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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후안디에고입니다. 과달루페 성모님께서는 성 후안디에고에게 나타나셔서 테페약산 중턱에 당신을 기념하는 성당을 세울 것을 스페인 주교에게 전하라는 사명을 후안디에고에게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럼 저의 주보성인이신 후안디에고는 누구인가? 그는 아즈텍인디언으로서 비천한 신분의 가난한 사람이지만, 부지런한 농부였으며 단순하고 정직한 사람입니다.
그럼 과달루페라는 생소한 단어는 무슨 뜻일까? 멕시코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지 39년 밖에 안 되던 시대에 성모께서 아메리카의 중앙에 위치한 멕시코에 발현하시어 그 대륙을 당신의 소유로 선언하신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또한 당신 발현하신 이유와 당신이 누구임을 분명히 밝히셨으며 인류의 영원한 구원과 사랑의 표시로 당신 모습이 그려진 신비로운 성화를 남기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투로 이렇게 묻는다. "그것이 정말 기적의 그림입니까? 진짜란 말예요? 누가 어떤 환상을 그린 것이 아닐까요?"
이 성화를 과달루페(Guadalupe)의 성모라고 부르게 된 것은 그 지방의 특유한 문화에서 비롯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 이름이 루르드와 파티마의 기적과 같이 성모께서 발현하신 장소 이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기적이 일어났던 장소의 명칭은 과달루페가 아니라 테페약(Tepeyac)이었다. 그리고 이 성화 이름은 성모마리아께서 직접 붙여 주신 것이었다. 이 성화 이름이 사람들에게 잘 못 이해된 것은 기적이 일어난 후 성화에 대한 설명이 와전되어 성모님이 발현하신 이유와 성화의 중요성이 소멸해버린데 그 원인이 있다.
최근에 다시 그 사건을 조사한 헬렌 베렌스(Helen Behrens)와 그녀의 공동 연구반에 의하면 이 성화의 이름은 성모마리아께서 직접 일러 주신 것임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그들이 연구한 것은 기적이 일어난 후 곧 안토니오 발레리노에 의해 기술된 성모 발현과 그 기적에 관한 보고서를 근거로 한 것이었다. 이 보고서를 연구하던 중에 헬렌은 요한 베르나르디노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몇 가지 메세지가 빠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또한 오늘날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기적의 사화는 스페인인들이 아즈텍 말을 올바르게 분석하고 번역하여 전한 것이 아님도 확인하였다.
아마도 그들이 그렇게 했던 것은 그 메세지가 주로 인디언들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헬렌이 자료로 삼은 당시의 아즈텍말 원문의 스페인어 번역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그는(요한 베르나르디노) 그의 조카를 만났다. 그리고 그는 그분이(성모님) 주교에게 가서 제시하여 설명하도록 요청하신 것과 그가 보았던 사실들과 그분께서 그를 치유하여 주신 것과 후안 디에고의 틸마에 나타난 성모의 성화가 '과달루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 마리아'로서 불러야 한다고 하셨음을 말했다.
스페인어의 번역문을 논평하면서 헬렌 베렌스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데 과달루페(de Guadalupe)라는 구절을 잘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본래의 아즈텍어가 아니다. 스페인어였다. 그것은 스페인어로 과달루페라고 불리우던 곳에 성모님을 위한 성당을 세운 명칭이었고, 오늘날까지 그렇게 불러 왔다." 기적이 일어날 당시에 주마라가 주교나 혹은 다른 어느 고위 공직자도 성모께서 당신의 성화를 '데 과달루페'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신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불러야 할 이유를 전혀 말씀하시지 않으셨던 것이다. 성모님은 인디언말로 말씀하셨고 당신이 쓰신 말을 결합해 본 결과 '데 과달루페' 처럼 그들에게 들렸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아즈텍어로 테 콰틀라소페우(Te Coatlaxopeuh)는 테 가틀라소페우(Te Quatlaxopeuh)와 유사하게 발음이 된다.
테(Te)는 '돌'을 의미하고 콰(coa)는 '뱀'을 뜻하는 말이다. 틀라(tla)는 영어로 the와 같은 명사형 어미이다. 소페우(Xopeuh)는 '쳐부수다' '박멸하다'의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 메세지의 마지막 문장이 본래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그분의 성화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 마리아'로서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과달루페의 의미는 돌뱀을 쳐부수다. 또는 박멸하다의 뜻이다.
성모마리아의 메세지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었다. 당신이 언급하신 돌뱀은 아즈텍인들이 섬기는 날개돋힌 사신 퀴트잘코아틀임이 분명하다. 퀴트잘코아틀(Quetzalcoutl)은 아즈텍 인디언들이 해마다 2만 명 이상 여자와 아이들을 피의 제물로 바치던 신이었다. 그러나 마리아께서는 그러한 돌뱀의 우상을 물리치시고 그곳을 당신의 지배하에 두셨던 것이다.
또한 이것은 창세기에 예언되어 있던 여인을 교회에 확인시키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야훼 하느님은 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도 여자와 원수가 되리라. 너는 여자의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 머리를 밟히리라."(창세3. 14~15) 묵시록에도 뱀을 사탄으로 인정하고 있다.
