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문학계의 최고 신데렐라를 꼽자면 딱 두 명이다. 정부 보조금에 의지하여 살아가던 싱글 맘의 고달픈 일상을 쪼개가며 <해리 포터>를 쓴 조앤 롤링과 <밀레니엄> 시리즈의 스티그 라르손.
이중에서도 라르손은, 잔인하지만 '죽음'을 통해 아예 전설이 되어버렸다. 스물일곱 살에 죽은 불멸의 록스타의 계보를 잇기라도 하듯 라르손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는지 직접 확인하기 직전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
라르손이 농담 삼아 "노후 보장 연금"이라 불렀던, "이 책은 성공할 것이다. 난 그걸 안다"고 그 자신이 자신만만하게 예감했던, 출판사 쪽에서는 "스웨덴 출신의 가장 유명한 작가 헤닝 만켈(<하얀 암사자>, <미소 지은 남자>, <다섯 번째 여자>)보다 라르손이 더 유명해질 수 있다"고 장담했던 <밀레니엄>(임호경 옮김, 뿔 펴냄) 3부작은 책 자체와 외적인 산화의 순간이 결합되며 전대미문의 폭발력을 장착한 스릴러가 되었다.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뿔 펴냄).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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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 <밀레니엄>은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과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을 증오하는 여자' 사이의 전쟁이다. 그러니까 '북유럽의 예쁜 빈티지 감수성'과 이케아 가구만으로 스웨덴을 낭만적으로 채색하던 소년소녀들은 <밀레니엄>을 읽기 전 호흡부터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명망 있는 월간 시사 잡지 <밀레니엄>의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부패한 재벌 베네르스트룀에 관한 제보를 듣고 기사를 작성하지만, 결국 그 기사는 거짓으로 드러나고 베네르스트룀이 제기한 명예 훼손 소송에서 패소한다. 오랫동안 쌓아왔던 탐사 기자로서의 신뢰와 경력이 한순간에 파멸했음을 깨달은 미카엘은 절망한다.
이때 또 다른 재벌 헨리크 반예르가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명목상으로는 자신의 자서전을 써달라는 구실이었지만, 실제로 헨리크가 원하는 것은 40년 전 가족 모임 도중 감쪽같이 실종된 손녀 하리에트 사건의 재조사. 미카엘은 용 문신이 등을 뒤덮은 천재 해커 리스베트와 팀을 이루어 과거를 더듬어간다.
"나는 우리 가문 사람들 대부분을 가슴 깊이 증오한다네. 그들은 수전노, 깡패, 무능력자에 불과해. (…) 내 최악의 적이 누군지 아나? 그것은 다른 회사들, 내 경쟁자들이 아니었네. 바로 내 가족들이 최악의 원수였지."
증오에 찬 헨리크의 표현대로, "모든 집안에는 '벽장 속에 감춰놓은 해골'처럼 저마다의 부끄러운 비밀이 있다. 그런데 반예르 가의 벽장에는 해골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20세기 중반 스웨덴을 휩쓸었던 우생학과 인종주의의 물결이 반예르 가문을 뒤덮고 있었고(실제로 스웨덴에선 1935년부터 1975년까지 약 6만3000명의 '열등한 존재들', 정신 장애인들, 간질 환자,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추정되는 이들 그리고 주로 여성들이 우생학에 근거하여 강제 불임 시술을 받았다. 1999년 스웨덴 정부는 이 희생자들에게 개인당 17만5000크로네씩 보상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처음엔 평범한 '밀실 살인'처럼 보였던 하리에트 실종 사건은 예상을 거듭 뛰어넘으며 스웨덴의 추악한 현대사와 겹쳐진다(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그리고 헨리크 반예르의 의뢰가 놀라운 결말로 끝난 다음, 비밀스러운 과거를 가진 리스베트의 개인사가 펼쳐진다. 이는 스웨덴 비밀경찰과 스파이들이 득실거리던 냉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스웨덴 사회 보장 제도가 얼마나 허구적인 판타지인지, 사회의 약자들을 공공 기관이 어떻게 착취했는지(스웨덴의 비밀경찰은 주로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파업 중인 노동자, 대학생 등에 대한 개인 사찰을 실시했다. 1970년대 비밀경찰에 등록된 자료만 해도 1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에 대한 사회파 고발 소설로 훌쩍 변모한다(2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와 3부 '벌집을 발로찬 소녀').
