로렌조 일 마니피코
(Lorenzo il Magnifico, 1449-1492)가 인문학자들이었던 마르실리오 피치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크리스토포로 란디노 그리고 카말돌리 수도자들과 함께
새로운 시대의 문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 토론하고 연구하였던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임을 위해 같은 시기인 15세기에 사각 정원 주변으로 회의실이 만들어졌고
이 회의실에서 바오로 6세 교황이 몬시뇰 시절이었던 1936년부터 1954년까지
평신도를 위한 신학 모임을 여러 학자들과 매년 주기적으로 가졌고,
이것은 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62-1965)를 마무리하는
바오로 6세 교황으로서는 미리 준비된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2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를 가지고 있는 이곳은
긴 역사 안에서 그리고 오늘날까지 인간학과 교회일치 운동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영성을 심화시키기 위해 듣고 만나는 장소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사크로 에레모의 수도자들은 침묵과 기도와 애독의 삶을
총체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엄격함과 고립된 삶,
그리고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대화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근원적인 수도자의 생활을 하려는 곳입니다.
반면 수도원은 수도자와 세상이 대화하는 장소로써
하느님과의 대화 속에서 얻은 선물을 세상과 나누며,
사도적 애덕의 삶이 결과물로 세상에 나오는 장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크로 에레모와 폰테보나 수도원은 방법은 다르지만
하느님 안에서 기도하고 세상 안에서 일하는 베네딕도의 규칙안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기도 합니다.
카말돌리는 단지 침묵과 관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하느님 나라를 향해 생각하고 사랑하는 장소입니다.
(1) 지금은 펠레그리노 (pellegrino)라는 단어를 순례자라는 말로 통칭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중세 때에는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에게만 붙여졌던 명칭이다.
로마로 가는 순례자는 로메이 (Romei),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는 팔마 가지를 가지고 돌아온다고 해서
팔미오 (Palmio)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