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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고대하던 <내 이름은 빨강>을 두 달에 걸쳐 읽고 진행 한 후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스만 제국, 이슬람 문화, 세밀화라는 것이 다소 낯설고 어색했지만 미술이라는 관심사가 들어있는 소설이라 개인적으로 더 기대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진행자의 본분을 잠시 잊고 발제문의 대부분이 전통적 미술과 새로운 미술의 구도에 중심을 두고 준비해 갔음을 진행을 하면서 알아챘네요. 내색하진 않았지만 ‘아,,, 어쩌지,,어쩌지,,,’하면서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다행히 한쪽으로만 흐를 뻔한 시간이 회원분들의 궁금증과 이야기들 덕분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주제들도 나올 수 있어서 안심했네요. 이 과정을 통해 독서모임의 의미와 진행자의 준비나 태도에 대해 생각을 해 볼 수 있어서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준비한 발제문>
스타일과 화풍은 결함인가? 스타일, 서명은 개인적인 흔적을 남기는 오류라고 하는데 세밀화가의 손재주, 선의 경향, 붓터치에 나타나는 기질로 나비, 황새, 올리브인지를 가려내는 오스만과 카라, 이것을 구분해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스타일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2권 p.92~99
-“이것이 바흐자드의 작품이라는 건 너무나 분명해서 서명조차 필요없지” : 분명함이 곧 서명, 스타일이 아닌가? 여러명이 그려왔다면 전통적인 기법으로 그린 세밀화가들은 그것이 누구의 그림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것을 그리는 사람이 유일한 한명이어야 누구의 그림인지 나중에 분명하게 확인될텐데, p.44
초상화의 의미는? 무엇을 그림의 중심에 둘 것인가 p.217
-카라가 세큐레의 모습을 잊어가는 장면 p.21,
-기억하려고 애쓰지만 이젠 떠올려지지 않는 모습 p.69,
-유일무이한 존재이고픈 욕망 p.215,
그림을 위한 그림과 이야기의 일부로서의 그림 p.59, p.219
화가의 책임과 의지는 어디까지인가? p.48
-주문한 그림이 종교적 의미에 반할 경우 거절할 수 있는가, 거절 했어야 하는가
-주문받은 대로 그린 화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행복한 마음으로 그렸지만 신성모독이라고 의심받아 고통스럽다, 화가가 자신도 모르게 신을 거역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 그런 품은 마음 없이도 그릴 수 있는가 p.304~318
사상은 형식과 내용 중 무엇을 통해 더 잘 나타날까? 사상이란 무엇을 그렸느냐가 아니라 그린 방식이 중요하다 (2권 p.165)
작가에게 그림의 즐거움은 어디서 오는가? 보는 사람이 느낄 즐거움을 상상하는 것인가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 인가 (2권 p.284)
예술가를 대가의 경지로 만드는 것은? 주제를 경험하는 것(새로운 주제로 그려내는가)인가 전혀 경험하지 않은 것을 그려내는 것(완벽한 재현)인가 p.246
세밀화가들의 전통적인 기법은 기술인가 예술인가 (2권 p.321)
<회원들의 발제문>
- 터키가 동서양 사이에 있는 나라라는 게 와 닿는가? 작가서문을 보면 한국독자라면 그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이슬람문화와 동양의 문화는 너무나도 다른데, 책속의 고민들이 잘 이해되는가?동서양이 혼재된 터키와 우리나라의 비슷한 점이 무엇인가?
-오스만-나비의 관계, 성착취였을까, 동성애였을까?
-전남편-셰큐레-핫산-카라의 관계, 특히 셰큐레와 카라의 관계를 보면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연상된다.
-매력적인 올리브, 속으로는 변화를 굉장히 원하는 모습이 다소 음흉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예술을 추구하는 모습이 느껴져서 동정이 가기도 한다.
-세큐레의 말로 마무리되는 책의 마지막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면 전통과 새로움이라는 큰 주제가 정리되려면 술탄과 카라의 대화를 통해 카라의 서술로 결말이 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세큐레가 (작가와 같은 이름인) 둘째아들 오르한을 언급하면서 마무리하는 이유는 전통과 새로움의 구도가 아니라 그림을 넘어 이젠 이야기의 시대가 오길 바란다는 작가 오르한 파묵의 욕심이 반영된 것일까?
책의 즐거움, 그림의 즐거움, 이젠 영상의 즐거움까지 생겨났다. 웹툰 시장이 매우 커진 지금 상황에 책을 읽는 게 쉽고 편한 일일까?
AI를 통한 음악, 미술이 만들어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예술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일까.
<서술방식에 대한 개인 감상>
-영화나 드라마의 구성처럼 느껴지는 책이다. 그동안의 소설책은 내가 그 이야기 속에 들어가 그 인물 중 한사람에 이입하며 모든 것을 느끼며 빠져서 읽어왔는데 이 책은 브라운관 안에서 일어나는 그들의 말과 행동, 사건을 지켜보는 시청자 같다.
-드라마 <이로운 사기>가 생각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불문율인 “카메라 응시”가 드라마에 자유롭게 들어가 있다. 심지어 주인공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시청자에게 말도 건낸다. 이런 느낌처럼 이 책 역시 줄 곧 등장인물들이 독자에게 말을 건낸다. 심지어 카페에서의 이야기꾼도 검은개의 입을 빌어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가 연극이라면 독백에 가깝고, 영상이라면 나래이션의 역할인데, 영화나 연극에서는 시종일관 나래이션으로만 채울 수는 없지만 책은 그 제한이 없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과연 살인자가 누구인지 계속 궁금했는가? 이 책은 어느 순간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파헤치는 것에는 아무도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딸인 셰큐레 조차도 아버지를 죽인 범인에 대해 전혀 궁금해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책은 범인 색출보다는 그가 범인이 되도록 일어난 미술계의 혼란스러움을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각 챕터마다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그림속의 사물들 마저도. 마치 목격자인양,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카라)가 살인용의자 및 목격자, 참고인 들을 한명씩 만나서 조사하는 것 같다. 결국 모든 이야기를 들은 형사(카라)가 종합해서 범인을 찾아내겠지? 그러나 쫓고 쫓기며 범인을 형사가 찾았다기 보다는 결국엔 범인이 스스로 자신이 범인이라고 밝히는 것 같아서 결말이 허무하다. 이렇듯 등장인물들은 여러 번의 챕터로 돌아가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데 오직 피해자인 엘레강스만이 800여 페이지 중 첫 챕터에 등장하는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역시 죽은 자는 말이 없는 것일까.
첫댓글 그림을 보니 읽었던 묘사 장면들이 스쳐지나가네요
이슬람문화, 세밀화와 그림,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고뇌
여러가지 궁금증이 생기는 책이었어요
이야기 실컷 하려면 밤을 새워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