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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까합니다. 그전에는 임직 받으시는 분들과 제직 세미나에서 조금 언급을 햇습니다만 전 교인을 상대로 같이 나눈 적은 없었습니다.선교에 대한 강의라고 보셔도 좋고, 우리 교회의 선교의 미래입니다.
이 땅의 시작점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태초에, 이 세상에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시작하신 것이지요.
이 세상의 마지막을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종말에 예수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심으로 끝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시작하셨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끝에 하나님이 계셔서 그 열매를 거두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의 인생이란 그 시작점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고, 그것을 마무리하는 시점, 그 끝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시작하는 것도 하나님에게 있고, 그 끝도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일을 끝에서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가나안 땅의 정복에 대한 결론에 대한 말씀입니다. 가나안 정복을 마무리하면서 그 결과에 대한 총평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같이 나누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주리라 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한 사람들은 그 땅에 대하여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43절을 같이 볼까요?
[4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 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이라고 말입니다. 결국 이런 것입니다. 그 땅에 대한 시작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소유권의 시작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고 맹세하신 땅입니다.
시작점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특히 아브라함에게 그를 갈대아 우르라는 곳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면서 그 후손들에게 이곳을 주시리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작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약속하심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렇게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4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 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다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결과를 맺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것이지요. 사람이 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작하신 분도 하나님이요, 맺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본문 45절에 이렇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45절입니다. 같이 보겠습니다.
[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가신 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 속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또 다른 것들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시작도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사람의 시작도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심으로 시작했습니다. 교회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심으로 우리의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이루어졌고,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은 말하지요.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기에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시작되었기에, 우리의 믿음의 삶의 시작 점에서 빚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커다란 사랑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사로도 부름을 받았다고 말하며, 이 일을 감당하는 자신의 입장을 “빚진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삶”을 살펴보는 가운데 로마서 1장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선교도 하나님이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빚진 자들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라고 하심으로 하나님이 시작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을 볼가요?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렇게 선교는 빚진 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교의 동력은 하나님입니다.
온 세상에 전파 되리니
우리 마태복음 24장 14절을 볼가요?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복음은 궁극적으로, 끝에서는 온 세상에 전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 하신 “온 세상에 전파 되리니”라는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파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의 말씀을 보아도 마지막 심판 날에 핑계의 빌미를 주시지 않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전파하는 것까지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설득해서 그 자리에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믿기로 작정된 자들이 있을 것을 알기에 전하는 것이고, 그럴 때에 믿기로 작정된 자들이 반응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다 들려진다면, 그곳에서 에수 믿기로 작정된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난다면 그때에 예수님께서 오실 시기가 된 것입니다.
선교의 전재는 이렇게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선교는 실패가 없습니다. 선교의 성공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까지입니다. “사람들이 언제 믿겠나?”, “열매가 없지 않느냐?”, 이런 말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지요. 우리는 그냥 복음을 전파하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있는 이곳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곳은 복음을 마음껏 전할 수 있는 그런 곳과는 분명하게 구분을 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전재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목사인 저의 정체성입니다. 교단에서는 파송 선교사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선교에 관심을 가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이곳이 선교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저 혼자 선교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교회를 통하여 선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선교에 할여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입니다. 제가 휴식한다고 이야기 하는 월요일 주로 선교지에 들어갑니다. 나머지는 교회에서 주로 활동을 합니다. 제가 선교사라면, 선교가 제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이었다면 적어도 3-4일정도, 더 많게는 5일정도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래야 선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교는 내 삶에 악세사리를 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는 삶입니다. 어떻게 하루 들어간다면서 선교사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저는 목사입니다. 목회를 우선시 하는 목사입니다.
선교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지역 사람을 훈련시키고, 그래서 그분들이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사역자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 키우고 있는 사역자들은 13명입니다. 그리고 협력하는 인도네시아 목사님 한 분과 찌쁜드의 교장 선생님 한분입니다. 우리가 협력한는 순다족 교회 목사님은 아구스 목사입니다. 사역자들에 대하여 뒤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13명의 사역자 중에서 우리와 함께 사역을 하지만 이미 우리의 섬김을 통하여 재정적으로 독립한 사역자가 4명입니다. 그리고 12월이면 두 명이 더 목사의 길을 가기 위하여 우리를 떠나게 됩니다. 우리가 선교의 가장 귀하고 소중한 한 과정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선교지역을 선택함에 있어서는 선택과 집중을 택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지역이 바로 찌쁜드의 지역입니다. 그리고 지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위에서 말씀드렸지만 이 지역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닙니다. 그래서 먼저 관계를 맺는 사역부터 해야 했습니다. 한 사람을 관계를 맺고,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 속내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 속에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려면 얼마나 동안의 관계가 필요할까요? 우물도 파고, 장학금도 주고, 취업반도 하고, 직업훈련원도 하고, 도서관도 세우고, 단기팀이 들어가서 봉사 활동도 하고......, 그래서 먼저는 그 지역 주민들의 삶이 더 나아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속에서 관게를 맺어 갑니다. 그들이 좀 더 깨우치면 그들이 맹목적인 종교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기회가 되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실제로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가지는 작은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역자가 합법적인 조건으로, 그곳에서 들어가서 생활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합법적인 조건으로, 의심받지 않을 조건으로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럴 만한 조건의 직업이나 사업이 필요 했습니다. 옷가게를 차려줄까? 오토바이 가게를 차려줄까? 핸드폰 가게를 차려 줄까?
