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8일부터 30일까지 2박3일 몽골의 울란바토르에 다녀왔습니다. 한국기업들이나 투자가들의 관심이 높은 지역이자 무한한 자원,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나라, 높은 교육수준, 진철하고 밝고 진지한 젊은이들 등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매력을 가졌습니다. 수년 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도 1달정도 다녀왔지만 그때도 러시아말을 한마디도 못해서 숙소에서 나이드신 메이드분들께 인사말도 한마디 못한 것에 대히 미안했는데, 갑작스레 잡힌 출장이라 요번에도 몽골어 대한 공부도 못하고 방문을 했지만 다행히도 영어를 이해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서 대화에는 문제가 없었고, 구글번역들도 이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현지에 의외로 영어로 표기된 광고판도 많았고,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어와 비슷한 모양의 알파벧이 보여서 처음에는 카자흐스탄에 다시 온 기분이었습니다. chatGPT에게 물어보니 카자흐스탄어, 몽골어, 러시아어의 알파벳이 비슷하게 보이는 이유는 주로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언어적 상호작용에 기인한다 합니다. 첫째, 카자흐스탄어와 몽골어는 알타이 언어족에 속하는 언어들로, 이들 언어는 공통의 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몽골어는 전통적으로 몽골 문자와 키릴 문자를 사용해 왔으며, 카자흐스탄어도 과거에는 아랍 문자를 사용하다가 현재는 키릴 문자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두 언어의 알파벳에서 비슷한 글자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둘째, 러시아어는 카자흐스탄과 몽골 지역에서 오랜 시간 동안 지배적인 언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카자흐스탄은 소련의 일원으로 있었던 기간 동안 러시아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이는 카자흐스탄어의 문법과 어휘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몽골 또한 러시아와의 역사적 관계로 인해 러시아어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는 몽골어의 현대화 과정에서도 나타납니다. 셋째, 키릴 문자의 사용은 이러한 언어들 간의 유사성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카자흐스탄어와 몽골어는 모두 키릴 문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러시아어와의 유사성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키릴 문자는 러시아어에서 유래된 문자 체계로, 이로 인해 세 언어의 알파벳에서 비슷한 글자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운이좋게도 전직 몽골관광공사 사장님께서 몽골의 역사, 사회주의에서 자유경제로의 전환과정을 설명해 주셨는데, 연대기는 chatGPT를 참조했습니다. 러시아와 몽골의 간단한 역사를 소개하자면, 레닌이 주도하는 볼세비키(다수당) 은 1917년 볼세비키혁명을 통해 러시아 제국의 기존 정부를 전복하고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혁명은 두 단계로 나뉘며, 첫 번째는 2월 혁명으로, 이는 제정 러시아의 붕괴를 초래했습니다. 두 번째 단계인 10월 혁명은 1917년 10월 25일에 발생하였으며, 볼세비키는 페트로그라드에서 무장 봉기를 일으켜 임시 정부를 전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볼세비키는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장악하였고, 이후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시행하게 됩니다. 몽골이 사회주의로 전환된 과정은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1911년, 몽골은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이후 1921년 소련의 지원을 받아 몽골 인민 혁명이 일어나면서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몽골은 소련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되었고, 이는 경제와 사회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몽골이 사회주의에서 자유경제로 전환되는 과정은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몽골은 민주화와 시장 경제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여 여러 경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민영화, 외국인 투자 유치, 그리고 시장 경제 체제의 도입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몽골의 러시아 및 중국과의 정치적, 경제적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몽골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주요 무역 파트너로 부상했습니다. 