옛날 멕시코의 쿠아우티틀란(Cuautitlan)이라는 작은 마을에 후안디에고라는 가난한 인디언이 살고 있었다. 후안디에고라는 이름은 세례명이며 본래 이름은 쿠아티틀토아트진이다. 그러나 이 인물은 본래 이름보다 세례명인 후안디에고로 알려져 왔다. 후안디에고는 쿠아우티틀란에서도 부지런한 농부였다. 그는 인디언 중에서도 천한 계급인 마제우알레스(Mazahuales)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지독히 가난한 생활을 했고 흙벽돌과 옥수수 대로 지은 집에는 방에 창도 없고 드나드는 입구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입구에는 밀짚으로 만든 페타테라는 거적을 달아 두었다. 그가 갖고 있던 페타테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여러가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잠을 잘 때는 담요나 메트리스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고, 비가 세차게 내리거나 추운 바람이 불 때는 몸에 두르고 다니는 외투로 쓰였다. 후안디에고는 무명 옷을 입고 살았다. 때로는 선인장에서 뽑은 섬유로 만든 (아야테:ayate) 큰 천을 두르고 다녔는데, 이 천을 틸마라고 한다.
1531년 12월 9일 토요일 아침 일찍이 후안디에고는 미사에 가기 위해 테페약 산을 넘고 있었다. 그는 길을 가면서도 쓸쓸한 마음으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었다. 그의 가죽 샌들은 돌에 찢기어 구멍이 났고 발은 상처 투성이었으며 차거운 겨울바람이 허름한 옷 사이로 매섭게 파고 들었다. 테페약 산등성이를 넘을 때는 추위에 못이겨 몹시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그곳은 언제나 황량한 불모지였다. 그러나 예전에도 그가 늘 그곳을 넘어갔지만 그때처럼 춥고 황량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때였다. 그는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춰 섰다. 왜냐하면 그 쓸쓸하던 곳이 아름다운 음악소리로 가득차 있었고 그 소리는 희귀하고 신기한 새들의 노래 같았다. 그가 발걸음을 멈추어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했을 때는 이미 음악은 그치었고 산 속으로 메아리쳐 들릴 뿐이었다. 그 노래소리는 지상의 어떤 새와도 닮지 않은 새들의 노래였다. 새벽의 어두움도 환한 빛에 밀려나고 있었다.
후안디에고는 주위를 살피며 혼자 중얼거렸다. '방금 들은 노래소리는 정말 아름다웠는데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어디지? 여기가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지상낙원인가? 벌써 내가 천국에 온 것일까?' 천상의 노래소리가 들려 온 동편 언덕을 바라보며 주위를 다시금 살피고 있을 때 갑자기 조용한 가운데서 "화니토, 후한 디에귀토" 하는 음성이 들려 왔다. 그는 서슴없이 그 음성을 쫓아갔다. 그는 마음 속으로 크게 놀라고 있었지만 언덕 위로 올라가면서 한편으로는 무척 기쁜 마음이었다.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그는 거기에 홀연히 서 계신 한 부인을 보았다. 부인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그는 그 부인이 서 있는 가까이에 이르자 그 주위에 초현실적인 무엇이 감돌고 있음을 느끼고 깜짝놀랐다. 부인은 태양같이 찬란한 의복을 입고 있었고, 부인이 서 있는 바위는 보석처럼 빛났으며, 주위에 무지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곳은 본래 메스키트와 잡목들이 무성한 곳이었는데 그것들 또한 에메랄드 같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는 곧 부인 앞에 엎드려 부인의 말씀을 들었다. "화니토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냐?" 하고 부인이 물으시었다. 그는 "마나님 저는 영신교리를 배우고자 주님의 사도들인 사제의 가르침을 들으러 틀라텔로코에 있는 성당에 가는 길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부인은 당신의 숭고한 뜻을 드러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나의 사랑을 받는 자여, 너는 내 말을 명심해 듣도록 하여라! 나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느님의 어머니 성 마리아다. 나는 너희가 나의 사랑, 나의 자비, 나의 구원과 보호를 증거하기 위해 이곳에 하루 바삐 성당을 세우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믿으며 나의 도움을 청하는 지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의 어머니다. 나는 그들이 탄원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며 그들의 모든 슬픔을 위로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분부를 듣고 멕시코 주교관에 가 이 언덕 위에 나를 위한 성당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밝히고 그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임을 전하도록 하여라. 네가 보고서 놀란 일도 모두 아울러 전하여라. 나의 뜻도 확실히 전하여라. 나는 너희가 겪는 어려움과 내가 명한 일을 달성하기 위해 겪는 노고를 경사가 되게 할 것이다. 지금 너는 멕시코 주교관으로 가서 나의 분부대로 하여라." 부인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그는 절을 하고 "마나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비천한 종 떠나겠습니다." 라는 인사말을 한 후 곧 바로 멕시코로 가는 둑길로 떠났다.
