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 / 이광범
아침 일찍 출발하려고 했던 것이
잠자리에서 딩굴거리다 오전 9 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그렇치 일찍은 무슨 ''
어제부터 어디를 놀러 갈까 궁리를 하던 끝에 우리는 하회마을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침 일찍부터 소파에 누워 티브이 드라마에 푹 빠져있는 마누라에게 ''가야지''
''빨리 씻어라'' 하며 재촉을 한다.
다그치는 말에 집사람은 샤워실에 들어간다.
내가 먼저 씻으면 되는 걸 가지고
마누라에게 씻으라고 말해 놓고는 그동안에 좀더 누워서 게으름을 필 요량이었다.
여행길을 나서게 되면 찾아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순식간에 뒤바뀌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나는 왜 자꾸만 머릿 속에서 계획이 뒤바뀌는 것인지
야바위꾼 앞에 서 있는 심사를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쪽을 가려니 저쪽이 궁금하고 저쪽을 가려니
옆구리가 구미에 당기는 것이 아닌가, 청개구리 심보이다.
''그래''선택하는 길의 방향에 달려 있으니 우선 서울방향 으로 가자, 양평이냐 고속도로 진입 이냐 강릉이냐 대구냐
드디어 오늘은 어제 계획했던 대로 안동 하회마을로 곧장 향하게 되었다. 가끔 마누라는 어디를 가려면 미친년처럼 왔다리 갔다리 한다고 핀잔을 다소곳이 던지곤 하였다.
두시간쯤 도로를 달리다 보면 휴게소는 통관의례였다.
습관이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게소 안내판이 나타나게 되면 은근히 기대되는데,
호두과자와 어포가 유난히 떠올랐다. 집사람은 십중팔구
매직 핫도그를 집어 들게 되고, 우리는 한가지씩 간식을 사게 되는데, 두 가지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재치 담긴 방편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반반이란 무언의 불문율이 시작되는 것이다.
중식집에 들어가 음식을 시키게 되면 짬짜면,탕짜면,
그런 개념이었다.
이 또한 궁금한 다른 한쪽을 한꺼번에 몸소 체험하려는
궁색한 지혜와 같았다.
네비게이션은 똑똑한 여인이였다.
아이큐가 1,000은 되지 않을까,
목소리가 너무나 예쁘지, 친절도 하지,
방향을 잘못 들어서게 되면 연신 벨을 딩딩딩
눌러대는 것이다.
남비게이션은 도대체 왜 없는 것이냐 불만이 있을 법도 한데, 그런것들은 개의치 않았다.
둘이서 웃고 떠들며 안내방송을 따라 달리는 사이에 어느덧 하회마을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하루 2끼 먹는 식사법을 이용하는데,
건강을 염려해서다.
굶거나, 아침엔 바나나 한개 사과 한개 밥 한 숟가락이나,
아주 간단하게 해치우고는
점심과 저녁은 정상적으로 먹는다.
그러고 보니 허기가 제법 감돌고 있었다.
장터 마당 인파 속에서 기웃거리다 고풍스러운 한식당에 들어선다.
우리, 조선 시대에 와 있는 것인가 시간은 갑자기 정신 차리지 못하고 과거로 휙 뒤바뀌어 버린다.
열린 대문을 들어서고는 마당을 건너 봉당에 올라서니 신발을 벗었다. 쪽마루를 밟으니 사랑채 창가에 좌정하게 되었다. 천장에는 상량식 때 올려진 대들보와 서까래가 그대로 보인다. 조상님들의 향수가 뇌리에 슬쩍 풍겨오는 것이다. 우리는 간고등어 정식을 주문하였다.
안동에 오면 안동찜닭이나 간고등어 정식을 먹어주는 것이 바른 예의라 생각하게 된다.
혹시라도 누군가 물어본다면 간고등어 먹어봤니? 하면 설명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기도 했다.
간고등어 한 마리가 성질에 할복이라도 한 듯 반이 갈라져 노릇하게 구워져 나온다. 무말랭이, 깻잎장아찌, 멸치조림
김치, 새송이 볶음, 미역국, 쌀밥 두 공기,
배가 고프던 차에 시장기가 반찬이기도 했지만,
고소한 간고등어의 속삭임은 밥과 반찬과 어우러져 맛이 반지르르 윤기나는 일품이었다.
그렇다면 하회마을 동네의 풍경은 2품쯤 된다는 말인가,
아리송하여 우리는 식후경을 든든히 단전에 챙기어 넣고 거리로 나섰다.
매표소에서 어른 2장 주세요 입장권을 구입하여 민속 마을에 들어선다.