<밀레니엄> 시리즈에 빠져들기까지에는 약간의 참을성이 필요하다. 1부에서 진심으로 '끓어오르는' 지점은 무려 100여 쪽을 읽은 후부터다. 즉 헨리크가 "이제 내가 왜 자네를 고용하려 하는지, 그 진짜 이유를 밝힐 때가 되었구먼. 내가 원하는 건 이것일세. 우리 가족 중 누가 하리에트 반예르를 죽였는지, 그리고 누가 이후 40년 가까이 나를 미치게 만들려고 집요하게 애쓰고 있는지, 그걸 자네가 밝혀 주게!"라고 선언하는 장면.
그 이전까지는? 놀랍게도 소설과 거의 상관없어 보이는 미카엘과 부패 재벌 베네르스트룀의 악연, 경제 기사에 대한 미카엘의 신념이 초반 100여 쪽을 아우른다. 1부의 주된 내용과 별 상관없어 보이는 초반 100여 쪽은, 그러나 기실 이어지는 3부작을 아우르는 미카엘의 순진무구할 만큼 뜨거운 정의감을 독자에게 인지시키고 압축시키는 중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미카엘이 이 세상 모든 은행 지점장과 저명한 기업주는 예외 없이 썩어빠진 작자들이라고 확신하게 된 것은 이 분야에 오랫동안 몸담으며 관찰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 터무니없는 투기로 수백만 크로나를 날린 은행 이사는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안 되었다. 사욕을 위해 유령 회사들을 만들어놓은 기업체 CEO는 감방에 들어가야 한다. 안마당에 공용 화장실이 있는 비좁은 원룸을 학생들에게 대여하면서, 세금을 떼 먹으려 집세 영수증을 발행해주지도 않는 악덕 집주인은 처형대에 거꾸로 매달려야 했다. 미카엘 블롬크비스트가 생각하는 경제 기자의 사명은 분명했다. 그것은 소액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들여 말도 안 되는 인터넷벤처 회사들에 투기함으로써 금리 위기를 초래하는 재계의 늑대들을 조사하고 그 가면을 벗겨내는 일이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평은 좋지 않다. 기본적으로 작가 스티그 라르손은 수십 년을 기자(스웨덴의 유력 통신사 TT에서 22년, 그리고 1995년부터는 시사 잡지 <엑스포>의 편집장)이자 그래픽디자이너로 살았고, <밀레니엄> 소설 속 너무 많은 부분은 거의 르포타주를 읽는 기분이 들 정도다.
비단 현대사를 고발한다는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문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팩트 중심으로, 숨 막히는 사건의 연속으로 빠르게 주파한다. 그 스피디함이 등장인물의 목숨 건 추적과는 썩 잘 어울리지만, 픽션의 영역으로 온전히 넘어갈 때는 매우 거칠고 듬성듬성하다. 등장인물이 주고받는 대사는 때로 매우 유치하고, 산만하게 반복된다.
게다가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적 정의에 충실했던 1부와 달리 2부와 3부로 넘어가면, 스파이 소설과 사회파 고발 소설, 스릴러가 뒤얽히면서 무수한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스티그 라르손은 그 안에서 확실한 포지션을 부여한다.
당신은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그에 따라 선악의 구분은 너무나 선명하게 확실해지고, 숨 가쁜 대결 구도를 따라가는 재미는 있을지언정 미카엘과 리스베트가 처음 등장하는 1부의 신선한 재미는 다소 줄어든다(<뉴요커>를 비롯한 여러 지면은 "작가가 살아있었다면 엄청난 퇴고와 편집이 더 오래 요구되었을 것이다"라는 데 의견을 함께한다).
그럼에도 <밀레니엄>의 매혹적인 힘은 대단히 세다. 그 매혹은 대부분 여주인공 리스베트로부터 출발한다. 그녀는 "잊지 말아야 할 게 생길" 때마다 몸에 하나씩 문신을 새긴다(그녀의 몸에 새겨진 문신은 총 9개다). 작가 스티그 라르손이 '말괄량이 삐삐'(스웨덴의 아동문학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만들어낸, 괴력을 가진 외톨이 소녀)가 성장했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하며 사회의 경계선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라든가 '정신병자'로 취급하는 '사회성'과 무관한 여자를 창조했지만, 기실 리스베트의 매혹은 그 아웃사이더적인 태도만이 전부가 아니다.
