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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26(주) 주일예배 / 제목 : 혼인잔치의 비유 (마22:1~14)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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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잔치의 비유 (1~14) - 성령에 대한 거절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 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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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 오늘도 이렇게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능력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듣기 전에 우리 앞뒤좌우로 인사하실 때에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라고 인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2장 1절로 14절까지의 말씀을 가지고 ‘혼인잔치의 비유’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론 / 오늘 본문의 내용은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고난주간의 화요일에 있었던 종교 지도자들과의 논쟁 사건입니다. 2주 전에 살펴본 말씀은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에게 성부 하나님에 대한 거부 사건을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고, 1주 전에 살펴본 말씀은 성자 예수님에 대한 거부 사건을 포도원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살펴볼 말씀은 성령님에 대한 거부 사건을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1~2절)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왕자의 결혼식 장면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무슨 금빛 마차를 타고, 멋진 웨딩드레스를 입고, 어디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했다, 이런 식의 설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화려한 장면을 상상할 뿐이지요. 중요한 것은 돈을 얼마나 들여서 얼마나 화려한 혼인 잔치를 했다가 아니라 주님이 이 비유를 통해 뭔가 강렬한 메시지를 주고 싶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메시지는 바로 천국(天國)입니다. 천국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주님이 이 왕자의 결혼 잔치 비유를 들려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왕자 혼인 잔치 비유를 통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천국에 대한 어떤 메시지를 말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비유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본론 / 이 비유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1. 혼인 잔치에 초청받았지만 거부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3~6절을 보십시오. (3~6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왕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많이 초청했는데 혼인식을 앞두고 바로 초청한 게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초청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3절에 보면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다”고 나와 있지요? 그러니 이미 오래 전에 초청장을 보냈고 혼인 잔칫날이 되자 미리 초청한 사람들에게 종을 보내 ‘오시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왜 중요할까요?
그것은 이 비유에 나오는 왕이 누구이고 왕자가 누구이고 미리 초청 받은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초청을 보낸 왕은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그 아들 왕자는 예수님이고요 미리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지요. 그러므로 이 왕자의 혼인 잔치는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신 천국 잔치를 뜻합니다. 그러면 미리 초청을 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미리 천국 백성이 되도록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이미 오래 전부터 유대인들을 천국 잔치 자리로 초청한 겁니다.
그래서 오늘 이제 혼인날이 되어 미리 초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잔치 자리에 오라고 하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두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거부하고 있습니다. 3절 뒷부분부터 보면 “오기를 싫어하거늘”이라고 나옵니다. 오기 싫은 거예요. 천국 초청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천국에 들어가기 싫은 거예요. 그래서 왕은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서 (4절)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정중하게 재초청합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 거듭 초청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합니까? 초청하러 온 종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 밭으로, 또는 자기 사업하러 나갑니다. 누가복음 14장 18절부터 20절에서는 이 장면을 좀 더 자세히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눅14:18~20) “(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오래 전에 부르던 “죄송해요 죄송해요 정말 잔치에 갈 수 없어.”라는 복음성가 가사처럼 사람들은 밭을 사서 나가봐야 한다, 소를 사서 시험하러 가봐야 한다, 장가를 갔다 등등 갖은 핑계를 다 대면서 잔치에 못 간다고 미안하다고 양해해 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세요. 이런 핑계들이 합당한 것입니까? 정말 이런 핑계들이 당장 잔치에 못 갈 이유가 됩니까?
분명히 아니지요. 밭은 나중에 가보면 되고, 소도 나중에 시험해보면 되고, 장가를 가서 뭐 어쨌다고요? 허니 이건 분명히 핑계를 위한 핑계일 뿐입니다. 게다가 6절에 보면 초청을 거부할 뿐 아니라 심지어 초청을 하러 간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인 자들도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초청을 거부하고 선지자를 잡아 핍박하고 죽인, 나아가 세례 요한도 죽인 사실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렇게 천국 초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전도를 해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초청을 거절합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기회를 주고 또 경고까지 하셔도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거부합니다. 핑계 대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거부하며 공격하거나 핍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비유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1. 혼인 잔치에 초청받았지만 거부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2. 거부한 자는 버림 받고 다른 사람들이 대신 초청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거부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봅시다. 두 가지 결과가 나옵니다. 먼저 초청을 거부하고 심지어 종들을 죽이기까지 한 유대인들에게는 어떤 벌이 내려집니까? 7절을 보십시오. (7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무서운 심판이 내려지지요. 임금은 초청을 거부하고 종들을 죽이기까지 한 자들에게 진노하여 군대를 보내서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온 동네를 불살라 버립니다.
아마 이 무서운 심판은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로마군에게 함락되고 온 도시가 불타고 이스라엘 민족이 사방으로 추방된 사건을 예언하신 것 같습니다. 아무튼 핑계 댄 자들도 밉지만 종들을 죽인 자들은 이런 무서운 심판을 당합니다. 안타깝지만 이 말씀은 끝까지 천국 초청을 거부하고 심지어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판밖에 없지요. 불로 태워지는 무서운 심판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반드시 우리 남편, 자녀,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을 천국에 초청해서 천국 백성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건 뒤로 미룰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 무서운 심판이 언제 내려질지 모르는데 어떻게 뒤로 미루고 등한히 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으로, 이렇게 미리 초청 받았던 유대인들은 버림을 받고 심판을 당하는데 대신 어떤 사람들을 잔치에 초청하게 되나요? 8~10절을 보십시오.