후안디에고가 간 둑길은 북쪽 길이었다. 그는 너무나 초라한 옷을 입고 걸음걸이는 몹시 지척거렸다. 그는 자신이 매우 비천한 신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였지만 신성한 임무를 맡고 있다는 확신감으로 용기를 내어 견디어 내고 있었다. 그가 본 복되고 거룩한 광경은 자기 일을 주저하기에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것들이었다. 그가 성모님께 경건하게 경배를 드리는 순간 하늘의 여왕은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에 영광의 빛에 휩싸여 테페약 산을 떠나시었다. 성모님은 그를 택하시었고 당신의 높은 뜻을 주교관에 가서 전하라고 분부하셨다. 그는 성모님의 뜻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는 넓은 초원을 가로질러 험한 산길을 가는데 익숙했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그가 험한 산길을 가는 다리의 아픔보다 정복자들의 수도로 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시내로 들어가 주교관으로 향했다. 주교관은 조칼로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주교관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주변의 건물들은 그에게 위압감을 주었다. 그와같이 멋있는 장식들로 치장된 건물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주교관 정문에서 그를 쏘아보며 수상히 여기던 문지기의 눈초리도 그에게 불안과 모욕을 느끼게 하였다. 그는 용기를 내어 주교관 문지기에게 주교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는 무표정하게 후안디에고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문지기는 주교가 그를 만나기를 허락했다고 전해 주었다.
그는 주교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었다. 그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성모님의 메세지를 전하였다. "저는 테페약 산 꼭대기에서 찬란한 빛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해가 뜨는 것이라고 생각 했었습니다만 그것은 성모님이 발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주교는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이상한 이야기를 듣자 부드럽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후안디에고는 그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짓자 더욱 열심히 보았던 사실들을 설명하며 납득시키려 했다. 그러나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한다고 해서 메세지의 의미가 바뀔 수는 없었다.주교는 그의 말을 다 듣고난 후 약간 어색해 하며 후안디에고의 말을 수긍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언젠가 내가 보다 한가한 시간이 있어 당신 말을 들을 수 있게 되면 다시 한 번 이곳으로 찾아오시오. 당신 말을 신중히 숙고해 보겠소. 그리고 이곳까지 찾아 온 당신의 열성어린 마음과 그 요구를 신중히 생각해 보겠소." 하고 주교는 인디언에게 물러가라는 손짓을 했다. 후안디에고는 자신의 사명이 완전히 좌절되었음을 깨닫고 침통한 표정으로 물러나왔다. 주교관 밖으로 물러 나오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정원지기들과 문지기들의 비웃는 눈초리를 받고 있었다. 시내를 빠져 나올 때까지 그러한 경멸의 눈초리와 비웃음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는 서둘러 테페약으로 가는 북쪽 들길을 갔다.
테페약 언덕 위에 이를 때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슬픈 마음이었지만 산 위로 올라가면 하늘의 여왕이 기다리고 계시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좌절감에 빠져있던 그에게 그러한 확신감이 있어 산을 다시 오를 수 있었다. 산 정상에 서 계시는 성모님의 모습을 보자 황급히 뛰어가 그분 앞에 엎드렸다. "니나미아(Ninamia)" 하고 그는 말했다. 이 말은 그가 처음으로 성모님께 드렸던 멕시코인의 인사말이었다. 이 말은 멕시코인들이 옛날부터 비천한 계층의 사람들이 특히 시골에서, 윗사람들에게 하는 관습적인 인사말이며 존경을 뜻하는 말이다. "성모님! 저는 분부하신 대로 주교관에 가서 성모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주교님을 만나기까지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지마는 마침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주교님을 만나 뵈옵고 저에게 주셨던 말씀을 사실대로 전했습니다. 주교님은 저를 친절히 맞아 주셨고 제 말을 주의깊게 들으셨습니다.그러나 그분이 저에게 하신 대답은 말을 신임하지 못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언젠가 내가 보다 한가한 시간이 있어 당신 말을 들을 수 있게 되면 다시 한 번 이곳에 찾아오시오. 당신 말을 신중히 숙고해 보겠소. 그리고 이곳에까지 찾아온 당신의 열성어린 요구를 신중히 생각해 보겠소' 그분은 이곳에 성모님을 위한 성당을 지으시려는 당신의 소망을 제가 꾸며낸 말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성모님의 실제 분부임을 믿지 않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성모님, 말씀을 전달해서 그분이 신임할 만한 사람, 덕망있고 명예있는 훌륭한 인물을 택하셔서 주교관에 보내십시오. 저는 본래가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이며 하늘의 여왕이신 성모님의 사신이 될 인물이 못 됩니다. 그리고 저는 주제넘게 주교관에 찾아가 성모님의 실망과 심려만을 더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비천하고 무가치한 존재임을 깊이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진실된 생각을 모두 말씀드렸기 때문에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모두 단념하고 있었다. 조용히 성모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성모님의 말씀이 있기도 전에 상처받은 마음이 평화롭게 치유됨과 성모님의 사랑과 동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잘 알아듣도록 하여라." 성모님은 다시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너는 나에게 많은 사자들과 천사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나는 그들을 시켜 나의 말을 전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너를 선택한 것은 네가 나의 청을 받아들여 너의 중재와 도움으로 나의 뜻이 이룩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진정으로 네가 나의 뜻을 받아들여 다시 내일 주교에게 갈 것을 명한다. 그리고 주교관에 가서 나의 말씀을 전할 때도 나의 이름을 들어 말을 하고 내가 요구하는 성당의 건립이 그가 수행하여 마땅한 나의 뜻임을 강조하여 말하여라. 또한 너를 보낸 이가 하늘의 여왕이신 성 마리아라고 말씀하셨다는 것도 밝히도록 하여라.