몽골의 수출의 대부분이 중국으로 향하고 있으며, 중국은 몽골의 주요 투자국이기도 합니다. 반면, 러시아는 에너지 자원과 군사적 협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잘 아는 교수님께서 지인이 몽골에는 아는 인사들도 많고 한국에서 그분에게 몽골에서의 비지니스 기회를 문의하는 분들이 많아서, 한국기업 및 민간인들에 대한 몽골 실사단 구성하게 되었고, 투자자문역할을 하는 저를 그분의 출장 동반자 중의 한명으로 초청해 주셔서, 몽골에 대한 사전공부는 물론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인사들과의 면담 등 현장감도 익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터뷸런스, 에어포켓에 연속 2회 추락 등 수많은 해외출장 등을 경험하며, 최초로 탑승한 미국으로 가는 대형비행기에서의 좋았던 추억 이후, 비행기를 탑승할 수록 아픈(?) 기억들이 쌓이면서 비행기 대안으로 크루즈나 기차를 이용하기도 하였으나, 짧은 기간에 동반자들과 같이 움직이는 출장의 경우 포기하거나 끌려(?) 가거나의 옵션 외에는없었습니다. 새벽4시에 집에서 출발하는 일정이었는데, 140년만의 첫눈 폭설로 인해 급기야 비행기가 캔슬되고, 힘들게 예약한 택시도 캔슬하고 오후 비행기도 몽공항공으로 서둘러 어렵게 예약하는 등 허겁지겁 비행기에 올랐다. 4시30에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론상 50분 걸리는 시내호텔까지 이동시간이 4시간반이 걸렸고, 차량체증으로 인한 역겨운 매연냄새와 싸우며 시달린 끝에 다행히 문을 연 한국식 치킨집에서 간단히 치맥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은 견설교통부장관, 준모드라는 신도시 건설사업단장, 몽골개발은행 부총재, 그리고 저처럼 호주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한 몽골은행 경제연구소장 등과 미팅을 하면서 몽골의 현안, 외환 및 금융시장, 신성장 동력, 그리고 도시의 인구분산, 매연절감, 교통문제 해결 정책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습니다.
마지막날은 숙소앞에 위치한 징기스칸 광장에서 방문기념 사진만 몇장 찍고, 인근호텔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몽골식 양갈비 등을 점심을 하면서 신세계의 맛을 보았고, 신도시 건설현장도 방문하는 등 쉴틈없는 일정을 마치습니다. 오후에 공항으로 돌아오는 시간에는 게르에 사는 유목민들이 석탄으로 난반을 하면서 발생시키는 미세먼지의 현실 및 화장실어 아무 곳에서 대소변을 해결하는 생호라을 통해 최악 위생상테에 노출되어 있는 많은 유목민들의 현실에 대한 설명도 듣고, , 지하철 등 절대적으로 부족한 대중교통 및 5부제들 자량제한이 오히려 많은 차량을 여러 대 보유하면서 매일 자동차를 운행하는 통에 오히려 매연을 가중시는 등 오염에 대한 심각성은 단기에 해결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귀국 후 혹시나 해서 chatGPT에게 한국인과 몽골인의 평균수명을 비교해 달라고 했더니 "몽골인들의 평균 수명은 한국인들과 비교할 때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2024년 추정에 따르면, 몽골의 평균 수명은 약 71.9세로 예상되며, 이는 한국의 평균 수명인 약 83.4세에 비해 낮은 수치입니다. 몽골의 평균 수명은 남성과 여성 간의 차이가 있으며, 남성의 기대 수명은 약 65세, 여성은 약 74세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명 차이는 여러 요인에 기인할 수 있으며, 특히 건강 관리 시스템, 생활 수준, 환경적 요인 등이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로 저의 예상과 같았습니다. 저는 이들의 문제를 개선하고 머지않은 미래에 몽골의 젊은 세대가 이 나라를 더 발견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물론 기회가 주어질 지는 미지수지만. 인생 세번째 경험하는 3*3 좌석 소형 비행기를 타고 그나마 무사히 밤 12시에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가족과 재회를 하니 정말 향으로 돌아온 기분었습니다. 몽골에 한국인들의 정성과 혼이 이미 많이 깃들어 왔듯이, 미래에도는 한국과 몽골이 진정한 경제성장의 이 파트너로 거듭나길 기원합니다. 아직도 매연으로 인해 코가 멍하지만, 천혜의 자연 및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공기를 평생 마시면서 사는 호주인들 처럼 몽골인들도 그런 좋은 공기를 마시게 될수 있도록 노력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