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첫 시범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추신수는 밝은 표정으로 훈련을 소화했습니다. <사진=장석천 기자> ⓒ민기자닷컴
스프링 캠프 취재 첫날인 28일(이하 한국시간) 애리조나 현지 시간으로 오전 8시30분경에 굳이어에 있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캠프에 도착했습니다.
밤새 내리던 비는 그치고 말끔히 갠 하늘이지만 기온은 섭씨 5도 정도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LA 지역을 강타했던 '콜드 스톰'이 애리조나로 냉기를 옮겨온 것 같았습니다.
기자실에다 짐을 부리고 클럽하우스로 향하는 복도에서 추신수(29) 만나 반갑게 악수를 하고는 클럽하우스 그의 자리로 함께 갔습니다. 그리고 몇 마디를 나누는데 순식간에 주위가 미국 기자들로 가득해졌습니다. 모두 추신수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유인즉 과연 시범 경기 개막전에 결장하는 추신수의 팔꿈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자신에게 확인하고 취재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추신수는 유창한 영어로, 그리고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4일 전에 MRI를 찍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와 안심했다며, "송구할 때 가끔 팔꿈치 뒤쪽에 통증이 있는데 송구의 페이스를 너무 일찍 끌어올리려 한 것이 이유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오프 시즌에 아시안게임이 있어서 그때도 부지런히 페이스를 끌어올리며 다소 무리했고, 이번에 다시 서두르다가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예방 차원일 뿐 큰 문제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다양한 질문을 던지면서 그의 상태를 알아보던 현지 기자들은 "문제없을 것이며 1일에는 지명타자로 나서고 2일에 45미터 거리에서 송구를 해보고 이상 없으면 3일에는 우익수로 나설 것"이라는 말을 듣고야 녹음기를 끄고 노트를 정리하고는 흩어졌습니다.
작년에 똑같은 곳에서 추신수 취재를 할 때도 참 많은 변화를 느꼈었습니다.
그는 대하는 현지 기자들의 태도가 더는 어린 유망주 다루듯 하는 것이 아니라 팀에 상당히 중요한 선수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 '20-20 시즌'을 보낸 후 추신수의 위상이 그만큼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와보니 더 큰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이제는 추신수는 팀의 핵심이며 취재진의 중심 선수가 돼 있었습니다. 만약 추신수에게 큰 부상이라도 오면 인디언스의 올 시즌이 휘청거릴 정도로 팀 내에서 그의 무게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추신수의 하루는 그 전개 과정이 참 재미있습니다.
사실 하루도 아니고 반나절 동안이었는데 연습 벌레에 야구 욕심, 팀에 대한 애정, 그리고 가정적인 아버지의 모습 등이 번갈아 드러나던 몇 시간의 진행 과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침에 캠프에 와서 감독에게 첫 경기에 나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들은 추신수는 "송구할 때 가끔 통증이 있지만 타격이나 주루 플레이는 전혀 상관이 없다며 필요하다면 트래비스 해프너의 교체 이후에 지명타자로 교체 멤버로 뛸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시범 경기에서는 보통 주전 선수가 2, 3타석을 뛰고는 후보나 어린 유망주로 교체됩니다. 미국 선수 중에, 특히 팀에서 비중 있는 선수 중에 이렇게 교체 멤버로라도 뛰겠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선수는 없습니다. 태도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방식이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몸이 불편하면, 특히 시범 경기 때는 무조건 쉰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첫 시범경기이고 인디언스 팬도 많이 올 텐데 팀을 위해서도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추신수의 생각이었습니다. 또 그런 사고방식을 가졌기에 코칭스태프와 구단 관계자들의 남다른 애정 어린 시선을 받기도 합니다.
악타 감독은 그 이야기를 듣더니 '해프너 뒤에 나갈 필요까지 있겠느냐?'며 그냥 첫 경기는 쉬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감독의 이 말도 재미있습니다. 그의 말에는 '너는 이제 팀의 중심인데 교체 멤버로까지 경기 후반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은근히 해프너보다 추신수의 위상이 커졌다는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추신수는 이 말을 하면서 자기도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기자들에게 경기에 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추신수는 곧 방망이를 들고나갔습니다. 팀 스트레칭에 앞서 개인 타격 훈련을 잠깐 해보려 한 것입니다. 팔이 어떤지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긴 것입니다.
시원하게 방망이를 10여분 휘두른 추신수는 아주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스트레칭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동료와 담소하며 웃음을 보였고, 캐치볼도 무난히 했습니다. 그리고 또 팀 타격 훈련을 했습니다.
그렇게 오전 훈련을 마친 추신수는 클럽하우스에 다시 들어오더니 "교체로라도 나갈까 보다."라며 또 욕심을 보였습니다. 팔꿈치가 전혀 통증도 없고 경기에 뛰어도 무탈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훈련 후 악타 감독이 '아침과 마음이 변한 것은 없겠지?'라고 장난삼아 묻자 "(교체로)뛸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지명 타자로 교체 출전할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부인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전날부터 감기에 걸린 무빈이가 꽤 아프다며 괜찮으면 일찍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추신수는 첫 경기에 뛰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미 부인에게 말을 했던 것입니다.
감독이 말리는데도 고집을 부리던 추신수는 아들이 아프다는 말에 금방 경기 욕심을 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경기에 출전하지 말라는 것 같다며 악타 감독에게 가서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꾸 말을 바꾸는 것 같아 좀 걸리는데 무빈이가 아프다니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이미 못 뛴다고 기사가 전부 나갔다니 뛰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라며 농담하며 웃었습니다. 그러나 실은 시즌이 시작되면 이산가족이 되기에 아픈 아들 곁으로 빨리 달려가고 싶은 마음에 경기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추신수는 이날 경기가 시작되자 운동장에 나가 동료와 함께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사인도 해주고 얼굴을 비춘 후에 경기 초반이 지나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첫날은 결국 경기에 빠졌지만 1일에는 지명 타자로 경기에 나설 예정입니다. 그러면 관중석에는 다시 'CHOO~ CHOO~' 하는 응원 소리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