후안디에고는 다시 힘과 용기가 솟아났으며 큰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었다. "하늘의 여왕님, 저는 당신께 걱정을 끼쳐드리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러 가겠습니다. 어떠한 난관이 있다하더라도 힘써 노력하고 분부대로 행하는 일이 어렵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혹시 흡족한 대답을 듣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그분이 저를 믿지 못하는 데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일 것입니다.모르겠습니다. 내일 오후 해가 질 때쯤 해서 저는 주교님의 수락여부를 알려드리러 오겠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떠나겠습니다. 성모님, 제가 다시 올 때까지 편히 계십시오." 그는 성모님께 절을 한 후 곧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으며 톨페틀락으로 가는 산길을 따라 내려왔다. 그는 마을에 도착하자 무척 피로함을 느꼈으며 집에 돌아가자마자 자리에 누워버렸다. 다음 날(12월10일) 아침에도 일찍이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쉬어야만 했다. 그의 생활규칙은 깨어질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고 습관적인 것이었다. 그는 아침에 먼저 틀라텔로코에 갔다. 그 날이 바로 주일이었기 때문에 미사를 드린 후 교리가르침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는 곧 멕시코시로 출발해야 했다. 그곳에 간 시각은 열시가 다 된 때였다. 일요일에는 평일보다 강론이 길었기 때문이었다. 일요일이면 여러 곳에서 많은 신자들이 그 수도원에 왔다. 그리고 그들은 미사가 끝났을 때 곧바로 자가 마을로 가지 않고 성당 앞 뜰에 있는 큰 십자가상 밑에 모여 서로 안부와 소식을 묻고 관심있는 일들을 상의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후안디에고는 그날 그 모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척 안타까왔다. 그것은 성모님의 메세지를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좀더 신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 잠시 머문 시간이 그에게는 좋은 휴식이었다. 앞으로 자기에게 일어날 일에 관해서는 조금도 의심이 없었다. 그렇지만 주교관 하인들을 다시 만난다는 생각은 몹시 두렵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예상했던대로 하인들을 만나 들여보내 달라는 청을 하기가 먼저보다 훨씬 어려웠다. 하인들은 그를 밀어내면서 주교가 그를 만날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그들 앞에서 물러나 성모님께 다시 기도했다. 자신의 틸마로 몸을 감싸고 주교관 앞의 뜰에 앉아 있으면서 틈틈이 가서 들여보내 달라고 청했다. 그가 괴로운 심정으로 기다리는 동안 정원지기 하인들은 무관심한 표정으로 그의 앞을 지나다녔다. 그러나 그는 굽히지 않고 끈기있게 기다렸다. 마침내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마지못해 하인들은 주교가 그를 잠시 만나보겠다고 허락했음을 그에게 알려왔다.
후안디에고는 모든 수모를 잘 참아내고 있었지만 막상 그 어려운 시간이 지나가고 주교 앞에 서니까 말을 못할 정도로 설움이 복받쳤다. 그는 말을 하려고 하였으나 도저히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고 눈물만이 나올 뿐이었다. 마침내 그는 주교의 발아래 엎드려 울먹이며 테페약에 성모님의 말씀대로 성당을 세워야한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하느님이시여! 이 일이 이룩되게 해주십시오. 해 주십시오." 본래 절제없는 행동을 몹시 싫어했던 주마라가 주교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떨떠름한 태도로 후안디에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엄격하고 단호한 어조로 후안디에고를 꾸짖으며 그런 터무니 없는 이야기나 부질 없는 재촉은 무모한 짓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만일 그 말씀을 믿게 하려면 분명하고 조리있는 말로써 설명하고 신중하게 대답하라고 말했다. 후안디에고는 다시 신중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절도없는 자기 태도가 말씀을 손상시켰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주교관의 품위있고 단정한 사람들처럼 예절에 맞게 자신의 거친 태도를 그치고 감정을 억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분명하고 확신에 차있는 말로 성모님을 만나뵙고 대화한 일을 거듭 상술했다. 성모님의 모습과 서 계신 장소의 초자연적 현상들과 그분의 분부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그를 보내신 분이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마리아라고 말씀하신 사실도 강조했다.그분이 자기를 택하신 이유와 그분의 심부름꾼으로 그 임무를 수행할 책임을 느꼈다는 사실까지 설명했다.
그가 조금도 동요없이 말하는 것을 본 주마라가는 엄격한 태도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그 인디언의 말이 매우 진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믿지 않고 어떤 망상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반가워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부드러운 태도로 다시 한 번 주교관에 찾아오라고 일렀다. 그리고 다시 올 때에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물로 하늘의 여왕이신 성 마리아의 표적을 하나 가져오라고 말했다. 후안디에고는 주교의 제안에 조금도 난처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는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의 질문은 주교더러 어떤 표적을 원하느냐는 것이었다. "주교님, 말씀하시는 표적을 일러주십시오. 제가 가서 저를 보내신 하늘의 여왕님께 청하겠습니다." 주마라가는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떤 표적을 바란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후안디에고에게 아무 대답도 않은 채로 떠나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주교관에서도 신임하는 하인들을 몇 명 불러들여 그 인디언을 뒤쫓아가도록 하였다. 그 인디언이 어느 곳으로 가서 누구를 만나며 어떠한 대화를 하는가를 알아오도록 했다. 그 말을 하면서도 후안디에고가 엿들을까 스페인 말을 썼다. 주교관 하인들은 즉시 그를 뒤쫓았다. 그런 일은 하인들에게도 호기심을 돋구는 일이었다. 후안디에고는 그가 왔던 북쪽 둑길을 따라 서둘러 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와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뒤를 따라갔다. 길을 가는 도중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후안디에고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테페약 산과 들이 접하는 곳에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곳에 놓여진 다리에 가까이 이르자 후안디에고가 갑자기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들은 몹시 놀라서 이상히 여기며 주위를 샅샅이 찾아 보았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후안디에고를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미행이 실패했음을 알고 분개하며 주교관으로 돌아가야 했다.
