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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도로를 완주한 바이킹족들에게 여행사측에서 그들이 촬영한 사진이 든 CD와 함께 기념품으로 선물한 티셔츠의 앞쪽.
20일동안의 볼리비아 여행중 18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 이틀간은 별 계획없이 휴식을 취하면서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보기로 마음먹었었는데 뜻밖의 모험에 도전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배낭족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에 위치한 한 작은 여행사에서 죽음의 도로 약 50km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행 상품이 있음을 알게 된것이다.
자전거는 물론 모든 장비를 빌려주고 가이드와 운전기사까지 동행하는 당일 여행이였다.
티셔츠의 뒷면에 새겨진 바이킹 코스.
나는 큰 흥미를가지고 여행사로 찾아가 바이킹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 새벽 7시에 여행사 사무실에 모여 간단한 아침을 먹고 정식 출발지인 해발 4700m 에
위치한 라 꿈브레(la cumbre)까지 함께 할 일행들과 차로 이동한다.
* 그곳에서 헬멧이랑 장갑, 그리고 추위와 사고에 대비해서 방수가 되는 두꺼운
옷을 더 껴입고 각자에게 적합한 자전거를 배당받아 그에 대한 주의 사항과 요령 등,
간단한 설명을 듣고 출발을 한다.
고장에 대비해서 도전자는 4명이지만 찦차위에는 6대의 자전거를 준비 해서 출발지인 라 꿈브레의
해발 4700m에서 해발 1100m에 위치한 조로사(yolosa)까지 가는 바이킹이였다.
약 20km까지는 아스팔트 포장길이지만 차들이 함께 다니는 왕복 차선이라 그 역시
위험하긴 마찬가지였지만 나머지 30km는 그야말로 비포장 흙길이었다.
그냥 흙길이 아니라 자잘한 돌들이 적지않게 깔려있는데다 군데 군데 박혀 있는
큰 돌과 패여있는 구덩이도 적지 않아 여간 험하고 위험한게 아니였다.
더구나 자잘한 돌들은 어쩌다 다니는 트럭들에 의해 길 가운데나 어느 한쪽으로 몰려 있어
급 경사를 내려 오다가 자칫 돌무더기에서 미끄러져 핸들이라도 놓치는 날에는
그대로 천길 낭떠러지행이 되는 것이다.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도 20대 영국 청년이 미끄러져서 그대로 낭떠러지로 굴러 시신도 못 찾았다고 했다.
일행은 이렇게 네명.
왼쪽의 영국 청년과 프랑스 아가씨는 연인 사이였고 맨 오른쪽의 청년은 스위스국적의 토목학을 전공하고
다리 건설하는 일을 한다는 아주 예의 바르고 다정했던 청년.
바이킹하는 동안 나를 배려해서 스피드를 맞춰주었고 간식을 챙겨 주는등 ...
너무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모두들 무사함을 기원하며 ...... 화.이.팅!!
드디어 출발 !!
처음 여행사측의 설명을 들은후 선듯 신청을 하고 돈까지 지불을 했지만 문제는 자전거였다.
내가 자전거를 타 본지가 거의 40년전의 일이였기 때문이다.
한번 배운 운전이나 자전거 타기는 잊는 법이 없다고는 하지만
내가 가기로 마음 먹은 곳이 일년에 200~300명씩 사고로 죽는다는
" 죽음의 도로"가 아닌가.
더구나 여행사측에서는 그동안 함께 간 여행객중에 내가 젤 고령이라며 은근히 걱정스레 말해서
나의 오기를 발동케했고 차라리 그냥 차를 타고 자전거 뒤를 따라가자고 말해 내
자존심에 작은 상처를 주기까지 했다.
난 그 날밤, 불안한 마음에 잠까지 설쳤었다.
잠깐씩 잠이 들었을때에도 낭떠러지로 곤두박질 하다가 놀라 깨어나는
악몽을 꾸기까지 했었다.
정말 겁이 났지만 어느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 한번 해 보는거야 ! 남들이 하는 걸 내가 왜 못해.
시작도 하기전에 지레 겁부터 먹지말고 해 보다가 정말 무섭고 힘들면 차에 올라 뒤따라 가기로 하지, 뭐! .... 라고
그렇게 편하게 마음을 먹으려 애 쓰며 용기를 냈다.
