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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일 체계를 다시 보자는 문제 제기 자체는 할수 있다. 다섯 개가 많다는 판단도, 국경일과 국가기념일의 위계를 나누자는 발상도 충분히 공론의 대상이 된다. 한글날을 반드시 남겨야 한다는 대목에는 나도 동의한다. 문화적 성취를 국경일로 기념하는 나라가 드물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몫이다.
문제는 칼날이 향한 곳이다.
3·1절과 개천절. 하필 그 둘이다.
박찬운 교수님이 국경일을 세 개로 정리하자고 제안했다.
제헌절과 광복절과 한글날.
3·1절은 국가기념일로 남기고, 개천절은 신화적 건국 이야기에 근거한 날이므로 다시 생각해 보자는 취지다.
현행법은 이렇게 되어 있다.
'국경일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3ㆍ1절: 3월 1일
2. 제헌절: 7월 17일
3. 광복절: 8월 15일
4. 개천절: 10월 3일
5. 한글날: 10월 9일.'
다섯 날을 국가의 경사로운 날로 못 박은 조문이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 제2조, 1949년 10월 1일 법률 제53호로 제정되어 2005년 12월 29일 법률 제7771호로 한글날이 추가됐다.
그런데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20년에 제정한 국경일은 정확히 지금 빼자고 지목된 그 둘이었다.
제정안은 1919년 12월 국무회의에서 처음 논의됐고, 명칭안 기초는 법무부 법제국이 맡았다.
당시 법제국장은 법무차장을 겸하고 있던 해공 신익희다.
안건은 제7회 임시의정원으로 넘어갔다. 회기는 1920년 2월 23일부터 3월 30일까지였고, 3월 9일 제1독회에서 날짜 문제로 한 차례 막혔다가 3월 15일 제2독회에서 통과됐다.
확정된 것은 3월 1일 '독립선언일'과 음력 10월 3일 '건국기원절'이다. 그해 3월 15일과 4월 3일 자 독립신문이 이를 공포했다.
여기에 1939년 11월 21일 제31회 임시의정원이 을사늑약이 강제된 11월 17일을 '순국선열기념일'로 정하면서 임정의 국경일은 셋이 됐다.
다만 성격이 다르다. 순국선열기념일은 추도일이다. 임시정부가 경축한 날, 곧 기뻐하고 축하하기 위해 지정한 국경일은 끝까지 둘뿐이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헌법 스스로 확정한 문장이다.
대한민국헌법 전문, 1987년 10월 29일 제9차 개정, 1988년 2월 25일 시행.
여기서 말하는 법통은 국제법상 국가승계가 아니라 정통성의 계승을 뜻한다. 그러므로 임시정부가 내린 개별 제도적 결정을 대한민국이 전부 물려받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임정의 정부형태는 대통령제에서 국무령제를 거쳐 주석제로 세 번 바뀌었고, 그중 오늘의 헌법이 그대로 이어받은 것은 없다. 헌법 전문에서 국경일 존치 의무가 곧바로 나온다고 말하면 그것은 과잉 주장이다.
헌법재판소의 태도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헌재는 전문이 국가적 과제와 질서 형성의 지도이념을 규정하고 국민적 합의를 규범화한 것으로서 최고규범성을 가지며 법령해석과 입법의 지침이 되는 규범적 효력을 갖는다고 본다.
동시에 그 자체로부터 국가의 국민에 대한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나올 수는 없다고 거듭 판시해 왔다.
2011년 8월 30일 위안부 피해자 부작위 사건에서 위헌 결정에 이른 것도 전문 단독이 아니라 전문과 제10조와 협정 제3조를 함께 놓고 읽은 결과였다.
그러니 정확한 문장은 이렇다.
국경일 법률을 어떻게 짜느냐는 입법재량의 문제다. 다만 그 재량은 전문이 정한 지도이념과 정합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3·1운동은 헌법 전문이 국가 건립의 계기로 명시한 유일한 사건이다. 4·19를 빼면 전문에 이름이 오른 역사적 사건은 그것뿐이다.
헌법이 국호와 정통성의 기점으로 직접 지목한 사건을, 그 사건을 기리는 날만 국경일에서 내리는 방식으로 정리하겠다는 제안은 입법지침과의 정합성을 스스로 설명해야 하는 부담을 진다.
개천절은 층위가 다르므로 따로 세워야 한다.
전문에 명문 근거는 없다.
대신 세 갈래의 실정법적·제도사적 근거가 있다.
첫째, 1949년의 입법 과정이다.
그해 5월 24일 행정부는 3·1절, 헌법공포일, 독립기념일, 개천절을 4대 국경일로 하는 정부안을 국무회의에서 확정해 6월 2일 제헌국회로 보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헌법공포일을 제헌절로, 독립기념일을 광복절로 이름을 고쳤고, 9월 21일 제5회 임시국회가 법률안을 확정했다. 네 날 가운데 명칭 수정 없이 원안 그대로 통과된 것은 3·1절과 개천절이다.
