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육과정 이탈
평가원은 (가)의 사상가를 주희가 아닌 양명으로 오인하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양지(良知)’라는 용어를 문장 첫머리에 위치시켰고, ‘이치는 (그 用이 미묘하여) 실로 사람의 마음 밖에 있지 않다.’라는 문장을 삽입했습니다. 왕양명은 ‘이치는 마음 밖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는 건 학생들이 양명학을 배울 때 기본적으로 암기하는 표현입니다. 평가원은 그걸 노려서 의도적으로 이 문장을 삽입했을 겁니다.
주희는 이치[理]를 ‘마음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다’고 말했다는 사실 역시 주자학을 배운 학생들은 다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제시문에서 주희는 ‘이치는 (그 用이 미묘하여) 실로 사람의 마음 밖에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지요. 이 대목에서 주희가 그렇게 말한 까닭은 이치[理]의 ‘체(體)’와 ‘용(用)’을 구분해서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알려면 주희가 리(理)를 논할 때 그것의 체(體)와 용(用)을 구분해서 설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아요. 교과서에도 없고, 그러한 사실을 그 어떤 학원강사나 교사도 가르치지 않는데 무슨 수로 학생들이 알 수 있을까요? 그러니 평가원은 이 문항을 고난도로 만들기 위해 교육과정 이탈을 감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근데 일단 이렇게 평가원이 교육과정을 이탈했으니, 앞으로 학교현장에서는 주희가 리(理)를 논할 때 체와 용을 구분해서 설명했다는 사실까지 가르쳐야 합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출제자는 주희가 그렇게 말한 취지를 정확하게 설명할 자신이 있습니까? 그냥 누가 이의제기 하면 원전(“주자전서” 등)에 나온다고 대답하는 것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근데, 이 제시문에서 정말 웃겼던 것은, ‘이치는 비록 온갖 일에 흩어져 있지만’이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이 문장의 원문은 ‘理雖在物(이치는 만물에 있다’)’입니다. 여기서 ‘물(物)’을 왜 ‘일[事]’로 번역해 놓았을까요? 물론 주희가 말하는 물(物)에는 일[事]도 포함이 됩니다.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물(物)은 ‘만물’로 번역합니다. 오히려 이 물(物)을 반드시 일[事]로 이해해야 하는 사람은 양명입니다. 그래야만 그가 말하는 ‘격물(格物)’의 ‘격(格)’이 ‘바로잡는다[正]’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근데 왜 출제자는 양명학의 용법인 ‘일[事]’로 번역해놓았을까요? ‘만물’로 번역하면 주희임이 드러나니까 의도적으로 그랬을까요, 아니면 별 생각 없이 그랬을까요? 전자라면 더욱 얍삽해지는 것이고, 후자라면 멍청한 겁니다.
2. 정답 오류
선지 ④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앎과 행위가 본래 하나임을 자각하고 일상에서 항상 선행을 하라.>
‘앎과 행위가 본래 하나’는 누구의 입장일까요? 일단 이 문구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앎[知]과 행위[行]를 일치시켜라’의 의미로 해석 가능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언행일치’입니다. 이런 의미라면 주희, 양명 모두 반대할 까닭이 없을 겁니다.
둘째는, ‘앎[知]과 행위[行]는 본체적으로(근원적으로) 하나이다’의 의미로 해석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런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출제자는 양명의 ‘지행합일’의 의미를 그렇게 알고 있었던 듯하네요.
양명은 지행합일을 논하면서 ‘知와 行은 본래 하나’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知가 곧 행이다[知卽是行]’라고 한 적은 있습니다. 이것은 양명이 ‘지행합일’을 논하면서 ‘지와 행은 서로 포함하고 있다(지에는 행의 요소가, 행에는 지의 요소가 있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한 것이지, 知와 行이 ‘본체적으로(본원적으로) 하나’라는 의미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래 교수가 쓴 책에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인용합니다.
“여기서 ‘합일’의 의미는, 지와 행 양자가 동일 대상에 대한 지칭이어서 둘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와 행이 서로 나뉠 수 없고 각자의 규정이 서로 상대편의 의미를 포함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양명철학”, 陳來 지음, 예문서원, 2003, p.166)
“그런데 왕수인의 지행합일에서 합일을 과연 ‘동일함’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최소한 지가 행의 시작이고 행이 지의 완성이라는 명제에서 말하면 지와 행은 완전히 동일한 것일 수 없다.”(같은 책, p.170)
양명은 이처럼 지와 행을 개념적으로든, 본체적으로든 구분했기 때문에 ‘지행병진(知行幷進)’을 얘기하게 되는 것입니다(『全書』, 「答顧東橋」, “知行幷進 不宜分別前後’). 이처럼 양명이 얘기한 적도 없는 ‘지와 행은 본래 하나’라는 표현을 무슨 배짱으로 사용했을까 궁금해서 교과서를 찾아보았는데, 5종 교과서 중 3개 교과서(미래엔, 교학사, 금성출판사)에 동일한 표현이 사용되었더군요.
