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협이 죽 더 줄까?" "응." "할머니, 나도 더 줘." "우진아 할머니가 끓인 죽 맛있어?" "응 무진장 맛있어." "그래 그래 강아지들 많이 먹고 건강해라."
딸아이가 이사 준비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살던 집을 팔고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하다 보니 필요한 서류도 많고 준비할 것이 많은 것이다.
그나마 오후 2시에 퇴근할 수 있어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식구대로 모두 큰 병이 날뻔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어린 두 손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 엄마 아빠가 돌봐준다고 돌봐주는데도 큰 손자는 입이 부르터서 밥을 먹기 힘들단다. 마침 집에 사다 놓은 전복이 있기에 전복죽을 끓여놓고 손자들을 데리러 갔다. 작은 녀석은 덜한데 큰 손자가 단단히 병이 난 것이다.
▲ 찹쌀과 맵쌀을 물에 담가 놓고 전복을 손질한다
▲ 전복을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당근, 양파를 같이 넣고 볶아준다
지난 목요일(17일) 어린이집으로 손자들을 데리러 갔다. 오랜만에 만난 녀석들은 나를 보더니 깡충깡충 뛰면서 안긴다. 작은 녀석은 신발도 할머니한테 신겨달란다. 녀석들과 집에 도착했다. 일단 손부터 씻고 녀석들에게 전복죽을 한 그릇씩 주었다. 큰손자는 입맛도 잃었는지 처음에는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하지만 제 동생이 한 그릇 뚝딱 먹고 또 달라고 하자 큰 손자도 부지런히 먹곤 또 달란다.
"그래 우진아 이거 먹고 잠 푹 자면 입병도 다 나아. 알겠지." "알았어"하며 녀석도 빙그레 웃는다. 서로 경쟁하듯 두 공기를 먹었다. 깔끔하게 먹고 나더니 큰손자가 "할머니 나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어린이집 안 가면 안 돼?" 하면서 제 엄마와 나를 번갈아 본다.
"그래, 우진이 엄마야, 우진이 힘들면 내일 하루 쉬라고 해라." "너 할머니집에 와서 어리광 부리는 거지?" "아니야 진짜 입이 많이 아퍼" 한다. 제 엄마도 못 이기는 척하고 쉬라고 한다. 그날 저녁 작은 손자와 제 엄마는 제집으로 돌아갔다.
▲ 잘 볶아진 전복과 채소에 물에 불은 쌀을 넣고 끓여준다
제 엄마와 동생이 제집으로 돌아가고 큰 손자도 긴장이 풀어졌는지 1~2시간 후에 잠이 들었다. 입에 바르던 약도 발라 달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을 보니 조금은 괜찮아졌나 보다. 잠든 손자의 입 주변을 보니 우리집에 올 때보다 가라앉아 보였다.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이 푹 들었다.
다음날 아침, 영양가 만점인 전복죽을 먹고 잠을 푹 자서 그런지 손자의 입 주변은 거짓말처럼 거의 가라앉았다. 손자도 거울을 보더니 "할머니 말이 맞네. 나 전복죽 또 줘" 한다. 그날 내내 손자는 편안한 모습으로 잘 놀았다. 저녁에 제집으로 돌아갈 무렵에는 입병이 흔적도 없이 말끔해진 것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