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10.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행 19:8~12
*제목; 사도행전강해(36) 에베소에서 하나님 나라를 강론하다!
1. 바울의 에베소 사역
바울이 가장 오래토록 사역한 곳 1위는 바로 “에베소”입니다. 회당에서 3개월, 두란노서원에서 2년, 총 3년 가까이를 사역한 것입니다.(참고로 2위는 ‘고린도’입니다. 여기서는 1년 6개월 사역합니다.)
이는 그 만큼 에베소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오래 사역한 이유가 드러납니다. ‘8~9절’입니다.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행 19:8~9)
에베소 사람들의 “마음이 굳어 (말씀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무리 앞에서 이 복음(도)를 비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출애굽기’ 표현으로는 “완악”하였고, 예수님의 표현으로는 “길가에 떨어진 씨앗”같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출 4:21)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마 13:3~4)
그 마음의 세상의 것으로 딱딱하게 굳어져 말씀이 뿌려져도 뿌리가 내리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복음과 은혜, 그리고 특별히 말씀에 완악하고 은혜를 받지 못해, 주시는 모든 것을 새들(사탄)에게 빼앗겨 버리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에베소 사람들과 우리들은 말씀과 복음과 은혜를 받고도 큰 열매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마음 밭이 이렇게 딱딱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에베소의 경우를 들어서 설명하면, 그곳은 우상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철학자가 가장 사랑받는 도시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마음보좌에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자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판단과 평가를 결정하는 세상의 지식이 충만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송이 꿀과 같은 달콤한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와 같습니다. 우리 마음의 보좌에 주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생각이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보좌에 다시 주님을 모시어 들여야 합니다. 주님이 나의 왕이시요, 나의 모든 결정권의 주인이십니다. 왜냐하면 그 핏값으로 죄에서 나를 사셔서, 나에게 두 번이나 생명을 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생각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을 다시 성령으로 기경(起耕)하고, 말씀을 씨를 받아 ‘30배, 60, 100배’의 열매를 맺는 놀라운 경험을 누려야 합니다. (혹시 아직 ‘말씀의 씨’를 뿌리지 조차 않는 자들은 없습니까?)
그러나 사도바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그러할수록 더욱 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강론하였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가 복음의 목표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통치”(상태)의 개념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던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면 그곳이 하나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의 놀라운 경험 속에서 겨룩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에베소 사람들이 이를 누리기를 바라면서, 이들에게 3년을 가르친 것입니다.
2. 두란노서원에서 가르치다!
처음에는 이 사역을 회당에서 실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사람들이 반응이 좋지 못하자, 바울은 아예 “두란노 서원”을 빌려서 2년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은 아무도 말리지 못한 것입니다.
“두란노 서원”은 어떤 곳입니다. 이는 에베소에서 가장 유명했던 철학자 “티란노스”를 기념하며 세운 서원(교육처)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씨에스타”라는 풍습이 있습니다. ‘오전11시~오후4시’ 사이의 더운 시간에는 오침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 시간에 이 서원을 빌려서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강론한 것입니다.
자비량 선교사였던 바울은 다른 시간에는 “천막 짓는 일”(가죽을 가공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생계와 선교비를 마련하여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쉬는 시간에 “두란노 서원”에서 “하나님 나라와 복음”에 대해서 가르친 것입니다. 배운 자들도 대단하지만, 가르치는 바울의 열심은 더 대단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메섹”에서 바울을 픽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헌신을 결코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이를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신 것입니다.” 아멘!!! ‘11~12절’을 봅시다.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행 19:11~12)
바울의 사역에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함께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적 역사를 학생들이 다 체험하게 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알고 경험케 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바울의 사역을 점점 더 큰 열매를 맺어가기 시작합니다. ‘20절’입니다.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행 19:20)
아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의 보좌를 지킵시다!
내 안에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채워갑시다.
그러면 말씀이 내 안에 자리하고 열매 맺게 되고,
결국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하나님 자녀가 될 것입니다.
때로는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를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하시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또 우리 구원을 위해서 이토록 확신을 가지고 분투한 바울을 기억하면서,
견디고 달려가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흔들리지 말고 달려가시기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에베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하나님 나라의 선포)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그들의 마음의 보좌에 우상이 가득했기 때문이고, 세상의 철학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송이꿀처럼 달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의 보좌에 엉뚱한 것이 있는 것이고, 우리 안에 세상의 기준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이를 버리고, "주님의 이름을 부릅시다!" 주께서 그 영광을 보여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