강에서 솟아 오른 안개가 그 주위를 덮는 일은 자주 있기는 했지만 맑게 개인 하늘 아래서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후안디에고가 사라진 것이 이상하게만 생각되었다. 그들은 미행이 실패한 것은 후안디에고가 어떤 속임수를 써서 그들을 피해 도망한 것이라고 말하며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리려고 하였다. 그들은 주교관으로 돌아가 주교에게 후안디에고는 협잡꾼이며 사기한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날씨가 몹시 더워 미행하기에 힘이 들었으며 그들이 속은 것이 더없이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 인디언이 철저하게 속임수를 쓰고 있었으며 그가 한 모든 이야기는 꾸며낸 것이거나 공상일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그가 다시 주교관에 나타날 때는 붙잡아 다시는 그런 행동을 못하도록 매를 때려야 한다고 이구동성이었다.
그들의 말을 들은 주마라가는 후안디에고에 대하여 분별하기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에 아무 대꾸없이 그들을 물러가게 했다. 주교가 아무런 말이 없자 하인들은 당황해 하며 물러나왔다. 아마 그 인디언이 자기들에게서 받은 모욕에 조금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있었음을 알았다면 그들의 분노는 더욱 컷을 것이다. 후안디에고는 자신을 의심하며 미행했던 자들로 부터 자기를 보호한 그 안개는 성모님이 보내 주신 것이었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테페약에서 성모님의 주위를 에워쌌던 안개였고 그를 보호한 후에는 곧 사라져 없어진 것이었다. 잠시 후 그의 앞에는 길이 다시 나타났고 그 안개는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테페약 언덕 위에 안전하게 도착한 그는 다시 성모님을 만나게 되었고 지금까지 겪은 일을 낱낱이 말씀드렸다. 성모님은 그의 말을 들으시고는 어제 보다도 더욱 온화하고 사랑스런 말씀으로 그에게 위안을 주셨다.
"만일 그러하다면 주교가 요구한 분명한 표적을 보여 주도록 할테니 내일 다시 이곳에 오너라. 네가 그것을 가지고 간다면 다시는 너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며 너의 참된 믿음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네가 겪은 고통에 보상을 내릴 것이다. 자, 그럼 돌아가거라. 나는 내일 이곳에서 다시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후안디에고가 다음날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것은 단순한 생각에서 한 말이었다. 그는 자기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이 구체화될 때까지 아무런 의혹을 갖지 않았었다. 그는 주변의 일뿐만 아니라 자기 생활 전부를 전환시키신 성모님께 자신을 완전히 의탁하고 있었으며 완전한 순종을 표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톨페틀락으로 돌아오니까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는 곧장 자기 집으로 가지 않았다. 숙부를 만나보러 잠시 숙부의 집에 들러보니 베르나르디노가 몹시 앓고 있음을 알았다. 그 노인은 갑자기 코콜리스틀래(Cocalixtla)라는 열병에 걸려 있었고 몹시 위독한 상태였다. 후안디에고는 곧 마을 의사를 불러왔다. 그러나 시골의 약초상이 알고 있는 모든 치료법을 다 동원하여 치료하였어도 그의 치명적인 병은 고칠 수 없었다. 그는 체념한 채로 자기로서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음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나긴 밤은 지나 갔고 환자에게는 고통의 경감도, 차도도 없이 아침이 밝아 왔다. 그날 해가 질 무렵 숙부 베르나르디노는 조카를 불러 날이 밝는대로 지름길로 틀라텔로코에 가서 프란치스코회 신부를 데려와 달라고 했다. 그 노인은 마지막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아무런 불평이 없었지만 병자성사를 받지 않은 채로 죽을 수는 없었다.
다음 날으 12월12일이었다. 후안디에고는 침착해야 했다. 그는 첫새벽에 출발하여 곧바로 수도원으로 가서 신부를 모셔오겠노라면서 환자에게 위안을 주려고 애썼다. 그가 한가닥의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제가 고백성사와 마지막 강복을 주는 것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틀라텔로코의 수도원장 야곱 데 그라테(Jacob de Grade) 신부는 일찍부터 인디언들이 약초를 쓰는 처방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에 대한 많은 연구를 했었다. 그리고 수도원 회원들에게 그와 같은 연구를 하도록 격려하기도 했다. 그들은 스페인의 치료법과 그 연구에서 얻은 지식을 연관시키려 노력하고 있었으며 그 치료가 원주민이 쓰는 처방보다 훨씬 효과가 있음이 나타났다. 후안디에고는 이미 그러한 치료의 효험을 볼 기회가 있었다. 성스러운 의사 루카 성인처럼 그들도 인디언들의 영혼은 물론 육체까지 돌보고 있었다. 베르나르디노는 후안디에고에게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친척이었다. 만일 신부가 그를 살려내지 못한다면 그는 숙부마저 잃게되는 것이었다.
