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4일 화요일
♥오늘의 말씀 묵상♥
- 오늘도 참으로 귀하고 복된 화요일 새날 아침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 지난 양일간에 전국적으로 흡족한 비가 와서 메마른 땅이 힘을 얻어 한층 실록의 계절을 푸르게 하는 좋은 조건으로 출발하는 하루인 만큼, 조금 화나는 일이 있어도 주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시작한다면 잘 풀리게 될 줄 믿습니다.
- 주어진 일과 속에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 ' 하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성도의 도리를 잘 감당 해 보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히브리서 3장 1-6절 }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 제 목 ♥♥♥
☞ 모세보다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
♥♥♥본문 이해와 요약 ♥♥♥
☞ 3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련 해 그분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보다 뛰어나신 분임을 변증하면서 불신앙에 대하여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 특히 성도란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 이라는 의미로서 하나님께 선택 된 자들이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성별 된 자녀들임을 강조합니다.
- 계속해서 신앙의 위기가 온 사람들에게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대한 세번째 논증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세보다도 뛰어나심을 변증하고 있습니다.
- 모세는 유대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유대인들로 하여금 택한 민족임을 인식하게 하고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것을 전달하여 유대인의 삶을 만든 사람이기 때문에 모세는 유대인의 의식과 생활에서 분리하여 생각 할 수 없는 가장 영웅적인 인물입니다.
- 이러한 모세보다도 훨씬 우월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겨야 함을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여러 가지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 결론적으로 우리는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흠모하고 존경하는 모세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우월 하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집의 일부분이 되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 집을 지으신 분이기에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부리는 사환으로 일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그 집을 다스리시는 아들로서 일하십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보다 신분과 사역에서 뛰어나셨기에 모세는 율법을 대표할 만큼 크고 위대한 사람이었지만, 인간의 죄 성과 한계성을 가진 그로서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완성할 수 없는 인간입니다.
-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모든 삶을 통하여 모세보다 우월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주권을 인정하고 마땅히 성도라면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을 깊이 갖는 태도를 가지고 섬겨야 하겠습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생각은 삶이 된다. (히브리서3장1절)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온전해지는 것은 신앙고백에 합당한 생활을 생각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 1절을 살펴보면 “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믿는 도리’의 원어 ‘호몰로기아’는 사람이나 사물의 내적 외적 성향과 모양에 있어서 ‘같거나 동일한’ 것을 표현할 때 쓰이는 ‘호스모’와 ‘언어,’ ‘말’이란 뜻의 ‘로고스’의 합성어 ‘호몰로게오’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 따라서 원어 적으로 보면 ‘믿는 도리’란 ‘다른 사람들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란 의미에서 파생된 단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신약 성경을 살피면 ‘믿는 도리’인 ‘호몰로기아’는 이보다 한층 더 심오한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이 단어는 다른 사람이 어떤 사건 또는 사실을 경험하여 알고서 말하는 것에 대해 자신도 똑같이 동의하여 그 말이 진실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행위를 가리키는 ‘공언’을 말하며 ‘고백’ 과 함께 ‘증거’라는 뜻대로 쓰인 것입니다.
- 그래서 바울은 고후 9:13절에서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라고 하였습니다.
- 딤전 6:12절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믿는 도리란 우리 모든 성도들이 모두 일치하여 공개적으로 똑같이 행하는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런 이해 속에 다시 1절을 살펴보면, ‘우리의 신앙고백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가 될 것입니다.
- 그러면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각하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는 성경의 의도를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 ‘깊이 생각하라’는 단어는 앞에서 살폈듯이 ‘몰두하고 전념하여 마음으로 고정시키고 숙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런데 이 생각을 통해 성경은 믿음이 흔들이는 성도들이 어떻게 하길 원하는 것입니까?
- 예수님의 십자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깊이 묵상하는 것으로 만족하길 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순종하여 이 땅으로 보냄을 받아 자신이 인간의 삶을 체휼하시고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순종과 희생의 삶을 생각하여 성도들이 예수님의 삶에 합당한 믿음으로 순종의 신앙을 되찾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분명히 후자일 것입니다.
- 그러면 본 구절은 ‘너희가 드리는 공통 된 신앙고백이 되시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믿음을 굳세게 하는 실천적 모습, 즉 지금 현재에 고난 받고 있지만, 신앙고백에서 어긋나지 않고 합당하게 사는 삶 을 살라’는 실제적인 면을 위해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 딤후 2:15절에서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 본문은 지금 유대교로 다시 되돌아가려는 생각이 즉 믿음에서 흔들리는 연약한 히브리 성도들에게 그들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다시 인식시킴으로써 신앙의 정절을 지키며 합당하게 살 것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 빌 1:27절에서“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그런데 이 강한 권면은 당시 신앙적으로 흔들리는 것이 히브리 성도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이는 오늘날 매 예배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그저 주문 외우듯 외우며 사는 성도, 또 예수님에 대해 신앙을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등 종교 다원주의에 관심을 두는 성도, 그리고 신앙고백과 전혀 별개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명목상의 성도들에게 던지는 하나님의 강한 권면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 아침에 성령님께서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말씀하고 계시느니 보내심을 받고 대속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삶을 깊이 생각하여 겸손으로 순종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그래서 내가 이러한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의 진정한 신앙고백적인 삶의 모습으로 예수님의 향기로 살아 냅시다.
- 엡 4:1절에서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하였습니다.
- 오늘 내가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서 마태 16:16 절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것을 기억합시다.
-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도리”를 깊이 생각하는 삶이 되면 능력 있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러나 베드로가 마태 26:35절에서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가장 먼저 확신을 가지고 고백했지만, 주님께서 잡히신 그날 밤 저주까지 하며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명심합시다.
- 그렇다면 지금 내가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자주 흔들리고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할 때일수록 내가 다른 지체들과 함께 신앙 고백했던 그 고백과, 또 홀로 주님께 고백했던 그 고백을 마음 깊이 되새기며 그 고백에 합당하게 참된 모습으로 신실하게 살아 내도록 전심전력하는 신앙 결단이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