또 하나의 부담은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적이 부담이 되었지요,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사역자를 키우는 그런 과정은 작은 재정지출로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곳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그들도 결국 가정을 꾸리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한 가정의 생활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찌쁜드의에서 작은 사업을 시작하는 한 분을 통하여(여러분들이 이미 다 아시겠지만 공개를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사역자 2명을 취직시켰습니다. 그곳에서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 자리는 그곳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자리 였습니다. 그들이 사역의 지도는 저를 통하여 받고 그곳에서 일하고 기거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면서 적당한 사람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그린 밑그림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그린 밑 그림 다 완성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사역자 2명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마지막 작업, 그 그림을 완성하는 점하나, 화룡정점은 두 명의 사역자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리라 밑습니다.
아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들어가는 과정에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그 지역 경찰과 군인등이 문제를 삼았습니다. 야야산이라고 생각해서 문제를 삼았습니다. 이런 문제는 항상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곳에 처음 들어 갈 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가까이는 대전광역시 팀이 들어와서 움직일 때도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성문 선교사님와 급하게 들어가고, 서류를 만들고, 결국 활동비 조금씩 주고 넘어 갔습니다. 혹시 이런 일로 선교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것입니다. 다 똑같이 겪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국 분이 저와 관계없이 들어가서 사업만을 한다면 제가 활동하기도, 그리고 박성문 선교사님이 활동하기도 더 편안해 지고, 관심을 덜 받을 수 있기에 더 좋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재정지출적인 문제입니다. 저희 선교의 재정 지출은 하는 일에 비해서 그렇게 많이 지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판 우물이나, 장학금의 지급은 거의 저에게 보내오는 한국 후원금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남선교회에서 우물을 2개 정도 파셨고, 지금 직업 훈련원 수료식에서 올해부터 고등학생 장학금을 주고 있고, 선교회 헌신 예배 전에 여러분들이 들어가는 것과 여선교회에서 정기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선교회에서 지출이 되는 것이겠지요.
아름다운 드림사역에 6백만 루피아 지출 되었고, 도서관에 3백만 루피아 지출됩니다. 직업 훈련원은 전액 엄정호 장로님께서 감당을 하셨습니다. 올해는 수료식 때에 꽃값과 식사비용이 지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탐에 있는 신학교를 하나 돕고 있습니다.
사역자들입니다. 사역자들의 비용 지출은 이렇습니다. 아구스 목사는 그 생활비를 저희가 백만 루피아씩 지원을 합니다. 순다교회요, 순다족 목사님입니다. 찌쁜드의 교장 선생님 이브 애니은 도서관장으로 도서관비용에서 지출합니다. 사역자 한명인 릿따도 도서관 비용으로 지출됩니다. 릿따는 12월에 졸업하고 목사의 길을 갑니다. 도서관 관장님 이분이 있기에 우리가 도서관에 가면 마음껏 쉬고, 그분에게 점심도 부탁하고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사무실에 두 명있습니다. 디아나와 마르셀입니다. 어짜피 사무실에 직원이 필요한데, 그 필요를 사역자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전에 있던 직원들 보다 더 열심히 하고, 더 깨끗합니다. 디아나는 11월 졸업하면 목사의 길을 갑니다. 마르셀은 제가 데리고 있으면서 공부를 더 시키려고 합니다. 공부할 수 있는 머리가 있습니다. 결국 비용은 사무실 비용으로 지출됩니다.
찌쁜드의에 2명이 들어갔습니다. 헤리와 레니입니다. 이들은 더 이상 교회에서 지출할 필요가 없습니다. 헤리는 사역자들을 돕고, 레니는 사역자들이 드리는 예배를 담당합니다.
사역자 두 명은 최이섭 장로님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지원해서 회사에 채용하셨습니다. 직장 사역입니다. 헨리와 수디야라는 친구입니다. 지금은 시험 단계입니다. 당연히 교회에서 재정 지출이 되지 않습니다.
어린이 집을 담당하는 얀띠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지금은 저희 사역지를 순회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도서관에도 있었고, 지금은 사무실에 있습니다. 이친구도 한 두달 후면 사역지로 나갈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에서 백만루피아씩 지출됩니다.
신학생은 한 명에 50만 루피아씩 지출이 됩니다. 올해 3명이 지출되었습니다. 7월 달부터 5명입니다. 이름은 브르깟, 젠스리, 마리아, 사로, 에바입니다.
그 동안 저와 함께 사역을 하던 박성문 선교사은은 독립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그분도 독립할 나이가 되었고, 또 이곳에 태권도장을 하시면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독립을 본인도 원하셨고, 언제까지 제 밑에서 있겠습니까?
그 동안 함께 하던 아름다운 드림 사역은 선교위원회의 요청으로 사람을 끼우는 사역으로 바꾸고자 합니다. 순다 분들을 키우는 일입니다. 학생들을 키워서 그리스챤 지도자로 만들어 가려고합니다. 좀 더 자세한 계획은 계획이 세워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선교에 대하여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한국 사람도 전도를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순다족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그런 것은 우리가 키우는 사역자에게 맡끼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여선교회가 가끔 선교지에 들어갑니다. 귀하고 소중한 일입니다. 그일 하려고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큰 비용 들여서 오십니다. 우리가 가까이 있다고 가치 없는 일도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한국에서 오셔서 복음을 전하고 가시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그 일입니다. 빚진자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집에서 쉬시면 뭐하겠습니까? 조금은 덥지만 그곳에서 내가 할 수는 있는 섬김과 봉사, 사람을 전하는 그 일이 가치 있고 복된 일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인도네시아에 있습니다. 우리가 단기 선교러 그런 곳도 가 보았으면 합니다.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결과도, 열매도 하나님게서 맺으실 것입니다.
순다족 땅은 넓고 선교의 일들은 많습니다. 여러분들의 도움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아름다운교회가 그 전부는 아니지만, 그 일부를 담당하는 교회가 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로 나아가게 될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