교과서에 그렇게 쓰여 있으면 그대로 출제해도 되나요? 교과서가 오류라면 피해서 출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아울러, 만일 평가원 측에서 ‘앎[知]과 행위[行]가 본래 하나’라는 것을 ‘지에는 행의 요소가, 행에는 지의 요소가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선지로 제시한 것이라면, 知와 行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주희 역시 동일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네요. 그러니까 知와 行의 관계를 그렇게 해석하는 점에서는 주희와 양명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제시문 (가)를 얘기한 사람은 주희이니까 선지 ④도 정답이 되겠네요?
선지들이 너무나 어설픕니다. 모른 척하고 싶다가도, 전국의 교사 및 학생들이 헛소리들을 배우게 되는 것도 신경 쓰이고, 윤리 교사로서 학생들한테 구구절절 선지들의 오류 및 어설픔을 설명해 나가야 하는 점이 괴롭기도 해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여기에 글을 쓰게 됩니다.
작년 수능에서 생윤, 윤사 모두 오류 있었던 거 아실 겁니다. 소송까지 염두에 두었으나, 이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더군요. 첫째, 소송당사자는 ‘학생’이어야 하더군요. 그렇다면 오류 문제로 인해 피해를 본 학생을 끼고 소송을 해야 합니다. 번거롭기 짝이 없습니다. 둘째, 지난번 세계지리나 국어 오류 문항에 대한 소송에서 평가원은 법률구조공단이 아닌, 사설 고액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어차피 소송비용은 ‘국가’가 지불하니까 그렇게 하는 데 경제적 부담이 없는 겁니다. 더욱이 제소자가 지게 되면 평가원의 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죠. 사실상 오류 문항에 대한 소송을 원천봉쇄하려고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걸 믿고 선지들을 함부로 어설프게 만드는 게 아니기를 바랍니다. 정말 피곤하네요.
첫댓글 평가원 이의제기 게시판에 올라온 글입니다.
좋은 이의제기 잘 읽었습니다.
올 해 수능 생활과 윤리에서 문제가 있는 문항이 출제될 경우 소송을 할 생각이 있습니다.
비용은 제가 직접 피해 학생들을 모아서 1/n하겠습니다. 그리고 변호사는 박대훈(지리강사) 강사님이 제기하신 세계지리 관련 소송(승소) 경험이 있으신 변호사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지인)
문제는 '경제적 부담'입니다. 혹시 본수능에서 소송 필요성이 생기면, 협력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힉스 경제적 부담은 온라인에서 학생들을 모아서 부담을 하고, 부족한 나머지는 제가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만약 패소하여 정부의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되더라도 법정 비용은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윤리 교육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며, 학생들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들과 작게 스타트업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소송 필요성이 생길 경우 적극 협력하겠습니다. (물론 평가원이 문제가 없는 문항만을 출제하길 바랍니다. 오류 문항 때문에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를 자주 봐와서...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
오호 !! 명쾌한 이의제기입니다. 속이 다 시원하네요.
머리속에 뒤죽박죽 잘 포착되지 않던 갑갑한 느낌이었는데 이 글을 읽고나니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 기분이군요.
+ 사소한 부분이겠지만 기출문항 지문에서 인용된 부분에 정확하게 해당하는 원문은 "理雖在物"보다는 "理雖散在萬物"이겠지요. "理雖在物"도 원전에 있는 표현이긴 하지만 기출 지문에서 사용된 부분에 해당하지는 않고요. 물론 내용상으론 그게 그거니까 여전히 이의제기의 논지는 유효합니다.
物은 '만물, 사물'로 번역하지 일[事]로 번역하는 일은 없습니다. 근데 제시문 원전이 理雖散在萬物이었다면 더더욱 '만물'을 '일[事]'로 번역한 게 문제되겠네요.
@힉스 예 보통은 그렇긴 한데.. 사실 '궁색하게' 파고들자면 대형 사전에서 物을 찾으면 '일'로 쓰이는 용례도 있기는 있습니다.(『한한대사전 (9)』 98쪽) 그러나 물론 우리가 현재 논하는 문항에서는 '일'로 번역할 수 없다고 봐야겠죠. 왜냐면 주희의 해당 원문에서 대놓고 '만물'이라고 했으니까.