또한, 언제나처럼 인명은 재천((人命在天) )이라는 옛말이 용기를 주기도 했다.
내가 여기서 죽을 운명이라면 그 어느곳에서도 죽음을 피할수는 없는게 아닐까,
내 나이 육십,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했다 ....... 자못 비장한 마음까지 가지고 출발을 했다.
젊어서 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
남아있는 내 인생에서 그나마 가장 젊은< 지금 >부터라도 마음먹은 것들에 하나하나 도전해 보자던 지난 날의
각오를 되새기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려 자기 최면을 걸었다.
그러자 어느새 두려움은 조금씩 비켜나고 그 자리엔 설렘과 기대, 그리고 즐거움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를 자전거를 타고 장장 50km의 거리를 해발 3700m 에서 출발해서
1100m까지 가는 아주 특별한 모험에 도전하게 되었다.
높은 산,
깊은 계곡,
깎아지른 듯한 절벽,
흰눈을 머리에 이고 웅장한 자태로 서 있는 설산,
그 사이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진 좁다란 길.
언듯언듯 본 주변 경관은 눈을 의심케 할만큼 아름다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오로지 자전거타기에 집중하느라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만큼 꼭 그만큼 아름답기로도 소문난 경관들을 제대로 감상할수가 없었다.
더구나 젊은이들과 속도를 어느정도는 맞춰 줘야한다는 부담감때문에 열심히 길만 바라보며 페달만을 밟았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쉽다.
사진들도 가이드가 찍어서 CD에 넣어준것이 거의 전부일 정도여서 언제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그 길에 서 보고 싶다.
먼 산은 구름을 이고 있거나 산허리에 안개띠를 두르고 있었다.
어느 구간에선 멀리서 옅은 계곡의 물소리가 들렸지만, 골이 너무 깊은탓에 계곡으로 흐르는 물은 볼수가 없었다.
소리로만 들리는 그 계곡의 물은 흘러 흘러서 코로이코강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그 계곡에는 추락한 자동차의 잔해들이 수없이 널부러져 있지만 어쩔수가 없다고 ..... 사고가 나도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을 할수 없다고도 했다.
구비구비 ~~ 구불구불 ~~ 끝이 없을것만 같이 이어진 도로.... 아직은 견딜만 한데도 이어진 길을 보니 기가 죽는것만 같아
스스로에게 " 난, 끝까지 갈수있어 ! " 라고 주문처럼 외우며 패달을 밟았다.
20km의 아스팔트 구간이 끝나고 흙길이 시작되면서 우리들은 다시한번 서로에게 힘을 불러넣어주며 화.이.팅. 을 외쳤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를 지나며 .........
그 절벽에서는 위에서 물이 떨어져 페달 밟느라 지친 몸을 서늘하게 해 주기도 했지만
질퍽한 길위에 깔린 돌들과 좁은 도로 옆으로 깊은 낭떠러지는 오금이 저릴만큼 아찔해서
차마 가까이 서 볼수조차 없었다.
죽음의 도로에서 바이킹을 한다면 반드시 이 구간에서 인증샷을 남긴다.
사방이 한눈에 보이는 절경이지만 그 만큼 오싹하는 공포도 함께하는 멋진 구간이다.
32살의 스위스 청년과의 기념 사진.
지금은 이름도 잊었지만 정말 고맙고 다정했던 청년이였다.
나와 함께 스피드를 맞춰가며 내가 힘든 기색이면 가이드에게 조금 쉬어가자고 말해 주기도 하며
배려했던 정말 예의 바른 청년.
이 친구가 함께 해 주지 않았다면 정말 중간에서 차를 타고 갔을수도 .......
해발고도가 낮아질수록 기온도 올라가고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씩 옷을 벗어야 했다.
여기서 잠시 휴식도 취하고 간식을 먹었다.
우리는 다시한번 서로를 격려하며 도착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얘기했었다.
드디어 ........ 목적지에 도착.
흙먼지 가득한 옷을 털고 기분좋은 피로감을 느끼며 함께 한 자전거를 다시 차에 싣었다.
이제는 이곳 어느 호텔에서 소박하게 차려진 부페식 점심을 먹으러 간다.
가기전에 마지막 샷.
첫 출발지인 라 꿈브레(la cumbre)에서는 높은 해발에 이른 아침시간이라 몹시 추웠었다.
