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聖上)께서는 종전의 융통성 없는 편견을 씻어 버리시고 성현(聖賢)의 책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공부하되 오랫동안 푹 빠져서 본원(本源,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의리(義理)를 밝게 드러내신다면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의 구분이 마음속에 분명해져서 하늘을 받들어 법을 집행하는 것을 절로 그만둘 수 없게 될 것입니다.[聖明濯去從前膠固之偏見. 潛心加工於聖賢之書. 優游涵泳. 使本源淸明. 義理昭著. 則天理人欲之分. 瞭然於心目. 而奉天行法.]” <병산 이관명 선생, 1725년 영조1년 10월1일, ‘곧바로 물러나는 차자(徑退箚)’, 승정원일기>
곧바로 물러나는 차자〔徑退箚〕역적의 토벌, 가장 먼저 서둘러야할 일
··············································································· 병산 이관명 선생
삼가 아룁니다. 신(臣)의 집안은 교목세가(喬木世家)로서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입었고, 신은 전하께서 예적(隷籍)에서 빼내어 정승의 직책을 맡기셨으니, 이는 참으로 예전에 들어 보지 못했던 일을 신에게서 직접 보게 된 것입니다. ‘죽은 이를 살리고 해골에 살이 돋게 한다.〔生死肉骨〕’는 말로도 그 은덕을 비유하기에 부족하니, 분골쇄신하더라도 어찌 베풀어 주신 특별한 은혜에 만분의 일이나마 갚을 수가 있겠습니까.
신이 명을 받은 처음에 벗이나 친척들이 모두 신을 위해 모의하기를 “온 집안이 도륙을 당하여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몸으로 세상의 변천을 죄다 겪은 마당에 다시 벼슬길에 오르는 것은 인정상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하였으니, 신이 이에 대하여 또한 어찌 두렵고 비통한 심정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주상에 대한 무함을 벗겨 드리지 못하였고 나라의 역적을 토벌하지도 못한 만큼, 전하의 신하라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진실로 피를 토하고 울음을 삼키면서 역적 토벌을 청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감히 사적인 의리를 내세워 벼슬길을 단념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또 삼가 생각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천부적인 예지(睿智)를 지니셨고 성학(聖學)이 고명(高明)하시니, 어찌 이런 대의리(大義理)와 대시비(大是非)가 걸려 있는 일에 대해서 끝내 윤허를 아끼시어 허락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때문에 신의 변변치 못함을 헤아리지 않은 채 외람되이 직임을 받들고서 마침내 연석에 오르던 날에 맨 먼저 이것으로써 제일 급히 서둘러야 할 일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이고, 전하께서도 신의 말을 그르게 여기지 않으시고 사의(辭義)가 엄정하다고 하교하시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에 신은 밝은 유지(諭旨)를 공경히 마음에 새기고 돌아와서는 조정 동료들에게 고하기를 “왕법(王法)이 시행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흉악한 역적이 복주되어 국세가 안정된 뒤에 물러나 초심을 이루어서 전일에 망녕되이 조정에 나온 죄를 속죄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신이 밤낮으로 간절히 바라는 일이었는데 고심하며 올린 간청을 전하께서는 불쌍히 여겨 살펴 주시지 않으셨고 그럭저럭 시일을 보내는 사이, 성청(聖聽)은 더욱 요원해졌습니다. 그러나 신은 어리석은 견해를 계속해서 올렸고 그저 욕을 당하는 허물만 초래할 뿐이었습니다. 계획은 이미 바닥이 드러났고 기대는 이미 끊어졌습니다. 종국(宗國)을 생각하는 것은 벼슬하든 안 하든 간에 똑같이 근심하는 바인데, 은혜를 저버리고 직책을 태만히 하는 가운데 영화를 탐하고 그리워하면서 머뭇거리다가 사방의 비난을 불러오는 것보다는 차라리 몸을 받들고 물러나와 명의(名義)의 죄인이 되는 데서 벗어남으로써 초심을 알리는 것이 나을 것이니, 이것이 또한 전날의 잘못을 수습하는 하책인 것입니다.