정부와 제헌국회가 이견 없이 합의한 두 날이 지금 정리 대상으로 지목됐다.
둘째, 제헌헌법이 자기 제정일을 적은 방식이다.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서기 1948년을 단군기원 4281년으로 표기한 것이다. 대한민국헌법 전문 말미, 1948년 7월 12일 제정, 7월 17일 공포.
이후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서력기원으로 한다'는 규정이 들어섰다. 공용연호를 단기에서 서기로 바꾼 조문이다. 연호에 관한 법률, 1961년 12월 2일 제정·공포. 그러니 국가가 이미 단기를 폐기한 것 아니냐는 반문이 가능하다.
그러나 연호 전환은 국제 통용성을 위한 행정적 선택이었고, 그때 국경일 체계에는 손대지 않았다. 연호는 바꾸되 기원일 기념은 남긴다. 그것이 당시 입법자의 판단이었다.
제헌헌법의 단기 표기가 지금 말해 주는 것은 연호의 존폐가 아니라, 전문 첫머리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1948년 시점에 무엇을 가리켰는가 하는 해석 자료다.
셋째, 임시정부의 최고 국가건설 문서다.
/'우리나라의 건국정신은 삼균제도에 역사적 근거를 두었으니 선민의 명명한 바 '수미균평위(首尾均平位)하야 흥방보태평(興邦保泰平)하리라' 하였다.
이는 사회 각층의 지력과 권력과 부력의 가짐을 고르게 하여 국가를 진흥하며 태평을 보전, 유지하려 함이니 홍익인간과 이화세계하자는 우리 민족의 지킬 바 최고의 공리임.' /
머리와 꼬리가 고르게 자리 잡아야 나라가 흥하고 태평을 보전한다는 뜻이며, 각 계층이 지력과 권력과 부력을 고르게 누리는 것이 곧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를 이루는 길이라는 선언이다.
대한민국건국강령 총강 제2항, 1941년 11월 28일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공포, 조소앙 기초.
여기 인용된 여덟 자에는 더 오랜 내력이 있다.
/'又神誌秘詞曰 如秤錘極器 秤幹扶疎樑 錘者五德地 極器百牙岡 朝降七十國 賴德護神精 首尾均平位 興邦保太平.' 신지비사에 이르기를, 저울추와 저울접시에 견주면 저울대는 부소량이요 저울추는 오덕을 갖춘 땅이며 저울접시는 백아강이다. 일흔 나라가 조공해 오고 그 덕에 힘입어 신기를 지킬 것이니, 머리와 꼬리가 고르게 자리 잡으면 나라가 흥하고 태평을 보전하리라. 고려사 권122 열전35 방기 김위제전./
조소앙이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을 정의하면서 끌어온 전거가 단군조선의 전승이었다는 뜻이다. 삼균주의는 임정 후기 국가구상의 뼈대였고, 그 뼈대가 자기 정당성의 뿌리로 지목한 것이 단군 전승과 홍익인간이었다.
그 홍익인간은 지금도 살아 있는 조문이다.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기본법 제2조, 현행.
2021년 3월 24일 이 조문에서 홍익인간을 삭제하는 개정안이 12인 발의로 제출됐다. 입법예고 기간에 반대 의견 189건이 접수됐고, 4월 22일 철회요구서가 국회의장에게 제출됐다.
개정 취지는 추상적인 교육이념을 알기 쉽게 바꾸려던 것이었다고 했다.
두 사안이 같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때는 조문에서 문구를 빼는 것이었고 이번은 기념일의 등급을 조정하자는 제안이다.
무게가 다르고 박 교수님의 이력과 진의도 다르다. 다만 작동 방식 한 가지는 겹친다. 공동체 정체성의 근원을 추상적이라거나 실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리 대상에 올리는 절차. 그리고 두 경우 모두 그 근원이 실제로 무엇을 떠받치고 있었는지에 대한 검토가 앞서지 않았다.
무엇을 떠받치고 있었는가.
2006년 7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주장이 언론에 실린 이래, 2007년과 2008년에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변경하는 법안이, 2014년에는 광복절 및 건국절로 확대 지정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2008년 8월 15일 정부는 제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 60년 중앙경축식을 직접 주최했다.
이 흐름을 정면에서 막아선 논거 하나가, 이 나라에 건국 기념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가 이미 1920년에 건국기원절로 제정해 두었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서도 정직해야 한다. 개천절을 국가기념일로 남겨두는 한 그 논거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국경일이냐 국가기념일이냐가 건국절 논쟁의 승패를 곧바로 가르지도 않는다. 그러나 등급 조정은 상징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①국기를 게양하여야 하는 날은 다음 각호와 같다.