리스베트는 시리즈 내내 드러내놓고 컴퓨터 오타쿠, 정확하게는 '애플' 컴퓨터 오타쿠로 등장한다. 그녀가 애플의 '파워북 G4' 앞에서 황홀해하는 장면을 보자.
"튼튼한 알루미늄케이스에 파워피시 7451 프로세서, 알티벡 벨로시티 엔진, 960MB 메모리, 60GB 하드 메모리를 가준 사양이었고 블루투스와 CD-DVD 라이터까지 내장되었다. (…) 세계 최초로 엔비디아 그래픽 카드를 사용해 해상도 1440×900을 구현할 수 있는, 시중의 모든 제품을 일순간에 구식으로 만들어버리는 모니터였다. 노트북계의 롤스로이스인 셈이다."
"계좌들-클릭-이메일-클릭-대차대조표-클릭. 이제 그녀의 두뇌는 사이버 공간에서 명멸하는 임펄스(충격 전류)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모든 것을 체크했다. 지극히 조그만 변화들까지."
리스베트는 이를테면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맨 마지막 장면, 네트 '속' 존재가 되어버린 채 "자, 이제 어디로 갈까. 네트는 광대해"라는 쿠사나기의 인상적인 '목소리'가 육화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숫자와 수수께끼와 프로그램의 추상적 세계 사이에서 안심할 수 있고, 그 안에 무질서한 혼돈처럼 보이는 데이터들에게 치명적인 질서를 가져오는 여신이다.
또 그녀는 복수의 천사이기도 하다. <밀레니엄> 시리즈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스웨덴 내의 남녀 불평등에 대한 작가의 분노일 텐데, 리스베트가 바로 그 분노를 체현하는 존재다. 리스베트를 끔찍하게 강간하는 사내의 말에 따르면 스웨덴에서 그녀는 이런 존재다.
"난잡하고, 사회적으로 무능하며, 자신의 손아귀에 온전히 맡겨진 성인 여자. 그렇다, 리스베트는 이상적인 장난감이었다. 그녀에게는 방어 수단이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완벽하게 취약한 존재, 그녀는 진정한 희생자였다. 그녀에게 사회적 제한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년은 완전히 미친년, 위험한 정신병자야! 안전핀 뽑힌 수류탄이지. 한마디로 개잡년이야."
대체적으로 강간을 비롯한 성폭력은 '성욕' 때문만이 아니라 '지배욕' 역시 큰 동기다. 누군가를 나의 힘 아래 굴복시켰다는, 내가 온전히 누군가를 통제할 수 있다는 쾌감 말이다. 1부의 하리에트 사건부터 시작하여 2부까지 이어지는 성범죄의 역사는 수많은 성범죄의 은폐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 구조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의 희생자들은 익명의 여인들이었다. 스웨덴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친구도 없고 사회적 접촉도 없는 이민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또 매춘부들이나 마약 흡입이나 알코올 중독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지닌 이른바 사회적으로 소외된 여자들도 있었다." "그 세계에서 소녀는 일종의 허가된 희생물. 특히 그녀가 낡은 가죽점퍼를 입고 눈썹에 피어싱을 하고 어깨에 문신을 한 소녀, 즉 사회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일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사회의 중산층 이상부터도 남녀 불평등은 여전하다. 라르손은 경찰, 법조계, 미디어계에서조차 여성들이 끊임없이 밀려나고 조롱받는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우생학과 인종주의, 정부 기관의 권력 남용으로 문제의식이 확대되면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여자'는 생물학적 성으로서의 여성뿐 아니라 유색인종, 유대인, 동성애자, 하층민, 심지어 미성년자 모두를 포함한다.
반대로 '남자'는 생물학적 성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느끼는 순간 가차 없이 다른 이들을 물어뜯고 짓밟는 이들 모두를 뜻한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그러니까 모두 개새끼들이다. 그래서 리스베트는 이렇게 경고한다.
"만에 하나 나를 건드리는 일이 있다면, 널 죽여 버릴 거야. 절대 농담이 아냐. 기억해둬. 내가 미친년이라는 사실을."
