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가도 모를 일?(2)
“7일 일주일”제도에 도대체 왜 반응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것도 매주(每週)마다의 일요일에 목을 매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만 할까? 그럴 거면 일주일(一週日)의 간격을
7일간으로 할 게 아니라 그 옛날 프랑스 혁명정부가 그랬듯이 또는 소련의 스탈린정부가 그랬듯이 일주일의 간격을 7일간이 아니라
아예 계산하기 쉽도록 10일간으로 정하든지 하면 될 것을 왜 7일간으로 요지부동이냔 말이다. “7일 일주일”제도에 일요일로의 기준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아예 끊어 놓으려는 사탄의 계략에 휘말려 있음이다.
그래서 제발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요일마다 열심히 교회에 나가서 아무리 애타게 기도한들 예수님께선 듣지도 않으신다.(cf 마7:21~23; 막7:7-9)
왜서 일까? 예수께서 구축해 놓으신 “7일 일주일”제도의 기준일이 안식일이 아니라 일요일로 변형이 된 명백한 “불법”(마7:23)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기도의 응답은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사58:12)의 자세일 때만이 기대해야 하는 것이지,
마치 불법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옹호하는 상태일 때도 상관이 없는 양 기대하는 건 금물이다.
아주 그럴듯하게 들어 주는 척하는 세력은 따로 있다는 말이다. 바로 사탄이다.
제발 좀 똑바로 알자! 매주 일요일에 반응함은 목숨이 위태한 위기를 넘기기 위해
2세기 초반에 제정한 카톨릭의 방식인 “사람의 계명”(마15:9; 막7:7)이나 “사람의 전통”(막7:8)에 따름이나
마찬가지란 것을 말이다. 카톨릭의 전신(前身)은 AD 132~135년 경에 안식일을 버리고 대신 일요일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계기가 있었다. 그러한 불의는 사태의 진정 후, 본래대로의 회귀(cf 출20:8,11)되어야 마땅하지만 그러지 않은 체 중세기를 넘기면서 수많은 개신교에까지 오염시키고 만 상태로 오늘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아니 세상 끝날 까지도 이어질 태세다.
해서 그러한 불의(不義)에 따르기가 죽기보다 싫으면 하나님의 방식인
안식일에 반응하면 된다! 왜냐하면 안식일의 준수요구(cf 출20:8)는 그 명분이 천지창조 때문(cf 출20:11)이기도 하지만
새 신자 된 신분, 즉 애굽과 같은 죄와 악의 상태와 무관한 현세의 자유스런 신분으로의 상승을 축하하고 기념함을 명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cf 출20:8,11; 신5:12-15) 그러나 이것 역시도 안식일 때문에 그 요구(cf 출20:8)는 죽기보다 싫어서 제목이 말하듯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란 것이다.
- 김종성 -
첫댓글 흔히들 찾아야 하는 물건이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없을 때나 혹은 신기하다거나 묘하기도 하여
그 속내를 알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가리켜 “귀신이 곡(哭)할 노릇”이라는 속담을
쓰곤 하는데, 그만큼 귀신은 곡(哭)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는 뜻이리라. 성경에서 귀신이라면
사탄과도 같은 존재이다.
세상의 모든 교회가 “7일 일주일”제도에 반응하고 있다. 하지만 극 소수를 제외한 모든 교회가 매주(每週)
일요일을 주일(主日)로 옹호하며 이 날을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는 심각한 불의(不義)가 숨겨져
있다. 첫째, “7일 일주일” 제도를 잘못 사용하고 있음이다. 하나님께선 이 제도의 기준으로 천지창조를 이유로
삼아 안식일을 지정(cf 출20:8,11)하셨지, 일요일은 상상도 하지 않으셨다.
둘째, 그러므로 일요일은 주일(主日)이 결코 아니며, 될 수도 없는 날이다. 왜냐하면 일주일에 구별해야 할
두 날(안식일과 일요일)의 주일(cf 출20:8,11; 마12:8)은 말도 되지 않거니와 무엇보다도 주일이라 함은
안식일의 또 다른 성경적 표현이기 때문이다.(cf 출20:8,11; 마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