1. '국경일에 관한 법률' 제2조의 규정에 따른 국경일
2.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제2조의 규정에 따른 기념일 중 현충일 및 국군의 날.'
전 국민이 태극기를 다는 날을 정한 조문이고, 국가기념일 가운데 여기 이름을 올린 것은 현충일과 국군의 날, 단 둘뿐이다.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1항, 현행.
국경일에서 내려온다는 말은 이 목록에서 빠진다는 뜻이다. 감상이 아니라 실정법 효과다.
비교법적 예시도 층위를 맞춰야 한다.
로마 건국신화를 근거로 이탈리아가 국가축일을 두지 않는다는 지적은 사실이다.
이탈리아 공화국의 날은 1946년 6월 2일 국민투표를 기린다. 다만 로마시 당국은 지금도 4월 21일 나탈레 디 로마를 공식 프로그램으로 편성해 기념한다.
국가 차원에서 다루지 않을 뿐 폐기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차이는 승계 선언의 유무다. 1861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은 고대 로마의 헌정적 계승을 주장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은 헌법 전문에서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명시한다. 계승을 선언하지 않은 나라의 선택을 선언한 나라의 잣대로 가져올 수는 없다.
일본 사례는 오히려 우리 쪽에 유리하게 읽힌다.
'建国をしのび、国を愛する心を養う.' 건국을 그리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른다는 뜻이다.
일본 국민의 축일에 관한 법률 제2조 중 건국기념의 날 항목. 이 축일은 1966년 축일법 개정으로 추가되어 이듬해 2월 11일부터 적용됐고, 폐지됐던 기원절과 같은 날짜다.
주목할 것은 법문이 건국기념일이 아니라 건국기념의 날이라는 점이다.
건국일 자체를 확정하지 않고 건국이라는 사실만 기념하는 형식이다.
우리는 그 정교화를 훨씬 먼저 끝냈다. 이름이 건국일이 아니라 개천절인 것이 그 증거다.
1920년 임시정부가 대종교가 쓰던 개천절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굳이 건국기원절로 새로 지은 것 역시, 특정 종교의 기념일을 민족 전체의 국가일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박 교수님이 며칠 전에 쓴 다른 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놀란의 '오디세이'를 보고 박 교수님은 긴 감상을 남겼다. 좋은 글이었다. 영화의 미덕과 결함을 고루 짚었고, 무엇보다 제우스의 법이라는 한 구절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리스 세계에서 제우스는 낯선 손님을 보호하는 신이었다. 크세니아, 곧 환대의 계율은 제우스 크세니오스의 이름으로 지켜지는 신법이었다.
박 교수님은 이것을 손님 접대의 관습을 넘어, 힘이 있다고 다 해서는 안 되고 욕망이 있다고 끝까지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근본 질서로 읽었다.
청동에서 철로의 이행이 도덕적 진보를 뜻하지는 않았다는 것, 호메로스의 세계가 야스퍼스의 축의 시대가 던질 질문을 이미 품고 있었다는 것도 박 교수님의 문장이다.
훌륭한 독법이다. 그리고 신화를 다루는 옳은 방법이다. 박 교수님은 트로이 전쟁이 실제로 있었는지, 이타카가 어디인지, 오디세우스가 몇 년에 태어났는지 따지지 않았다. 그 텍스트가 담은 규범 명제를 읽었다.
그런데 같은 분이 개천절 앞에 서면 잣대가 바뀐다.
신화적 건국 이야기에 근거해 특정한 날짜를 정하고 그것을 현대국가의 국경일로 삼는 것이 적절한가.
여기서 심문되는 것은 텍스트가 담은 규범이 아니라 날짜의 실증성이다.
대상이 달라서 결론이 갈린 것이 아니다. 해석 규칙이 달라졌기 때문에 결론이 갈렸다.
물론, 감상과 제도는 층위가 다르다. 오디세이를 감명 깊게 읽는 것과 트로이 함락일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것은 같지 않다. 맞는 말이다. 국가가 특정 날짜를 최고 등급 국가축일로 삼으려면 개인의 독서보다 높은 정당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정당화의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가 남는다.
연대의 실증인가,
규범의 공유 가능성인가.
연대의 실증을 기준으로 삼는 순간 지중해도 무사하지 않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트로이 함락 연대를 실제로 계산했다.
에포로스는 기원전 1135년, 소시비오스는 1172년, 에라토스테네스는 1184년 또는 1183년, 티마이오스는 1193년, 파로스 대리석은 1209년 또는 1208년, 디카이아르코스는 1212년, 헤로도토스는 대략 1250년, 두리스는 1334년으로 잡았다.
