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딜레마를 선물하는 아이들
글 추둘란
민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1학년이 된 지 2주일째. 상상하던 대로 되었다면 나는 수시로 학교로 뛰어가 선생님께 변명하고 설명하고 이해를 바라노라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상상은 상상으로 끝났습니다. 한 번도 초등학교로 뛰어갈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담임선생님의 특별한 전화방문 또한 없었습니다. 그 대신에, 하교시간에 만난 선생님으로부터 “잘 가르쳐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뜻밖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잘 가르쳐 보내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잠시 생각했습니다. 민서가 장애등급을 가진 아이라 담임선생님도 적잖이 걱정하였는데 생각보다 잘 적응하여 기특하고, 못하리라 생각했던 일들을 잘 해내니 그것이 대견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책가방을 베개 삼고
입학식을 앞두고 민서의 머리를 깎아주고 책가방을 사고 하얀 실내화를 샀습니다. 제 것 사는 줄 알고 마냥 즐거워하는 민서를 보며 함께 설레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 ‘학교가 어린이집 같다면 좋으련만…’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가장 큰 걱정거리 가운데 하나는 대소변처리. 소변을 속옷에 조금씩 묻히거나 대변을 본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하여 여벌의 옷을 늘 들고 다니며 갈아입혀야 하는데, 선생님이 매번 그 번거로운 일을 해 줄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그리고 민서 특유의 호기심과 탐험심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곳에 가면 신기해하며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열어보고 닫아보고 만져보고 하니, 자칫 쉬는 시간에 행방불명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컸습니다.
그러나 집에서 보는 민서와 학교에서 생활하는 민서는 사뭇 다른가 봅니다. 여전히 모든 것을 챙겨주어야 하는 아이인 줄 알았더니 어느새 스스로 1학년이 될 만한 자질을 이미 갖추고 있었습니다. 매일 갈아입을 줄 알았던 여벌옷은 딱 한 번 갈아입었고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다는 말도 아직까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색칠하기 숙제가 있어서 같이 해 보니,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진지하게 색칠을 합니다. “민서야, 여기 더 칠해야지.…민서야, 여기 더 남았네.” 옆에서 제대로 하라고 잔소리를 해대는 엄마 말에 조금도 귀찮아하는 기색 없이, 토 하나 달지 않고 열심히 해냅니다. 잠잘 때 베개 대신에 책가방을 베고 자는 것만 보다도 학교가 좋은 모양입니다.
요즘 민서가 제일 잘 하는 말은 “…해야 돼. …해야 돼.”입니다. 자신에게 다짐하듯 혹은 동생에게 가르쳐 주듯 “일어나야 돼. …먹어야 돼. …가야 돼.” 소리를 입에 달고 삽니다. 그래야 되는 줄 당연히 안다는 듯이 의젓하고 씩씩하게 말합니다.
생각해보니 어린이집에 입학하던 때에도 민서는 아무 탈 없이 잘 해내었습니다. ‘아침에 안 간다고 하면 어쩌나, 어린이집에서 떼쓰고 울면 어쩌나, 스트레스 받아서 아프면 어쩌나…’ 정작 엄마는 아무 일도 손에 잡지 못하고 하루를 멍하니 보냈는데, 민서는 첫날부터 종일반에 잘 적응했습니다.
그런 능력이나 의젓함이, "민서의 마음속에 언제 준비가 되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린이집 입학식과 초등학교 입학식, 그렇게 두 번의 입학식을 치르고 나니 알겠습니다. 민서는 이미 삶의 작은 변화 하나하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준비가 된, 또래 아이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건강한 어린이라는 것을….
