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기자의 특별감찰관 ◈
사람과 짐승 차이는 생각만큼 크지 않아요
사람은 적은 실수를 통해 빨리 배우고 짐승은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더디게 배우지요
그러나 권력 주변 모습을 살피면 짐승은 더디게 배워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지만 사람은 빨리 배워도 똑같은 실수를
끊임없이 되풀이한다는 게 사실에 가까운 것 같아요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5월 10일 취임했어요
문재인 시대 5년을 견디고 버텨 맞은 ‘보수 대통령’이었지요
취임 이틀 후 어떤 기자는 글 당번 순서가 돌아왔어요
덕담(德談)으로 축하해주고 싶었지요
그러나 마음 한편에선 걱정이 고개를 들었어요
그때 김건희 여사는 역대 대통령 부인 가운데
‘가장 위험한 퍼스트레이디’라는 말이 돌고 있었지요
그래서 대통령은 거북하겠지만 이 이야기만은 꼭 해주고
뭔가 다짐을 받아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통령이 피를 나눈 친족(親族)과 살을 나눈 인척(姻戚)에 관해서는
누구도 바른말을 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불났다고 눈치챘을 때는 이미 큰불로 번져 손을 쓸 수 없다.
이런 일을 당한 대통령은 허리가 꺾여 다시는 위엄(威嚴)을
회복하지 못했다.
특별감찰관은 이 위험에서 대통령을 보호하는 제도이니
반드시 임명하기 바란다.’
글 제목은 ‘기대 반(半) 걱정 반(半)’으로 달았지만
마음은 ‘걱정 반 기대 반’이었어요
편집 책임자에게 부탁해 ‘친인척 비위 감시하는 청와대 특별감찰관
‘꼭’ 임명하도록’이라는 작은 제목도 달았지요
이것은 기자만의 걱정이 아니라 당(黨) 안팎도 생각이 같았어요
며칠 후 청와대 관계자 이름으로 ‘대통령은 특별감찰관 임명 공약을
반드시 이행할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지요
그러나 ‘꿩 구워 먹은 소식’이었어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대통령은 특별감찰관을 임명할 생각이 없고
제도를 폐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뉴스가 대통령실에서 나왔지요
이유가 기막혔어요
‘현재 대통령실은 과거 청와대와 달라 측근 비리(非理)를
은폐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감찰관이 필요 없다’는 것이었지요
이에 대해 여론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자 ‘현행법에 규정돼 있으므로 임명할 것’이라며 불을 껐지요
특별감찰관을 둘러싸고 엎었다 뒤집었다 식의 엇갈린 뉴스가
나오는 배경에 대해선 두 가지 설명이 따랐어요
하나는 대통령이 부인 주변을 감찰관이 들여다보는 걸 싫어한다는
것이었지요
다른 하나는 대통령보다 힘센 실세(實勢)가 특별감찰관에
손을 내젓기 때문에 그 수족(手足)들이 폐지 뉴스를 일부러
흘린다는 말이었어요
그러나 이 안타까운 두 말은 모두 사실이었지요
취임 1년을 한 달 앞둔 2023년 4월 무렵엔
부인 소문은 권력 주변 화제가 아니라 전국 뉴스가 됐어요
무슨 미술관장, 무슨 박물관장에겐 ‘대통령 부인 임명’이란
꼬리표가 달렸지요
다들 이 상태론 총선에 이길 가망이 없다고 했어요
기자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지면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고,
차기 정권을 야당에 빼앗기면 대통령과 부인은 감옥에 갈 것’이란
야당 의원의 악담(惡談)을 계기 삼아
‘역린(逆鱗)’이란 제목의 칼럼을 썼지요
악담이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어요
“대통령 턱밑엔 비늘이 거꾸로 난 곳이 있다.
그걸 건드리면 대통령 비서는 자리를 잃는다.
대통령이 선배·원로(元老)로 모시는 사람에게도
그 즉시 대통령 전화가 끊긴다.
세상은 수군거리는데 대통령 귀만 어둡다.
국민이 응원할 테니 국회를 재촉해 특별감찰관을 임명해야 한다.”
국민 응원을 업고 부인 뜻을 꺾어보라는 말이었지요
그러나 응답이 없었어요
그리고 다시 1년이 흐르고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예상대로 대패(大敗)했지요
정치 초(初)짜 비상대책위원장은 지휘도 서툴고
공천 방식에도 문제가 많았어요
그러나 참패의 근본 원인은 대통령 부부였지요
대통령은 한 달 뒤 반성 기자회견에서
특별감찰관은 언급도 하지 않았어요
다음 날 기자는
‘부인 연줄 비서관·행정관 ‘용산’ 밖으로 내보내라’는 칼럼을 썼지요
이땐 그 비서관·행정관 명단은 헌 뉴스가 돼 버렸어요
그런데도 당대표 면담에서 대통령은 그들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써서 비서실장에게 전달하면 생각해보겠다고 했지요
늙은 기자는 이렇게 김건희 여사에게 전패(全敗)했어요
젊은 기자들도 완패(完敗)했지요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지요
국민의힘이 특별감찰관 문제로 의원 총회를 열어
당론(黨論)을 정한다고 하지요
산불에 바가지 들고 나선 격이지요
‘친윤’ ’친한’ 분류표를 보니 기자에게 부인 문제를 에둘러 쓰지 말고
매섭게 지적해달라던 의원 중 몇몇은 친윤(親尹)이었어요
대통령은 문제의 심각성도 모르고 있고
한대표는 비공개 충언할 일을 언론 플레이만 하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 갈등만 커지고 있어요
내부 갈등이 심화되면 그 집안은 망하는 법이지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조동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