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군의 외도[外島]
외도 개요
외도는 면적 0.65km2, 해안선 길이 1.7km, 최고점 50m이며 11가구, 25명이 거주한다. 출입하기가 어려웠던 시절 '섬 밖의 외딴 섬'이라고 해서 '외도'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그동안 보령군에 속해 있었다가 1982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산군 안면읍 어언8리에 이속되었다. 그 후 태안군에 편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태안군 안면도에 위치한 외도는 안면도 승언리와 불과 2.5km 떨어져 있지만 일반인의 출입이 쉽지 않은 곳이다.
외도 마을
특히 겨울철에는 불어오는 북풍 때문에 유배지와 같은 처지가 된다. 안면읍에 속한 이 섬은 현재는 연륙교 건설로 왕래가 수시로 가능한 안면도 승언리 선착장에서 배를 이용해야만 출입할 수 있다. 태안군의 대표 관광지인 꽃지해수욕장에서도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지만, 여타 사람이 거주하는 유인도와 달리 여객선과 유람선이 운행되지 않아 일반인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다.
외도와의 깊은 인연
2005년 11월에 안익현님과 함께 인천으로 항해 중 이 섬에 들러 돌아보게 되었다. 그 뒤에 2007년도 4월 MBC 공익프로인 느낌표 '산 넘고 물 건너 바다를 건너다' 촬영 시 게스트로 이 섬을 전국에 알리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 뒤 2007년도 5월에 다시 이 섬에 들어와 전기가 없어 자가발전기를 돌리는 이곳 주민들을 위하여 발전소를 만들어 달라는 탄원서를 만들어 면사무소에 접수를 시켰다. 이렇게 외도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곳이 해산물의 보고이기 때문이었다. 11가구 25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외도는, 섬의 면적이 좁고 바다와 인접해 생활하는 탓에 수산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섬을 방문해서 해안가에서 아주 색다른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예닐곱 명쯤 되는 섬 아낙들이 숨비 소리를 거칠게 내며 물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녀 하면 제주도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가까이 다가가 사정을 알아보았다. 외도는 해산물이 풍부한 섬으로 섬 넓이의 3배에 달하는 암초대가 발달해 있어 해삼, 전복이 잘 자란다는 것이다. 이를 알고 처음에는 제주 해녀들이 이곳까지 원정을 와서 물질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주 출신 해녀인 박순열 씨가 이 마을의 황원영 어촌계장에게 시집을 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박씨가 마을 아낙들에게 물질을 가르쳐준 것이다. 그리하여 수영도 제대로 못하던 마을 아낙들이 현재는 능숙한 해녀가 되어 전복, 해삼, 소라, 미역 등 서해안에서 최고로 질이 좋은 해산물을 건져 올리고 있었다. 워낙 질이 좋고 채취량이 많아 외도 주민들의 수입은 육지 사람들이 부럽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살아가기에 불편한 사항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어촌 전기 사업법에 의하면 육지와 가까운 섬은 5가구 이상이면 높은 철탑을 통하여 전기를 공급해 주게 되어 있다. 그리고 10가구 이상이면 내연발전소를 만들어서 24시간 전기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 가뜩이나 섬이 작아서 서해의 거친 파도가 덮쳐올 때면 안면도 승언8구 선창으로 부랴부랴 피난을 가야 하는 섬사람들이다. 전기 시설뿐만 아니라 낙후된 선착장 시설도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후 지난 2010년 3월 18일 외도 내연발전소 준공식에 초청을 받고 아내와 2명의 일행과 함께 이곳에 왔다. 2007년 mbc 느낌표 촬영이 끝난 다음 날 외도에 들어가서 내연발전소를 지을 수 있도록 탄원서에 서명을 받아서 접수시켜 주었는데 이제 결실을 맺어 3년 만에 준공식을 한다니 감개무량하였다.
마을을 뒤로하고 맨 꼭대기 부근에 있는 분교 터를 지나면 이곳이 예전 학교 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이름 모를 풀들이 우거져 있어서 학교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이곳저곳 파손된 이승복 어린이 동상을 통해서나마 유추해볼 수 있다. 1987년도에 개교한 신야국민학교 외도분교는 미처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졸업생 87명을 배출한 후 1994년 폐교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황원영 외도어촌계장은 "섬 주민치고 뭍으로 학교를 보내지 않는 부모가 없지. 그래도 학교가 있을 때가 좋았지요. 그때는 섬 전체가 떠들썩했다"며 "이제는 노인들만 남았지만 그래도 해산물이 많아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출처:(한국의 섬 - 충청남도)
2024-04-16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