200년 폭이다.
어떤 이들은 날짜까지 제시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에라토스테네스의 연대가 고대 세계의 보편적 기준점이 됐다.
로마는 한술 더 떴다. 로물루스가 도시를 세웠다는 기원전 753년을 아예 연호의 기점으로 삼아 도시 건국 이래 몇 년이라는 방식으로 햇수를 셌다.
신화에 연대를 부여하고 그것을 공적 기준으로 삼는 일은 지중해 고전 문명의 표준 절차였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인들 자신의 인식이다.
그들은 트로이 전쟁을 신화시대의 마지막 사건이자 역사시대의 첫 사건으로 놓았다. 단군 전승이 우리 안에서 차지하는 자리와 정확히 같다.
날짜의 임의성을 근거로 개천절의 국경일 자격을 부정하려면, 같은 잣대를 에라토스테네스와 로마 연호에도 들이대야 한다.
규범의 공유 가능성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야기는 더 간단해진다.
박 교수님이 세 시간짜리 영화에서 붙잡아 낸 명제, 곧 인간이 스스로 힘과 욕망에 한계를 두어야 세계가 유지된다는 그 명제의 우리말 판본이 홍익인간이고 이화세계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이치로 세상을 다스린다.
힘의 정당성을 힘 자체가 아니라 타자의 이익에서 찾으라는 요구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제우스의 법은 어느 나라 법전에도 없다.
홍익인간은 교육기본법 제2조의 조문이다. 조소앙이 1941년 건국강령에 민족 최고의 공리로 적었고, 1949년 교육법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살아 있다.
박 교수님이 극장에서 발견하고 감탄한 그 질서를, 우리는 법전 안에 넣어 두었다. 세계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호메로스에게는 관대하고 단군에게는 엄격한 잣대.
이 비대칭은 박 교수님 한 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물려받은 습관이다. 조선사편수회 이래 한국의 고대 전승은 증명하라는 요구 앞에 서야 했고, 지중해의 전승은 해석하라는 초대를 받았다.
그 위계는 학문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자기가 어느 쪽 잣대를 쥐고 있는지 자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되새길 만한 문장이 있다.
/'L'oubli, et je dirai même l'erreur historique, sont un facteur essentiel de la création d'une nation, et c'est ainsi que le progrès des études historiques est souvent pour la nationalité un danger.'
망각, 그리고 나는 역사적 오류까지도 말하겠는데, 그것은 한 국민을 만드는 본질적 요소다. 그래서 역사 연구의 진보는 종종 국민됨에 위험이 된다. 에르네스트 르낭, '국민이란 무엇인가', 소르본 강연, 1882년 3월 11일./
이 문장은 양쪽 모두가 쓸 수 있다. 개천절을 옹호하는 데도, 개천절을 신화라 부르는 데도. 그래서 여기서 취할 것은 같은 강연의 결론뿐이다.
/'L'existence d'une nation est (pardonnez-moi cette métaphore) un plébiscite de tous les jours, comme l'existence de l'individu est une affirmation perpétuelle de vie.' 한 국민의 존재는, 이 비유를 용서하시라, 매일매일의 인민투표다. 한 개인의 존재가 삶에 대한 끊임없는 긍정인 것과 같다./
국경일의 존폐를 가르는 기준은 고증의 성패가 아니라 지금의 동의라는 뜻이다. 이 기준이 개천절 존치를 자동으로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다만 신화라서 뺀다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쪽에서도 반박되지 않은 물음 하나를 남겨 둔다. 국가가 특정 종교에서 발원한 기념일을 최고 등급의 국가축일로 유지하는 것이 정교분리 원칙과 어떻게 조화되는가.
임정의 건국기원절 명명으로 상당 부분 해소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질문이다. 개천절 경축식에 대통령이 아닌 국무총리가 참석해 온 오랜 관행의 밑바닥에도 이 문제가 깔려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도 완결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순서는 분명하다.
국경일을 줄이자는 논의는 열려 있다. 그 논의의 첫 삽을 임시정부가 경축한 두 날에 꽂는 것은 계보를 거스르는 일이다. 정부와 제헌국회가 이견 없이 합의했던 두 날이기도 하다.
3·1절을 내리는 제안은 헌법 전문이 국가의 기점으로 지목한 사건과 국경일 체계 사이의 관계를 먼저 정리하고 나와야 한다.
개천절을 내리는 제안은 그 날이 25년째 무엇을 막아 서 왔는지, 그리고 국기법 제8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계산에 넣어야 한다.
둘 다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오디세우스는 자기 이타카로 돌아갔다. 돌아간 곳은 섬이 아니라 질서였다. 우리에게도 돌아갈 자리가 있다. 다만 그 자리를 신화라 부르며 먼저 지우고 나면, 돌아간다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