관광안내도를 들여다보니 구역이 꽤
넓어 보였다. ''햐 ~큰일이네''요즘 체력이나 발바닥의 인내력을 안다면 다 돌아본다는 것은 끔찍한 사건이었다.
염려를 안고 들어가려니 길가에 전동스쿠터 대여점들이 있지 않은가,
첨 타볼까 생각이 미치면서 마누라에게 우리 저거 타고 돌자고 했다. 한다는 말이 ''비쌀낀데'' 한다.
아마도 지갑의 잔액을 생각하며 명치가 찡해 있을 것이다.
속으론 ''으그''소리가 비집고 나오는데, 겉으론 다정한 척 말을 했다. ''편할 거 같은데 뭘 그래 이리 와봐'' 반강제로 마누라의 팔을 끌고 그리로 갔다. ''이거 빌리려면 얼마에요 ?'' 2만원 이구요 1시간 사용하시면 되고요, 충분히 구경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비싸지도 않네 그치'' 중얼거리며 나는 점원이 일러주는 사용설명서를 귀담아 들었다. 2인용 스쿠터에 올라탄다. 삼발이였다.
처음이라 잠깐동안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보기보다 오토바이와 전혀 달라서 원심력이 정 반대였다.
점원이 쫓아와 재차 요령을 알려준다.
100미터쯤 움직였을까, 금세 익숙해지며 잘 달리게 되었는데, ''이 녀석''
처음에 서먹하다가 시간이 지나갈수록 편안해지는 꼭 내 마누라와 같았다. ''그렇지'' 처녀적 수줍음과 지금은 달라 거리낌 없고 격 없는 우리의 사이 어깨동무 벗님이니까...
민속 마을은,
왠지 어릴적 우리동네 낯익은 거리처럼 다가왔다. 전생의 기억이 황토 바람처럼 불어오는 듯했다 토담 길 따라 흙냄새가 코속에 날아들었다.
물이 마을을 감싸 휘 돌아간다 하여 하회라고 불렀던가,
강 건너 남쪽 일월산의 지맥인 남산이 이어졌고 태백산 지맥인 화산이 마을까지 뻗어 충효당 뒤뜰에서 멈춘다고 한다.
류성룡의 충혼이 기운처럼 가득히 솟아 나오는 곳이었다.
역사의 향내가 우리의 심장 또한 뜨겁게 데워주고 있었다.
스쿠터는 몹시 신이 나 있다.
쎌카봉을 들고서 달리는 중에도 마누라는 사진을 찍는다. 골목골목 누비는데 나의 허리를 꽉 움켜쥐는 팔이 성큼
느껴졌다. 느닷없이 내 몸속의 하트모양 풍선이 불꽃처럼 연속하여 터지고 있었다.이러한 시간이 내게 다 생기다니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인사를 건넨다.
''멋져 보이십니다 부럽습니다'' ''네~기분 좋습니다''
''행복하세요'' ''네~ 고맙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우연한 기회에 사소한 것으로부터 해일처럼 덮쳐오는 일이던가! 뭉클하였다.
우리는 거리를 누비다 하회 강변길을 따라 달려갔다.
부용대가 병풍처럼 드러난다 만송정 솔숲이 편히 누웠다.
스쿠터를 잠시 길가에 세워놓고 솔숲 강변으로 내려갔다.
하회선유줄불놀이가 펼쳐진다. 선비가 모여들어 불꽃놀이 축제를 하며 부용대에서 시 한 수 지어질 때마다 솔가지를 묶어 던졌다 한다. 낙화의 흥취가 묻어났다.
부용대를 바라보다 나도 시조 한 수 읊조리고 싶어졌다.
''이곳 풍광은 2품이 아니오 역시 정 1품이었다'' 라고...
돌아 오는 길에 졸음이 쏟아지고 해서 휴게소에 들린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하회마을로 향하던 아침, 하행선 단양휴게소에 머물게 되는데, 그곳에서 본 낯선 사람들이 반대편 이곳에 또 와 있지 않은가,
아빠와 딸 둘 같은데 다시 마주치게 되다니,
갑자기 뇌리에 스치는 단어가 하나 떠오르고 있었다.
인연이었다.
그렇구나 나와 마누라에게도 인연이 닿았었구나,
얼마나 많은 사무침의 이별이 전생을 떠돌았기에 평생을 껌딱지처럼 동행하고 함께 살아오는 것일까,
떼어내려고 하면 치즈처럼 길게 늘어나는 천륜이 깃든,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숨이 막히게 돼서야 비로소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공기의 고마운 존재와 같았다.
높은 뫼 밑자락의 맑은 샘물인가 흙과 암반을 뚫고 새어 나오는 저 깊이의 만남을 아무래도 난 헤아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