그는 한 순간도 지체할 수 없음을 느꼈다. 만일 성모님과의 약속을 지키러 산으로 간다면, 그분은 주교에게 보낼 표적을 보여 주시려고 자기를 붙잡아 못 가게 하실 것임에 틀림없다. 성모님은 본래의 그 표적을 주시면서 멕시코시로 가라고 하실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숙부는 숨을 거둘 것이다. 후안디에고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숙부가 곧 죽을 것만 같아 더이상 그곳에서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산의 다른 길을 택하여 가려고 하였다. 그는 오직 병을 고쳐 줄 신부들이 있는 곳만을 생각하며 서둘러 갔다. "무지한 탓으로 그는 다른 길로 가면 성모의 눈을 피하리라고 생각했다.고 발레리노는 후안디에고의 결정적인 잘못을 지적한다.(오늘 날에도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성모님은 그를 만나기 위해 산 위에서 내려오시는 길이었고 후안디에고는 산의 중턱에서 성모님과 마주치게 되었다. 산허리로 내려오시며 성모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이냐?" 그는 성모님과의 약속을 잊고 있었지만 성모님이 그를 생각하시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몹시 놀란 그는 슬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애써 그러한 심정을 감추면서 자연스런 태도로 말했다. 그는 그분이 누구신가를 잘 알면서도 아침에 예사로 만나는 어른들에게 처럼 인사를 하였다. "하느님, 성모님께서 저를 한 번만 용서하시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그 순간은 그렇게 행동하기에는 너무나 엄숙했고 그는 곧 솔직한 심정으로 그분에게 모든 일들을 말씀드려야 했다.
"성모님께 제 슬픈 심정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모님의 비천한 종 저의 숙부가 지금 매우 위독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숙부에게 마지막 성사를 주시고 위안을 주실 그리스도의 사랑받는 신부님을 모시러 가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 일만을 끝마치면 저는 늦더라도 이곳에 돌아와 성모님 말씀을 전하러 가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하늘의 여왕님 그 동안만 기다려 주십시오. 거짓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믿어 주십시오. 꼭 돌아 오겠습니다."
그가 몹시 안타까워 하며 그분의 동정과 이해를 구하는 동안 성모님은 매우 사랑스런 눈길로서 그를 바라보고 계셨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과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대로 한 행동을 성모님이 모두 용서하고 계심을 알았다. 성모님은 그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하시었다. "잘 알아들어라. 후안디에고, 이제 네가 걱정할 일은 없다. 조금도 근심하지 말아라. 너의 숙부님 병도, 그밖에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네 곁에 있지 않느냐? 내가 너희의 진정한 희망이며 구원이 아니란 말이냐? 나의 일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너희에게 또 무엇이 있더란 말이냐? 이제 너를 괴롭히며 불안케 하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나는 네가 네 숙부의 병이 이미 완쾌되었음을 믿기 바란다." 성모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그의 마음은 평화를 되 찾았고 새로운 힘과 용기가 솟아났다. 그는 숙부의 병이 완치되었다고 확신했다. 하늘의 여왕님이 노인의 병이 완치되었다고 말씀하셨다면 더이상 의심할 여지가 있겠는가?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었다. 그는 이제 그분께서 주시는 표적을 가지고 틀라텔로코가 아닌 멕시코시의 주교관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모님은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가거라, 후안디에고. 네가 나를 처음 만나서 나의 분부를 받던 산 위로. 거기 가면 형형색색의 장미꽃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주워 모아 이곳으로 가져오너라." 후안디에고는 곧 산 위로 올라갔다. 산 위에 가보니 거기에는 카스틸라 지방의 장미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그곳은 한 번도 꽃이 피지 않았었고, 늘 바위와 엉겅퀴, 가시덤불, 선인장 등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12월이면 그런 잡목들마저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꽃이 필 계절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초목은 아예 자랄 수 없는 추운 겨울 이었지만 그는 아무런 의심없이 곧 장미들을 자기 틸마에 담기 시작했다. 장미들은 아침 이슬이 맺혀 마치 진주처럼 빛나고 매우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꽃송이들을 꺽어 모은 그는 곧 산을 내려와 성모님께 가져갔다. 성모님은 그가 가져온 꽃송이들을 보시자 손수 그의 틸마에 꽃을 다시 가지런히 다듬어 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후안디에고야, 장미꽃이 네가 주교에게 가져 갈 표적이다. 너는 이 꽃을 그에게 가지고 가 나의 뜻을 깨달아 그것을 실행해야 한다. 어떤 말도 보태어 하지 말며 네가 보고 들은 사실만 말하여라. 내가 너를 그 산으로 보냈다고만 말하며, 네가 그곳에 가서 장미를 발견하고 놀란 사실만을 말하여라. 그러면 너는 그를 믿게 만들 것이며 내가 요구한 성당이 세워지는 날까지 그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말씀을 마치신 후 성모님은 곧 후안디에고를 떠나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는 그 표적으로 인해서 자신의 임무가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들었고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찼다. 