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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5:58 부활의 새 날까지 210425 부활절 넷째 주일
1. 우리는 지금 부활의 계절에, 우리의 믿음의 궁극적 목적인 부활에 대한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1)부활절인 지난 4일 :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2)부활절 둘째 주일인 11일 : 모든 사람은 장차 생명의 부활,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
3)부활절 셋째 주일, 지난 주일 : 부활의 빛으로 !!
2.오늘 부활절 넷째 주일에는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부활의 새 날이 올 때까지”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다. 고린도전서15:58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오늘 본문 말씀을 먼저 풀이하고 본문 말씀이 주시는 교훈을 나누겠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장인 고린도전서 15:1-57 까지의 말씀을 근거로 이제 그 결론을 내린다는 의미의 표현입니다.
고린도전서 1-57절까지의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①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②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다,
③우리의 부활은 그 다음이다,
④주님이 재림하실 때 믿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
⑤이 세상 사는 동안 부활의 빛으로 살아야 한다 – 부활의 확신으로 살되, 악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고 깨어 의를 행하자 입니다.
그래서 여기 ‘그러므로’는 그러한 부활의 날이 반드시 올 것임으로 그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이끄는 말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바울사도는 부활에 관한 고린도전서 15장의 마지막 권면의 말씀을 함에 앞서서 고린도 교인들이 같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랑하는 형제들’이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고린도교인들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문제가 많은 교회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모두가 한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고린도 교회 내에는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며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부활신앙을 어지럽히고 흔드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12절).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따라서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의 뜻은 그러한 부활반대론자들의 말로 인해 흔들리지 말고 부활신앙을 굳게 세우라는 의미입니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부활신앙을 굳게 지키면 주님의 일에 힘쓰게 되고, 주님의 일에 힘쓰게 되면 부활신앙은 점점 견고하게 되기 때문에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더욱 힘쓰라’ 강조하신 것은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쓸 때 부활의 믿음이 견고해 진다는 원리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일에 힘쓰는 것이 부활 신앙을 견고하게 하고 흔들리지 않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일에 힘쓰는 것이 더 먼저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친히 제자들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일에 더욱 힘씀으로 부활의 신앙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부활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임으로 주님과 교회를 위해 하는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아서 행한 대로 거둔다는 확신에 찬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는 ‘수고’라는 단어가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
‘수고하였다’(고전 15:10), ‘수고’(고전 15:58)의 의미에 대해 좀더 깊이있게 알아보겠습니다.
고전15:10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15:58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여기에 나오는 ‘수고하였다’, ‘수고’는 같은 의미의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1)우선, 노역이나 어떤 의무감 또는 슬픔으로 인해 ‘지치다’ 또는 ‘피로하다’
라는 의미의 뜻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8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에서도 ‘수고’는 이런 의미를 갖습니다.
2)그리고, ‘지칠 정도로 일하다’ 또는 ‘지질정도로 노력하다’ (요4: 38)는 의미의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 사용된 ‘수고’는 지칠 정도로 복음 전파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뜻하며,
나아가 사역 중에 갖은 매질과 핍박을 당하여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는 말씀은 부활을 믿는 성도들이 주님과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하되, 힘에 겨워 지치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헌신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헛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시며, 그 때에 성도는 분명히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고,
거기서 각자는 자기의 수고한 대로 상급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고전3 : 8).
일한 대로, 수고한 대로 상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성경의 기본 정신입니다.
마태복음 16:27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고전3:8
8...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시편128:2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따라서 주 안에서 행한 성도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으며, 그러므로 주안에서 성도의 수고는 항상 더욱 힘써 행해져야 합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더 깊이 상고해 보겠습니다.
첫째,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라는 본문의 말씀은
우리의 믿음생활과 부활신앙에 해로운 말이나 시련, 유혹이 올 때에 흔들리지 말고 신앙을 굳건하게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 고린도교회에도, 다른 지역교회들에게도, 오늘날의 교회에도 우리의 믿음생활을 흔드는 사악한 말과 시련이나 유혹이 있습니다.
이런 사악한 말과 시련, 유혹을 만날 때,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굳게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굳게 지킬 때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준이 무엇이어야 할까요?
처음 신앙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르고 세상과 더불어 짝하여 살다가 주님을 만나,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았고, 이 길이 우리가 사는 길이로구나, 이 길이 우리가 가야할 생명의 길이구나 깨닫고 주님께 돌아와 우리의 삶을 의탁했습니다.
손들고 주님께 나와서 세례를 받았고, 고귀한 직분도 받았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그리고 생명의 복음 증거를 위해 헌신하겠고 다짐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처음 신앙입니다.
이 신앙을 회복하고, 이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견실하며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사는 것입니다.
“요한일서2:24
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처음 신앙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2:4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우리에게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아멘으로 순종하여 손들고 나갔던 처음 신앙을 회복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처음신앙의 회복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3:14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하였고,
야고보서1장 8절에는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가 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여 믿습니다”, 손들고 나갔던 처음 신앙을 굳게 붙잡고 부활의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항상 주님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일하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일은 더 많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다 하는 일외에 과외로, 그러나 더 중요하고 특별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입니다.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은 세상의 일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세상의 일은 육신의 삶을 위한 것으로, 먹고, 쓰고, 육신의 생존을 이어가기 위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은 우리의 영과 육이 함께 살기 위한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교회를 충성되게 섬겨 살면 “우리의 영도 잘되고, 범사에 잘된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이요, 증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또 다른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리고, 주님을 섬기는 것은 사실 육신적 축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 우리가 더욱 힘써 주님의 일을 하고, 교회와 복음을 위해 힘쓰는 것은 ①구원해 주심에 대한 감사와 ②부활의 소망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 성자 예수님의 목숨값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감사한 일인가요?
