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9일 (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자들
오늘의 말씀 : 사사기 18:1-10 찬송가: 530장(구 320장)
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
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그들의 가족 가운데 용맹스런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정탐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3 그들이 미가의 집에 있을 때에 그 레위 청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하니
4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이러이러하게 나를 대접하고 나를 고용하여 나를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느니라 하니라
5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6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
7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8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가서 그들의 형제들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보기에 어떠하더냐 하니
9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10 너희가 가면 평화로운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는지라
중심 단어
단 지파, 미가의 집, 레위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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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지파
1절: 새로 거할 기업을 구하는 중이었다
2절: 다섯 사람의 용사를 선발하여 거할 만한 땅을 정탐하도록 파송하였다
3-6절: 미가의 제사장으로부터 자신들의 앞길이 형통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7-10절: 라이스가 새로운 거처로 적합하며, 자신들이 그 땅을 반드시 취하게 될 줄로 확신하였다
도움말
1.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6절): 여호와께서 모든 길을 예비하시며 인도하시고 지켜 주실 것이라는 뜻이다.
2. 평화로운 백성(10절): 물리치기에 염려가 없는, 즉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백성이라는 뜻이다.
말씀묵상
쉬운 길을 택하다
본문에 나오는 단 지파 역시 자기 뜻대로 행한 자들이었습니다(삿 17:6). 단 지파는 여호수아 당시 유다와 베냐민, 그리고 에브라임 지파와 접경한 가나안 중부 지역을 기업으로 얻었습니다(수 19:40-46). 그러나 그 땅에는 아모리 족속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 지파가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아모리인들을 쫓아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단 지파는 강력한 아모리인들과 피땀 흘리며 싸우는 수고와 희생을 감내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보다 손쉽게 정복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도처에 정탐꾼들을 파송했고, 라이스를 발견하게 되자 그 땅을 강탈하기로 작정합니다(7-10절).
형식적인 신앙을 쫓다
하나님은 단 지파가 자신의 기업에서 아모리인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완전히 정복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새로운 기업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곧 미가의 제사장을 만나게 됩니다. 단 지파는 그에게 자신들의 앞길이 형통할지 하나님께 물어봐 달라고 청했고, 그에게서 형통하리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3-6절).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도 복을 구한 백성과 그들에게 영합해 복 빌기를 주저하지 않은 거짓 종교인의 모습은 바로 하나님을 축복의 방편으로만 여기는 자들의 실상이었습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단 지파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라이스를 정탐하고 돌아온 자들은 단 자손에게 어떤 보고를 전달했습니까(9-10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 가장 먼저 무엇에 의지합니까?
2. 여러분은 불리할 때도 진실된 말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
이 찬양에 눈물 흘릴 때 주님께서 내 손을 붙잡고 일어서게 하신다.
주님여 이 손을 꼭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
단 지파가 아직도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분배받지 못하고 있다. 원인은 이미 주신 기업에서 아모리인을 몰아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싸움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싸움을 피하고 더 쉬운 길을 찾기 위해 정탐꾼을 보냈고, 결국 라이스라는 약한 마을을 찾아 강탈을 결심하게 이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결심하게 되는 계기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미가의 제사장에게 물었고 그의 예언을 붙잡고 쉬운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단 지파가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용맹스런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정탐하게 한다. 그 정탐꾼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이르렀을 때 미가의 집에 유숙하게 된다. 그곳에서 미가의 제사장을 만나게 되고 그들은 미가의 제사장에게 자신들이 가는 길이 형통할지 물어보라고 한다.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물론 하나님께 물을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께 묻는 의도와 질문에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묻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묻는 의도에는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묻기 보다는 쉽게 차지할 수 있는 땅인지 아닌지가 중요했다. 만약 제사장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 준다면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말이 아닌가? 무엇으로 검증할 것인가?
만약 그들이 정탐하고자 하는 땅에 아낙자손과 같이 두려운 존재가 있어 그들이 가는 길이 형통하지 못하다고 말한다면 포기하고 계속 방황하겠다는 말인가? 용맹스런 모습은 보이지만 그저 쉬운 길을 찾는 비겁한 자들의 질문처럼 보인다. 진짜 용맹스러운 모습은 갈렙에서 볼 수 있지 않은가?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그런데 미가의 예언에 모두가 확신을 갖게 된다.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을 들었기 때문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마치 점쟁이한테 점을 치는 모습처럼 보인다.
단 지파는 하나님 뜻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행동했다. 형식적인 신앙, 기복적인 신앙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우상을 섬기는 미가의 집에서 고용된 상태에서 과연 하나님 뜻을 제대로 말하는 제사장이라고 신뢰할 수 있을까? 단 지파는 이 말에 스스로 속아 자신들의 욕심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 짓고 믿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에서 미가의 제사장이 했던 예언이 맞는 것처럼 보였다. 정탐꾼들이 라이스에 이르렀을 때 그곳은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라는 상태였다. 이런 환경을 보고 또다시 확신하게 된다. “정말 미가의 제사장 말대로 형통한 길이구나!”
그들이 돌아가 이렇게 보고한다. “일어나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기보다 약자에게 강탈하기 쉬운 기회를 선택한 것이었다.
도망치는 요나 앞에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라는 상황이 펼쳐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나에게 지금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라는 말이 얼마나 간절한가?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이나 안전한 길을 먼저 찾으려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상황이 불리해 보이면 하나님의 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억지부리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나 또한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 이런 말을 하고 싶어서 간절히 기도할 때가 있다.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라고 말할 때 멋있는 예언가처럼 보이지 않는가?
하나님을 경외함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형식적인 신앙, 하나님을 ‘축복의 방편’으로만 여기는 기복주의 신앙의 그림자를 거두게 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라고 외칠 수 있어야 진짜 신앙이 아닌가? 진짜 목사가 아닌가?
주님여 이 손을 꼭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 오늘 이 찬양을 하며 주님의 손을 잡고 일어섭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갈급한 영혼 앞에서 나도 미가의 제사장처럼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이 종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간절하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영혼 앞에서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내 뱉는 거짓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가서 싸워서 차지하라!”고 말하는 진짜 목사가 되게 하옵소서.
쉽고 편안한 길이 형통한 길이 아니라 요셉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는 길이 형통한 길이요,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고 나가는 길이 형통한 길이라고 말할 줄 아는 진정한 목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ttps://youtu.be/uhrb6a7EZhs