그는 그 신기한 장미꽃을 들고서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도 하고 그 향기에 도취되기도 하며 주교관으로 갔다. 그는 주교관에 도착해 집사장과 하인들을 불러 주교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지만 그가 끈덕지게 졸라대며 자기네들을 괴롭히리라는 짐작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동료들이 그를 미행하다가 골탕먹은 일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될 수 있는대로 오랫동안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머리를 떨구고 사정하는 동작을 보다가 그의 틸마에 무엇인가 조심스럽게 싸서 가지고 왔음을 알았다. 그들은 호기심을 갖고 다가와 빼앗으려고 했다. 후안디에고는 하는 수 없이 그것이 무엇인가를 보여 줘야만 했다. 하인들은 그것을 보려고 그를 밀치고 당기고 하며 갖가지로 괴롭혔던 것이다. 하인들은 그것이 상당히 많은 카스틸랴 장미꽃임을 알자 무척 놀랐다. 그때가 꽃이 필 계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꽃이 활짝 피었을 뿐만아니라 아름다웠고 감미로운 향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 몹시 탐이 난 그들은 그것을 후안디에고에게서 빼앗으려 하였다. 그러나 여러번 수를 썼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장미송이를 빼앗으려 달려들 때마다 그 꽃이 현세의 평범한 꽃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당황한 나머지 그들은 주교에게 달려가 그 인디언이 무엇인가 가져 와서 주교님을 기어코 만나고자 한다고 전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주교는 그것이 그가 인디언에게 요구했던 표적이려니 했다. 그는 곧 하인들에게 후안디에고를 데려오게 하였다. 후안디에고는 접견실에 들어서자 예전 처럼 허리를 굽힌 채로 성모님의 메세지를 전하고 자기가 본 일을 이야기 하였다. "주교님 먼젓번에 저에게 요구하신 그 표적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하늘의 여왕이시며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 마리아께 그 말씀을 믿으시게 하려면 주교님께 어떤 표적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모님은 제 청을 들어주셨고 그 표적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아침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 제가 처음 당신을 만났던 장소에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테페약 산 꼭대기로 올라가 보니 카스틸랴 장미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산 위에는 꽃이 전혀 자라지 못하던 곳인 줄 알았지만 조금도 의심하거나 이상하게 생각치 않았습니다. 저는 그 아름다운 장미를 보고서 그곳이 지상낙원인가 하고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런 의심없이 그 꽃들을 꺽어 모아 성모님께 가져 갔습니다. 성모님은 손수 제가 꺽어 온 꽃들을 가지런히 제 틸마 위에 놓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받아 주십시오."
그때까지 후안디에고는 틸마에 싸서 조심스럽게 들고 있던 장미를 펼쳐 보였다. 그러자 그 꽃송이들은 다채로운 색깔과 온갖 향기를 풍기며 폭포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다시금 그 꽃송이를 보는 후안디에고의 마음은 기쁨이 넘쳐 흘렀다. 그는 정말 고귀한 물건을 전달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 사명을 완수했던 것이다. 그는 믿음으로 가득차 있었고 바로 성인처럼 '나는 훌륭히 싸웠고 임무를 완수했고 믿음을 지켰다.'고 말할 수가 있었다. 그 순간이 후안디에고에게 있어서는 그때까지의 처량하고 고달픈 일생에서 가장 영광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아직 그 절정에 이르지 않은 것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발 아래에 떨어진 꽃송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주교는 그 장미꽃보다 더 큰 일에 놀라는 중이었다. 주마라가는 자리에서 내려와 후안디에고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주교의 입술은 떨리고 눈물고인 눈은 장미에 맺힌 이슬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의 변한 시선은 위를 향하고 있었으며 무한한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후안디에고는 그 시선이 바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경모하는 시선으로 후안디에고의 틸마를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안디에고가 소스라쳐 놀란 것은 방금 그 꽃송이들을 풀어놓은 틸마를 보고서였다. 그 틸마에는 때묻은 형태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었고, 바로 테페약에서 그에게 발현하셨던 그 성모님의 영광스런 형상이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주마라가 주교는 즉시 후안디에고에게 사과를 하며 그의 방문에 깊은 환영의 뜻을 표한 후 곧 허리를 굽혀 후안디에고의 목에서 그 틸마의 매듭을 풀었다. 그리고 그 성모님의 성화를 소성당으로 가지고 갔다. 후안디에고는 하늘의 여왕을 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축복받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또한 자기의 보잘 것 없는 틸마 위에 그 성모님의 모습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놀라고 감격했겠는가! 주교관 하인들도 곧 주교의 행동에 따라서 후안디에고의 그 찬란한 틸마 앞에 무릎을 꿇었고 깊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하인들의 태도도 이틀 전만 해도 그들은 그를 조롱하고 비웃었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후안디에고에게 잘 보일까 하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은근히 자기들을 기억해 주기 바라는 것이다.