천지만물을 성부 하나님과 함께 창조하신 성자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 위해 죽으셨다는 이 놀라운 은혜는 우리가 평생을 다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이기에 우리가 가진 것으로 힘써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장차 입게 될 부활의 영광이 너무 크고 감사하기에 더욱 우리가 힘써 우리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항상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중대한 일입니다.
물론 세상일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입고 쓸 것을 위해, 자녀를 잘 양육하기 위해, 부모님을 잘 봉양하기 위해,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해,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수고는 우리가 이 땅을 떠나는 순간, 그 모든 가치를 상실합니다.
설령 내가 재벌 수준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자녀에게 유산으로 남겨 준다 해도 그것뿐입니다.
하나님께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재벌을 일으키고, 대통령을 지내고, 전세계가 알아주는 유명인사라고 해도 숨을 거두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이 누구 것이 될른지 알지 못하고 알아도 상관없게 됩니다.
그것들이 우리의 사후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천국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세상에서의 그러한 모든 일은 이 세상에서 떠남으로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그러나 주님과 교회를 위한 헌신은 유일하게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고스란히 가져가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한 이 땅에서의 수고는 하나도 헛되지 않습니다.
고스란히 천국으로 가져가게 됩니다.
마가복음 10:29-30의 약속,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을 때, 이 세상에서 백배나 받는다는 약속이 어디 이 세상에서 뿐이겠습니까?
오늘 말씀이 부활의 장의 결론이라는 것을 기억하시면 주님 나라에서 부활하게 됐을 때
이 땅에서 주님과 교회를 위해 행한 수고가 그대로 인정되리라는 약속인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주님을 위해 핍박과 고난을 받을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항상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심으로 힘쓴 대로, 행한 대로 천국에서 상받는 우리 모두가 될수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인내를 온전히 이룹시다.
저는 지금까지 앞에서 첫째,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자, 둘째,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세 번째로 끝까지 인내하자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려면’ 반드시 인내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하루에 열두번도 더 변한다는 속담이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1년 아니라 10년, 백년이 가도 변하면 안됩니다.
처음 신앙을 주님나라까지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떤 일을 당해도 참고, 부활의 새 날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로마서5:3-4
3.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8:25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야고보5:11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욥이 인내하여 넘치는 복을 받았듯이 우리도 인내하면 이 땅에서도 천국에서도 넘치는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인내는 세상의 모든 일의 승부도 결정합니다.
그래서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학입시가 치열할 때 “4당 5락”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ex)미국의 소매상협회에서 세일즈맨의 거래실적과 집념의 상관관계를 연구, 공개했다.
물건을 판매할 때 세일즈맨 중 48%는 단 한번 권유하고 포기한다.
두 번 권유하는 사람은 25%였다.
세 번 권유하는 세일즈맨은 15%였다.
세일즈맨 중 오직 12%만이 네 번 이상 권유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네 번 이상 권유하는 12%의 세일즈맨이 전체 판매량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이 세상에서도 승자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윌리엄 페더-
“성공의 첫번째 법칙은 인내다”
이 말은 영적인 세계인 교회와 믿음의 세계에서도 동일합니다.
부활의 새 날이 올 때까지 인내함으로 믿음의 큰 승리를 얻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새 날은 반드시 옵니다.
그날이 임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죽어서 주님께로 갈수도 있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산자에게나 죽은 자에게나 부활의 새 날이 올 때
비로소 변화된 새 몸을 입고 영생복락의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날에 그 영광스런 쳔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로 끝까지 그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부활을 새 날을 맞이할수 있습니다.
*마시멜로 : 사탕의 한 종류. 관목 식물 마시멜로의 나무 뿌리 수액에 설탕과 달걀 흰자를 섞어 만든 시럽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은 젤라틴, 포도당, 달걀 흰자, 콘시럽 등을 혼합해 가열한 다음 휘저어서 부피를 늘리고 향을 첨가해 만들며, 주로 사탕류로 소비된다.
완성된 것은 물렁물렁한 것부터 씹을 수 있는 것까지 식감이 다양하며, 요리에 장식으로 얹어 먹거나 막대기에 꽂아 불에 구워먹기도 한다.
ex)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월터 미셸 박사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실험을 했습니다. 일명 ‘마시멜로 실험’(Marshmallow Test)으로, 그는 실험에 참가한 네 살배기 아이들에게 달콤한 마시멜로 과자를 하나씩 나누어주고 15분간 마시멜로 과자를 먹지 않고 참으면, 상으로 한 개를 더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인내력을 그 결과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 중 3분의 1은 15분을 참지 못한 채 마시멜로를 먹어치웠고, 3분의 2는 끝까지 먹지 않고 기다림으로써 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사실은 그로부터 14년 후에 밝혀졌습니다.
마시멜로의 유혹을 참아낸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다룰 줄 아는 정신력과 함께 사회성이 뛰어난 청소년들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반면 15분을 참지 못하고 눈앞에 마시멜로를 먹어치운 아이들은 쉽게 짜증을 내고 사소한 일에도 곧잘 싸움에 말려드는 사회부적응자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가 말해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마시멜로 이야기’는 우리가 유혹을 받을 때에 참고 인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우리는 삶의 곳곳에 숨어 있는 크고 작은 시험과 유혹에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시련과 유혹에 넘어가 신앙을 팔아먹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내심이 부족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새 날이 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주님의 교회와 복음을 위해 더욱 힘씁시다.
주님은 씨뿌리는 비유에서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1:19
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인내가 믿음과 승리의 길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부활의 새날까지 운반해 주는 것이 인내임을 기억하시고,
언제나 인내로 행하여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