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순 회방연 시연에 붙여
한 세대가 30년이니, 이제 두어 세대 전 이야기가 되었다. 그때 손주가 아프면 할머니는 하얀 무명 자루에 쌀을 넣어 아픈 부위를 꾹꾹 눌러주고 쓸어주었다. 입으로는 중얼중얼 주문인지, 노래인지를 흥얼거렸다. 바로 잔밥 시술이다.
집안의 안 주인인 아낙은 장독대에 정화수, 부뚜막 토대에 조왕물 올려 천지신명께 두 손 비비며 빌었다. 마을 앞 당산나무에도 빌었고, 서낭당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때도 중얼중얼 주문인지, 노래인지를 흥얼거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님께 비나이다. 어디 사는 아무개의 소망’이라며 조상, 조왕, 당산, 서낭, 산신, 용왕께 빌었다. 그 기원과 소망의 중얼거림은 경문이고, 시이며, 이 세상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노래이고 신과 합일하는 음률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선열의 사랑과 정성을 누가 이어받을까 싶다. 살펴보면 과거는 현재를 만들고 미래로 나아가는 근본이지만, 이제 그것은 현대라는 문명이 앗아가고 지나간 풍습이요 유물이 되었다. 그렇게 지나간 것은 낡은 것, 버려지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낡은 것이라며 버려지는 그것은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함이며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이다.
흔히 엠지(MG)세대라고 하는 1980년부터 2000년 출생자에게 목매기 우는 자운영 붉은 논둑이나, 아카시 휘날리는 강둑이 어찌 감흥으로 다가올까만, 그래도 그들이 태어난 건 조상네의 중얼중얼 주문과 노래 때문 아니겠는가?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지만, 그분들의 기원과 소망의 결정체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임은 틀림없다.
2023년 10월 29일 토요일, 담양 면앙정 일대에서 담양문화원(원장 강성남) 주관으로 송순 선생 회방연 시연 및 문화공연이 있다.
송순은 1493년 담양에서 태어나 아흔 한해를 살고 1583년 세상 소풍을 마친 조선의 명재상이다. 당시 조선은 4대 사화의 혼란한 시기였는데 ‘하늘이 낸 완인’이란 이황의 칭송처럼 송순은 빼어난 인품으로 시대를 극복하였다. 다만 단 한 차례 유배를 갔으니, 1545년 을사사화 때이다. 윤원형 일파의 만행을 보고 송순은 ‘상춘가’를 지었으니 ‘꽃이 진다 하고 새들아 슬퍼 마라/ 바람에 흩날리니 꽃의 탓 아니로다/ 가노라 희짓는 봄을 새와 무삼하리오’이다. 이 시조에서 낙화는 희생당한 사림들이다. 이 시조를 백성이 중얼중얼 노래로 불렀고, 송순은 1550년 충청도 서천으로 유배를 갔다.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의 면앙정은 송순이 41세 때인 1533년 잠시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내려와 지은 정자이다, 면앙은 ‘아래를 굽어보고 위를 우러러본다’의 뜻이니 백성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리고 여기서 지은 시가 ‘면앙정삼언가’이고 송순의 호이기도 하다.
송순이 면앙정을 짓고 주위에 도토리를 얻는 구황나무인 참나무를 심은 것도 그 면앙정신 때문이고, 그 후손인 아름드리 참나무를 오늘의 우리가 보는 연유이기도 하다.
또 회방연은 과거급제 60돌을 축하하는 잔치이다. 1579년 송순의 나이 87세 때 여기 면앙정에서 그 회방연이 열렸다. 조선시대에 4명만이 누린 영광으로 이때 선조가 꽃과 어주를 내려 축하했다. 또 전라관찰사와 각 고을수령, 제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고, 임제, 고경명, 정철 등이 가마꾼이 되어 스승을 모셨다.
송순의 73행 면앙정가는 내용 구성, 표현 형식도 그만이지만, 아름다운 우리말 시어의 자유자재 구사는 오늘의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가사문학의 걸작이다.
아무리 바빠도 10월 29일의 송순 선생 회방연 시연에 가면 옛 선열들의 중얼거림, 경문이고, 시이며, 이 세상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노래, 신과 합일하는 음률을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일이 그러한데 어찌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지나칠 수 있으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