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2003년 9월[1],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 에서 부부싸움 끝에 부인이 내려친 망치에 남편이 사망한 사건.
2. 사건 경위[편집]
2003년 9월 20일, 경기도 가평군의 한 강변에서 둔기에 맞아 사망한 60대 남성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신원 확인 결과 이 남성은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에 거주하던 박모씨였다.
경찰은 시신 발견 다음날인 2003년 9월 21일부터 약 50일 동안 박씨의 부인 황종순(당시 62세)을 참고인으로 10여차례 조사했다. 그런데 황종순의 진술이 돈 문제로 다투다가 망치로 쳤다[2]는 등으로 오락가락하고, 경찰 측에서의 추가 조사 결과 황종순의 남자관계가 복잡했으며, 조사 이후 황종순이 집안의 벽지를 모두 새로 교체했고, 자신의 대우 마티즈 차량 카매트도 교체하는 등 굉장히 수상한 정황들이 포착되었다.
2003년 11월 7일, 검찰 조사를 앞둔 황종순은 집에서 나가 잠적하였고, 다음날인 11월 8일에 황종순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영장이 발부된 지 이틀 후인 11월 10일에 황종순의 아들은 경찰서를 찾아가 어머니의 가출신고를 하였다. 경찰은 이 시점으로부터 두 달 전에 가평 강변에서 발견된 시신, 황종순에 대한 영장 발부, 아들의 실종 신고를 토대로 황종순이 춘천 효자동 자택에서 박씨와 다투던 와중에 망치로 박씨의 가슴을 1회 가격해 살해[3]한 후 차량에 박씨의 시신을 싣고 가평으로 이동해 인근 강변에 박씨의 시신을 유기한 걸로 결론지었다. 2008년 상반기 중요지명 피의자 종합수배 전단 상 사건개요에도 위와 같이 표기되었으며, 이를 통해 11월 8~9일 사이에 집을 나가 잠적한 것이 확인되었다.
3. 용의자 시신 발견과 민사 소송[편집]
2008년 상반기 중요지명 피의자 종합수배 전단에 수배번호 1번으로 최초 등록되었다. 당시 수배 전단 상 특징은 "신장 155cm 통통한 편 전형적인 농촌 주부형." 이었다. 그러나 종합수배 등록 이후 6개월동안 용의자를 목격했다는 등의 마땅한 제보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2008년 7월부터 중요지명 피의자 종합수배 전단에도 계속 올라오지 않았고, 살해 후 강변에 사체를 유기함으로 인해 사체유기죄 또한 적용되지만 사체유기죄의 공소시효가 2010년에 만료되는 등 사건이 묻혀가고 있던 2014년 6월 26일 오전 5시 55분, 사건이 발생했던 효자동에서 약 10km 가량 떨어진 신북읍에 위치한 용산저수지에서 대우 티코 경차 한 대가 물에 지붕만 남겨놓고 잠겨있는 걸 저수지 인근을 지나가던 마을 주민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는데, 어떻게 발견된 것이냐면 당시 저수지 물에 잠겨있던 대우 티코 차량이 저수지 가뭄으로 인해 수위가 낮아지며 물이 빠지던 중에 차량 지붕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발견된 것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은 저수지에 침수된 대우 티코 차량을 수면 밖으로 인양했고, 인양된 차량 내부 등을 조사한 결과 운전석 쪽에서 상당히 부패된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DNA 감식 등의 신원 확인 절차로 신원을 조회한 결과 시신의 정체가 2003년에 사라진 황종순임이 밝혀졌다. 해당 구간에 가드레일이 설치된 시기는 2009년[4]이었는데, 이후 경찰 조사 결과 당시 저수지 옆 도로에서 추락 흔적이나 가드레일 파손 흔적이 없음으로 인해 빠르면 2003년 11월, 늦으면 2008년 이전에 추락한 걸로 확인되었다.
시신 발견 이후, 황종순의 아들 박씨는 보험사에 사망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의 답변은 "황 씨가 체포영장 등으로 인한 압박감에 자살한 것이기 때문에 약관상 면책사유에 해당하므로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는 시장에 다녀오던 중 사고로 저수지에 빠져 사망한 것''이라며 법원에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 소송장을 냈다.
2016년 8월, 법원은 "이 사건에서 망인 황 씨가 자살했다는 명백한 주위 정황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보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인 보험사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고 결론지었고, 보험사는 아들 박씨에게 사망보험금 4,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이 결과는 2016년 12월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최종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