입학식 날 새 책가방을 메고 1학년 줄에 얌전히 서 있던 민서 모습이 아직도 짠합니다. 1년을 유예하여 입학했는데도 키가 제일 작은 민서. 그러나 그 작은 몸에 담긴 마음은 작지 않으니 엄마의 염려와 걱정을 보란 듯이 씻어주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한계를 미리 정하는 어른들
십 년을 훌쩍 지나 나는 열아홉 살이 된 민서의 모습을 평화를 통해 봅니다. 평화는 풀무학교 2학년 여학생입니다. 특수교육 보조원인 내가 섬기고 있는 학생입니다. 평화는 풀무학교 2학년 여학생입니다. 특수교육 보조원인 내가 섬기고 있는 학생입니다. 평화도 민서처럼 다운증후군으로 인한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평화를 풀무학교에 입학시키고 싶다고 부모님이 학교에 얘기를 꺼냈을 때부터 평화는 모든 사람의 염려와 걱정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친구들과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을까? 실습이 많은데 해낼 수 있을까? 쓰기와 발표는 어느 수준으로 맞춰주어야 가능할까? 개별수업과 숙제로 무엇을 수행하게 해야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까?’ 어느 것 하나도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 평화는 1년 동안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채, 집에서 통학을 하며 학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평화는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한 해 동안 평화를 지켜본 친구들과 언니들이 함께 사는 데 대한 두려움을 버렸고 평화를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새 학기 첫날, 평화는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 그지없이 행복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개인적인 약속들을 보름 뒤로 미루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길 경우 언제라도 기숙사로 뛰어가서 평화의 특성에 대해 설명해주고 중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보름 가까이 내 퇴근시간은 늦춰지지 않았고 야간에 학교로 뛰어갈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평화는 그 동안의 염려가 무색하리만치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저녁식사 후 개인 공부를 하는 묵학 시간에 체력이 약한 평화는 먼저 자도 된다는 허락을 얻었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언니, 친구, 동생들의 공부가 끝나길 기다려 취침 시간에 같이 잠자리에 듭니다.
지난 주말에는 외박을 신청하고 집에 갈 수도 있었건만, 또 실제로 부모님이 기숙사 앞에까지 데리러 왔건만, 평화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아서 끝내 주말을 학교에서 보냈습니다. 평화의 어머니는 학기 초에 늘 한 번씩 아팠다며 이번에도 그럴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으라고 귀띔해 주었지만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민서나 평화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의 장애특성을 다른 사람에 비해 잘 이해하고 있기에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도록 지혜롭게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이 부모님과 보조원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엄마로서, 보조원으로서 두 가지 역할을 겸하고 있는 나조차도 어쩌면 이 아이들에 대해 먼저 염려하고 먼저 걱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작 아이들은 이미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그 내면에 넉넉하게 갖추고 있는데 지레 겁을 먹고 불필요한 한계를 미리 정하는 쪽은 어른들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떤 땐 너무 과소평가하여 아이들의 능력을 제한시키지 않는지, 혹은 그 반대로 과대평가하여 힘에 부치는 일을 주고 괴롭게 만들지는 않는지 딜레마에 빠지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딜레마 역시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면 행복한 딜레마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매번 어른들의 판단과 염려를 뒤로 하고 아이들은 예상 밖으로 훨씬 더 잘 해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해야 할 일
교무실에 앉아 창밖의 교정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어 봅니다. ‘내가 왜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민서 때문입니다. 평화 때문입니다. 민서같은, 평화같은 섬세한 섬김과 배려가 필요한 아이들 때문입니다.
장애를 가진 민서가 아들로 내 곁에 와 주어서 비로소 나와 남편은 장애인들이 사는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평화를 만남으로써 장애아들이 사회로 통합되어 사회의 한 일원으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쩌면 민서아빠와 나는 그동안 있어야 할 공간에 있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민서와 평화를 만남으로써, 이 세상 사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비로소 찾았는지 모릅니다. 그런 사명을 받아들였기에 남편은 사회로 나가 부모회 운동을 하고 나는 학교에서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에 민서를 만들지 않았을 수도 있고, 평화를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다른 세상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내가 왜 여기 있나?’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만큼 만족스럽고 지금 여기만큼 행복하지는 못했으리라 확신합니다. 나 아닌 다른 영혼을 향하여 새벽에 얘배당에서 애통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은 우리 사회에 결핍되어 있으나 시간이 흐르면 현실이 되고 말 희망들에 대해서도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민서 덕분에 평화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있고 그래서 행복합니다. 이 땅에서 목숨 다한 날, 나를 민서엄마로 살게 하신 하나님 앞에 서서, 주신 사명에 만족했고 감사했다고 뜨겁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계간 <함께 웃는 날> 2008년 봄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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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같아 꼭 읽어보고 싶은데 지금 눈이 너무 아파서 못읽겠네요. 꼭 읽어볼게요.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이 떠오르는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