이에 감히 상소를 올리고 곧바로 돌아가 초야에 묻혀 지낼 계획을 세웠으나, 한번 도성을 나서면 바로 머나먼 지역이기에 성상께서 계신 곳을 바라보며 눈물을 줄줄 흘립니다. 옛사람이 “역적이 남아 있으면 성상을 뵈올 날이 없을 것입니다.”라는 말은 바로 신의 오늘을 가리킨 말이요, 맹자께서 “왕께서 행여 마음을 바꾸시기를 바란다.”라고 한 말씀은 바로 신이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신의 말을 앞으로 성상께 다시 올리지는 못할 것이니, 마음에 맺힌 신의 충심을 바칠 길이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종전의 융통성 없는 편견을 씻어 버리시고 성현의 책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공부하되 오랫동안 푹 빠져서 본원(本源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의리를 밝게 드러내신다면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의 구분이 마음속에 분명해져서 하늘을 받들어 법을 집행하는 것을 절로 그만둘 수 없게 될 것이니, 구구한 신이 바라는 바는 오직 여기에 있을 뿐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특별히 불쌍히 여기시어 속히 신을 파직시켜서 지극한 바람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시고 천한 신의 말을 받아들여 성덕을 빛나게 하신다면 이는 신에게는 벼슬길에서 물러나는 것이 나아가는 것보다 영광스런 것이 되는 일입니다. 떠남에 임박해서 걱정과 번민이 앞서는 바람에 말을 제대로 가다듬지 못하였으니, 더욱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출처 : 병산집(屛山集) 제5권 / 소차(疏箚) 22수>
[주-1] 곧바로 물러나는 차자 :《승정원일기》 영조 1년 1725년 10월 1일 기사에 보인다.
[주-2] 교목세가(喬木世家) : 교목은 가지가 무성하게 뻗고 곧게 자란 나무로, 여러 대에 걸쳐 중요한 벼슬을 지내 국가와 운명을 함께하는 집안을 이른다.
[주-3] 신은 …… 맡기셨으니 : 이관명은 임인옥사에 연좌되어 1722년(경종2)에 평안도 덕천(德川)으로 유배되어 노비가 되었다가 1725년(영조1) 3월에 풀려났고, 우의정에 임명되었다. 《국역 영조실록 1년 3월 14일, 4월 23일, 5월 20일》
[주-4] 죽은 …… 한다〔生死肉骨〕 : 은혜가 매우 깊고 두터움을 이르는 말이다. 《春秋左氏傳 昭公2年》
[주-5] 역적이 …… 말 :《구당서(舊唐書)》 권170 〈배도열전(裴度列傳)〉에 보인다.
[주-6] 맹자께서 …… 말씀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보인다.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문화연구원 | 황교은 채현경 오항녕 (공역) | 2015
徑退箚
o伏以臣喬木世家。代受國恩。及至臣身。殿下抽之於隷籍之中。授之以三事之職。此誠前古所未聞。而於臣親見之。生死肉骨。不足以喩其德。碎首糜身。曷能圖報殊渥之萬一哉。當臣受命之初。士友知舊皆爲臣謀曰。闔門屠戮。一身零丁。閱盡滄桑。復蹈榮塗。人情之所不忍。臣於此亦豈無怵惕痛衋之意哉。然而目今主誣未雪。國賊未討。凡爲殿下之臣子者。無大無小。固當沫血飮泣。沐浴請討之不暇。故臣不敢以私義自畫。且伏惟念我殿下睿知出天。聖學高明。豈於此大義理大是非。終有所靳惜 o而不許哉。是以不量菲薄。冒沒承當。乃於登筵之日。首以此爲第一急務。殿下不以臣言爲非。至以辭嚴義正爲敎。臣敬佩明旨。歸詑同朝。以爲 王法之行。指日可待。兇逆伏誅。國勢奠安。然後退遂初服。以贖前日妄進之罪。是臣之日夜所顒望。而苦心血懇。未蒙君父之所矜察。荏苒時日。天聽愈邈。而瞽說不止。徒速斯辱之辜。計已窮矣。望已絶矣。眷念宗國。進退同憂。而與其辜恩溺職。貪戀遲徊。以招四方之譏訕。無寧奉身而退。免爲名義之罪人。以白初心。是亦補黥之下策也。玆敢投章徑歸。以 o爲退塡丘壑之計。而一出春明。便是天涯。瞻望宸極。有隕如瀉。古人所云賊在則朝天無日者。正爲臣今日道。而鄒聖所謂王庶幾改之者。卽臣之所大願也。臣言將不可復進於黈纊之下矣。愚忱耿然。效忠無路。伏望聖明濯去從前膠固之偏見。潛心加工於聖賢之書。優游涵泳。使本源淸明。義理昭著。則天理人欲之分。瞭然於心目。而奉天行法。自有不可得以已者。區區所祈祝。唯在於此。倘蒙殿下特垂矜憐。亟罷臣職。俾遂至願。採納蒭說。以光聖德。則是臣退榮於進矣。臨發憂憤。言不知裁。尤增死罪。臣 o無任云云。
<출처 : 병산집(屛山集) 제5권 / 소차(疏箚) 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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