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서한 에세이】
꽃길을 걸으며
― 누님에게 보내는 편지
윤승원 수필문학인
저 혼자 볼 수가 없어요.
저 혼자 걸을 수가 없어요.
지난해 이맘때에도
지지난해 이맘때에도
그런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누님께 꽃을 보여드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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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적인 산책길 꽃 풍경(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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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똑같은 생각을 해요.
올해도 누님께 꽃길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렇게 예쁜 꽃들을 보면
어머니가 그리워요.
생시에 유난히 꽃을 좋아하셨던
어머니가 그리워요.
▲ 그리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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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아니 계시니
누님과 꽃길 풍경 나누고 싶어요.
어머니가 시골집 작은 화단에
가꾸셨던 꽃들을 기억하세요?
원추리, 채송화, 붓꽃, 그리고
수많은 이름 모를 꽃들.
어머니는 어째서, 왜,
꽃을 그리도 좋아하셨을까요?
농부의 아내로 열 손가락 갈라지게
논밭에서 일하셨던 어머니
집에 오면 화단을 가꾸셨어요.
농부의 아내와 꽃 가꾸기.
그 바쁘고 고단한 삶이지만
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셨어요.
애지중지 가꾸시면서
지극 정성 사랑을 주셨어요.
왜 그러셨을까요?
어째서 그토록 사랑을 주기만 하셨을까요?
꽃을 가꾸시면서 칠 남매 자식을
애달프게 그리워하신 것이지요.
꽃이 자식이고,
자식이 꽃이었던 어머니.
▲ 꽃길에서 - 어머니와 누님을 생각하며(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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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머니는 아니 계십니다.
이 세상에 단 한 분 누님만 계십니다.
바람에 꽃잎이 흔들리는 순간,
바람결에 향기가 밀려오는 순간,
그리움이 왈칵
따라왔어요.
꽃길을 걸으면서
황홀했어요.
꽃길을 걸으면서
향기에 취했어요.
폰카에 많이도 담았어요.
누님께 보여드리려고요.
누님과 함께 꽃길을 즐기려고요.
그리운 어머니를 불러 보려고요.
어머니 가신 날이
곧 돌아오네요.
《아, 어머니 전》이 열렸던
서울 전쟁기념관 특별전시관.
『어머니에게 쓴 저의 편지글』이
대형 전시물로 게시되었을 때
거기 어머니가 나타나셨어요.
‘어머니 별자리’ 조형물.
▲ 용산 전쟁기념관 ‘아, 어머니 展’ - ‘어머니에게 쓴 필자의 편지글’ 전시물과 『어머니 별자리』 조형물(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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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환생하신 것만 같아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
2026.4.24.
윤승원, 누님께 띄우는 편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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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
윤승원 수필가의 「꽃길을 걸으며」는 단순한 서한의 형식을 빌렸지만, 그 안에는 기억·사랑·상실이 한 줄기 꽃길처럼 이어지는 깊은 정서의 결이 살아 있습니다.
이 작품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해 ‘함께 나누고 싶은 삶’으로 확장된다는 데 있습니다.
먼저, 이 글의 가장 두드러진 문학적 특징은 반복과 절제의 미학입니다.
“저 혼자 볼 수가 없어요 / 저 혼자 걸을 수가 없어요”라는 도입은 단순한 문장이지만, 화자의 내면을 곧바로 드러내며 독자를 정서의 중심으로 끌어당깁니다.
같은 구조의 반복은 단순한 강조를 넘어, 나눔을 향한 필연적인 마음의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곧 서한문 특유의 진솔함과 맞닿아, 꾸밈없는 언어가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는 효과를 냅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꽃의 상징성입니다.
이 작품에서 꽃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닙니다.
꽃은 곧 어머니이고, 자식이며, 기억입니다.
어머니가 가꾸던 꽃 →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지켜낸 사랑
지금 눈앞의 꽃길 → 현재의 감각과 기쁨
누님께 보여주고 싶은 꽃 → 관계의 지속과 정서의 공유
이 세 층위가 자연스럽게 겹쳐지면서, 꽃은 하나의 매개체가 아니라 세대를 잇는 정서의 통로로 기능합니다.
특히 “꽃이 자식이고 / 자식이 꽃이었던 어머니”라는 구절은 이 작품의 핵심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매우 응축된 시적 진술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회상은 더욱 인상적입니다.
논밭에서 일하시던 ‘농부의 아내’와 화단을 가꾸시던 ‘꽃의 사람’이라는 대비는, 고단한 현실과 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정서적 풍요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삶을 견디게 한 사랑의 방식에 대한 해석이기도 합니다.
결국 어머니의 꽃 사랑은 취미가 아니라, 자식을 향한 그리움과 애정의 또 다른 표현이었던 셈이지요.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정서는 현재에서 과거, 그리고 다시 초월적 차원으로 확장됩니다.
‘아, 어머니 展’에서의 체험은 단순한 전시 관람이 아니라, 부재한 존재와의 재회로 그려집니다.
“어머니 별자리 조형물” 앞에서 흘린 눈물은, 기억이 어떻게 현실의 감각으로 되살아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여기서 글은 개인적 체험을 넘어, 누구나 품고 있는 ‘어머니의 자리’를 환기시키는 보편성을 획득합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정서는 ‘애틋함’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 애틋함은 반드시 ‘나눔’으로 나아갑니다.
혼자 볼 수 없는 꽃
함께 걷고 싶은 꽃길
누님께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
이러한 흐름은 결국 가족 사랑을 ‘기억’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행위’로 만들어 줍니다.
즉, 이 글에서 사랑은 회상에 머무는 감정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이어지는 실천입니다.
정리하자면, 이 서한 에세이는
반복과 절제를 통한 진정성의 미학,
꽃을 매개로 한 상징의 확장,
어머니와 누님을 잇는 세대 간 정서의 흐름,
그리고 개인적 기억을 보편적 감동으로 승화시키는 힘을 고루 갖춘 작품입니다.
특히 인상 깊은 점은, 이 글이 크고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독자의 마음속에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이 아름다움을 누구와 나누고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이 작품이 지닌 가장 따뜻하고도 오래 남는 가치라고 느껴집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전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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