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학교를 하면서 수 년간 거의 매일 진행했던 과목이 도예였습니다. 특수아동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 얕았지만 서울대 미학과 출신으로 도예하기를 너무 좋아했던 남편과 함께 어렵게 공방을 운영하던 선생님이 수 년간 꾸준히 맡아주었습니다. 사회성은 좀 부족하고 대화에 디테일이 부족하긴 했지만 꾸준하고 성실했던 것은 맞습니다.
지금의 마인드로 그 때 시절로 돌아간다면 제가 태균이 도예수업에 좀더 적극적이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많습니다. 매일 꾸준히 개별수업을 받았으나 늘 특수아 취급하는 자세에서 그저 흙을 빚는다는 것 하나로 땜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 고집으로 어린 아이들도 꾸준히 도예수업을 받았지만 교사들은 은근히 반대가 심했죠... 도예가 아니다... 흙먹기 경연장이다... 라는 것이 현장에서의 현실이기도 했습니다.
도예는 태균이의 갈 길입니다. 지금 유일하게 잘 할 수 있는 도전과제입니다. 영흥도에 와서 좋은 선생님을 만났지만 들어가는 비용이 사실 부담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주 2회 교육비도 작지는 않지만 작품이 구워져 나와야 하니 소성은 늘 뒷전으로 밀리면서도 작품 소성하는데는 많은 비용이 필요합니다.
사실 작년 10월 태균이 도예전시회를 진행하면서 속이 타 죽는 줄 알았습니다. 보통 앓아눕는 일이 거의 없는 제가 전시회 앞두고 몸져 눕기도 했죠. 이유는 전시회 일주일 전까지 태균이 작품 소성이 마무리가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었으니 더 속이 탔겠지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도예작품만들기 체험이 영흥도도예 선생님의 주 수입이었기에 체험자들 작품 소성이 우선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뒷전으로 밀리다 밀리다 전시회 2-3일 앞두고 겨우 건지게 된거죠. 훨씬 전에 진행된 카다로그용 작품사진 촬영도 프로를 초청해서 찍었는데 소성이 전혀 안된 소성후보용만 찍다보니 그 때도 속으로는 정말 많이 속상했습니다.
아마도 전시회를 마치고 절대 중단해서는 안 될 태균이 도예수업을 지금까지 망설인 것도 그 때의 속상함이 남아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만 더 근본적으로는 주 2회가 아니라 평일에는 매일, 시간도 훨씬 늘려 직업처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예 도예선생을 채용해서 함께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지만 영흥도에 있는한 자신의 사회관계망을 정리하고 주거까지 옮겨야되는 현실이라 올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시도해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지난 목요일 제주대학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대학동기를 만났습니다. 오름등반을 마치고 얼른 아이들 저녁먹이고, 늦지않은 저녁시간을 잠깐 만나고 왔는데요, 참으로 반가왔습니다. 태균이 밀알학교 다니면서 긴 시간을 개포동에서 살았는데 가까이 단지에 살기도 했고, 이 동기 와이프하고도 잘 통해서 친분이 있었습니다.
이 동기는 늘 저에게 자신의 인생전환점의 주역이 바로 저라고 이야기하곤 하죠. 대학 때 지독한 운동권이었고 이로 인해 좋은 학벌에도 변변한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오랫동안 영어강사를 했습니다. 제가 대학다닐 때 운동권 친구들 중에는 학원강사길로 간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암튼 그런 세월 속에서도 이 동기는 미국 법대(Law School)진학을 결심했고 (늘 마음 속에 부채의식같은 노동운동의 마무리의 의미로) 그 과정에서 저의 도움이 결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학 때 지독한 운동권이었으니 학점은 그야말로 최하... 그 와중에 그래도 꽤 쓸만한 대학에 보내준 게 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늘 고맙다고 말하곤 하죠.
유학다녀와서 새롭게 법대제도가 개편됨으로써 (법대 학부과정 폐지, 전문대학원으로 탈바꿈) 이런 제도개편에 운좋게 고향인 제주대학에 채용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긴 과정 기로에서 이렇게 뜻하지 않은 도움을 주고받을 때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동기의 삶 자체의 행운들이 꽤 괜찮은 편인듯 합니다. 유학생활을 통해 세 자녀들은 영어에 능통해져 지금은 다 좋은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요, 이 동기랑 와이프랑 반가운 회포를 푸는 중에 전해들은 소식... 도예에 미친 대학선배가 있답니다. 이제 모든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이주하려는 계획을 갖고 얼추 상당부분 진행을 한 모양입니다. 이번 여름부터는 새롭게 꾸민 제주도 작업실에서 작업에 몰두할 예정인가 봅니다. 아마도 기쁜 마음으로 태균이를 도와주지 않을까 한다는 예측성 발언...
그 진위가 조만간 확인되겠지만 우선 소식만으로도 미칠 듯 기쁩니다. 역시 K대 만세! 사실 제주도에 와서 도예공방 두 군데를 방문했었습니다. 상담할수록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 그 분위기... 무심함 혹은 외면이 앞선 무성의함, 새로운 세계에의 무관성 억지로 강조 등등
우리 태균이와 준이 앞날에 큰 희망이 펼쳐지길... 오늘 오름오르거들랑 천지신명께 빌어야 되겠습니다. 태균이 전시회카다로그를 보더니 돌아온 반응, WOW!
첫댓글 안 그래도 태균씨 도예가 궁금했습니다. 좋은 기회가 펼쳐 지길, 그리고 독립 가마를 갖게 될 날을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