(8~10절)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 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임금은 종들에게 혼인 잔치는 이미 준비되었으니 본디 청한 사람들은 안 되고, 네 거리에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을 다 데려오라고 명합니다. 종들은 이 명령을 받고 길거리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다 데려오고 누가복음에 의하면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맹인과 저는 자들까지 다 데려옵니다. 이렇게 대신 초청 받은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이들은 바로 이방인들을 뜻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천국 초청을 거부한 유대인들 대신 버림받았던 이방인들을 택해 천국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천국 백성 되는 것은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집안이 예수 믿고 부모가 예수 믿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똑똑한 자, 잘난 자, 가진 게 많은 자가 아닙니다. 단 한 가지! 예수님의 천국 초청에 응하는 방법뿐입니다. “예, 제가 못나고 부족하지만 저를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바로 가겠습니다.” 하고 천국 초청에 즉시 응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천국을 소망하는 자만이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어 영생과 복락을 누리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 비유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1. 혼인 잔치에 초청받았지만 거부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2. 거부한 자는 버림 받고 다른 사람들이 대신 초청받는다는 사실입니다.
3. 초청을 받아 온 사람들도 천국 잔치에 들어올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11~14절 말씀을 보십시오. (11~14절)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임금이 대신 초청 받아 혼인 잔치에 온 사람을 보니까 예복을 안 입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반 서민의 결혼식은 상관없지만 왕자의 결혼식에 올 때는 화려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예복을 갖춰 입고 와야 하는데 그 예복을 안 입고 온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님이 “너는 왜 예복도 안 입고 여기 왔냐?”고 묻는데 그 사람은 아무 말도 못합니다. 화가 난 임금은 사환에게 “이 자를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던져라, 거기서 슬피 울며 후회 하며 이를 갈 것이다.”라고 명령합니다.
이 자리에는 예복을 입은 자들과 안 입은 자들이 섞여 있는데 오직 예복을 입은 자만 혼인 잔치에 입장할 수 있고, 안 입은 자는 쫓겨납니다. 여기서 예복이란 이 초대에 걸맞은 삶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비록 이 천국 초청에 응해 교회에 들어와서 교인이라는 이름을 얻은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그들 중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뜻입니다. 예복을 입은 성도, 즉 삶이 합당한 성도와 예복을 안 입은 성도, 즉 삶이 합당하지 못한 성도로 구분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초청에 응해 잔치 자리에 들어와 앉아 있다고 안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느 교회 성도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해서 안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14절에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자만심과 거만함에 도취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고, 아무리 초청을 받아 성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초청에 합당한 거룩한 예복을 입는, 즉 성도다운 삶을 살아야만 택함을 입은 자가 될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 교회 안에 두 얼굴의 사나이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무슨 말인고 하면 신앙과 삶이 다른 두 얼굴의 성도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주일과 주중의 삶이 다른 성도들, 교회 안에서의 모습과 밖에서의 모습이 달라도 너무 다른 성도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미 천국 백성이다, 나는 이미 구원 받았다.”고 안심하는 두 얼굴의 성도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바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라는 주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천국 비유의 말씀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비록 천국 초청을 받아 천국 백성이 되었지만 아직 초청을 받고도 응하지 않은 사람들, 그들을 위해 목숨 걸고 전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뒤로 미루면 안 됩니다. 응할 때까지 초청하고 또 초청해야 합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있냐? 전도는 그런 나무 많아요. 나무가 질겨서 열 번이 아니라 백 번을 찍고 20년, 30년을 찍어도 안 넘어가요. 그래도 넘어갈 때까지 찍어야 합니다. 올 때까지 끈질기게 초청해야 합니다. 무서운 불 심판의 때가 이르기 전에 말입니다.
또 이미 예수 믿은 우리 역시 주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 주저하지 말고, 핑계 대지 말고, 즉각적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최근 여러분에게 주님이 초청장을 보내셨는데 이런 저런 핑계로 거절하거나 뒤로 미룬 일이 없습니까? 주님이 “내가 너를 쓰고 싶다.” 하시는데 저는 일이 바쁘고, 애들도 어리고, 돈도 없고 등등 온갖 안 되는 핑계를 대서 불순종한 일은 없습니까?
나아가 이미 초청 받은 우리도 절대 안심하거나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천국 백성답고 살고 있는가? 나는 두 얼굴의 성도가 아닌가? 나는 과연 천국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그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는가?” 세상과 직장에서,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말입니다.
결론 /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 맺겠습니다. 며칠 전 어떤 목사님이 재미난 얘기를 했습니다. 그 목사님 딸이 시집을 가서 부부가 아빠 교회에 출석하는데 어느 날 아빠에게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냈답니다. “아빠! 엄마한테 그러면 안 되시죠. 아빠가 설교한 대로 사셔야지요.” 와! 엄청 겁나더랍니다. 아마 얼마 전 목사님이 사모님을 섭섭하게 한 모양입니다. 엄마와 딸은 나이가 먹어 가면 친구처럼 지낸다지요. 사모님이 딸에게 아빠에 대한 섭섭함을 말하자 딸이 아빠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강력한 경고 메시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경고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린 지금 과연 누구에게 이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받고 있습니까? 혹시 하나님이 우리가 안일하고 게을러서 전도 안 하고,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신앙에 걸맞은 삶을 살지 못할 때 이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시지 않겠습니까? 그 경고를 결코 무시하지 말고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결론핵심 - 신앙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천국잔치에 응할 수 있습니다.
요약정리 / 이 비유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1. 혼인 잔치에 초청받았지만 거부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2. 거부한 자는 버림 받고 다른 사람들이 대신 초청받는다는 사실입니다.
3. 초청을 받아 온 사람들도 천국 잔치에 들어올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