잔뜩 챙겨 입고 빌린 장비를 착용하고도 경사진 도로를 타고 내려 올때는 손과 코끝이
시려웠고 콧물까지 흘렀었다.
그러나 밑으로 내려올수록 기온도 올라가 도착지인 조로사(yolosa)는 더운 여름 날씨로 사람들은 반팔에
반바지를 입었고 주변엔 여름꽃들이 만발해 있었으며 우리들은 준비해간 수영복을 입고 야외 풀에서 수영을 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꼬로이꼬(coroico)가 아마존 정글로 갈수 있는 길목이라고 헀다.
불과 몇시간만에 겨울에서 여름으로 순간이동을 한듯 한 느낌이였다.
그렇게 .......그 곳에서 제공하는 늦은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난뒤
오후 7시쯤 라파스의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돌아 왔다.
그러나 그 후 약 일주일동안을 험한 도로를 장시간 자전거를 탄 후유증을 톡톡히 앓았다.
엉덩이가 아파서 제대로 앉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첫댓글 발코니님 멋집니다. 너무 멋져요.를 보내며 입니다.
그대의 건강과 도전정신과 용기에 멀리서
오십대 중반부터 매년 한달씩 홀로 배낭여행으로 여러나라들을 다녔습니다.
이곳에 살면서 적어도 중남미에 대해서는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박수에 더욱 힘이 납니다.
앞으로 기회 닿는대로 여행 사진과 기억들을 올려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합니다~ 멋져요~~~~^~^
예은 님,
멋져 보였다니 ~~ 정말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고운꿈님께서도 고운 꿈 많이 꾸시고 한번 도전해 보세요.
제가 웅원해 드릴께요 !!
10년전 대만에서 21명의 여행자 모임에서 페러글라딩을 하는데, 지원자가 아무도 없어 나 혼자 했는데
활강 길에서 낭떨어지로 뛰는 스릴이 서늘 하기는 해도(전문인 뒤에 타는것임) 기억이 생생해요,
우리나라에는 보령 성주산에서 매주 한다고 합니다.
이번달 14일부터 일주일간 또 떠나는데 이제는 못할것 같아요,ㅎ
오래도록 멋진 추억을 만드시었내요, 행복하세요~~
2년 전, 콜롬비아 여행을 하면서 세계 젊은이들의 액티비티<레포츠의 천국>으로 알려진 산힐에서 페러글라이딩을
한적이 있었지요.
지금도 그 담배농장 언덕이 눈에 선하네요.
저는 ... 이건 <내가 못 해> 라는 생각을 지우려 노력한답니다.
나이가 좀더 먹었을 뿐, 못 할 것은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죠.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는 가슴 가득한 성취감과 모든것을 아우르는 자신감,
그리고 젊음을 무색케하는 열정으로 돌아온답니다.
용기를 내 보세요!
추억, 그 이상의 것을 얻을 것입니다.
대단하십니다. 그냥 걸어 다니는 여행도 힘들다하는데 바이킹으로 와~우.
여행이라면 자다가도 벌떡일어나는 저도 부럽습니다.늘 안전한 여행길 되시고 화이팅!
수아리님, 고맙습니다.
여행은 힘들고 고달픈 제 삶에 대한 스스로에게 주는 칭찬이자 보상같은 거랍니다.
그래서 일상으로 돌아오면 더 열심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되지요.
건강 잘 챙기셔서 행복하고 감사한 여행 길에 자주 떠나 보세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07.10 19:47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07.11 04:17
대단하세요! 국내에 계시면 잔차방에 모시고 싶은데
와~ 우 ! ~~~
산악 자전거잖아요. 더 대단하신데요?
자전거방이 있었군요. 고맙습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면 생각해 볼께요.
항상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발코니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 글과 사진 자전차방에 올려주시면 좋겠네요.
언제 한국에 나오시면 함께 한번 달려보면 좋겠습니다.
이름만큼이나 고우신 분이시군요.
자전거 타는 모습이 아주 멋지세요. 물론 나이보다 훨씬 건강하시고 고우실것 같네요.
살다보면 .... 언제 그런 날이 오게되지 않을까요
건투를 빌께요
멋진 삶을 사시는군요..모습도 아름다우시구요
항상..기쁜 마음 되시고 건강과 행복을 기원 드립니다.
감사, 감사, ... 감사합니다.
금빛별님께서도 건강하시고 나날이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