@한삶 '거의'라는 말을 삽입하려다가 말았는데...그런데 실제 성리학 경전에서 '物'을 '일[事]'로 번역해서 사용하던가요? 본글에도 있듯이, 物에는 당연히 일[事]의 의미가 있습니다만, 物을 굳이 일[事]로 번역해서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物을 오직 일[事]로 이해해서 사용해야 하는 사람은 양명이죠.
@힉스 솔직히 저건 진짜 거의 쓰이지 않는 용례라서 무시해도 좋을 거 같아요. 본글의 내용 자체는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 참고삼아..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송나라 때 소식(소동파)의 문장 중에서 '物'을 '일'의 의미로 쓴 용례가 있다고는 합니다.)
@한삶 아무튼 님의 존재가 저는 정말 좋네요. 윤리교육과 관련 인재풀 안에서 님처럼 대화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습니다.
@힉스 저는 특정한 좁은 관심분야에만 주로 지식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어서 늘 한계를 느끼고 있어요. 선생님 글 보면서 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기쁩니다. 소수라도 좋으니 학문적 의식이 있는 분들이 혹시 더 계시다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 말고 이런 한 공간에 모여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한삶 ㅎㅎㅎ 저는 성리학 쪽에서 그렇게 사용한 일이 있나 질문드린 건데...왜냐하면 성리학 쪽에서는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物은 '사물(만물), 일[事]'의 의미를 모두 갖고 있으니, 그것을 굳이 일[事]로 번역해서 쓰지 않아도 무방한 거예요. 하지만 양명은 物이 만물의 뜻이 되면 곤란한 점이 있죠. 그래서 반드시 事의 의미로 해석할 필요가 있었던 거고요.
@힉스 하긴.. 저도 그런 용례가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거기까지는 구체적으로 문헌지식이 닿지를 못해서 모르겠어요.
@한삶 이런, 제가 위에서 했던 얘기를 부분적으로 취소해야겠군요. 주희 『대학장구』에서 "物猶事也"라고 하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저런 소리를 했는지는 세주와 혹문을 같이 보면서 나중에 시간날때 좀 알아봐야겠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6.06 18:14
@한삶 자꾸 고민하고 계시는 듯한데, 物에 事의 의미가 있다는 건 본글에서도, 댓글에서도 반복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物에 事의 의미가 있다는 건 누가 말했겠습니까? 당연히 주희를 포함한 성리학자들이 말했겠죠. 物에 事의 의미가 있다는 건 '당연한 전제'이기 때문에, 物이라고 되어 있는 원문을 굳이 事로 고쳐서 말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더욱이 저 제시문의 원문은 '萬物'이었다면서요? 그것을 왜 굳이 事로 고쳐서 번역했느냐는 겁니다. 성리학자들은 '번역'을 할 필요가 없어요. 한자가 자신들의 언어이니까요. 번역은 한글을 쓰는 우리가 하는 거죠. 원문에 物 또는 萬物로 되어 있는 것을 일[事]로 고쳐서 번역하지는 않습니다
@힉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말입니다. 저 제시문이 그 '특별한 경우'에 해당되나요?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힉스 저도 출제자가 "온갖 일"이라고 표현을 쓴 것은 이 본글에서 지적된 것과 같은 이유에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物과 事에 대해 그동안 제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아서 이것저것 뒤져보다가 메모를 해놨던 거에요. 저는 '物'에 stuff의 뜻도 있고 event의 뜻도 있다는 식으로, 즉 두 의미가 "병렬관계"로 있다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도올 선생의 책을 읽다보니 주희식 '物'의 뜻은 그 자체가 광범한 event(물론 왕양명 식의 事와는 다른 용법으로)이며 그 '사건'이라는 넓은 뜻 안에 stuff의 뜻도 들어있다는 식으로, 즉 두 의미가 "포함관계"라는 식으로 설명하더군요. 이런 점에서 인지불평형이 일어서 메모해 둔 거였어요.
@한삶 이 게시판을 누가 열람할 지 모르기 때문에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제가 위에서 출제자에게 유리한 얘기를 한 것은
아닙니다. 정작 문항의 선지에서는 제시문과 달리 '사물'이라는 일반적인 번역어를 사용했으니까요.
@한삶 제가 볼 때는 김용옥이 특별히 다른 얘기를 한 것 같지는 않네요. 주희가 말한 것의 반복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님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과도 다를 바 없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