리스베트와 콤비를 이루는 미카엘이 이 관점에 동조할 수 있는 건, 그가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기자 정신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부당한 취급을 받는 약자 모두에게 마땅히 느껴야 할 분노와 뜨거운 연민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1부에서 실종된 하리에트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미카엘이 가만히 내뱉는 말, "하리에트, 넌 대체 여기서 무엇을 보았던 거니?"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했던 약자가 두려워하고 피하려 했던 것의 정체를 알아내려는 정당한 호기심, 그것을 잊지 않는 끈질긴 기억력에서부터 정의가 실현된다.
<밀레니엄>은 1부부터 3부까지 내내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운다. 그것이 통쾌하면서도 서글픈 이유는, 소설 속의 이상주의가 어찌 보면 상당히 '쉽게' 공유되고 많은 이들이 동참했기 때문에 사건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결말 때문이다. 기자와 사법부가 공조하여 사회에 견고하게 뿌리내린 악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믿음. 스티그 라르손 그 자신이 <엑스포> 편집장으로서, 그리고 <극우파>라는 책을 쓴 이후부터 스웨덴 네오 나치 그룹과 극우파로부터 수없이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불안한 삶을 이어갔던 현실이 이 책에서는 지극히 이상적인 허구로 제시된다.
(라르손이 <엑스포>를 창간하자 한 극우 잡지에서는 라르손과 그의 평생의 동반자 에바의 사진, 주소, 전화번호를 공개하며 "이들이 계속 떠들 수 있을지 어떨지 지켜보자"는 사설을 냈고, <엑스포>의 인쇄소와 배본처의 창문은 매번 파괴됐다. 라르손은 절대 사진 찍는 취재에 응한 적이 없고, 식당에서도 늘 출구가 보이는 자리만 고집했다. 이사를 수없이 다녔고, 이사한 집의 주소를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으며, 집을 출입할 때도 정문과 뒷문과 지하실 출구를 번갈아 이용했다고 한다. 동반자 에바와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것도 그녀를 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한 배려였다. 그는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숨을 거둘 때까지 그렇게 매순간 투쟁하고 달아나며 살았다. 그런 면에서 <밀레니엄>을 처음 읽을 때는 라르손이 미카엘에게 자신의 삶을 투영했다고 생각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가 리스베트의 불안한 자아에 더 닮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밀레니엄>을 보면서 한국의 '사회파' 영화들을 떠올렸다. 리얼리티에 대한 집착으로 결말마저 거의 대부분 불길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하는 체념이나 파국으로 끝나는 영화들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갑갑증과 절망감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힘겹게, 허구적으로라도 사회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목소리가 정말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개인의 힘으로는 부서뜨릴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되 우리가 해낼 수 있는 목표에 대한 정당한 상상으로부터 현실적인 요구도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밀레니엄>은 그에 대한 근사한 응답이며, 간절한 소망이 투영되는 '구멍'이다. 우리는 이 안에서 온갖 지옥도를 목격하지만, '아마겟돈은 벌써 일어났고, 살아남은 우리는 지옥에 있네'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리스베트처럼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준비할 수도 있게 된다.
덧붙임
스티그 라르손은 본래 <밀레니엄> 시리즈를 총 10권으로 구상하고 있었다. 3권의 원고까지 출판사에 넘긴 다음 그가 갑작스레 숨을 거두었지만, 4권 <신의 복수>는 절반 이상 완성된 단계였고 나머지 여섯 권의 스토리와 구조도 정해진 상태였다. 스티그 라르손의 동반자 에바 가브리엘손은 이 미완의 원고와 메모들을 가지고 있고, 그녀가 아예 직접 4권 <신의 복수>를 완성시킬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스웨덴의 상속법상, 유언장을 남기지 않고 숨을 거둘 시 재산은 무조건 혈육에게 간다. <밀레니엄>의 어마어마한 인세는 '결혼 신고'를 하지 않고 30년을 함께 한 에바 대신, 라르손과 연락을 끊고 지내던 아버지와 형에게 돌아가게 된다. 양쪽 사이의 법적 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밀레니엄>의 이야기가 모습만 조금 바꾸고 현실화된 버전이랄까).
에바가 공개한 4권의 내용은 주로 리스베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리스베트의 문신들이 과거의 누군가 그녀를 상처 입힐 때마다 하나씩 새긴 것이라는 전제 하에, 리스베트가 자신의 과거를 비로소 똑바로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이 주된 내용이다.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아마도 리스베트의 사라진 쌍둥이 자매 카밀라가 등장하지 않을까 라는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