과달루페 성모마리아에 의해서 이룩된 멕시코인들의 개종에 있어 후안디에고의 역할은 놀라운 것이었다. 소성당이 테페약 언덕에 세워지고 성모성화가 그곳에 안치된 뒤 주마라가 주교는 그곳 성당의 책임을 모두 후안디에고에게 맡겼다. 천상에서 보내주신 보물을 지킬만한 사람으로서 후안디에고 보다 더 나은 인물이 없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후안디에고는 인디언 말을 하는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성화를 보려고 몰려오는 인디언들에게 백인들의 종교를 설명했고 또한 열심히 전교했다. 성모 발현 이후 7년 간에 걸쳐 8백만에 달하는 인디언이 개종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성모님의 성화를 지키며 성모님 뜻을 전하는 임무가 몹시 힘드는 일이었지만 후안디에고는 그 역할을 더없는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수년 동안 성모님과 영적 친교를 이루며 그 소성당에서 지내는 동안에 이웃사람들은 그가 크게 변모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의 용모에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으며 검약하고 절제있는 금욕생활은 품위가 있었다. 그는 그 거룩한 생활을 통해 모든이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 갔다. 훌륭한 인품과 고결한 사상을 지닌 사람으로서 주위로 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었다. 1
멕시코시 변두리에 있는 테페약(Tepeyac) 산에 과달루페의 성모님이 발현하신 것은 '성모의 원죄없으신 잉태 대축일'을 전후해서였다. 발현하신 날짜는 12월 9일에 두 번, 12월 10일에 한 번, 그리고 12월 12일에 두 번이다. 또한 성모마리아의 메세지를 전달받은 사람은 위에 말한 후안디에고로서 57세나 된 늙은 아즈텍 인디언이었다. 이것은 '루르드'와 '파티마'의 발현에서 성모의 메세지를 받은 사람이 어린이었다는 과는 다르다. 후안디에고는 성모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로 인정받기보다는 내적인 정화를 통해 하느님을 위한 기도와 가치가 충만한 삶을 살았다. 그는 성모님 발현을 본 후 17년을 더 살다가 1548년 5월 30일 생을 마감하면서 과달루페 성모님을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는 1990년 4월 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그해 5월 6일 멕시코시티에서 시복 승인 기념식이 열렸다. 이어서 그는 2002년 7월 31일 멕시코 과달루페의 동정 마리아 대성당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았다
-과달루페와 관련 된 중요한 사건의 연대기-
1325년:텍스코코(Texcoco)호의 한 섬에 테노크카스(Tennochcas)라는 몇천 명의 아즈텍 종족이 살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들은 '선인장을 횃대로 하여 한 마리의 독수리가 뱀을 집어 삼키는' 운명의 징후를 보게 된다. 오늘 날 뱀을 집어 삼키는 독수리의 마크는 멕시코 군인들의 외투에 새겨져 있고, 화폐와 국기에서 볼 수 있다.
1505년:몬테즈마(Montezuma) 2세는 아즈텍 부족들의 황제로 추대되고, 1509년 몬테즈마의 여동생 황녀 파판트진(Papantzin)은 전설에 따른 사실로서, 이마에 십자가의 표시가 돤 독수리의 환상을 본다.
1519년3월12일:헤르난도 코르테스(Hernando Cortes)의 군대는 당시, 베라크르즈(Veracruz)라고 하는 해안에 정박하게 된다. 그는 셈포알라(Sempoala)족의 부족장들과 동맹을 맺고 그들에게 몬테즈마의 조공징수관들을 투옥시키라고 설득한다. 백인의 신들이 그 부족들을 노예 상태에서 구원하리라는 소문이 퍼진다. 50여 명의 스페인 군인들이 우상들을 파괴한다. 그리고 보다 많은 부족들이 코르테스와 동맹을 맺는다.
1519년11월8일:코르테스의 군대는 테노크티틀란에 도착하게 된다. 여러 전설들과 그의 여동생의 환상에 의해 설득된 몬테즈마는 평화적으로 코르테스의 군대를 맞이한다. 그 후 그는 스페인의 왕 찰스5세를 자신의 부족의 군주이자 황제로서 승인한다.
1520년6월20일:분쟁이 일어난다. 몬테즈마가 유폐되어 죽는다. 새로이 황제가 된 콰테목(Cuautemoc)은 스페인인들을 추방해 버린다.
1521년8월17일:코르테스와 동맹 부족들은 테노크티틀란을 탈환하고 93일 후에 틀라텔로코(Tlatelolco) 근방에서 황제 콰테목을 사로잡게 된다. 틀라텔로코는 오늘날 멕시코에 세가지 문화의 공존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1525년:황녀 파판트 진은 틀라텔로코의 산티에고 성당에서 영세를 받는다.
1527년:쿠아우틀라테우악(Cuautlatehuac) (이 이름은 독수리같이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 이라고 하는 아즈텍인이 후안 디에고(Juan Diego)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고, 그의 부인도 마리아 루시아(Maria Lucia)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는다.
1529년:황녀 파판트 진과 마리아 루시아가 죽고, 1531년12월9일 후안디에고가 성모님을 테페약 상에서 만나다.
과달루페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문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
저희 어머니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의 사랑이
저희의 자녀다운 마음을 열게 하시고
성모님의 메세지를 받아 전달한
후안디에고를 본받아
저희도
당신의 뜻을 실천하게 하소서.
또한, 마리아와의 만남을 통하여
너그럽고 온전한 마음으로 저를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 함 으로서 참 된 사랑의
증인이 되게 하소서.
버림받은 이들 안에서
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 안에서
또,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게 하시고
그들이 인격적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형제적 사랑을 나누는
살아있는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위의 글은 '과달루페의 성모' 라는 제목으로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82년 3월24일 초판을 발행했으며, '성 황석두루카서원' 에서 펴낸 것입니다. 펴낸이는 '한종오'님 이십니다. 저는 2002년 10월13일 청담동성당에서 견진성사 세례명으로 '후안디에고' 를 받고 거듭 태어났습니다. 이는 오묘하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른 은총의 선물이었습니다.
첫댓글 후안디에고와 성모님 발현의 이야기는 마치 서정적인 소설을 읽는듯 목가적이며 평화로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